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68화 (69/151)
  • 【68】 새로운 바람(3)

    제이슨은 자신의 앞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열여덟 명. 그중 열명의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와 루웰은 새롭게 만든 스노우 기사단의 기사들이 되었고, 나머지는 정보 집단을 만들 때 쓰기 위해 뽑았다.

    그들에게도 모두 말은 전해 두었다. 그들은 제이슨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기에 제이슨은 그들을 아울에게 보내 훈련을 받게 할 생각이었다.

    벡스와 담판을 지어야 하겠지만, 굳이 거절하지는 않으리라. 이쪽에서는 제이슨과 로크가 협력해준다는 카드가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제이슨은 뽑힌 이들을 데리고 기사단의 숙소로 이동했다. 이들은 축제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기사단의 숙소로 이동한 그들은 제이슨을 따라 이동한 곳은 기간트 수납고. 그곳에 서 있는 나이트급 기간트 돌루프 열 기는 붉은색 도색이 되어 있었고 어깨에는 가문의 문장인 스노우와 봉인의 사슬이 엮인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혹시 겨울 여우 정령입니까?”

    하이젤 북부에서 와서 그런지 아켄은 스노우를 알아보았다. 제이슨은 담담히 답했다.

    “맞아. 용케 알아보네.”

    “재미있군요.”

    하이젤 왕국의 북부에서는 제법 겨울 여우 정령이 알려져 있었나 보다. 그런 겨울 여우 정령이 트랑 왕국의 가문 인장으로 쓰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겨울 여우 정령 자체가 전설로만 전해지는 정령이다 보니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아켄은 어쩐지 뿌듯해 하는 것 같아 제이슨이 담담히 말했다.

    “여기 있는 열 기의 돌루프와 계약해라.”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로만 뽑았을 때 그들은 혹시나 했었지만, 진짜로 나이트급 기간트만 준비한 것을 보고 그들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부분의 기사단은 질을 높이기보다 양을 늘린다. 나이트급 기간트라고 혼자서 여럿의 워리어급 기간트를 상대하지는 못하니까.

    그런데 지금 제이슨은 스노우 기사단은 오직 나이트급 기간트만 뽑겠다고 했다. 그 말은 기사단을 여럿 만든다는 이야기였고, 그 정점에 스노우 기사단이 있다는 얘기였다.

    제이슨은 기간트와 계약하는 이들을 보다가 홀로 서 있는 루웰에게 다가갔다. 아직은 수습인 루웰의 어깨에 손을 얹은 제이슨이 말했다.

    “넌 아직 수습이야. 하지만 네 실력은 확실하다. 그러니 조금만 더 고생해라. 그리고 기간트 기동 훈련에서도 실력을 보여. 그러면 나이트급 기간트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그래. 그보다 기사단의 수습이라고 하나 스노우 기사단은 그 대우가 남다를 생각이다. 그러니 가족들이 있다면 우선 연락을 취하고 성내로 들여오도록 해라.”

    “가족은 ···없습니다.”

    제이슨은 그런 루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말했다.

    “사실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아직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상태에서도 이 정도 실력이라면 자신의 어렸을 적보다 뛰어난 실력이었다. 루웰은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었다.

    훗날 스노우 기사단장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루웰은 그 한 마디에 눈을 반짝였다. 사실 제이슨이 기사단을 뽑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먼발치에서라도 보면 좋겠다고 여기고 신청을 했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스노우 기사단의 수습이라는 자리를 꿰찼다. 기사단에 들지 못한 이들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사단의 수습을 내준 것은 기사로 키워주겠다는 뜻.

    그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패했다. 검으로 싸우는 것에서는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었는데.

    루웰은 제이슨을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영주민들은 영주가 죽은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카이트 국왕은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서 국왕 직할령의 세율로 세율을 낮췄으니까.

    하지만 눈앞에서 귀족들이 죽어 나가고 기사단이 해체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그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영주가 취임한다는 것은 딴 세상의 이야기였지만, 취임식과 함께 축제를 벌인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기쁜 소식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축제 기간은 술과 음식이 공짜라고 했다. 그것에 영주민들은 열광했다.

