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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70화 (71/151)
  • 【70】 역습(2)

    일곱 왕국의 연합이라고 불리는 칠왕국은 그 하나하나의 크기는 알제리 왕국의 절반 정도 크기였지만, 일곱 왕국이 모두 가까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스스로 힘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연합을 했다.

    처음에 연합국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치 한 왕국처럼 움직이지만, 머리가 일곱 개인 이상 제대로 운영이 안 될 거라고 여겼으니까.

    다행이라면 연합국이 만들어졌을 때 제국의 정복 전쟁은 멈췄을 때였다. 그래서 큰 전쟁 없이 연합국은 버틸 수 있었는데 연합국 내에서 마스터가 등장하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에고 기간트를 가지고 나서 연합국에도 종주가 생겨났다. 에고 기간트를 지닌 겔로프의 모턴 왕국은 칠왕좌의 수좌가 되었고 위세가 강해졌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마스터가 있다는 것만으로 연합국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주변 왕국에서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찾아온 윌리엄의 의견은 설득력이 있었다.

    “어떻게들 생각하시오?”

    알제리 왕국과 연합국은 거리상으로는 대륙의 반대편이라고 할만하니 서로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알제리 왕국의 1왕자인 윌리엄이 가지고 온 이야기는 흥미가 동했다.

    “하이젤 왕국은 결국 살아남았고, 제국은 병력을 움직였을 뿐 직접 적으로 행사한 것은 없소. 제국이 다시 움직일 거라는 생각은 억측이 아닐까 싶소만.”

    수염이 덥수룩한 더트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겔로프는 팔짱을 낀 채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지만, 그가 가지고 온 이야기는 가벼이 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알제리 왕국이 아직 전후 처리가 끝나지 않은 트랑 왕국과 전쟁을 벌일 테니 제국의 동쪽을 위협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제국에서 병력을 움직여 알제리 왕국이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마스터를 포함한 병력을 제국의 국경으로 이동시켜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다.

    트랑 왕국이 이번에 하이젤 왕국과의 전쟁에서 얻은 장비는 물론이고, 트랑 왕국에서 얻게 된 기술까지 내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알제리 왕국이 승리한다는 장담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알제리 왕국과 트랑 왕국은 계속해서 소규모 전쟁을 치러왔다. 소규모 전쟁이었다고 해도 아직 승기를 잡지 못했던 알제리 왕국이 트랑 왕국을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향하자 윌리엄이 미소를 지었다.

    “승률은 8할로 보고 있습니다.”

    그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고 겔로프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제국이 야욕을 보이기 시작했다면 대륙에는 다시 피바람이 불 터였다.

    제국이 먼저 움직이고 나면 늦는다. 차라리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좋다. 두 왕국의 신기술들을 얻을 수 있다면 연합국은 더 강해질 테니까.

    그리고 굳이 제국을 상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신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국력은 강해진다. 주변의 다른 왕국들을 병합할 수도 있을 테니까.

    겔로프는 마음을 굳히고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이런 상황에서 물러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오.”

    겔로프의 말에 다른 칠왕좌의 주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칠왕좌는 연합국이지만 마스터가 나온 뒤로 그 위치는 달라졌다. 겔로프의 의견이 곧 모두의 의견을 대표하게 되었다.

    윌리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축제가 끝났고, 영지의 분위기는 좋아졌다. 그런데 영지를 찾아온 이들 중 안 떠나고 남은 이가 있었다.

    “안 가십니까?”

    “허허. 그렇게 면박을 줄 것 있는가?”

    “고출력의 코어를 만드는 데 집중하셔야죠.”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말게. 프로토 타입은 만들어서 안전성 시험을 하는 중이라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출력의 코어. 코어의 수준이 높아지면 같은 오러 유저간에도 격차가 생긴다. 실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준의 코어가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판도가 달라진다고 할 수도 있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몇 개월,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

    제이슨은 당장은 그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인간은 왜 여기 눌러앉아서 갈 생각을 하지를 않는 걸까?

    “몇 번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흑마도공학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유용한 것인지 몰랐네.”

    “그런데 그 부분은 재능의 영역이잖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나도 흑마법을 익힐 재능은 없어. 하지만 그들 또한 마도공학의 맥을 잇고 있어서 그런지 통하는 것이 있더군.”

    에르도는 마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개발자 중 하나였다. 그런 그였기에 로크와 캐리, 조안나에게도 소개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에르도는 흑마도공학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다른 마도공학자들과 다르게 그는 편견이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캐리와 로크도 그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막힌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지금 개발 중인 데페린 선의 반응 속도를 높이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늑대형 골렘에게 적용되었던 기술이었는데 그걸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캐리가 정확한 소스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하는 이야기의 분위기로 뭔가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에르도가 뭉개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고출력의 코어를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데페린 선의 반응 속도 개선도 중요했다. 고출력의 코어는 개발해 봐야 히어로급 기간트만 성능 개선이 이뤄지지만 데페린 선의 속도 개선은 모든 기간트에 적용할 수 있었다.

    범용성이나 골드 벌이로 생각하면 훨씬 큰 건이니 어떻게든 뭉개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은 흑마도공학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라고 해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제이슨도 에르도가 뭐 때문에 이러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내 사람도 아닌데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는 없었다.

    물론 에르도를 건질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제이슨은 에르도를 핍박하기보다는 그를 곁에 두기로 했다. 제이슨이 에르도의 앞에 앉아서는 말했다.

