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71화 (72/151)

【71】 역습(3)

전쟁의 양상은 기간트가 나타나면서 바뀌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예전과 다르게 병력의 이동에 시간이 크게 줄었다. 대규모 전투는 일반 병사도 당연히 움직여야 한다.

점령전으로 가면 일반 병사들이 성을 점령해야만 하니까.

하지만 오직 파괴를 위해서만 움직인다면 기간트 라이더로만 움직이는 것이 더욱 빠르고 편하다.

그런 면에서 제국은 발 빠르게 칠왕국 연합에 대해서 성토하며 병력을 움직였다. 칠왕국 연합이 마스터를 움직였다는 것만으로 주변 왕국들도 그들이 경거망동한다고 여겼다.

마스터는 전쟁 억제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전력으로 본다면 제국을 상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잠잠히 있는 제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그들을 향해서 탓했다.

그렇다고 제국도 병력을 마음껏 보낼 수는 없었다. 워낙에 많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보니 다른 곳에 빈틈을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알제리 왕국을 견제하던 병력이 움직였고, 그 병력이 칠왕국 연합과의 국경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수호검은 배치되지 않았다.

마스터인 그는 황제의 옆을 지킨다. 하지만 만약 이곳에서 칠왕국 연합의 마스터인 뇌속의 창이 전쟁에 나서면 언제든지 전쟁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국에서도 설마 뇌속의 창이 싸움에 나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가 국경에 나선 것까지는 제국도 봐줄 수 있지만, 그가 직접 전쟁에 참여하면 그 순간 강렬한 철퇴를 날릴 터였다.

그렇게 서로 간을 보는 중에 트랑 왕국의 동부 전선의 최전선에 있는 요새 두 개가 동시에 함락됐다.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요새들이 함락되었지만, 그곳에는 병력이 있지 않았다.

알제리 왕국의 총사령관인 바젤란은 텅텅 빈 요새들을 돌아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예상했네.”

바젤란은 뒷짐을 진 채 뒤에 선 이들을 돌아보았다. 이번 전쟁은 총력전이라 이곳에 온 이들 또한 오러 유저들은 물론이고, 모든 기사단을 동원했다.

전쟁 용병단 중에는 단장이 실종되고 그 뒤를 물려받은 그린 드래곤 용병단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드래곤이라는 이름을 지키는 것도 간당간당하는 중이라 이번에 알제리 왕국이 내건 돈에 혹해서 전 병력을 모두 끌고 왔다.

“준비는 한 것 같다만 아직 잘 모르는 것 같군. 오늘 쉬고 진군을 시작한다.”

바젤란은 자신의 기습 공격이 막힌 것에 짜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이 전쟁의 승패는 달라질 것이 없었다.

알제리 왕국이 전격적으로 섬멸전을 펼치고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왕국에 전해졌고, 다급하게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번에는 귀족들도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그만큼 트랑 왕국과 알제리 왕국의 사이는 안 좋았다. 점령전이 아니라 섬멸전으로 성을 부수고 들어오는 알제리 왕국의 전략을 보았을 때 걸려들면 자신들도 좋을 꼴 보기 힘들거라 생각한 점이었다.

그래서 동부 전선 인근의 귀족들은 빠르게 병력을 모았다. 그들의 기사단을 내주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 그들도 하이젤 왕국을 공격할 때처럼 대응할 수는 없었다. 바쁘게 움직인 그들이 병력을 끌어모아서 일차 저지선이 만들어질 상황이었다.

그리고 하이젤 왕국에 나가 있던 최정예들은 그들보다 먼저 움직였다. 벡스 장군은 미친 들소는 물론이고 그곳에 나가 있던 병력들을 끌어모았다.

그 와중에 하이젤 왕국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말이 협조일 뿐이지 그건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하이젤 왕국의 기간트는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병력을 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동원된 기사단이 다섯 개.

