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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63화 (64/151)

【63】 선물(2)

베제트를 소환했다. 히어로급 기간트를 포함해 이 상태로 베어 넘긴 기간트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상대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검을 휘두르고 설인은 죽으면 된다.

그렇게 믿고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설인도 주먹을 휘둘렀다. 그것을 마주한 순간 제이슨은 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꽈앙!

그리고 보기 좋게 뒤로 튕겨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제이슨이 몸을 일으켰을 때 설인은 이미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촤르륵!

왼팔의 사슬이 스스로 움직여 설인의 몸을 휘감았지만, 그 주먹은 그걸 가볍게 무시하며 떨어져 내렸다. 제이슨이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쳐내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을 뻔했다.

제이슨은 설인의 주먹을 쳐내고는 뒤로 굴렀다.

쿠웅!

바닥에 쩍쩍 균열이 갔다. 제이슨은 사슬을 풀어내고는 왼팔에 휘감았다. 사슬을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뭐지?”

-한 지역의 패자가 된다는 걸 우습게 보지 마라.

“그래 봐야 몬스터잖아!”

예첸 산맥에서 만났던 드레이크나 와이번. 모두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기간트로도 그것을 사냥하는 것이 힘들었었던 만큼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선 설인은 어떤가?

베제트를 소환한 채 싸우는 제이슨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존재라고 여겼다. 그의 검로 하나하나가 그렇게 되도록 정해진 운명과 같은 힘을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상대가 누구라도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앞에 선 설인은 어떤가?

제이슨의 공격을 받아치고 있었다.

-일부지만 운명의 힘을 엿보는 수준까지 올라온 거지.

“이런 미친!”

제이슨도 기간트에 올랐을 때만 쓸 수 있는 힘. 그 일부를 쓰는 존재. 그것이 지성이라고는 없는 설인이라는 점에서 미쳤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설인은 이성보다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운명의 힘을 일부 쓴다는 것은 제이슨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 터질듯한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속도와 괴력. 그것은 기간트에 비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저런 녀석이 만약 풀려난다면 저 하나를 잡는데 어지간한 기사단 하나를 갈아 넣어도 안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설인도 본능적으로 제이슨이 지금까지 싸웠던 존재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주먹을 들어올렸다.

파스슷.

제이슨은 설인의 주먹 주위로 휘도는 기운을 보고는 검에 오러를 주입했다. 베제트 수준의 크기일 때 다룰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저건 또 뭐야?”

-겨울 여우 정령의 힘이지.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됐나 보군.

냉기 속성의 힘을 다룰 수 있다고 한 겨울 여우 정령을 죽이고 그 힘을 갈취한 설인. 운명을 엿보는 것도 문제였는데 다른 힘까지 쓴다.

“좋아. 다시 붙어보자고!”

제이슨이 먼저 몸을 날렸다. 오러를 극한까지 전신에 둘렀고 베제트의 출력을 뽑아낸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간 제이슨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를 때 설인도 주먹을 마주 휘둘러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할 수 없다면 오로지 본신의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제이슨은 날아드는 주먹을 읽고 검으로 그 측면을 후려쳤다.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베어져야 했을 주먹이지만 냉기를 두르고 있는 주먹은 베이지 않았다.

쩌엉!

오히려 굉음을 내며 제이슨이 비척거리며 물러나야 했다. 제이슨의 오러 블레이드 위에 맺혔던 얼음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단 한 번의 교환으로 깨달았다.

저 냉기를 다루는 힘은 자신의 오러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설인도 그걸 깨달았는지 곧장 제이슨을 향해 달려와 폭풍우처럼 주먹을 쏟아냈다. 눈앞을 가득 메우는 주먹을 보고 제이슨도 그 자리에 서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정!

수많은 주먹을 쳐내며 제이슨은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베제트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냈음에도 제이슨은 조금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그만큼 지금 설인이 쏟아내는 괴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오러 블레이드에 베이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한 설인은 한 호흡에 수백 발의 주먹질을 쏟아냈다.

