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69화 (70/151)
  • 【69】 역습(1)

    카이트 국왕의 등장으로 얼어붙었던 연회장에서 국왕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모두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서는 손을 들어 올렸다.

    광장에서 영주민들이 제이슨을 보고 열광했던 것처럼 이곳에서는 귀족들이 열광했다. 지금 카이트 국왕은 즉위와 함께 역모라는 이름으로 한차례 귀족을 쓸어 버렸기에 그는 절대 권력자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참석한 연회장이라는 것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열광하는 것으로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카이트 국왕이 들어 올렸던 손으로 제이슨을 가리켰다.

    “하르트 백작. 올라오게.”

    제이슨이 카이트 국왕의 곁에 서자 그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이 자리는 전쟁 영웅인 하르트 백작의 취임식을 축하하는 자리다. 그리고 아이젠 폰 거트.”

    아이젠은 자신을 부르는 카이트 국왕의 부름에 깜짝 놀랐다. 카이트 국왕이 손짓하기에 그녀도 올라서자 카이트 국왕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리고 둘의 약혼 발표가 있다고 들었지. 그걸 내가 발표해도 상관없겠지?”

    “이미 다 말씀하셨는데요?”

    “하하하하. 이런 기쁜 소식을 어찌 다른 사람이 발표하게 놔둘 수 있겠나?”

    “그래도 당사자들에게는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러셨습니까?”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카이트 국왕은 개의치 않았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더욱 놀랐다. 단순히 친한 정도가 아니다. 이번 국왕과 제이슨의 격의 없는 대화는 보는 것만으로 그 둘의 친분을 증명했다.

    카이트 국왕은 제이슨과 아이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둘의 약혼식은 왕국의 경사이니 왕궁의 별빛 정원을 대관해주겠네. 그곳에서 성대하게 약혼식을 치르도록 하지.”

    왕족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별빛 정원. 아이젠도 공작의 딸로 왕족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카이트 국왕이 신경 써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귀족들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오늘 이곳에 온 각 가문의 후계자들은 어떻게든 이 소식을 빨리 전해야 함을 알았다.

    “그럼 즐거운 시간들 되시게. 그리고 하르트 백작은 잠시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제이슨은 카이트 국왕을 연회장 안쪽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휴게실의 앞은 왕실 근위 기사들이 지키고 섰다. 제이슨과 마주 앉은 카이트 국왕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별빛 정원 괜찮겠나?”

    “마음에 듭니다.”

    제이슨은 자신을 위해 이만큼이나 신경 써준 카이트 국왕을 위해서 아공간 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냈다. 제이슨이 꺼낸 술병을 보고 카이트 국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뭔가?”

    “이번에 구한 술입니다. 다시는 못 구하는 술이죠.”

    제이슨은 술잔에 술을 따라서 자신이 먼저 한 모금을 마셔 보였다. 그걸 보고 카이트 국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러 유저인 자네가 기미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자네가 주는 것이라면 독주라도 마실 테니 그냥 줘 보게. 향이 좋군.”

    제이슨이 그 말에 카이트 국왕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를 왕위에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진심으로 자신을 대했다.

    역모에 대해서 과격하게 손을 쓰기는 했지만, 그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제이슨이 씨익 웃고는 술잔에 술을 따라서 건넸다. 카이트 국왕은 향을 음미하다가 입안에 조금 흘려 넣고 굴려보더니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믿을 수 없군.”

    제이슨은 그 말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 술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엘하르트의 친구가 만들었다는 술이었으니까.

    문제는 다시 얻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제이슨이 다시 술을 따라주자 카이트 국왕이 허겁지겁 술잔을 비우고는 물었다.

    “대체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건가?”

    “고대 던전에서 구했습니다.”

    “응?”

    “하이젤 북부의 고대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건 없고 술만 있더군요.”

    “술만 있었다고?”

    허허 웃음을 터트린 카이트 국왕은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그럼 이건 레시피가 없었나?”

    “예. 얼마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랬군. 그렇다고 해도 믿을 수 없을 정도야.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향이 이렇게 좋다니.”

    제이슨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인정한 술이었으니까.

    제이슨은 카이트 국왕의 잔에 다시 술을 따라주고 자신의 잔에도 채웠다. 그리고는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눈치가 빠르군.”

