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82화 (83/151)
  • 【82】 죄수들(1)

    거대한 어둠이 스르르 움직이더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2미터까지 작아진 그림자는 제이슨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망토의 형태까지 갖춘 것을 보면 작정하고 닮은 모습이었다.

    검의 형태까지 똑같은 것을 보고 제이슨의 인상이 굳어졌다. 왕국 하나를 망하게 했던 놈들이 갇혀 있는 감옥에 갇혀 있던 놈이니 만만하게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엘하르트와도 슬슬 부딪쳐 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마스터들도 왕국 하나를 박살 내지는 못한다. 그들은 홀로 기사단 몇 개를 박살 낼 수 있는 강자들이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런 마스터에게 패했었다. 베제트를 소환한 채 싸워보지는 않아서 제대로 붙어보면 어떻게 될지는 몰랐지만, 이제 한 번 붙어볼 순간이 왔다.

    제이슨이 눈앞에 선 그림자를 향해 성큼 다가가려고 할 때 품에서 스노우가 튀어나갔다. 제이슨이 부를 틈도 없었다. 스노우가 바닥에 내려서더니 하울링을 토해냈다.

    캬우우웅!

    조그만 녀석이 토해내는 하울링은 귀여운 수준이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맹렬한 한기가 스노우의 앞에서 몰아치며 그림자를 향했다.

    그림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한기에 뒤로 스르륵 물러나는가 싶더니 스노우의 형태로 변하고는 입을 벌렸다. 소리 없는 포효와 함께 어둠이 쏟아져 나와 스노우의 한기에 부딪혔다.

    그 충격파에 뒤로 밀린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앞을 막은 채 스노우와 그림자가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까지 사납게 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스노우는 북부의 지배자 심장을 먹은 겨울 여우 정령이었다.

    그 한계는 아직 보지 못했었는데 지금 싸우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슨이 죽였던 녀석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강했다.

    운명을 일부 엿보던 녀석에 비하면 물리적인 능력은 떨어지지만, 한기를 다루는 능력은 대단했다. 스노우의 주위로 맹렬하게 한기가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얼렸다.

    그뿐이 아니다. 주위에 떠 있는 작은 얼음의 화살은 그 위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림자가 만든 어둠의 방벽에 방어가 됐지만, 전해지는 충격파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어지간한 기간트의 방어 마법 정도는 깨부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을.

    제이슨은 그 모습에 스노우가 대견했지만, 그림자는 스노우에게 전해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물리적인 능력은 더욱 뛰어났다.

    저게 수천 년을 넘게 갇혀 있던 약해진 녀석의 힘이라니 믿기 힘들었다. 그래서 제이슨은 돕기로 했다.

    제이슨이 천천히 검을 들었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제이슨이 깨달은 참격이라면 저 그림자에게도 통하리라.

    제이슨이 기회를 보았지만,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공격을 퍼붓는 그림자는 절묘하게 스노우와의 동선이 겹쳐져 있었다. 마치 알고 하는 것 같은 모양새라 제이슨도 쉽사리 참격을 날리지 못했다.

    알고 한다면 보통 약은 녀석이 아니었다.

    제이슨이 바라보는 가운데 스노우가 그림자의 앞발에 맞고 튕겨 날아왔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까지 엘하르트와 싸워왔고,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었다.

    그러니 상대가 왕국 파괴자라고 해도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제이슨이 날아오는 스노우를 지나쳐 앞으로 나가며 검을 뻗었을 때 그림자의 앞발이 사람의 팔로 변하더니 검을 마주 휘둘렀다.

    쩌엉!

    제이슨의 참격에 그림자의 검이 잘려나갔다. 그림자도 반으로 잘려나가는 것 같았지만, 그건 잘린 것이 아니었다. 제이슨의 손에 느껴지는 감각은 없었다.

    그림자는 그 순간에 반으로 갈라지며 제이슨의 참격을 피했다.