그들을 이끌고 벡스 장군은 먼저 동부 전선의 성으로 향했다. 요새 네 개를 청야 전술을 이용해서 텅텅 비운 후에 국경의 성에 병력을 집결시켰다.

제이슨도 알제리 왕국이 쳐들어왔다는 말을 듣고는 전장에 나갈 준비를 했다. 제이슨뿐만 아니라 로크까지 함께 참전하기로 한 것. 그래도 급한 부분은 아니었기에 준비할 여유는 있었다.

워프 마법진을 이용해서 단번에 국경의 성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엘하르트가 처음보다는 못 해도 이제 잠깐이지만 소환이 가능한 상황.

전황이 나쁘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점령전이었다면 이번에 얻은 무기가 압도적으로 유리했겠지만, 저쪽에서 먼저 공격을 걸어와서 이득이 크지는 않았다.

제이슨이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사이에 아이젠이 찾아왔다. 이번 전쟁은 알제리 왕국도 전과 다르게 칠왕국 연합까지 끌어들여서 승부를 내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

동부 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왔지만, 이 정도로 전면전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지 아이젠이 직접 찾아왔다. 제이슨이 대접한 차를 마시던 아이젠이 물었다.

“이번에 가면 언제 오는 거죠?”

제이슨은 잠시 생각해 보고 답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왕국에서는 알제리 왕국을 점령할 병력을 동원해서 움직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알제리 왕국은 하이젤 왕국과 다르게 점령전에 들어간다면 완전히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하이젤 왕국이야 새로운 국왕을 앉히고 그에게 맡겨놓아도 되지만 알제리 왕국은 트랑 왕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끊임없이 적들이 들이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을 잡으려면 씨를 말려야 할 판이다. 그리고 아마도 무시무시한 피바람이 불 터.

제이슨은 그걸 알았기에 언제 돌아올 거라는 말을 해주지 못했다.

“그럼 하나 약속해줘요.”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젠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무사히 돌아와요. 우린 아직 약혼도 못 했으니까요.”

제이슨은 천천히 일어나 허리를 숙여 그녀의 손을 잡아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레이디. 그대를 위해 공을 새우겠습니다.”

아이젠이 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제이슨이 얼마나 큰 공을 새웠는지 알았기에 이번 전쟁이 끝나면 후작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겠다고 여겼다.

“무사히만 돌아오세요.”

제이슨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제리 왕국에서 절 위험하게 할 자는 없으니까요.”

사실 엘렌이 있기는 했지만, 벡스가 막아냈다는 걸 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감 넘치는 말을 들은 그녀는 그제야 안심했다.

벡스 장군은 요새들을 모두 내주었다. 그들이 점령전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텅텅 비웠다. 그들이 점령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요새 안에 있는 워프 게이트들을 모조리 파괴했으니 재산적 피해는 있었지만, 군사들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성에 도착한 제이슨과 로크를 벡스 장군은 반갑게 맞이했다.

“적군의 전력이 생각 이상이다.”

“얼마나 됩니까?”

이제 막 합류한 제이슨의 물음에 아울이 답했다.

“이미 그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조사가 되어 있어서 알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어. 우선 히어로급 기간트는 5기를 예상돼. 총사령관을 비롯해 검은 산양 기사단장과 그들이 비밀리에 키운 자들이 있어. 그들까지 포함해 다섯 정도 예상이 돼. 그리고 나이트급 기간트는 98기, 워리어급 기간트는 1,300기 정도 돼.”

“생각보다 적은 데요?”

“우리가 손을 썼던 롤로 공작 때문이야.”

“롤로 공작이 세력을 모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끌어모았다면 많네요. 우리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우리는 지금 히어로급 기간트는 네 기. 그리고 나이트급 기간트는 77기, 워리어급 기간트는 1,000기 정도 된다.”

“하이젤에서 지원을 받았는 데도 더 적은 겁니까?”

