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67화 (68/151)

【67】 새로운 바람(2)

문장을 지우고 나이트급 기간트 위주로 수리를 시작한 일행들을 보면서 제이슨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캐리도 기쁜 마음으로 수리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다양하게 부서진 기간트를 수리한다는 것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흑마도공학자로서 따로 활동하던 캐리에게도 이건 쉽게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동부 전선에서 구른 로크야 온갖 기간트를 만져본 경험이 있었지만, 조안나나 캐리에게는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작업하는 사이에 제이슨은 다른 일로 바빠졌다. 기사단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성에 들어온 인원들이 무려 수백 명에 달했다.

그들이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읽으면서 제이슨은 헛웃음을 흘렸다.

“쟁쟁한 이들이 많네요.”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들이라고 해도 다들 자기 구역에서는 방귀 꽤나 끼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자신들이 이룬 업적들을 적어놓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파악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그걸 해줄 정보 집단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기사단을 만들면서 적어도 자국 내에서는 온전히 활동이 가능한 정보 집단이 있다면 이들이 자신의 자랑을 구구절절 써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고민하는 사이에 제이슨은 차향을 맡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들을 안으로 들이니 아이젠과 그녀를 따르는 시녀, 호위 기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녀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제이슨의 곁으로 다가온 아이젠이 그가 보던 서류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제법 많은 이들이 신청했던데요?”

“그러게요. 옥석을 걸러내는 것도 일이 되겠습니다.”

“도움을 드릴까요?”

“도움이요?”

제이슨이 돌아보자 아이젠이 서류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적어도 거짓인지 진짜인지 판가름할 수준은 되어야죠. 이들이 적은 전과가 사실인지 파악하는 것만으로 절반은 걸러낼 수 있을 거예요.”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영지 내 정보 집단을 만들까 고민 중입니다.”

“그거 운용비도 많이 들고, 관리도 힘들 텐데요?”

“조금씩 구해봐야죠.”

“우선은 저희 가문의 도움을 조금 받을까요?”

제이슨이 아이젠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주고 있었다. 아직 따뜻한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으면서 약혼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마치 자신이 벌써 이곳의 안주인이 된 양 일을 처리하고 싶어 했다.

사교계의 여왕이라는 그녀는 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제이슨은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제이슨은 시녀와 호위 기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둘이서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데.”

시녀와 호위 기사가 아이젠을 돌아보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 기사와 시녀가 밖으로 나가자 제이슨은 아이젠과 함께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은은한 차향을 즐긴 제이슨이 아이젠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젠 양. 제가 너무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군요.”

“도움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서로 돕는 것이니까요.”

아이젠은 자신이 가진 가치를 잘 알았고, 지금 그녀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미래에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이의 아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이건 단순한 도움이 아니다. 장차 마스터가 될 가능성을 지닌 이의 안주인이 되는 일. 그가 가질 그 강대한 힘에 자신의 영향력을 내보이기 위한 포석이었다.

제이슨은 그런 아이젠을 빤히 바라보았다. 단순히 호의로 만난 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야심을 가진 그녀의 눈빛을 보니 이거 호랑이를 곁에 두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안주인이 그만큼 강력한 힘을 쥐게 된다면 그 또한 나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제이슨이 가지고 있는 힘은 그의 것이었으니까.

이번에 데리고 온 로크와 캐리, 조안나도 모두 제이슨 개인의 힘이다. 그리고 새롭게 뽑을 기사단원들도 마찬가지. 그곳에 아이젠의 입김이 닿아서는 안 된다.

적어도 영지의 무력만큼은 내줄 마음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기사단은 제 이름을 듣고 온 이들이니 제가 직접 면접으로 뽑겠습니다.”

아이젠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죠. 아무래도 기사단은 영주님의 검이 될 테니까요.”

오러 유저가 강하다고 하나 그 혼자서 모든 걸 해치울 수는 없다. 그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기사단이 필요한 법.

“그런데 정말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만 뽑을 생각이신가요?”

“후보군까지 뽑을 생각입니다. 그만한 재능이 있다면 못 거둘 것도 없으니까요.”

“결국에는 나이트급 기간트로만 이뤄진 기사단을 만들 생각이군요.”

“예.”

그런 기사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스터들이 데리고 있는 기사단들은 그렇게 해도 충분했다. 그들은 충분한 골드와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마스터가 된 것도 아니고, 골드도 권력도 부족하다. 그런데 저 자신감이 나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마스터가 되었을 때도 쓸 수 있는 이들을 미리 준비하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어떤 일이든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말하세요. 본가의 힘은 예상보다 강하답니다.”

“지금도 충분히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젠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바쁘실 테니 물러 가보도록 하죠.”

밖으로 나간 아이젠은 시녀와 호위 기사를 대동한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제이슨은 자신의 외모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능력을 보였다. 이번 축제가 그 시작이었는데 이제 막 영지를 받은 상황에서 영지를 안정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는 듯 협조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지만, 걱정도 됐다. 이렇게 영지에 관심이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제이슨은 그 선을 분명히 했다. 영지의 실제적인 무력은 자신이 다루겠다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도움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응시자 중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들이라고 쓴 이들만 오십 명이 넘었다. 그리고 일반 기간트 라이더들은 모두 삼백 명에 달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

이 중에서 추리고 추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면접을 시작했는데 제이슨은 처음에 온 이의 복장을 보고는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하이젤에서 왔나?”

