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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56화 (57/151)

【56】 포상(2)

하이젤 왕국은 단 한 번의 전투로 왕국의 전력 중 7할을 잃었다. 나머지는 각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인데 그것들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니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북벌하는 트랑 왕국군은 날이 갈수록 병력이 늘어났다. 귀족들이 너도나도 손을 얹기 위해서 병력을 증원해주자 처음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병력이 되었다.

게다가 하이젤 왕국의 귀족들도 성문을 열고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괜히 버텼다가 자국이 개발한 무기인 마법 방어진 무력화용 창에 마법 방어진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그게 더 큰 손해였다.

백기를 내건 성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하이젤 왕국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리차드 국왕은 열심히 손을 벌렸지만, 모두 등을 돌렸다. 알제리 왕국이 제국에게 발이 묶인 것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왕국들조차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하이젤 왕국은 지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히 그 손을 잡고 함께 저물어 가지 않으려고 왕국들은 오히려 트랑 왕국으로 줄을 서고 있었다.

“멍청한 것들.”

트랑 왕국의 국왕을 시해하고 트랑 왕국의 북부를 노린 것이 자신이었다고 하지만 카이트 국왕이 이렇게 빠르게 치고 나온 것을 보면 모르겠나?

그 또한 야심이 있었던 거다. 다만 천운이 그를 따라줬을 뿐이다.

병력이나 준비 모두 자신이 앞섰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밀리게 된 것은.

“마스터 하나 보유하지 못한 주제에.”

마스터를 보유한 곳보다 보유하지 못한 곳이 훨씬 많다. 1개의 제국와 1개의 신성교국, 12개의 왕국, 3개의 연합국 중 마스터를 보유한 곳은 다섯 곳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국력만 따지고 본다면 하이젤 왕국이 결코 트랑 왕국에게 뒤지지 않았다. 북부에 있는 하이젤 왕국은 날이 추워서 밀 재배가 어려워서 그렇지 광산이 많아서 먹고 사는 것은 지장이 없었으니까.

주변국이 밀 가격으로 장난질하는 것이 짜증 나서 계획했던 일이었는데 그것이 실패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지금 최대한 병력을 수도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저들이 탈취한 마법 방어진 무력화용 창의 수로는 수도의 마법 방어진을 뚫을 수 없으니 수성은 가능하리라.

그리 생각하며 술병을 집어 술잔에 따르던 리차드 국왕은 술이 떨어진 것을 보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술을 가져와라!”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이가 있어 손을 내민 리차드 국왕은 칼이 뽑히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위배지로 보냈던 자신의 동생이 서 있었다.

“형님. 그만합시다.”

“뭐?”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떨어진 칼에 리차드 국왕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그 머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레이먼이 입을 열었다.

“머리를 보존액에 담아라.”

안으로 들어온 기사가 얼른 머리를 보존액 통에 담자 레이먼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카이트 국왕에게 항복 서한과 함께 보내라.”

“그리하겠습니다.”

“괜히 수작 부리지 말고 납작 엎드려서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알겠나?”

“예.”

레이먼을 따라 들어온 하이젤 왕국의 재상 빈센트가 입술을 깨문 채 답했다. 레이먼은 빈센트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후일을 도모하든가 할 것 아닌가? 멍청하게 굴지 말고 확실히 용서받아야만 돌아올 수 있을 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그래야지.”

빈센트는 재상으로서 리차드 국왕의 의견을 실행한 인물. 왕국이 이 지경이 되게 한 자 중 하나였기에 그를 대하는 레이먼의 태도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항복 서한이 올라오고 나서 북벌군은 어떤 저항도 없이 왕궁까지 진군할 수 있었다. 수도 앞에 모든 병력이 집결했다. 귀족들이 증원해준 덕분에 일반 병사가 10만에 달했고, 기간트 라이더들 사이로 올라간 깃발의 수도 수백 개는 되었다.