    “그러니 군에서 살아남았죠.”

    카이트 국왕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이젤의 전후 처리는 앞으로 몇 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이네.”

    “그렇겠죠. 반군은 없습니까?”

    “생각보다 국왕이 잘 관리하는지 아직 반군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네.”

    압도적인 힘을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바짝 엎드려 있는 것이 신기하기는 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하이젤에는 상주 병력만 남겨놓고 모두 회군할 생각이네.”

    제이슨은 가만히 카이트 국왕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신무기도 얻은 상태에서 병력의 손실도 있었지만, 그 병력을 잃은 것보다 더 많은 골드를 얻었다.

    그 골드로 뭘 할 생각인 걸까?

    “나는 알제리 왕국을 쓸어버릴 생각이네.”

    알제리 왕국과 트랑 왕국의 관계는 한쪽이 힘만 가진다면 쓸어버릴 생각하는 게 당연한 사이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힘의 격차가 벌어진 적은 없었다.

    “제국이 가만 보겠습니까?”

    “연합군을 만들 생각이네.”

    “제국과 나눠 먹을 생각이십니까?”

    “나누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알제리 왕국이라는 이름을 지우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제국과 손을 잡는다면 알제리 왕국을 쓸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문제는 알제리 왕국이 손을 놓고 당할 리는 없다는 점이었다.

    제국이 움직이는 것을 다른 곳에서 그냥 두고 볼 리도 없었고.

    “제국이 그리 움직이면 다른 왕국들도 크게 일어날 텐데요.”

    제국이 정복 전쟁을 멈춘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근 50년 내에 정복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 대 제국의 황제 펠레드는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그래서 하이젤 왕국을 공격할 때 병력을 알제리 왕국의 국경 부근으로 이동시켜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고작 병력을 움직인 것만으로 얻은 것이 상당했지만,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다른 왕국과 신성 교국의 시선이 달라진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연합군을 움직인다면 과연 그걸 지켜만 볼 것인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왕국들이 그 모습을 지켜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펠레드 황제가 트랑 왕국이 그렇게 커지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리하겠지. 하지만 펠레드 황제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서북부가 온전히 안정화 되는 일이니까.”

    알제리 왕국이나 하이젤 왕국 모두 베르제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이젤 왕국은 북부의 사내들답게 제국의 말에 토를 달기 좋아했고, 알제리 왕국도 만만치 않게 저항이 강했다.

    그런 그 둘을 친 제국 성향이 강한 트랑 왕국이 점령하게 된다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이쪽에 둔 병력을 뺄 수 있다면 동쪽으로 병력을 옮겨 다시 한번 정복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계획이 있으십니까?”

    어차피 동부 전선을 맞대고 있는 알제리 왕국과 트랑 왕국의 사이는 대륙 전역이 모두 알고 있다. 전쟁 선포 따위 필요없이 침략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할 정도의 사이.

    그러니 시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년 봄 정도를 생각하고 있네.”

    “저도 참전해야 되겠죠?”

    “이를 말인가? 그걸 부탁하려고 온 건데.”

    제이슨은 뺨을 어루만졌다. 엘하르트가 있는 자신은 별걱정이 없었다. 베제트만 이용해도 전쟁을 치르는 데 문제가 없었다. 오러 유저를 죽일 수 있는 오러 유저.

    그게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마스터가 없다면 얼마든지 쓰러트릴 수 있다는 얘기였고, 마스터는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제국이 연합군을 만든다고 해도 수호검이 함께 움직일 일은 없다는 얘기였다.

    제이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전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결혼은 몰라도 약혼은 그 전에 해줬으면 하네. 그래야 승작을 할 것 아닌가?”

    제이슨은 카이트 국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혼하면 후작위까지 받을 수 있을 텐데 알제리 왕국을 정복할 때 더 공을 새우게 된다.

    “난 자네가 공작의 위를 받았으면 하네.”

    카이트 국왕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네가 마스터에 오르게 된다면 대공의 위를 주지. 자네의 공국을 새우기에 알제리 왕국의 영토가 필요하지 않겠나?”

