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61화 (62/151)
  • 【61】 북풍의 협곡(2)

    엘레나의 오러 각성에 대해서 벡스는 크게 기꺼워했다. 가뜩이나 제이슨이 ‘미친 들소’를 나가서 전력에 난 구멍이 아쉬웠다. 이번 전쟁에서 제이슨을 썼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내줘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군인인 엘레나가 오러 유저가 되었으니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그래서 그 깨달음을 주게 한 제이슨을 불러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엘레나의 오러 각성을 축하하는 식사자리에 제이슨도 일정을 하루 늦추고 참석했다.

    벡스는 펠릭스도 뭔가 달라졌음을 알았다. 엑스퍼트에서 오러 유저가 되는 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벽을 넘을 수 없어 전전긍긍하던 모습이 사라졌음을 보았다.

    지금 당장은 뭔가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크게 성장할 힘을 손에 얻었다.

    그 모든 것을 본 벡스는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미친 들소의 요원으로 생활한 것이 오래돼서인지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은 마치 가족의 식사와 같았다.

    제이슨이 강하다는 것은 이번 전쟁을 통해서 알았지만, 두 명이나 그 효과를 본 것을 보니 자신도 한 번 대련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슬쩍 운을 띄워 보았다.

    “시간이 괜찮으면 나랑도 대련을 해보는 게 어떻겠나?”

    제이슨은 구미가 동하는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벡스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총사령관으로서 정신없는 지금 대련 중에 깨달음이라도 얻으면 곤란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와 단번에 성장하기도 하지만 어떤 깨달음은 몇 날 며칠 이상을 깨달음에 매달려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대련을 한다고 해도 이 바쁜 시간이 지나간 후에나 할 일이었다.

    “이곳 일 다 끝나고 귀국하시면 그때 하죠.”

    제이슨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깨달은 벡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은 이미 오러 유저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혈계 전승 때문이든 아니든 이미 그만한 경지에 든 자신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서 하는 말.

    제이슨이 언제 이렇게 성장했나 싶었다.

    “좋아. 귀국하거든 시간 한 번 내주게.”

    지도 대련이 아님에도 벡스는 정중히 부탁했다. 그 모습 자체가 제이슨에게는 기쁨이었다.

    희미하게 웃은 제이슨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엘레나. 축하해요.”

    “고마워.”

    모두의 축하에 엘레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엘프와의 혼혈인 그녀가 오러 유저로 각성했으니 그 활용도는 훨씬 늘어났다. 그린 드래곤 용병단장처럼 그녀 또한 정령술의 수준은 물론이고 여러 방면에서 더 도움이 될 터였다.

    모두가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엘레나의 축하 자리는 결국 새벽까지 이어졌다. 로크는 어려서 술을 안 마셨음에도 일찍 뻗었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일하던 로크는 술자리가 길어지는 통에 구석에 쪼그려 잠들었고, 엘레나는 친동생을 대하듯 이불을 가져다 그를 덮어주었다.

    불콰하게 술이 오른 엘레나의 주위로는 정령들이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정령들과 대화하며 술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오러 유저나 된 이들이 술에 취한다는 것도 우스웠지만, 주독을 몰아내지 않고 술을 마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제이슨도 알딸딸함을 느끼고 있었다.

    벡스는 그간의 피로가 몰려왔는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졸고 있었고, 펠릭스는 드워프와의 혼혈답게 가장 멀쩡한 모습이었다.

    펠릭스는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

    “대장한테 그런 말 들으니 소름 돋아요. 이거 봐요.”

    제이슨이 자신의 팔뚝을 보이며 하는 말에 펠릭스는 픽 웃고는 말았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되겠냐?”

    “뭔데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다면 도와다오.”

    전쟁에 나서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그것이 결국 가족을 지키는 일이다 보니 마다할 일은 아니었다.

    “도와는 드리죠.”

    게다가 미친 들소도 모두 가족과 같은 이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을 도울 일이 있다면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트랑 왕국은 당분간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이번 전쟁으로 얻은 것이 많다고 하나 명분 없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면 제국이 그냥 보고 있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제국이 나서면 트랑 왕국은 버티지 못한다. 전력의 차이가 비교할 수준도 아닐뿐더러 그곳에는 마스터가 존재하니까.

    “고맙다.”

    “맨입으로 도와드릴 생각 없습니다.”

    군인들이야 전공을 쌓으면 진급이 되지만, 군인이 아닌 제이슨은 받을 것은 다 받아낼 생각이었다.

    제이슨은 문득 펠릭스를 보다가 물었다.

    “대장은 전역 안할 겁니까?”

    “아직은 생각 없다.”

    전장에 왜 뼈를 묻으려는 것인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은 펠릭스였다. 제이슨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 영지를 받을 생각입니다.”

    “그래야겠지.”

    아이젠과의 약혼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자신의 영지를 가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 약혼이라는 이름만 가지고도 제이슨은 후작위와 그에 걸맞은 영지를 하사받으리라.

    이번에 얻은 땅이 많아서 충분히 그만큼을 내줄 수 있을 터였다. 하이젤 왕국의 땅이 아니라도 귀족들이 많이 처형당했으니 땅이라면 넘쳐났다.

    “영지의 기사단장 자리는 비워놓겠습니다.”

    펠릭스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왕국에 오러 유저 수가 얼마나 된다고 오러 유저인 자신을 기사단장 자리를 주겠다고 하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그 영지는 영지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다.

    “나 비싼 몸이다.”

    “저 부잡니다.”

    지금도 부자지만 레드 드래곤 용병단의 기간트까지 팔고 앞으로도 고대 던전들을 계속해서 털 생각이니 골드라면 넘치도록 벌 수 있을 터였다.