    영주민들은 광장에 모였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영주의 일. 그랬기에 아침부터 모인 그들은 광장과 맞닿아 있는 탑을 보며 모여서 숨죽이고 있었다.

    탑은 그리 높지 않았다. 5층 정도의 높이를 가진 탑의 발코니로 제이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모든 영주민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제이슨은 그 시선을 받으며 머쓱한 기분을 느꼈다. 제이슨은 목에 차고 있는 장치를 가볍게 두드렸다. 퉁퉁 울리는 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렸다.

    “새로이 영주가 된 제이슨 폰 하르트 백작이다.”

    제이슨의 말에 영주민들은 그의 얼굴을 지켜보기 바빴다. 제이슨은 그들의 눈에 깃든 열망을 읽었다. 저들에게 영주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축제를 시작한다. 마음껏 마시고 즐겨라.”

    제이슨의 그 말이 도화선이 된 것처럼 영주민들이 열광했다.

    -와아아아!

    제이슨은 손을 흔들어 주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안쪽에 서 있던 아이젠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이네요.”

    “그렇겠죠?”

    영주민들이 먹고 즐기게 하는 것도 축제지만, 오늘 이곳에서는 인근 영주들은 물론이고 제이슨과 연관이 있는 이들을 초대한 사교의 장이 열린다.

    귀족들이 즐기는 내성에서의 연회.

    아이젠이 맡아서 준비한 것은 이쪽이었다. 제이슨은 그녀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을 돌아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잘 꾸몄네요.”

    새하얀 튤립으로 꾸민 연회장을 보는 제이슨에게 아이젠이 물었다.

    “사교계에서 저를 아는 고위 귀족들을 초대했어요. 혹시 따로 초대한 분들이 있나요?”

    “예. 몇 분 초대했습니다.”

    “성함을 알려주시겠어요?”

    “우선 국왕 전하께서 참석하신다고 하셨고, 벡스 총사령관과 펠릭스 백작, 마탑 제 7연구소 수석 마도공학자이신 에르도님과 가족을 초대했습니다.”

    “누구를 초대했다고요?”

    아이젠은 지금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새로이 왕위에 오른 카이트 국왕은 자신과도 안면이 있지만, 감히 이런 자리에 부를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결혼식쯤 되어야 아버지의 이름으로 초대장을 보낼 수 있는 정도.

    게다가 벡스 총사령관은 또 어떤가? 트랑 왕국의 명실상부 2인자였다. 동부 전선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하이젤 왕국과의 전쟁에서 그의 이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이젤 왕국에 남아서 전후 정리를 하는 그가 온다는 말도 충격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마탑 제 7 연구소의 수석 마도공학자 에르도나 펠릭스 백작의 이름은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

    “모두 참석하신다고 하시더군요. 국왕 전하께서는 바쁘셔서 잠깐 자리에 참석하시고는 돌아가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참석하신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에요. 왕위에 오르시고 처음으로 연회에 참석하시는 거라고요.”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는 몰랐네요.”

    “세상에! 진작에 말씀해 주시지.”

    제이슨은 뺨을 긁적였다. 솔직히 초대장을 보낸 것도 아니고 그냥 영상 통신으로 오늘이 취임식이 있는 날이니 와달라고 하니 순순히 오겠다고 했을 뿐이다.

    아이젠은 안절부절못했다.

    “이 정도로 괜찮을까요? 더 준비할 것들이 없을까요?”

    제이슨은 그런 아이젠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미안해요. 다음에는 참석자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하도록 할게요. 초대장을 따로 보내지 않아서 신경 못 쓴 건 미안해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정도만으로 충분해요.”

    아이젠이 조금 진정되는 듯하기에 제이슨이 말을 이었다.

    “특별 대우를 바라는 분들도 아니에요.”

    카이트 국왕은 모르겠지만, 벡스 장군 같은 경우에는 군대에서 병사들과 같은 걸 먹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였다. 식도락은 없는 이였기에 그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젠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제이슨에 대해서는 그가 왕국 제일검이자 전쟁 영웅으로 유명했지만, 그 유명세만으로 귀족들이 모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빌렸다.

