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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54화 (55/151)
  • 【54】 대승(2)

    새하얀 털옷을 입은 이들. 트랑 왕국의 기간트 라이더들 전원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자신들의 국경 요새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들의 투기가 오르는 것을 보면서 벡스가 앞으로 나섰다. 북부 특산물인 늑대 가죽을 몸에 두른 벡스가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요새가 무너졌다고 해도 적들의 전력은 두 배에 가깝다. 하지만 전쟁이란, 전투란 기세가 중요하다. 감히 국왕 전하를 시해하고 뻔뻔하게 국경을 넘은 자들에게 철퇴를 내릴 때다. 준비들 됐나?”

    “예!”

    눈발이 그들의 목소리를 묻었다. 벡스는 씨익 웃더니 검을 뽑았다. 동부 전선에서도 그는 언제나 전투의 선두에 섰었다. 그랬기에 누구보다 존경받는 사령관이었다.

    벡스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준비됐나?”

    펠릭스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제이슨과 엘레나, 로크가 서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뒤로는 ‘눈의 꽃’의 여자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돌격 대대가 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 그렇게 위험한 일이다 보니 ‘미친 들소’의 뒤를 받쳐주는 것은 이번에 큰 공을 세워야 하는 ‘눈의 꽃’ 여자 기사들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믿는다.”

    펠릭스가 코어 카트를 꺼내자 돌격대 모두가 코어 카트에 올랐다. 눈발을 가르며 달리는 선두에서 펠릭스가 통신기를 통해 말을 건넸다.

    -큰 공에 욕심내지 마라. 그저 나만 따라와라.

    -예.

    눈발이 쏟아지는 와중에 폭발한 요새 때문에 정신이 없는 이들은 새하얀 털옷을 입은 그들의 접근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요새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신경이 요새로 향한 병사들을 그대로 코어 카트를 타고 지나친 일행은 성벽까지 단숨에 타고 넘었다.

    코어 카트를 타고 수직으로 성벽을 타고 오르는 기술은 미친 들소 대대원들밖에 하지 못했다.

    ‘눈의 꽃’ 기사들은 코어 카트에서 내리고 도약해서 성벽을 타고 올랐다. 그렇게 성벽에 오른 펠릭스가 기간트를 소환했다.

    요새 탈환전이 아니다. 적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줘야 하는 전투. 요새가 무너지면서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펠릭스가 자신의 바이슨에 올랐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보고 베제트를 소환했다.

    -너 기간트는 어쩌고 맨날 그거 입고 다니는 거냐?

    “일이 있어서요.”

    간단히 답한 제이슨은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봉인의 사슬이 감겨 있었다.

    그것만으로 엘하르트가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제이슨은 주먹을 쥐고는 오른손으로 양손검을 뽑아 들었다.

    요새에서 적들이 기간트를 소환할 때 펠릭스가 그대로 뛰어들었다. 적들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을 때 뛰어든 펠릭스의 뒤를 엘레나와 로크가 소환한 듀라한 일곱 기가 따랐다.

    제이슨은 그들보다 늦게 뛰어내렸지만, 가장 빠르게 치고 나갔다. 베제트의 코어 출력량은 히어로급 기간트에 버금가는 데 신장이 2미터 밖에 안 되니 속도 면에서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였다.

    제이슨이 튀어 나가면서 오러의 파편부터 날렸다. 아직 기간트에 타지 못한 이들부터 표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콰콰콰쾅!

    몇몇 이들이 쓰러진 사이에 제이슨을 향해 기간트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제이슨은 자신을 향해 들어오는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미끄러지듯 그사이를 파고들었다.

    어차피 모두 베어버릴 필요는 없다. 제이슨의 뒤를 따라오던 펠릭스의 도끼가 제이슨에게 시선이 쏠린 기간트를 반으로 쪼갰다. 그사이 제이슨은 도저히 피할 곳 없이 달려드는 이들의 기간트의 합공을 보고 검을 들었다.

    스카칵.

