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83화 (84/151)

【83】 죄수들(2)

엘하르트를 바라보던 제이슨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지난번에 걸린 봉인은 다 풀었고, 그 외에도 세 개의 봉인이 더 풀렸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봉인이 풀려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엘하르트는 전처럼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엘하르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현신을 오래 유지하는 것보다는 계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제이슨은 그건 상관없었다. 마치 어디 가서 맞고 있을 때 형을 데리고 온 느낌이라고 할까? 쉐일링이 찍 소리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대신 언제든 나올 수 있게 된 거야?”

“신의 의지가 깃든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아. 이제는 자력으로 봉인을 풀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으니 이쪽에 신경을 써야 해. 하지만 이제는 본신으로 소환이 가능하니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다.”

제이슨의 시선이 쉐일링을 향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쉐일링을 보니 엘하르트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이곳이 감옥이라면 엘하르트는 따로 봉인되어 있었다.

“너 대체 예전에 뭐하다가 잡힌 거야?”

엘하르트는 피식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이것들 처리하지 않았다가 대륙에 피바람이 불 거다.”

“피바람?”

“전에도 왕국 파괴범들이었는데 지금은? 약해졌다고 하지만 저들을 잡아넣을 사도들도 없는 상황이다.”

“네가 말한 사도가 저들만큼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엘렌이라는 존재가 강하다고 했지만, 벡스의 칼에 팔이 날아갔었다.

“엘렌은 사도에서 무력을 담당하던 이가 아니야. 그리고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쯤 사도들의 수를 늘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총 몇 명인데?”

“열두 명.”

제이슨은 엘렌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존재가 열둘이나 된다니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때 엘하르트가 담담히 말했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하게 얻은 녀석이 있으니 이 녀석과 계약하면 날 부를 일이 크게 줄어들 거다.”

“계약돼?”

“예전이라면 턱도 없는 소리였지만, 딱 보니 예전만큼 힘도 못 쓰는 것 같아. 그러니 해볼 만하겠어.”

제이슨은 뺨을 긁적였다. 대체 예전에는 얼마나 괴물이었다는 걸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했던 녀석이 예전만큼 힘을 못 쓰는 중이라고 하니.

“우선 이 녀석이랑 계약해. 그 정도는 내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제이슨이 바라보자 쉐일링은 엘하르트의 눈치를 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쉐일링의 뒤통수를 엘하르트가 후려갈기고는 말했다.

“죽을래?”

쉐일링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쉐일링의 귓가에 대고 엘하르트가 제이슨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지금 제이슨의 청력을 생각하면 바로 앞에서 말해도 안 들릴 수가 없었다.

입만 벙긋거린 건가 싶은데 쉐일링의 시선이 제이슨을 향했다. 눈도 없는 어둠이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나 싶었지만, 분명히 그렇게 느껴졌다.

쉐일링이 다시 엘하르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쉐일링도 고개를 끄덕이자 엘하르트가 봉인의 사슬을 풀었다.

쉐일링이 제이슨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제이슨이 그 손을 마주 잡으니 쉐일링이 제이슨의 몸을 타고 올랐다. 팔부터 시작해서 전신으로 올라오는 모습에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보았지만, 그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믿으라는 그 눈빛을 보고 제이슨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쉐일링에 몸을 맡겼다. 쉐일링은 제이슨의 전신을 검게 물들이는가 싶더니 스르륵 발밑으로 이동했다.

제이슨은 발밑을 내려다보고는 전보다 진해진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림자로 변한 채 숨어버린 쉐일링을 보고 제이슨의 시선이 엘하르트를 향했다.

“뭐라고 한 거야?”

“녀석의 염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지.”

“그 염원이 뭔데?”

“내 염원이랑 같아.”

“그러니까 그게 뭔데?”

엘하르트는 씨익 웃고는 답했다.

“지금은 알려줘 봐야 너 기죽기만 할 테고. 시간이 지나면 알려주마.”

어째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에 제이슨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어찌 되었든 자신과 스노우의 합공을 견뎌 내는 것을 넘어 오히려 압도한 쉐일링과 계약하게 됐으니 오히려 이득이었다.

엘하르트의 봉인이 풀린 것보다 쉐일링을 얻은 것이 실질적으로 더 이득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엘하르트는 다시 봉인을 풀기 위해서 들어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쉐일링은 그림자로서 자신과 함께할 테니까.

그때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렸다. 제이슨은 수정구를 빠르게 살폈다. 수정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갔어?”

“미쳐 날뛰고 있겠지. 이렇게 오랫동안 갇혔다가 풀려났는데 좀이 쑤신 것을 어떻게 참겠어?”

제이슨은 수정구들이 감방만 보여주는 것을 알았다. 감옥 전체를 확인할 수 없으니 아크 리치와 드래곤과의 혼혈인 용마인이 사라졌다.

쉐일링은 곧장 이곳으로 왔지만, 다른 둘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둘도 제압할 수 있을까?”

엘하르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쉐일링을 구속하는 데 힘을 많이 썼어. 그래도 쉐일링의 도움을 받으면 잡을 수 있을 거다.”

엘하르트는 그 말을 끝으로 점점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하긴 제이슨과 스노우를 압도하던 쉐일링의 공격을 받아내고 단숨에 제압까지 했으니 이제 막 봉인을 푼 상태에서 무리한 것이리라.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움직이기로 작정했다. 수천 년만에 감옥에서 나온 녀석들이 과연 감옥에서 왜 난동을 피울까? 그냥 때려 부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결국, 들어온 건가?”

트레저 헌터 팀. 열두 명으로 이뤄진 그들이 들어왔다가 용마인이나 아크 리치와 만났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제이슨은 열쇠를 뽑았다.