    “에르도님.”

    “왜 그러나?”

    “거래 하나 할까요?”

    “거래?”

    “흑마도공학보다 지금은 데페린 선 반응 속도 개선 때문에 남으신 거잖아요.”

    “흘흘. 그래. 자네 영지의 일이니 자네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겠지. 그것이 궁금해서 남았네.”

    에르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말로 데페린 선 반응 속도 개선할 수 있는 건가?”

    “예. 가능합니다.”

    “역시.”

    감탄하는 그를 바라보던 제이슨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 5년. 저희 영지에서 일하시면서 그 기술 개발을 도와주신다면 그 기술을 넘겨드리죠.”

    “마탑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건가?”

    “공짜로 줄 생각은 아닙니다. 아시죠?”

    “충분히 가격을 치를 생각이네. 그런데 이곳에서 5년 동안 있어야 한다는 건가?”

    “데페린 선 반응 속도 개선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비밀 유지는 당연한 거고, 새로운 기술이 더해질 때마다 그 가치에 대한 만큼 기간을 늘리는 것 어떻겠습니까?”

    “자네 그 말은 다른 기술도 있다는 건가?”

    제이슨은 그 말에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에르도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 자신만만함이 기대되는군. 좋아. 마탑에 휴직계를 내야 하니 일 처리를 마치는 대로 돌아오도록 하지. 그때 다시 얘기하세.”

    에르도는 뭉개던 것을 끝내고 떠나갔다. 제이슨은 에르도를 보내놓고는 캐리에게 찾아가 에르도의 합류에 관해서 설명해줬다.

    “에르도님이 합류한다고요?”

    “가는 길은 다르지만, 그래도 도움은 될 것 같아서요.”

    “능력은 충분하죠.”

    마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그가 합류하면 데페린 선 반응 속도 개선은 물론이고, 흑마도공학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묻기도 좋았다.

    캐리는 제이슨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 꿈은 흑마도공학으로 마탑을 이루는 겁니다.”

    “그게 꿈이라면 제 영지 안에서 이루시죠.”

    “그러니 그분이 오신다고 해도 주는 제가, 그리고 로크와 조안나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술적 협조만 얻어도 됩니다.”

    에르도가 대단하다고 하나 그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싶지 않다는 뜻에 제이슨은 동의했다. 캐리는 무엇보다 조안나의 스승이었다. 조안나는 흑마도공학의 재능만 따진다면 캐리보다 뛰어나니 그녀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그 길을 택해야만 했다.

    “우선 데페린 선의 반응 속도 개선을 하면 적어도 10% 이상의 전력 강화 효과가 나올 겁니다. 그러니 에르도님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해 보도록 하죠.”

    “좋아요. 언제 오시는 거예요?”

    “휴직계 내고 오신다니까 기다려보죠. 그보다 형은 어떻게 됐습니까?”

    “마갑의 완성도는 팔 할 정도예요. 일상생활용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완성이지만, 제대로 된 힘을 다루기에는 부족해요.”

    솔직히 두 팔을 잃었고, 목소리도 잃었는데 모두 회복되었다. 아직도 끔찍한 고통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웃음을 제대로 되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리라. 아카데미에서 관리와 기간트 라이더를 교육하고, 마탑이 만들어지면 영지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영지가 안정되면 다시 바쁘게 움직일 터였다. 알제리 왕국을 공격하기 전에 신의 의지를 몇 개 더 찾아서 제대로 엘하르트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알제리 왕국과의 전쟁에 반대하지 않은 것도 그쪽에 있는 엘란을 이번 기회에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에르도님이 오시기 전까지 잘 부탁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연구소의 문을 노크하는 이가 있어서 제이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연구소에 간다는 것은 밝혔지만, 이곳에는 아무나 찾아올 수 없었다.

    제이슨이 호기심을 가지고 일어났을 때 문이 열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벡스 장군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

    제이슨은 뒤에 있는 이들을 돌아보고는 답했다.

    “집무실로 가시죠.”

    모두가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지만, 제이슨은 그들에게 말해주기보다 묵묵히 벡스 장군을 집무실로 안내했다. 차를 내주니 벡스 장군은 그걸 한 모금 마셨다.

    “하이젤 왕국 전후 처리는 꽤 남은 것으로 아는 데요?”

    “맞아.”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니셔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또 뭐냐?”

    제이슨은 변죽을 올리는 벡스 장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이젤 왕국에 반란군이 없더라도 그는 지금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어야 했을 테니까.

    “할 말이 있어서 온 것 아닙니까?”

    “칠왕국 연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칠왕국 연합이요? 대륙 반대편에 있는 그들이 움직이는 거를 뭐 그리 심각하게 얘기하십니까?”

    “그들이 마스터를 움직였다는 것이 문제지.”

    마스터는 에고 기간트를 움직이는 만큼 전쟁 억제의 기능이 강했다. 그런 에고 기간트가 움직였다는 건 지금까지 없던 대륙의 움직임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벼운 일은 아니네요. 그런데 그게 우리랑 상관있는 겁니까?”

    “제국에서도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서 칠왕국 연합 방향으로 병력을 이동한다고 했다.”

    그제야 벡스가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알제리 왕국에 대한 억제력이 사라졌겠군요.”

    “그래. 그러니 너도 준비해라.”

    약혼식도 못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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