    검이 흘러내리고 만들어진 빈틈으로 제이슨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제이슨의 오러 블레이드가 앞을 막아선 기간트를 조각냈다.

    돌격 대대의 공격에 적들의 시선이 몰렸을 때 요새 밖에 대규모의 기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은 거침없이 병사들을 짓밟으며 진군을 시작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기간트들이 일어났지만, 그들은 감히 앞을 막아설 틈이 없었다. 트랑 왕국의 기간트들의 선두에 선 이는 벡스였다.

    불꽃 전차라고 불리는 벡스의 검에서 일어난 플레임 오러가 앞을 막아선 기간트들과 병사들을 불태웠다.

    카틀란은 요새가 무너질 때 오러로 몸을 보호했고, 입고 있는 갑옷 덕분에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피해가 컸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라 꽤 많은 이들이 죽었다.

    요새를 지키던 지휘부의 입장에서는 눈이 돌아갈 일이었다. 무슨 수로 요새에다가 폭탄을 심어 놓았는지 모르겠으나 요새가 날아갈 정도의 폭발에 휩쓸려 죽은 이들이 많았다.

    요새에는 지휘부가 있다 보니 그 피해가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요새 안으로 난입한 적군들을 보고 카틀란의 눈이 뒤집혔다.

    “모두 기간트를 소환해서 대응해라!”

    요새 외부에 있던 이들이 기간트를 소환했지만, 히어로급 기간트인 펠릭스의 바이슨을 필두로 그렌달을 죽였던 마갑을 입은 제이슨까지 날뛰는 통에 앞을 막을 수 없었다.

    카틀란의 주위로 살아남은 백곰 기사단의 기사들이 기간트를 소환했지만 그 수가 현저히 줄었다. 이 인원으로 과연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카틀란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기간트를 소환해 올랐다.

    “좋아. 이번에는 한 방 먹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승부를 뒤집을 수는 없다는 걸 알려주마.”

    지휘부의 기간트 라이더들이 많이 죽었지만, 그렇다고 전세가 뒤집힐 정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모조리 잡아 죽여라!”

    외부에 병사들과 워리어급 기간트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모조리 죽이고 전세를 뒤집는다.

    카틀란을 비롯해 요새에서 죽은 이들을 제외하고 다친 이들 모두가 전장에 나서면서 전장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고작 스물다섯 명. 미친 들소의 요원 넷과 ‘눈의 꽃’ 기사단 스물한 명이 적진의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적들이 대비하기 전에 들어갔다고 하나 워낙에 적이 많았다.

    수많은 기간트가 나서자 그들의 돌진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제이슨이 대단하다고 해도 오러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대한 아끼면서 직선으로 주파하고 있었지만, 그 수가 스물을 넘어섰을 때 더는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펠릭스와 일행들의 속도가 느려진 탓이다. 이미 적군의 기간트 칠십을 넘게 베었지만, ‘눈의 꽃’ 기사 다섯이 죽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모두가 죽을 판이라 제이슨이 돌아왔다. 그렇게 발이 묶였을 때 기간트들이 점점 압박을 가해왔다. 제이슨도 오러가 바닥나면 아무리 베제트와 함께 한다고 해도 몸을 빼내는 것이 한계인 상황이었다.

    “왜 이리 늦는답니까?”

    제이슨의 말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요새의 성문이 부서지며 기간트들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벡스와 북풍 기사단을 필두로 쏟아져 들어오는 기간트들이 전투에 투입되자 적들의 포위가 느슨해졌다.

    제이슨은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

    “대장.”

    -왜?

    “길 좀 열어주세요. 카틀란의 멱을 따야겠습니다.”

    -좋아. 모든 대원은 들어라.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라. 길을 연다.

    펠릭스의 기간트는 벌써 왼팔이 반파된 상황이었다. 다치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전투에 나서는 펠릭스다웠다. 그가 쓰러트린 적군의 기간트만 해도 나이트급 기간트가 여섯 기나 되었으니까.