    마스터가 되어도 곁에 남아있어 달라는 말을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

    “그럼 관리들이나 더 내주십시오. 영지 운영하기 빠듯합니다.”

    두 개의 영지를 하나로 만들어 놓다 보니 사람이 필요한 곳은 많았고, 관리는 부족했다.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장수보다 내정을 돌볼 이들이 부족한 상황.

    “하이젤 왕국의 전후 처리 때문에 바쁘지만, 그쪽이 처리되는 대로 관리들을 보내주지.”

    “감사합니다.”

    관리들이 수급되면 영지는 원활하게 돌아갈 터였다. 하지만 그 또한 단기적인 문제일 뿐이다. 아무래도 관리들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 같았다.

    뛰어난 관리도 필요하지만, 그 밑에서 일할 하급 관리도 필요하다. 하급 관리를 채울 방안은 그들을 가르칠 아카데미를 건립하는 수밖에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제이슨은 카이트 국왕에게 물었다.

    “영지 내에 아카데미 하나 건립해도 되겠습니까?”

    “자네 아카데미 자네가 건립하겠다는데 무슨 허락 씩이나 바라고 있나? 마음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사실 영지 내에 아카데미 하나 건립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카데미는 어떤 식으로든 골드를 잡아먹는 괴물이니까. 그래도 인가를 받았으니 이제 문제는 없었다.

    하급 관리 양성 계획에 슬쩍 기간트 라이더 양성 계획도 걸쳐 놓을 생각이었다. 겸사겸사라는 것이었다.

    아카데미의 성격은 밝히지 않았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용인해주는 카이트 국왕의 진심에 제이슨은 말없이 술잔을 채워줬다.

    술잔을 비운 카이트 국왕이 물었다.

    “술이 더 있나?”

    “얼마 없습니다. 다음 술은 약혼식 때 별빛 정원에서 따죠.”

    고대 던전에서 얻은 레시피 없는 술. 하지만 그 맛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술이었다. 그러니 그런 좋은 자리에서 마시자는 말에 카이트 국왕도 생떼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러지. 자네의 확답을 들으니 기쁘군. 먼저 돌아가지.”

    제이슨은 카이트 국왕을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카이트 국왕은 연회장을 지나며 많이들 즐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멀어지는 카이트 국왕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자신의 옆에 다가온 벡스를 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나?”

    “예.”

    “대답은?”

    “당연히 가야죠.”

    벡스는 씨익 웃고는 말했다.

    “그래야지.”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뭔 부탁?”

    벡스가 인상을 찌푸리자 제이슨이 웃으며 말했다.

    “정보 요원 양성 교육 좀 해 주십시오.”

    “자네한테?”

    “아뇨. 이번에 새로 정보 집단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벡스는 제이슨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별 관심 없는 것 같더니 무척 열성적으로 영지에 신경 쓰는 것 아니냐?”

    “제가 또 안 하면 안 했지 허투루 하지는 않잖습니까?”

    “그건 또 그렇지.”

    벡스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울에게 말해놓으마.”

    “감사합니다.”

    정보 요원으로 교육을 받는 것은 하루이틀 걸릴 문제가 아니다. 짧아도 일 년.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릴 터.

    그리고 얼마나 살아남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가 있다면 그를 기점으로 영지 내에 쓸만한 정보 집단을 가질 수 있게 되리라.

    제이슨은 연회장을 돌아보았다. 전군 총사령관인 벡스에게는 누구나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곁은 썰렁했기에 제이슨도 그의 옆에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국왕과의 친분을 과시했으니 이번 연회가 무척이나 바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벡스가 제이슨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해라.”

    “그래야죠.”

    대륙의 동쪽. 일곱 개의 왕국이 합쳐 만든 연합국. 그들의 최고 수뇌 회의인 일곱 개의 왕좌. 칠왕좌의 회의에 오늘 처음으로 다른 이가 참석했다.

    칠왕좌의 수좌에 앉아있던 겔로프가 입을 열었다.

    “그대의 이야기는 잘 들었소. 윌리엄 왕자.”

    겔로프의 시선이 닿는 곳. 알제리 왕국의 1왕자 윌리엄이 미소를 지은 채 앉아있었다.

    겔로프는 칠왕좌의 다른 왕들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이 안건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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