    거트 공작가의 여식인 아이젠이 초대하는 자리. 사람들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고, 그것만 보고도 꽤 많은 이들이 초대에 응했다.

    하지만 국왕이 처음으로 참석하는 연회라는 것을 알았다면 왕국의 내로라하는 모든 귀족이 몰려왔을 터였다.

    “확실히 눈도장은 되겠네요.”

    처음 열리는 연회 인만큼 초대되는 이들에 따라서 그의 가치가 정해지는 법. 그렇다면 제이슨은 왕국 내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이라는 것이 이번에 밝혀지리라.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이 있게 됐다. 그걸 공인하는 자리였으니까.

    아이젠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조금 더 음식에 신경 쓰라고 전하고 올게요.”

    연회에 가장 먼저 온 것은 제이슨의 가족이었다. 트레버는 성의 크기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영지에서는 제대로 축제를 치르지 못한 지 오래됐으니까.

    게다가 연회장을 꾸민 아이젠의 실력에는 브렐리아나가 감탄했다. 사교계에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근처 영지의 귀부인들과는 사교 모임을 했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연회장은 굉장히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아이젠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자 모두 황망히 인사를 받았다. 아직은 제이슨과 약혼조차 하지 않은 공주님이었으니까.

    그렇게 모두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제이슨은 형 클라이를 보았다. 캐리와 조안나가 모두 이곳으로 와서 형도 데리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 지장은 없으니 일상생활에 적응해 보겠다고 했다.

    종종 와서 진찰을 받으라는 말에 그러겠다고 약속한 클라이는 처음 와보는 동생의 영지에 감탄했다. 과거에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충격을 받았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이미 세상의 쓴맛을 보고 온 그는 태연하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제이슨은 가족들을 자리에 안내하고는 오는 이들을 하나둘 맞이했다.

    귀족 중 직접 오기보다는 대리인이 많았다. 후계자들이 많이 온 것은 그들이 아직 제이슨을 자신들과 같은 위치에 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부분 후계자가 제이슨보다 나이가 많기도 했기에 제이슨은 부담 없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래도 거트 공작과 가까운 이들은 직접 찾아왔다.

    그래 봐야 거트 공작을 따르는 백작 세 명과 자작 네 명이 전부였다. 아이젠과 오래전부터 알아온 사이였는지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았다.

    연회장에는 은은하게 곡이 연주되고 있었고, 그곳에 모인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거트 공작을 따르는 귀족들이었다. 백작 세 명과 자작 네 명이 모인 곳에 다른 귀족의 자제들이 찾아가 인사를 건네기 바빴다.

    새롭게 제이슨이 백작이 되었지만, 그보다는 오랜 시간 정치판을 구른 백작과 자작과 안면을 트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 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젠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제이슨에게 물었다.

    “언제 오신다고 했나요?”

    “곧 올 겁니다.”

    제이슨의 대답에 아이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귀족의 후계자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은근히 질투하고 무시하는 제이슨의 인맥이 어떤지 알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 부터 궁금했다.

    그때 시종장이 급하게 다가왔다. 그는 아이젠에게 고개를 숙인 후에 빠르게 답했다.

    “구, 국왕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제이슨은 그 말에 연회장의 입구로 걸어갔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왕실 근위 기사들이 들어왔다. 연회장 외부와 안쪽까지 도열하는 왕실 근위 기사들을 보면서 귀족들 모두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카이트 국왕이 벡스 장군과 함께 들어왔다.

    벡스는 물론이고 펠릭스와 엘레나까지 모두 함께 온 상황.

    제이슨이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자 카이트 국왕이 얼른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꼭 쥔 채 미소를 지었다.

    “하르트 백작. 늦지 않았나 모르겠군.”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니까요.”

    “하하하하. 역시 자네는 뭔가 안다니까.”

    카이트 국왕과 농담을 주고받는 제이슨의 모습에 좌중은 숨조차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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