신의 의지가 깃든 물건이었다면 그 자체로도 대단한 물건일 가능성이 컸기에 열쇠를 아공간 주머니에 던져 넣은 제이슨은 곧장 통제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아직도 굉음이 울리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제이슨의 시선에는 박살 난 기간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간트들은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부서져 있었고, 사람들이 사방에 처박혀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힘 조절을 했는지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나이트급 기간트의 부서진 가슴에서 끄집어낸 사람 하나를 왼손으로 들고 있었다.

제이슨이 도착하자 미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제이슨은 마주친 사내가 드래곤과의 혼혈인 용마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엘하르트와는 다른 미남자. 약간은 차가운 인상의 미남자는 제이슨을 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사내를 옆으로 던졌다.

일행들이 달려들어 받아낸 덕분에 머리가 깨지는 것을 면한 사내에게 시선을 줬던 제이슨이 용마인을 돌아보았을 때 그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네가 문을 열었구나.”

제이슨은 검을 뽑아 용마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 널 구해준 사람이지.”

“구해줘?”

용마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수천 년간 갇혀 있던 것을 꺼내줬으니 구해줬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네가 관계자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

제이슨은 용마인의 눈치를 보았다. 맨몸으로 나이트급 기간트를 때려 부쉈다. 쉐일링처럼 용마인도 쇠약해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찌 보면 아크 리치나 쉐일링은 생명체라고 보기 힘들지만 용마인은 분명히 생명체다.

수천 년간 먹지도 못했는데 살아있는 것부터가 신기한 상황. 그런데도 이만큼 강하다는 것은 쉬운 상대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제이슨도 쉐일링까지 계약했다.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지 모르겠지만, 엘하르트도 쉐일링이 있으니 아크 리치나 용마인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관계자였으면 더더욱 문을 열어줬을 리 없겠지.”

용마인이 씨익 웃더니 말했다.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검을 뽑았으면 한 판 붙자는 거잖아!”

용마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이슨의 코앞으로 들이닥쳤다. 제이슨은 용마인의 움직임에 반사적으로 검을 뻗었다.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참격을 날릴 수 있게 되었기에 쉐일링과 싸우면서 깨달은 것을 이용해 검을 휘둘렀다.

단숨에 날아드는 참격을 본 용마인의 눈이 커졌다. 용마인은 날아드는 참격을 몸을 틀어 피했지만, 품에 안겨 있던 스노우가 뿜어낸 한기 브레스가 용마인을 직격했다.

용마인은 몸이 쩍쩍 얼어붙는 것을 보고 제이슨의 검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왕국 파괴범에게 기회를 줄 수는 없었다.

제이슨이 날린 참격을 바라보던 용마인의 눈이 세로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전신에 비늘이 일어났다. 얼음이 산산이 깨져나갔고 용마인은 제이슨의 참격을 피하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명치를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보고 제이슨이 뒤로 물러나자 보호의 망토가 주먹을 받아냈다.

쩌엉!

튕겨 날아간 제이슨이 벽에 부딪혔다가 몸을 가눴을 때 그를 바라보는 용마인의 전신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보호의 망토는 사도의 것이었는데 그걸 가지고도 관계자가 아니라 이 말이지?”

제이슨은 역시 말이 안 통하는 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말이 안 통하네.”

쉐일링은 아예 말을 못했는데 용마인은 말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답이 없다. 매가 약이다.

이놈 빨리 처리하고 아크 리치도 잡으러 가야 했다. 가능하면 아크 리치는 영지로 끌고 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제이슨이 용마인을 향해 달려들면서 느낀 것은 이 자도 운명을 엿볼 수 없는 강자다.

그리고 신체 능력이라면 제이슨은 베제트의 도움을 얻어도 따라갈 수 없다. 쉐일링과는 또 다른 경우로 까다로운 자였다. 제이슨이 휘두른 검을 용마인이 간단히 손등으로 쳐냈다. 그리고 다가와 내지르는 주먹을 보호의 망토가 막는 순간 제이슨은 몸을 틀어 그 힘을 흘렸다.

그때 용마인이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와 주먹을 내뻗었다. 이거 맞았다가는 보호의 망토고 뭐고 간에 그대로 죽을 판이었다.

그때 제이슨의 그림자가 불쑥 일어나 용마인의 몸을 휘감았다. 용마인은 자신의 몸을 휘감은 그림자를 내려다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쉐일링?”

콰드득.

용마인이 힘을 주었지만, 쉐일링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제이슨은 제때 나와준 쉐일링에게 감사해하며 용마인의 목을 향해 참격을 날렸다.

쩌엉!

“컥!”

제이슨은 용마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목을 베려고 자신이 자랑하는 참격을 날렸는데 목이 잘리지 않았다. 비늘로 뒤덮인 목에 작은 상처만 남았을 뿐이다.

“뭐 이런 괴물이···.”

제이슨의 참격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비기였다. 지금까지 무엇이라도 베어낼 수 있었던 검. 그런데 그 검이 통하지 않았다.

용마인은 자신의 목을 내려다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정도로는 날 못 죽이는군.”

엘하르트도 칭찬했던 검이 통하지 않았다. 쉐일링도 피했던 검이 통하지 않는 상대. 제이슨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자세가 남달라진 것을 보고 용마인이 씨익 웃었다.

“안 통해.”

제이슨은 전력을 다해서 용마인의 머리를 내리쳤다. 진심을 다한 참격. 하지만 용마인은 그 순간 머리 위로 투구를 쓴 것처럼 비늘이 일어났다.

빠각!

전력을 다한 참격에도 용마인은 베어지지 않았다. 그저 기절했을 뿐이다. 기절한 용마인을 보며 제이슨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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