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62화 (63/151)

【62】 선물(1)

캬릉!

겨울 여우 정령이 사납게 울기에 제이슨은 육포를 다시 던져줬다. 그러자 다시 꼬리를 살랑이며 육포를 뜯기 시작했다. 아직 육포는 넉넉했고, 눈보라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갈 때쯤에는 겨울 여우 정령과 조금은 더 친해져 있지 않을까?

“겨울 여우 정령은 정령이니까 오래 사나?”

-하프 정령이라 수명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잘 살아야 천 년?

제이슨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여우 한 마리가 잘살면 천 년이라니? 하긴 정령들은 수만 년도 산다는 말이 있으니 그에 비하면 엄청 짧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이슨은 육포를 다 먹은 겨울 여우 정령이 입술을 핥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에 육포를 던졌다. 그렇게 두어 번 더하니 손바닥 위에 올린 육포를 스스럼없이 물었다.

슬그머니 손을 올리자 겨울 여우 정령이 고개를 딱 들고는 째려봤다. 그래 봐야 귀여워 보였다. 그래서 오러를 얇게 두르고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으르릉.

작게 으르렁거렸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별로 안 무서워하네?”

-저렇게 보여도 이 근처 어지간한 몬스터는 씹어 죽일 정도로 강할걸? 치악력도 치악력이지만 냉기를 다루는 것이 뛰어나다.

“정령은 정령이라는 거네.”

그렇게 손바닥 위에 육포를 두 개 정도 더 먹였을 때 제이슨은 겨울 여우 정령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새하얀 털이 제법 따뜻해서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흐음. 나를 느낀 건가?

“너를?”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순순히 사람에게 다가올 리가 없을 텐데.

그 말을 듣자 정말 고대 던전을 알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은 눈이 너무 내려서 그렇게 냉기를 다룰 수 있는 하프 정령인 겨울 여우 정령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눈만 그치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겨울 여우 정령은 어느새 긴장이 풀렸는지 제이슨의 품에 안겨서 잠들었다.

“몇 살이나 됐을까?”

-그 녀석이 데리고 있던 녀석에 비하면 확실히 어려 보이는군. 적어도 사 대는 내려온 것 같은데?

몇 천 년이 지났다는 이야기. 제이슨은 그들이 대를 이어서 고대 던전을 지켜왔길 바라며 습관적으로 겨울 여우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을 만끽하는지 고롱고롱 거리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도 정령이라면 제법 똑똑하겠네?”

-너보다 나을지도 모르지.

픽 웃은 제이슨은 겨울 여우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천천히 오러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베제트가 있으니 위험한 상황이 닥칠 리는 없다고 여겼다.

만약 겨울 여우 정령이 공격하려고 해도 엘하르트와 연결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렇게 믿고 천천히 오러 심법을 운용했을 때 겨울 여우 정령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제이슨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먹이를 준 인간. 그런데 그에게서는 강한 냄새가 난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다. 어지간한 인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일정 수준이 넘어간 자들은 절대 마주치지도 말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인간이 필요했다. 겨울 여우 정령은 제이슨의 다리에 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눈보라는 꼬박 이틀을 더 내렸고, 동굴 안에서의 기묘한 동거는 이제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겨울 여우 정령은 제이슨이 주는 육포를 먹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제이슨을 곧잘 따랐다.

제이슨은 그런 겨울 여우 정령을 바라보다가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이렇게 잘 따르는 녀석이라면 데려다 키워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스노우. 어때?”

고개를 갸웃거리는 겨울 여우 정령을 바라보며 제이슨이 다시 한번 말했다.

“눈보라 치는 날 만났으니 이름은 스노우.”

겨울 여우 정령은 자신을 가리키며 스노우라고 부르는 인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폴짝 뛰어올랐다. 제이슨이 놀라서 얼른 받자 그의 얼굴을 핥아줬다.

“하하하하. 너도 마음에 드는구나!”

스노우라는 이름. 부모에게 받았던 이름과 달랐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인간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고, 앞으로 써먹을 곳도 많은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렇게 불려도 좋았다. 기본적으로 묘하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제이슨은 스노우를 품에 안은 채 동굴 밖으로 나왔다. 가뜩이나 새하얗던 협곡은 이제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다른 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흐음.”

기간트를 타고 움직였다가는 눈에 빠져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곳이었다. 기간트를 타지 못하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제이슨은 스노우를 품에서 꺼내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스노우. 너 집이 어디야?”

겨울 여우 정령이 흔한 종도 아니고, 고대 던전에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니 우선 말귀를 알아먹는 스노우를 이용해 탐색해볼 생각이었다.

진짜로 집이 고대 던전이라면 던전 안은 싹 털어먹고, 스노우는 집으로 데려가 호의호식시켜줄 생각이었다.

그런 제이슨의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스노우는 몸을 비틀어서 손아귀에서 빠져나갔고, 협곡 안쪽으로 달려가다가 멈춰 서서 돌아봤다.

따라오라는 눈빛에 제이슨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럴 줄 알았어.”

고대 던전이 아닐지 몰라도 겨울 여우 정령의 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이슨이 기쁜 마음에 따라오자 스노우가 앞장서 걸었다.

제이슨을 등지고 있어서 몰랐지만, 스노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영악해 보이는 미소가.