“북부에서 왔습니다.”

척 보기에도 실력은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분위기는 기사라기보다는 사냥꾼을 닮아 있었다. 저 혹독한 북부의 사냥꾼.

하이젤 왕국에서 왔다면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제이슨은 자신을 찾아온 북부의 기사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호승심만이 깃들어 있었다.

“숙식만 해결되면 봉급은 안 받아도 된다고 되어 있더군. 대신 대련을 부탁한다고?”

“예. 하이젤 왕국 제일검을 꺾은 그 실력을 보고 싶어 왔습니다.”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라고 하지만, 그들 중에서는 오러 유저도 나오고는 한다. 그리고 앞에 선 이 남자. 아켄이라는 남자는 그 가능성이 보이는 이였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봉급이 없다는 점이었다.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의 봉급을 생각한다면 이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건 합격한 후의 일이지. 2차 면접은 내일이니 그때 보지.”

“감사합니다.”

면접이 어려울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면접은 쉽고 빠르게 이어졌다. 자신의 수준이 올라서 그런지 딱 보면 상대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빠르게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이들은 딱 세 명.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인 자유 기사 루이와 자유 용병 피터. 그들은 숙식만 해결되면 무봉급이어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과의 지도 대련을 부탁했다.

무봉급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 외에도 엘하르트가 추천하는 이들을 꼽았는데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 열두 명과 워리어급 기간트 라이더 중에서 재능이 보이는 이들 위주로 뽑았다.

뭔가 다른 방식으로 살피는지 몇몇 이들을 뽑았고, 제이슨은 2차 면접으로 그들을 뽑아 올렸다.

간단하게 면접을 본 것 같은데도 걸린 시간은 꽤 길었다. 아침부터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갔다.

제이슨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자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관상을 볼 줄 알거든. 너랑 연이 있는 녀석들로 추려낸 거야. 어떻게든 연관이 있을 거다.

“그런 말 한 녀석들을 모두 뽑았어.”

-다 네 삶에 도움이 될 거다.

“그러기를 바란다.”

2차 면접은 실력을 보는 면접이었는데 제이슨의 검을 받으면서 실제 실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제이슨은 베제트를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검술만으로 상대했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검술로만.

그런데도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동부 전선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일격필살의 검법을 익혔었다. 그랬던 것이 엘하르트와의 대련 중에 어떻게든 한 방을 먹이기 위해서 고심하면서 깊이가 있어졌고 베제트를 탔을 때 운명을 엿보는 수준에서 검은 완숙으로 올라섰다.

그래서 세 번 이상 검을 받아내는 이들이 없었다.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라고 해도 기간트를 탄 채로가 아니고 검술만으로 이렇게 처참하게 깨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패배한 이들의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제이슨은 덤덤하게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차례대로 대련을 거쳤다. 그리고 엘하르트가 추천해준 소년이 나왔다. 이제 15살. 다른 이들에 비해 확실히 어린 나이.

워리어급 기간트 라이더라고 했지만, 그렇게 본다고 해도 상당히 어린 나이였다. 아카데미 소속도 아니면서 저 나이에 기간트 라이더라는 것 자체를 인정해 줘야 할 일.

자신과 연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시작하지.”

검을 들고 앞에 선 소년을 향해 제이슨이 튀어 나가는 찰나 소년이 눈을 빛내며 오히려 제이슨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몇몇 이들이 이렇게 달려들었고, 그런 이들은 한 합에 승부가 났었다.

제이슨은 소년의 검을 보고 마주 검을 쳐나갔다. 검을 흘리려고 검이 닿는 순간에 소년도 따라서 검을 흘리려 했다.

전력으로 휘두른 검을 흘려내는 것은 보통 기술이 아니다. 그런데 이 어린 소년이 그걸 한다는 것에 제이슨은 놀라면서도 손목을 틀어 검을 튕겼다.

검을 튕기고 만들어진 빈틈을 노리려고 했는데 소년은 검이 튕기는 순간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뒤로 눕히며 제이슨의 발목을 걷어찼다.

본능적으로 펼친 공격에 제이슨은 슬쩍 그 발을 피하며 검을 사선으로 내리쳤다. 소년은 발이 빗나가는 순간 축이 되는 발에 힘을 주고 몸을 굴렀다.

대련 중에 바닥을 이렇게 스스로 구를 줄은 몰랐다. 제이슨이 한 걸음 따라 들어가며 다시 베어 올릴 때 소년은 오히려 달려들었다.

제이슨은 소년이 품으로 파고들며 검을 내뻗기 전에 불쑥 왼손을 내밀었다.

오러를 다루지 않아도 가장 적절한 순간에 뻗은 손은 소년의 머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제이슨은 소년의 검이 닿지 않게 소년의 왼쪽으로 한 걸음 크게 내디딘 후에 그대로 소년의 다리를 걸어 바닥에 쓰러트렸다.

소년은 뒤통수가 아팠는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런 소년의 얼굴을 누른 손을 치우며 제이슨이 물었다.

“이름이 뭐냐?”

“루웰입니다.”

지금까지 싸웠던 이들. 그들에 비하면 지금 당장은 수준이 떨어질지 모른다. 전력으로 싸운다면 오러가 없으니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할 터.

하지만 재능의 면에서는 다른 이들을 압도했다.

-마음에 드냐?

“합격이다.”

제이슨의 말에 루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