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74화 (75/151)

【74】 망치와 모루(3)

벡스가 이끄는 대군이 뒤를 노린다. 제이슨과 펠릭스, 엘레나까지 더하면 아군의 오러 유저중 6할이 이곳에 있는 것이었지만, 돌격대만으로 모루의 역할을 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적들은 달려가 봐야 성이 버티고 있으니 그들도 후퇴하기보다는 반전해서 달려오는 트랑 왕국군을 상대하려고 했다.

그렇게 적들이 어수선해졌을 때 제이슨이 통신을 날렸다.

“저기 총사령관 깃발 보이는데 저희가 뚫어 보죠.”

본진까지 거리가 제법 되고 적들도 많지만, 반전하는 적군을 보니 해볼 만할 것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트랑 왕국 최고의 돌격대였으니까.

게다가 길을 뚫기에 최적의 조합이 이곳에 있었다.

히어로급 기간트가 이쪽으로 나오기는 힘든 상황. 나이트급 기간트라면 제이슨이 모조리 벨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적진까지 뚫는 길을 만들 수도 있었다.

-어차피 물러날 수도 없으니 가자.

펠릭스도 지금 상황에서 적들의 시선이 뒤편에서 달려드는 트랑 왕국군을 향한 것을 알았다. 그러니 지금은 이쪽이 오히려 뒤편에다가 병력의 층도 얇아졌다.

제이슨이 두 기의 히어로급 기간트를 쓰러트리는 사이에 거대 포탑을 부쉈던 펠릭스가 결정을 내렸다.

-뒤로 붙어라. 너는 싸우지 않는다.

“예?”

-네가 직접 바젤란의 목을 가져와라. 그 전까지 쉬게 해주마.

이미 펠릭스의 거대한 도끼가 적진을 휘젓기 시작했다. 펠릭스도 힘을 아끼지 않고 쓰기 시작했다. 이대로 적진을 뚫고 나갈 생각인 걸까?

제이슨은 엘레나도 검에 오러를 두른 채 펠릭스의 곁에서 날뛰는 것을 보았다.

솔직히 히어로급 기간트 두 기가 돌격대를 뒤에 두고 나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 될 수 있었다. 그때 저 멀리 성에서부터 달려오는 존재가 있었다.

해골로 이뤄진 위풍당당한 크기의 말. 팬텀 스티드.

로크가 만들 수 있었지만, 굳이 만들 일은 없었던 존재였다. 기간트가 타기에는 작았고, 전투력보다는 기동력에 치중한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갑을 입은 채 싸우는 제이슨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을 정도의 기동력을 보장해줬다. 코어 카트에 버금가는 속도를 자랑했다.

제이슨은 달려오는 팬텀 스티드에 올라탔다.

히어로급 기간트 둘이 길을 열고 돌격대가 쐐기처럼 그 길을 넓히는 그 가운데 제이슨은 팬텀 스티드를 타고 달렸다. 적의 본진과 시시각각 거리가 좁혀지는 가운데 제이슨은 숨을 골랐다.

기회는 한 번이다. 그리고 그때 참격으로 바젤란을 벤다.

딱 그 마음 하나만 가지고 정신을 집중했다. 뒤에서 몰려오는 트랑 왕국군을 향해서 반전한 적들도 있었지만, 본진을 지키고 있는 적들도 가벼이 볼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몇 개의 기사단이 합쳐져 이백 기에 달하는 기간트가 이들을 포위해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오러 유저가 아니라고 해도 펠릭스는 지금까지 선두에서 싸워오다 보니 하나둘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러나 펠릭스는 기간트가 부서진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오른쪽 견갑이 부서지고 왼쪽 손목도 날아갔지만, 이미 그가 쓰러트린 기간트의 수는 열넷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엘레나도 꽤 피해를 보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만들어주는 길.

하지만 본진에 닿기에는 부족하다. 제이슨은 그걸 보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팬텀 스티드의 고삐를 잡아챘다.

히히힝!

기동력이라는 면에서는 흑마도공학자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인 팬텀 스티드가 도약했다. 앞에서 싸우는 펠릭스의 기간트 어깨를 밟고 도약한 팬텀 스티드의 위에서 제이슨은 검을 내리쳤다.

쫘악!

제이슨의 참격에 앞을 가로막던 기간트 네 기가 그대로 조각났다. 그리고 제이슨을 태운 팬텀 스티드가 그 사이로 달렸다. 이백 기의 기간트가 막고 있다고 해도 펠릭스와 엘레나가 뚫은 상황에서 다섯 기의 기간트가 베이자 그 사이로 본진이 보였다.