그걸 받아내는 제이슨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호흡이 끊어지고 설인의 주먹이 뒤로 돌아가는 찰나. 아직 제이슨의 호흡은 끝나지 않았다.

제이슨이 성큼 앞으로 나서며 검을 찔러넣었다. 그건 설인이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촤악!

설인이 황급히 뒤로 뛰어서 깊이 찌르지는 못했지만, 설인의 왼쪽 가슴에 상처가 났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심장을 뚫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슨은 잡은 승기를 놓칠 마음이 없었다. 성큼 다가서는 제이슨을 보고 설인이 입을 벌렸다.

파아아아!

섬찟하게 날아드는 냉기의 숨결.

제이슨은 몬스터를 많이 상대해보지는 않았지만, 어렵지 않게 그걸 읽어내 도약할 수 있었다. 위로 떠오른 제이슨을 보고 설인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은 고개만 움직여도 브레스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제이슨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왼손을 휘감고 있던 봉인의 사슬이 튀어나가 벽에 박혔다. 그리고 확 줄어들면서 제이슨은 허공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쩌저저적!

제이슨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천정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미 제이슨은 그의 뒤를 점한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설인이 황급히 돌아서며 주먹을 휘둘렀지만, 검술이라면 제이슨이 더 능숙했다.

검로가 틀어지며 주먹을 흘려내고, 비어있는 설인의 옆구리에 검이 박혔다. 냉기의 숨결이 재미난 능력이기는 했지만, 차라리 근접 박투로 진행하는 것이 나았으리라.

옆구리를 파고들어 장기를 뚫는 감촉을 느낀 제이슨이 검을 뽑아내려고 할 때 검이 뽑히지 않았다. 오러 블레이드를 쓴 상황에서 검이 근육에 물려서 빠져나오지 않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비틀어서 뽑아내려고 할 때 이미 설인의 손등이 제이슨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을 뽑아낼 틈이 없어 봉인의 사슬을 휘어 감은 왼팔을 들어 막았다.

꽈앙!

한쪽 벽까지 날아가 처박힌 제이슨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옆구리에 검이 박힌 채 돌아서는 설인을 바라보았다. 푸른 귀광이 번뜩이는 설인을 마주한 제이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검을 빼앗겼지만, 제이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제이슨이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자 그런 그를 향해서 설인도 마주 달려들었다. 설인이 휘두르는 주먹 아래로 고개를 숙여 구르듯 피한 제이슨은 몸을 돌리면서 발을 차냈다.

빠각!

검을 잘 다루지만, 몸이라고 못 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인의 맷집은 제이슨의 상상 이상이었다. 베제트의 출력까지 더해진 발차기는 어지간한 기간트의 외장갑을 뚫을 정도로 날카롭고 강력했지만, 설인은 비틀거리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것도 검이 반대쪽 옆구리에 꽂혀 있어 움직임이 부자연스럽지 않았다면 비틀거리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곧바로 날아드는 반격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제이슨은 오히려 날아드는 설인의 반대편 주먹 아래로 다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면서 그 옆구리에 박힌 검을 뽑아냈다.

푸확!

설인의 옆구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설인은 힘을 줘서 근육을 막아 피가 뿜어져 나오는 부분을 막았지만, 그렇게 신경을 다른 곳으로 분산하고 싸울 만큼 제이슨이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조금씩 승기가 제이슨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설인의 몸에 하나씩 상처가 늘어나자 설인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여겼다. 여기서 죽을 마음이 없었기에 설인은 두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주먹에 맺힌 가공할 냉기를 보고 제이슨은 뒤로 훌쩍 뒤로 피했다. 저 정도의 공격은 받아낼 수 없다.

제이슨이 물러나기 무섭게 설인의 주먹이 떨어졌고, 사방으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냉기의 폭풍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그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검이었지만, 그 일검이 보여준 결과는 제이슨도 놀랄 정도였다.