    그리고는 두 개로 흩어졌던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지며 제이슨의 앞에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림자가 미소를 지었다.

    어둠뿐이라 구별이 안 될 거라 여겼는데 그림자 사이에 나타난 새하얀 미소는 마치 즐겁다는 듯 보였다.

    “쪼개냐?”

    제이슨은 자신을 향해 보이는 미소에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제이슨의 옆에서 스노우가 함께 달려들며 하울링을 토해냈다.

    마치 브레스처럼 나아가는 새하얀 한기의 숨결을 향해 그림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림자의 손이 스노우의 얼굴처럼 변하더니 어둠을 쏟아내 브레스를 받아냈고, 제이슨의 참격에 그림자는 그걸 피해냈다.

    저번에 느꼈던 건데 운명을 엿보는 자들 사이에서는 공격을 읽을 수 없다. 제이슨은 새삼 그림자의 수준에 놀랐다. 마법적인 능력이 북부의 패자라고 할 수 있는 스노우에 버금가고 물리적인 전투 능력은 제이슨도 읽어내지 못할 정도다.

    운명을 엿보는 수준까지 되는 검술까지 생각하면 이거 보통 놈이 아니다.

    이 정도나 되니까 왕국 파괴자들과 함께 갇혀 있었던 걸까?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이거지?”

    제이슨도 진심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엘하르트는 자신을 가르치는 상대지만, 이 자는 적이다. 그런 만큼 걸려있는 것이 달랐다.

    제이슨이 휘두르는 검을 그림자는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피해냈다. 그것이 점점 더 제이슨의 검을 빠르게 했다. 운명을 엿보는 중에는 검이 가야 할 길을 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그 검을 피해내는 상대를 만나자 점점 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예전이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일. 이것은 성장하면서 커진 오러 홀을 통해서 육체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그건 수호검 샤이드 대공이 보여줬던 경지에 가까웠다. 샤이드 대공이 보여줬던 경지와 엘하르트가 가르쳤던 경지가 더 해진다.

    그림자도 처음에는 곧잘 공격을 피하다가 마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참격은 제이슨도 이렇게 공격을 퍼부을 때는 쓰지 못한다.

    그것이 없으니 그림자의 검에 곧잘 막혔다. 그런데 그때마다 느껴지는 반동에 손아귀가 저릿거렸다. 베제트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이러는 것은 그림자의 힘이 놀라울 정도라는 얘기였다.

    이 그림자. 싸우면 싸울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마치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 봐라?”

    스노우와 둘에서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도 그림자는 제대로 공격을 펼치지 않았다.

    제이슨은 뒤로 물러나 검을 내렸다.

    “스노우!”

    제이슨의 부름에 스노우도 털을 세웠지만,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제이슨은 그런 스노우와 함께 서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너. 말은 할 줄 아냐?”

    제이슨의 물음에 그림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씨익 웃더니 제이슨을 향해 검을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머리가 쭈뼛거릴 정도로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제이슨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림자가 처음으로 공격을 날렸다.

    날아드는 검을 받아낸 제이슨은 뒤로 밀렸다. 진심으로 공격을 퍼붓는 그림자는 만만치 않았다.

    살기를 내뿜으며 퍼붓는 공격을 제이슨은 정신없이 받아내면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그만큼 그림자는 강했다. 스노우가 합세했는데도 승기는커녕 둘 다 위험에 처했다.

    오랜만이었다. 베제트를 얻고 나서는 엘하르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읽을 수 있었는데 읽히지 않는 상대를 만난 것. 게다가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를 만났다는 것이 오랜만이라 잠자고 있던 피가 끓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정!

    그래서인지 제이슨은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쳐냈다. 그림자의 입에 새하얀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

    귀밑까지 찢어질 것 같은 새하얀 미소를 보면서 제이슨은 점점 더 빠르게 검을 뻗었다. 마치 벽을 넘기라도 하겠다는 듯 쏟아내는 검격이 오고 가는 중에 그림자의 미소가 더욱 진해지더니 검을 쭉 찔러왔다.