    오러 유저의 몸값은 상상 이상이지만 그런 그도 부릴 수 있을 만큼의 골드를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펠릭스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좋다. 전역하고 몸을 의탁할 곳이 있으니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겠구나.”

    “잊지 마세요.”

    “그래. 그런 의미에서 건배.”

    제이슨은 펠릭스와 건배를 하고는 잔에 남은 술을 꺾는 것을 마지막으로 잠들었다. 그런 제이슨을 내려다보며 펠릭스는 자신의 잔에 다시 술을 따랐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술이 깨기 무섭게 제이슨은 지도를 하나 구했고, 북풍의 협곡 인근에 있는 두 개의 영지 중 조금 더 가까운 돈토 성으로 워프 게이트를 타고 이동했다.

    오러 유저라서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곳의 바람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게다가 북풍의 협곡은 몇 배나 더 추운 곳이라고 하니 제이슨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라도 옷을 사야 했다.

    북풍의 협곡에 서식한다는 불곰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3골드에 산 제이슨은 가죽을 여미고는 여행을 준비했다. 코어 카트를 이용하면 이동 속도는 빠를 테지만 고대 던전을 탐색하는 시간을 길어질 수 있었기에 육포를 비롯해서 간단히 먹을 것들을 준비했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불을 피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서 준비한 것들을 가지고 제이슨은 성을 벗어났다. 하이젤 왕국이 트랑 왕국에 패하고 전면적인 항복을 한 것 때문에 분위기가 조금 날카롭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방인인 제이슨을 핍박하는 이들은 없었다.

    어차피 트랑 왕국과 하이젤 왕국인들은 눈에 띄게 다른 점도 없었다.

    제이슨은 성을 벗어나서 거리가 멀어지도록 걸은 후에 시야에서 벗어난 후에는 코어 카트를 타고 북풍의 협곡을 향했다. 대륙에서 위명이 자자한 북풍의 협곡.

    그곳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일반 몬스터들에 비해서 더 흉폭하고 종종 기간트를 이용한 토벌이 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곳이었다.

    이곳에 나타나는 몬스터는 냉기를 품은 것들이 많아 마도공학자들이 연구해 보았지만,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다만 냉기를 뿜어내는 만큼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말이 많을 따름이었다.

    제이슨은 그런 북풍의 협곡 앞에 서서 지도를 꺼내 보았다. 하이젤 왕국에서도 이곳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곳이었다. 오러 유저인 제이슨도 옷깃을 여밀 정도로 추운 곳이었다.

    온도를 유지해주는 마법 아티펙트들 조차 상정한 기준치 이상으로 온도 차이가 나면 그 기능을 쓸 수 없다. 그만큼 이곳의 온도는 낮았다.

    제이슨은 오러를 몸에 가볍게 돌리면서 이동을 시작했다.

    고대 던전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추운 곳에 왜 던전을 만든 거야?”

    -이곳에서만 나는 재료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군.

    신의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찾을 생각이었지만, 예첸 산맥을 돌 때만큼이나 막막했다.

    그때는 몬스터들이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이곳은 맹추위가 걱정이었다. 자연의 힘 앞에서는 오러 유저조차 쉽지 않은 탐색이 될 터였다.

    제이슨은 북풍의 협곡 내부로 들어가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히 몬스터들을 만나서 싸울 마음은 없었기에 최대한 기척을 줄이고 이동을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멀쩡해 보이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몰아치는 눈보라를 보며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오러 유저인 제이슨이라고 해도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곳을 뚫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근처의 동굴을 발견해서 그 안으로 들어간 제이슨은 숨을 돌렸다.

    “술 한 잔 생각나네.”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술 한 잔 생각나는 추위였다. 제이슨이 편하게 앉아 오러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맹추위를 버티려면 오러를 꾸준히 돌려줘야 했다.

    제이슨이 눈을 뜬 것은 동굴 입구에 나타난 기척 때문이었다. 작은 기척이었는데 그 기척을 읽은 제이슨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이 정도 기척이라면 소형. 거의 개나 고양이 수준의 크기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예첸 산맥과 다르게 이곳은 혹독한 날씨와 그 날씨에서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사는 곳이었으니까.

    크기가 작다고 해도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은 몬스터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이슨이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곳으로 들어오던 존재도 제이슨을 파악했는지 경계하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제이슨은 안으로 들어온 상대를 바라보았다. 주변 환경 때문인지 새하얀 털을 지닌 존재. 작은 귀에 마치 흑요석을 박아놓은 듯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눈동자 전체가 검은 존재를 가만히 바라보던 제이슨은 그 모습에 경계심이 조금 풀렸다. 이렇게 자그마한 존재가 뭘 할 수 있을까?

    몬스터나 그런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품에서 육포를 하나 꺼내서 휙 근처로 던져줬다. 뒤로 폴짝 뛰어 피했다가 동굴 밖으로 나갔던 녀석은 다시 안으로 들어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육포를 입에 물고 뜯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치악력이 얼마나 좋은지 질긴 육포가 쭉쭉 뜯겨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이슨의 귀로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겨울 여우 정령이군.

    “정령?”

    제이슨이 놀라서 바라보자 엘하르트가 말을 이었다.

    -정령이면서 야성을 가지고 있는 정령인데 어쩌면 고대 던전의 위치를 알지도 몰라. 그 녀석도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었거든.

    “그런데 정령이 눈을 피해왔다고?”

    -하프 정령이라 그래.

    제이슨은 어쩌면 고대 던전을 쉽게 찾을 수도 있는 녀석이 제 발로 찾아왔다는 것에 미소를 지으며 품에 있는 육포를 더 꺼냈다. 슬슬 꼬리를 살랑이며 겨울 여우 정령이 다가왔다.

    “좋았어. 육포를 줄 테니 고대 던전을 다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