북풍의 협곡 안쪽 깊숙한 곳. 사람의 손길조차 닿지 않았던 곳. 바닥에 얼마나 많은 눈이 쌓이고 쌓였는지 돌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좌우로 깎아지른 절벽을 두 눈에 담은 제이슨은 스노우가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을 보았다. 제법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벽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덩치에 맞지 않게 도약력도 높아서 어렵지 않게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스노우가 멈춰서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따라오라는 거냐?”

스노우가 고개를 끄덕이기에 제이슨은 몸을 가볍게 풀었다. 오러 유저인 그에게 이 정도 절벽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믿고 도약했다가 바로 발이 미끄러질 뻔했다.

벽에다가 손가락을 박아넣어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 제이슨은 가볍게 혀를 찼다.

이거 생각보다 미끄러워서 자칫 잘못하면 떨어져 죽게 생겼다. 제이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조심조심해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험. 그 경험 자체가 그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것만이 미끄러지지 않을 방법이었기에 제이슨은 한 걸음 한 걸음만큼 성장하고 있었다.

스노우는 그런 제이슨을 데리고 꾸준히 절벽을 타고 올랐다. 지상에서 거의 100미터는 올라왔을 때 제이슨은 슬쩍 식은땀이 흘렀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아무리 제이슨이라고 해도 무사하기 힘들다. 베제트가 있으니 죽지는 않을지 몰라도 어디 한 군데 부러질 각오는 해야 했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후웅.

밑에서 불어온 바람에 몸이 휘청였다. 이대로 떨어지는 건가 싶을 때 저 멀리 스노우가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건 저기 어딘가 동굴이 있다는 뜻.

제이슨은 두 발에 힘을 주고 힘껏 차올랐다. 제이슨이 딛고 있던 바위가 떨어져 내리면서 그 여파로 절벽에 쌓여있던 눈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 보았다면 눈사태라고 할만한 일을 벌여놓았지만, 제이슨은 스노우가 들어간 동굴을 볼 수 있었다. 허공을 박차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간 제이슨은 그제야 긴 숨을 토해냈다.

“후우. 죽을 뻔했네.”

컁! 컁!

고작 그것 올라오면서 그 난리를 피웠냐는 듯 핀잔을 주는 스노우의 짖음에 제이슨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오러 유저가 되고 난 이후로 이런 식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전장이 아니라 협곡을 하나 오르면서 이렇게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또한 짜릿함도 느낄 수 있을 지는 몰랐으니까.

그보다 이렇게 높은 곳. 밑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동굴. 그것만으로 이곳이 뭔가 깊은 내막이 있어 보였다.

“여기가 네 집이야?”

스노우가 고개를 끄덕이기에 제이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이 만약 고대의 던전이라면 온갖 마법 함정이 있을 터였다. 제이슨은 베제트를 소환해 몸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스노우가 검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자.”

제이슨의 목소리를 들은 스노우가 앞장서 걸었다. 그를 따라 걸으면서 제이슨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동굴은 깊지 않았고 그 끝에는 고대 룬어가 적힌 문이 나타났으니까. 그런데 그 문이 반파되어 있었다.

그 안으로 슥 들어가는 스노우를 보고 제이슨도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들어간 제이슨은 여기저기 부서진 벽들을 볼 수 있었다.

“뭐지?”

마법 트랩도 이미 다 작동한 것인지 그 흔적만 남아있었다. 그 말은 이미 누가 털어갔다는 얘기였다.

제이슨의 인상이 굳어졌다. 신의 의지를 가지러 왔는데 이곳이 털렸다면 가벼이 볼 일이 아니었다. 제이슨은 스노우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었을 때 저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크르르릉.

그것은 맹수의 울음이었다.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강렬한 살기가 전해졌다.

스노우가 털을 바짝 새우고 으르렁거리기에 제이슨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스노우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살기다.

제이슨은 어둠 속에서 푸른 귀광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고대 던전답게 사위를 밝히고 있던 불이 저 앞쪽에 보이는 공동에는 꺼져 있었다.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목소리가 들렸다.

-야간 투시 모드에 들어갑니다.

그러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던 곳이 녹색으로 변하며 그 안에 있는 존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머리 양쪽에 뿔이 난 거대한 털북숭이의 모습이었다.

그 키가 무려 3미터. 기간트 라이더인 제이슨에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키였지만, 그 압축된 근육과 뿜어내는 기세는 섬뜩할 정도였다.

-설인이군.

“설인?”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몬스터였다.

-저 정도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일대의 왕이라고 불러도 되겠어.

“그런 놈이 왜 여기 있어?”

-저것 때문인가 본데?

제이슨의 시선이 설인의 발아래 놓인 시체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대략 2미터 정도 되는 길이를 가진 여우였다. 그걸 보고 제이슨의 시선이 스노우를 향했다.

“겨울 여우 정령을 잡으러 왔다는 건가?”

-아마도?

제이슨은 손을 내밀어 스노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노우가 고개를 들어 올려서 눈을 마주쳤다. 제이슨은 그 머리를 꾹 눌러준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부모가 죽었던 곳으로 날 데려왔다는 거네.”

-정령들은 똑똑하지.

“그래. 똑똑하네.”

자신이 이용당한 것일지 모른다고 여겼지만, 제이슨 또한 스노우를 이용했다. 고대 던전을 이렇게 쉽게 찾았으니까.

선객이 있다고 한다면 어떤가?

복수를 해주고, 이곳에서 취할 것을 취한다. 마음에 부담이 없어졌다.

제이슨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스노우. 잘 봐둬라.”

말과 함께 제이슨이 땅을 박차고 어둠 속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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