    그걸 보는 순간 알았다. 저건 못 피한다. 자신의 참격과 비슷한 찌르기. 피하지도 못할 판인데 저거 맞았다가는 베제트고 뭐고 간에 무조건 뚫린다.

    이런 공격까지 퍼부을 수 있는 녀석인지는 몰랐다. 제이슨은 사선으로 검을 쳐올리며 참격을 날렸다. 이렇게 준비 없이 써보기는 또 처음이었지만, 급한 순간에 터져 나왔다.

    카라랑!

    그런데 그림자의 검은 제이슨의 참격을 거슬러 왔다. 똑같은 수준의 공격기라고 해도 한 점에 집중된 공격이라 그 위력이 달랐다. 무엇보다 그림자의 수준이 제이슨을 앞서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토록 빠르게 날아들던 검이 느리게 보였다. 마치 죽기 전에 느끼는 주마등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기한 경험이었다. 문제는 그 경험 속에서 제이슨의 몸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빤히 두 눈 뜨고 가슴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에 찔려 죽을 판이었다. 그때 불쑥 옆에서 끼어든 손이 그림자의 검을 잡았다.

    제이슨은 느려진 시간 속에서 끼어든 존재를 볼 수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엘하르트가 그림자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취리릭!

    그렇게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봉인의 사슬이 그림자를 휘어 감았다. 그림자의 새하얀 입이 쩍 벌어지면서 비명을 토해냈지만, 엘하르트는 봉인의 사슬을 끌어당겨서 그 그림자와 얼굴을 마주한 채 말했다.

    “쉐일링의 마지막 생존자구나.”

    그림자가 흠칫 몸을 떠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엘하르트는 그런 그림자에게 말했다.

    “일족 모두가 희생해 그 힘을 전해 준 최후의 쉐일링. 너라면 날 기억할 테지?”

    그림자가 엘하르트와 마주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엘하르트는 그런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제이슨을 가리켰다.

    “저 녀석은 내 계약자다. 네 장난에 놀아줄 상대가 아니라는 얘기지.”

    엘하르트가 그림자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며 말했다.

    “한 마디로 제 건들면 내 손에 죽는다는 얘기다.”

    그림자가 그 말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슨은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자신과 스노우의 합공에도 압도하던 그림자가 아무리 봉인의 사슬에 묶였다고 해도 찍 소리도 못하는 모습에 진이 다 빠졌다.

    동굴은 생각보다 넓었고, 칼데안과 팀은 기간트를 소환한 채 이동 중이었다. 트랩의 일부가 부서져 있었지만, 고대 던전들 중에는 이미 사용된 트랩이 재작동하는 때도 있었기에 택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먼저 던전에 들어온 자를 만났을 때 곧장 응징하기 위해서 택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던 칼데안은 팀의 앞에서 걸어 나오는 미남자를 보았다.

    칼데안이 곧장 주무기인 창을 뽑아 들고는 겨눴다.

    “너냐? 우리가 찾던 던전을 탈취하려는 녀석이?”

    칼데안의 외침에 고개를 갸웃거린 미남자가 입을 열었다.

    “던전? 여기가?”

    미남자의 입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건 광기에 찬 미소였다.

    “순순히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면 살려는 주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미남자가 씨익 웃었다.

    “기척이 들려서 찾아왔더니 너희가 아니군.”

    “뭐?”

    “문을 연 건 너희가 아니라고.”

    칼데안은 그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문을 연 자가 아니라는 걸까?

    “어디서 개수작이야!”

    칼데안이 성큼 앞으로 다가가며 창으로 위협하는 순간 미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꽈앙!

    그리고 칼데안이 타고 있던 기간트가 뒤로 튕겨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미남자는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어깨를 틀었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나? 몸이 많이 굳었네.”

    칼데안은 맨주먹으로 나이트급 기간트를 날려버린 미남자를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