귀족들이 자신의 깃발을 보내온 통에 깃발이 어지러이 펄럭이는 것만으로 적군이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열린 왕궁으로 가장 먼저 입성한 것은 카이트 국왕이었다.

항복을 받아들인 카이트 국왕은 북벌군에 합류했고, 지금 하이젤 왕국의 왕궁에 무혈입성하는 중이었다.

카이트 국왕의 뒤로는 북벌군 총사령관 벡스와 그의 옆으로는 제이슨이 따라붙었다. 군의 인물은 아니지만 카이트 국왕은 자신의 뒤에 제이슨이 서기를 바랐다.

그가 세운 공도 공이지만, 그만한 능력을 지닌 이가 없다는 것을 들어서 알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 둘이 함께하는 한 위험할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선 길.

그렇게 왕궁의 대전으로 들어서니 그곳에는 리차드 국왕을 죽이고 국왕의 위에 오른 레이먼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카이트 국왕은 그를 지나쳐 대전의 중앙에 놓인 옥좌에 앉았다. 옥좌 뒤로 벡스와 제이슨이 섰고 대전 좌우로 트랑 왕국의 이름 있는 기사들이 쭈욱 들어섰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이라도 이곳에 모인 하이젤 왕국의 귀족들을 죽일 수 있는 위치였다.

카이트 국왕은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레이먼에게 시선을 주었다.

“레이먼 국왕.”

레이먼이 고개를 들자 카이트 국왕은 그를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대의 선물과 그대의 마음은 잘 받았소.”

재상 빈센트 공작이 찾아와 납작 엎드리며 전면적인 항복 문서를 건넸다. 마음만 먹는다면 속국으로 삼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제국에서도 가만두지 않을 터였기에 그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받아낼 수 있는 것은 골수까지 빨아먹을 생각이었다.

카이트 국왕이 손짓하자 벡스가 왕가의 인장이 찍힌 서류 하나를 꺼내서 레이먼에게 전해주었다. 레이먼이 서류를 받아 펼쳐 보았다.

그곳에는 트랑 왕국이 요구하는 것들이 적혀 있었다. 레이먼은 그것들을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뜻대로 하소서.”

카이트 국왕은 레이먼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시류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제대로 보지 않아도 되겠는가?”

“상관없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그곳에 왕가의 옥새를 찍어라. 그리하면 항복을 공식으로 받아들이겠다.”

“감사합니다.”

레이먼이 손짓하자 뒤에서 다가온 재상 빈센트가 옥새를 내밀었다. 레이먼이 옥새를 찍자 빈센트가 직접 카이트 국왕에게 그걸 가지고 와서 바쳤다.

카이트 국왕이 손짓하자 벡스가 그것을 회수했다. 카이트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먼을 바라보았다.

“그대의 마음은 잘 알겠다. 약속만 잘 이행한다면 더는 전투가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저자세인 레이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카이트 국왕은 곧장 대전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 벡스와 제이슨, 그리고 기사들까지 모두 물러나자 레이먼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빈센트가 그런 레이먼에게 물었다.

“트랑 왕국에서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남부의 성 10개와 왕국에서 나는 모든 광산의 채굴량의 5할. 왕궁 마법공학 개발부의 모든 연구 자료를 내놓으라고 하더군.”

“그건 왕궁의 땅 중 4할에 달하는 양이고 채굴량을 그렇게 내준다면 식량을 사들이기도 힘들 것입니다. 게다가 왕궁 마법공학 개발부에 들어간 연구비가 얼마인데요!”

레이먼이 싸늘한 시선으로 빈센트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에 왕국을 건사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 것이야.”

빈센트는 그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레이먼은 멀어지는 카이트 국왕과 트랑 왕국군을 보면서 말했다.

“10년. 어쩌면 더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군.”

리차드 국왕이 말아먹은 탓에 왕국의 힘을 회복하는데 길고도 긴 시간이 필요하게 생겼다.