“맞아. 그들의 지원을 받았고, 급한 대로 동부 전선의 병력까지 지원을 받았지. 하지만 하이젤 왕국에도 최소한의 병력은 두고 와야 했으니 이 정도가 한계인 셈이지.”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오러 유저의 수야 저쪽이 더 많다고 해도 어떻게든 잡아낼 수 있을 테지만, 다른 병력이 부족한 것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저들이 뭔가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까?”

단순히 전력만 비교했을 때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전쟁을 벌였다는 것은 뭔가 다른 물건이 있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했다.

새로운 무기. 하이젤 왕국이 만들었던 것과 같은 특별한 무기가 있지 않을까?

벡스 장군이 아울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 것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발견된 것은 없다.”

“그럼 작전은 뭡니까?”

“솔직히 말하면 함정을 몇 개 준비하기는 했지만, 그것 가지고 싸우기에는 많이 부족한 실정이야. 수성전을 치르면서 병력이 더 모이기를 바라야 할 것 같네.”

“전면전을 벌이려고요?”

“그 수밖에 없지. 그리고 수성을 한다고 해도 방어적으로 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로크의 힘이 필요해.”

제이슨이 로크를 돌아보았다. 솔직히 로크가 가진 전력은 분명 강하지만, 기간트 라이더만 몰려온 곳에서는 그 한계가 명확했다. 일반 병사들이 있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로크였다.

벡스 장군은 담담히 말했다.

“공간 왜곡 장치를 이용할 거야. 저들과 전면전이 붙었을 때 양면 공격을 해야지. 성이 모루가 되고 망치가 될 자들이 필요하다.”

“얼마나 대규모로 빼내려고요?”

“성을 지킬 인원을 제외하고 전부.”

제이슨이 돌아보자 로크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게 많이는 동시에 보내려면 어마어마한 재료가 들 거예요.”

“골드가 문제가 아니다.”

로크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답했다.

“골드만 넉넉하면 못할 것도 없죠. 하지만 적진의 뒤로 돌아가는 것은 누가 할 거죠? 누가 가서 설치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아울이 손을 들었다.

“그건 내가 할게.”

아울의 실력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 그녀가 전쟁 중에 적을 크게 우회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리고 대규모 공간 이동을 한 후에 뒤를 노리면 된다.

적들도 뒤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공간 왜곡 장치를 설치하겠지만, 그런다고 해도 그것을 뚫고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며칠이나 시간이 있죠?”

“적들의 진군 속도로 보면 길어야 사흘이다.”

“좋아요. 시작하죠. 제가 원하는 것들을 구해주세요.”

제이슨은 성 밖을 바라보았다. 다시 동부 전선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숱하게 싸워왔던 자들과 끝장을 볼 정도로 커다란 전쟁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저 멀리 다가오는 적 중에 분명 엘렌이 있을 터였다. 자신이 신의 의지를 구하는 동안 그녀는 뭘 구했을까?

기간트 라이더들로만 이뤄진 적들은 그 수가 얼마되지 않았다. 하이젤 왕국과의 전쟁에서 수만 명을 상대했던 것에 비하면 전체를 다 통틀어도 고작 1,500명.

그들이 요새의 앞 저 멀리 나타났을 때는 그 위용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전원이 기간트를 소환하고 그들의 사이로 처음 보는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성벽에 나와 있던 벡스의 옆에 선 제이슨은 저 멀리 보이는 적진의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기간트를 보았다.

“저거 에고 기간트입니까?”

“아니. 에고 기간트라고 보기에도 너무 큰데?”

게다가 무려 다섯 기.

에고 기간트 일 수가 없었다.

제이슨이 어이없어 바라보는 가운데 거대 기간트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변신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엎드리는가 싶더니 가슴이 열리고 그곳에 길이만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한 기당 열 자루씩.

저건 기간트가 아니라 이동형 대 기간트 용 발리스타와 같은 무기였다. 문제는 성에 장착해 놓은 것보다 더 거대한 크기라는 점.

마법으로 방어막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물리력으로 방어막을 관통할 수 있는 무기였다.

그리고 적진에서 수십 발의 거대한 창이 성을 향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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