제이슨을 태운 팬텀 스티드가 빠르게 치고 나가자 좌우에서 그를 노리고 무기들이 날아왔다. 하지만 제이슨은 그쪽은 보지도 않았다.

쩌저정!

뒤따라온 펠릭스와 엘레나의 공격에 적들의 무기가 튕겨 날아갔다. 제이슨은 그들을 믿었고, 그들은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단숨에 본진의 앞으로 달려든 제이슨은 본진의 기간트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평시라면 설령 이렇게 돌격에 성공한다고 해도 적장의 목을 베고 죽을 수 있었다. 돌격으로 뚫고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물밀 듯 밀고 들어오는 벡스 장군 휘하 트랑 왕국군이 있기에 여기서 적장을 벤다면 전장의 흐름을 온전히 빼앗을 수 있다.

그렇기에 무리해서 제이슨은 팬텀 스티드를 타고 달려들었다. 워리어급 기간트들은 팬텀 스티드를 타고 달려오는 제이슨을 향해 창을 찔러넣었다.

워리어급 기간트들이라고 해도 본진을 지키는 이들은 그 훈련의 강도가 달랐다. 당황하지 않고 찔러넣는 창은 빈틈이 없었다.

“없으면 만들어야지.”

제이슨의 검은 엘하르트가 보여주었던 검을 흉내 냈다. 황금의 창의 투사 속도에 비하면 확실히 느린 적들의 창을 제이슨이 쳐냈다.

카카카캉!

제이슨이 쳐낸 창들이 다른 창들을 쳐내며 그 사이로 길이 열렸다. 파고든 제이슨이 오러 레인을 터트렸다.

콰콰콰쾅!

지금은 적들을 기교로 베어넘길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적들을 물리고 길을 열 때였다.

오러 레인의 폭발에 휘말려 기간트들이 주춤 밀려났을 때 제이슨은 그 뒤로 보이는 바젤란의 기간트를 보았다. 붉은색의 베르캄프는 핏빛처럼 붉은 망토까지 두르고 있었다.

6미터에 달하는 기간트에게 망토를 두르다니 미친 짓이라고 여겼지만, 제이슨은 그리 가볍게 보지 않았다.

기간트에 달리는 것은 장식이기 보다는 그 하나하나가 아티펙트라고 봐야 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오러 유저의 공격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는 없다. 제이슨이 팬텀 스티드의 고삐를 당기자 팬텀 스티드가 그대로 도약했다.

나이트급 기간트들의 헬버드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제이슨은 팬텀 스티드가 뛰어난 소환수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건 부서져도 다시 만들면 되지만 지금 잡은 기회는 그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제이슨은 팬텀 스티드 위로 올라서서는 그대로 재도약했다.

모든 이들을 뛰어넘은 제이슨이 바젤란의 베르캄프를 향해 떨어져 내릴 때 좌우에서 나이트급 기간트들이 헬버드로 공격했다.

제이슨이 왼팔을 휘둘렀다.

카라라랑!

제이슨의 왼팔에 착용하고 있던 봉인의 사슬이 헬버드들을 하나로 엮어서 묶었다. 제이슨은 헬버드를 묶은 봉인의 사슬을 당겨서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검을 베었다.

쩌저저적!

나이트급 기간트들이 머리가 그대로 날아갔다. 머리가 날아가는 것으로는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가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머리를 날려버리면 당장 전투에는 참여할 수 없다.

대부분 센서가 그곳에 있으니 저들은 눈을 잃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제이슨은 바젤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젤란은 자신을 향해 홀로 달려온 제이슨을 보고는 들고 있던 헬버드를 휘둘렀다. 헬버드의 날에 맺힌 플레임 오러가 돌풍처럼 날아들었다.

제이슨은 급하게 달려와 곧장 참격을 날릴 수 없었던 것에 인상을 굳히고 오러 블레이드를 쳐냈다.

콰르륵!

거센 불길의 돌풍이 머리 위로 지나가자 제이슨은 그대로 달려들어 검을 찔러넣었다. 헬버드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 뻗는 검으로 이 일검에 승부가 날 거라고 여겼다.

적어도 제이슨은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바젤란의 망토가 움직여 제이슨의 검을 막았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망토는 예상 밖이었다.

-응? 저게 왜 여기서 나와?

“뭔데?”