트랑 왕국의 왕궁으로 먼저 돌아온 것은 카이트 국왕과 제이슨을 비롯한 몇몇이었다. 북벌 총사령관 벡스는 하이젤 왕국에 남아서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협약에 따라 받아내야 할 것들을 받아내기 위해서 그걸 감시할 이들도 필요했고, 왕궁에서 데리고 간 마도공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지금까지 연구했던 모든 것들을 얻어야했다.

이번에 워낙에 마법 방어진 무력화용 무기가 시선을 끌어서 그건 각 왕국에서도 침을 흘리고 있었다. 다른 왕국들이야 무시할 수 있겠지만, 제국에는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할 판이라 확실히 그 기술을 빼 와야 했다.

왕궁으로 돌아온 카이트 국왕은 제이슨과 독대했다.

“차를 좋아한다고 들었네.”

“아버지가 차를 좋아하셔서 술보다는 차를 더 많이 접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이게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군.”

카이트 국왕이 따라준 차는 제이슨도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이건 이름이 뭐죠?”

나름 이것저것 많이 먹어보았다고 자부하는 제이슨도 처음 먹어본 것이라 신기해 물어보니 카이트 국왕이 미소를 지은 채 답해주었다.

“하이젤 왕국에서도 극소량만 채취가 된다고 하더군. 야생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것이라 왕가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들었네. 이름은 ‘새벽 서리 풀’이었던가?”

이렇게 깔끔하고 시원한 향을 느낄 줄은 몰랐다. 신기해서 한 모금 더 마시고 있으려니 카이트 국왕이 그윽한 시선으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듣자 하니 자네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 들었네.”

뜬금없는 결혼 이야기에 제이슨이 살짝 긴장했다.

“결혼하기에는 아직 제가 젊죠.”

“무슨 소린가? 자네 나이면 벌써 아이가 있을 나이지.”

그거야 일반적인 귀족가의 장남이나 가능한 일이다. 정략결혼을 해서 일찍 아이를 갖지만, 제이슨은 차남이었다. 물론 정략결혼을 통해 세를 키우려는 귀족들은 차남이라고 해도 일찍, 일찍 결혼을 시키게 마련이다.

하지만 제이슨은 그 시절에 군대에 가 있었다. 아버지도 세를 키울 마음이 없는 분이기도 했고.

“그래서 말인데 내가 중매를 서면 어떻겠나?”

“전하.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이슨이 거절했지만, 카이트 국왕으로서는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백작의 작위를 내렸지만, 그건 어느 왕국을 가도 받을 수 있는 작위였다.

그냥 오러 유저가 아니라 하이젤 왕국의 오러 유저 셋을 모조리 꺾은 이였다. 그런 제이슨을 눈뜨고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붙들어 둬야 했다.

“내 사촌 누이인데. 자네도 이름을 들어봤을지 모르겠군. 아이젠이라고.”

제이슨은 그 이름에 멈칫했다. 그도 이름은 들어보았다. 트랑 왕국 제일의 미녀라는 이름. 무엇보다 그녀는 거트 공작가의 차녀로 공주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들어는 봤습니다.”

“내가 중매를 서겠네. 그녀와 혹시 혼인이라고 하게 된다면 자네에게 후작의 작위를 내릴 수 있네. 어떤가?”

제이슨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조금 바빠서.”

엘하르트를 따라서 고대 던전들을 털러도 다녀야 했다. 신의 의지를 찾아서 그의 봉인을 풀고 다시 함께 다녀야 했으니까.

“그럴 것 같아서 이렇게 차를 마실 때 보자고 이미 불렀네.”

“예?”

“들라하라.”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웨이브 진 금발에 새하얀 피부. 커다란 금안의 여인이 사뿐히 안으로 들어왔다.

트랑 왕국 제일 미녀라고 불리는 아이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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