자신을 덮쳐오는 냉기의 폭풍은 물론이고 그 너머의 존재까지 베었다.

-오호.

설인이 아무리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힘겹게 싸우던 설인이 일검에 두 쪽이 나는 것을 보고는 엘하르트도 감탄했다.

-깨달음이라도 있던 거냐?

“이게 깨달음이라고?”

자신이 지금 뭘 펼쳤는지도 모르는 검이었다. 본능적으로 저 냉기의 폭풍이 이곳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얼려버릴 수 있는 위험한 공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걸 베고자 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그걸 일으킨 설인까지 베었다.

설인이 힘이 빠졌다고 해도 놀라운 성과였다.

제이슨은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쳤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여준 만큼 강력한 일격이 아니었다. 날카롭기는 하지만 조금 전 보여준 검은 아니었다.

제이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에 스노우가 안쪽으로 후다닥 달려와서는 두 쪽 난 설인의 심장을 날름 집어 먹었다. 워낙 크기가 커서 집어먹었다기보다는 물고 뜯는 모습이었지만.

“저게 뭐하는 짓이야?”

-어미를 죽이고 그 힘을 갈취한 설인의 힘을 다시 빼앗아 오는 과정이지.

심장을 먹음으로 그 힘을 빼앗아 오는 것이 가능한 줄은 몰랐다.

“나도 먹을까?”

-미쳤냐?

“농담이야. 농담.”

스노우가 그 심장을 나눠줄 것 같지도 않았다. 저것은 복수이자 본능이었다. 자신이 강해질 기회를 찾은 야수의 본능.

제이슨은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다가 아공간 주머니를 뒤져서 라이트 아티펙트를 찾아 켤 수 있었다. 주위가 푸른 불빛에 밝혀지자 제이슨은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신의 의지가 느껴져?”

스노우의 복수를 방해할 마음은 없었다. 제이슨은 자기 일을 찾아서 하면 그뿐이다.

-정면의 벽으로 가봐라.

제이슨이 다가간 곳은 그냥 벽이었다. 별다른 마법진 같은 것도 없어 보이는 벽.

-벽에 손을 올려라.

제이슨이 벽에 손을 올리니 그 손위로 엘하르트의 영체가 맺혔다. 비록 손만이지만 엘하르트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스며들자 벽 위로 고대 룬문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기계음도 들려왔다.

철컥. 철컥.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는 가운데 벽이 조각나는가 싶더니 좌우로 열렸다. 제이슨은 그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여긴 어디야?”

안에는 제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크리스탈 병에 황금빛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좌우로는 커다란 술독들이 쌓여있기도 했다. 제이슨이 그걸 둘러보는 사이에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단으로 가자.

제이슨이 제단으로 다가가서 살피자 그곳에는 고대 룬어가 적혀 있었다.

“뭐라고 적힌 거야?”

-‘너를 위해 만들었다. 친구여.’

“친구?”

-그렇게 불렀던 사이지.

제이슨은 술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엘하르트는 담담히 말했다.

-마셔라. 단숨에.

“술 아냐?”

-그래. 술이지.

엘하르트가 뒷말을 이었다.

-네 평생에 단 한 번 맛 볼 수 있는 술일 거다.

“아껴먹고 싶은데.”

-그럼 신의 의지를 흡수하지 못하겠지.

제이슨은 결국 입을 비죽 내밀고 병을 집어 들었다. 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시험이었는지 병을 집어 들어도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제이슨은 술병을 열고 단숨에 술병을 비웠다. 목을 타 넘기는 부드러움. 그 황홀함에 제이슨의 눈이 커졌다.

이건 독한 것도 아니었고, 부드러운 것도 아니었다. 아니, 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저 입을 통해서 전신으로 충만함이 퍼져나갔다.

이건 환희다.

술병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운 제이슨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그리고 술에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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