-사도 중 하나인 엘페린의 망토다.

사도라면 엘렌의 이름만 들었는데 또 다른 이름이 나왔다. 제이슨은 그것보다 지금 당장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약점은?”

-봉인의 사슬로 묶어 버리면 힘을 못 쓸 거야. 하지만 저건 빼앗아야겠다.

제이슨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헬버드를 쳐내고 왼손을 내뻗자 봉인의 사슬이 쭉 뻗어 나가더니 핏빛 망토를 휘감았다. 망토와 함께 바젤란의 베르캄프 마저 휘감은 탓에 그는 움직임이 둔해졌다.

“이까짓 것으로!”

힘을 줘서 단숨에 사슬을 끊어내려고 했지만, 그보다 제이슨이 빨랐다. 그가 성큼 다가가자 바젤란이 황급히 헬버드를 내리쳤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헬버드를 제이슨은 몸을 틀며 내디딘 한 걸음으로 피했다.

콰직!

바닥에 헬버드가 꽂히는 찰나 제이슨의 검이 망토가 가리지 못한 사이로 파고들었다. 왼쪽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든 검은 그대로 바젤란의 숨통을 끊었다.

제이슨은 베르캄프가 무너지는 사이에 망토를 뜯어냈다. 6미터 신장의 베르캄프를 감싸던 망토가 휘리릭 말려들더니 제이슨의 몸을 감쌌다.

[새로운 장비를 확인했습니다. 보호의 망토를 인식합니다.]

보호의 망토는 제이슨의 몸에 맞춰 작아졌다. 베제트와 하나가 된 망토. 그 스스로 보호하는 기능을 지닌 망토가 있다면 위험한 순간에 스스로를 지켜줄 수 있었다.

제이슨이 휘두른 오러 블레이드를 적어도 한 번은 막을 수 있다면 그 방어력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제이슨은 베르캄프의 흉갑을 뜯어내 그 안에 피를 흘리며 숨이 끊어진 바젤란의 목을 잘라냈다. 그것을 들고 일어선 제이슨을 보고 주위에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팬텀 스티드도 잃어버린 상황에서 이 많은 기간트를 상대하는 것이 쉬운 일일 리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냥 목을 내줄 수는 없었다.

제이슨이 검을 들어 올리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기간트들을 향해 참격을 날렸다. 제이슨이 날린 검이 원을 그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을 가로지르는 궤적을 그렸다.

달려들던 자들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우르르 쏟아졌다. 모두 가슴이 반으로 잘렸고, 그 일검에 쓰러진 기간트의 수가 일곱이었다.

제이슨은 연달아 무리한 공격을 퍼부은 덕분에 오러 홀이 바닥을 보였지만, 오연히 서서 적들을 돌아보았다. 고작 2미터의 신장이었지만, 제이슨을 보고 누구도 감히 다가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이슨이 바젤란의 수급을 들어 올렸을 때 그의 뒤편에서 적진을 뚫고 온 펠릭스와 엘레나를 비롯한 돌격대가 나타났다. 그 수는 고작 스물 정도로 줄었지만, 이 많은 적을 뚫고 본진에 닿았다.

펠릭스는 제이슨을 보고는 미소를 지은 채 소리쳤다.

“알제리 왕국의 총사령관 바젤란을 제이슨 폰 하르트 백작이 쓰러트렸다!”

기간트에 있는 마법 장치를 이용해 증폭된 목소리로 전장 전체에 적군 총사령관의 죽음을 알렸다.

총사령관을 지키던 병력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적군은 뚫렸고, 총사령관은 죽었다. 그 상황에서 트랑 왕국군이 밀려 들어왔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알제리 왕국군은 머리를 잃은 상태로 트랑 왕국군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트랑 왕국군의 기간트에 알제리 왕국군의 기간트가 쓸려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안 되네.”

“황금의 창은 괜히 알려줬군.”

“어차피 그걸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자들은 거의 없어.”

“그렇기는 하지.”

금발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사내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내 망토까지 내줬는데 이거 실망이군.”

“너는 필요도 없잖아.”

“그래도 말이야.”

사내의 시선이 저 멀리 보이는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실력이 제법인데? 한번 붙어보고 싶군.”

“싸우는 걸 보니 지금은 안 되겠어. 조금만 더 참아.”

“약속 잊지 마.”

사내는 전장의 중심에서 소리치는 제이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찬탈자와는 내가 싸운다.”

엘렌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음대로 해. 이 싸움광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