    펠릭스는 그런 상황에서도 돌진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었다. 펠릭스가 앞으로 나서며 휘두르는 도끼가 앞을 막아선 적군의 기간트를 쪼갰다.

    그리고 그대로 돌진하며 달려가자 적들도 작전을 눈치챘는지 앞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펠릭스가 다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돌진하니 길이 열리고 있었다. 엘레나가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그런 펠릭스의 등을 밀어주었다.

    제이슨은 그런 펠릭스의 뒤를 따라가며 오러 심법을 운용하며 오러를 회복하고 있었다. 단 한 번. 펠릭스가 만들어주는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제이슨은 최대한 기운을 회복하고 있었다.

    기세 좋게 돌진하던 펠릭스가 막힌 것은 백곰 기사단을 만나면서였다. 그때 나선 것은 듀라한이었다. 워리어급 기간트 수준의 듀라한이었지만, 그들의 기동력은 남달랐다. 몇몇 듀라한이 뛰어오르며 백곰 기사단의 시선을 잡아끈 대가로 조각나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때 길을 보았다.

    백곰 기사단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을 때 열린 단 하나의 길. 그 길을 따라 달린 제이슨은 드디어 카틀란을 볼 수 있었다.

    카틀란은 제이슨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프로즌 오러를 휘둘렀다. 강렬한 냉기가 주위를 뒤덮을 때 제이슨의 왼팔에 감긴 사슬이 빛을 뿜어냈다.

    모든 마법적인 능력을 제압하는 봉인의 사슬이 빛을 뿜어내며 냉기를 죽여 버릴 때 제이슨은 왼팔을 쭉 뻗었다. 상대의 시선을 현혹하려고 사슬을 휘두른 것이었는데 베제트가 나섰는지 사슬은 한 마리 뱀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날아갔다.

    그걸 보고 카틀란이 황급히 검을 들어 올렸을 때 사슬이 검에 칭칭 감겼다. 카틀란이 당기는 힘을 이용해서 제이슨이 도약했다.

    단숨에 둘의 거리가 좁혀지자 카틀란이 이를 뿌득 갈고는 허리를 틀어 올리며 왼손을 휘둘렀다.

    검에 두르지 않아 날카로움은 없지만, 위기 상황에서 펼친 오러 방출은 제이슨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제이슨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오러를 보고 검을 내리그었다.

    넓게 방사되어 날아오던 오러가 그대로 반으로 갈렸고 그 사이로 제이슨이 뛰어들자 카틀란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사슬에 휘감긴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감고 있던 사슬이 느슨하게 풀려서 자세가 흔들리지 않은 제이슨은 날아드는 카틀란의 검을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리고 뻗은 제이슨의 검이 카틀란의 기간트 오른팔 아래를 베었다.

    촤악!

    제이슨의 오러 블레이드가 카틀란의 기간트 오른팔을 반쯤 베어냈을 때 좌우에서 백곰 기사단이 끼어들려고 했다. 그들의 공격은 펠릭스와 엘레나의 바이슨이 막아냈다.

    제이슨은 카틀란을 지나쳐 바닥에 두 발이 닿는 순간 몸을 틀며 사선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카틀란의 기간트도 돌아서고 있었지만, 속도에서 차이가 났다.

    카틀란이 탄 기간트의 오른쪽 무릎을 잘라낸 제이슨은 무너지는 상대를 향해 어깨를 앞으로 내민 채 돌진했다.

    콰앙!

    아무리 베제트가 작은 크기라고는 하나 가지고 있는 코어의 출력량이 많다 보니 그 충격을 받아내지 못했다. 카틀란의 기간트가 뒤로 넘어갈 때 제이슨은 오러 블레이드를 찔러넣었다.

    기간트의 외장갑에는 몇 개나 되는 방어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특히나 기간트 라이더가 타는 가슴 부위에는 특별히 중첩해서 그리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제이슨의 검이 외장갑을 뚫고 들어가 카틀란의 가슴에 박혔다.

    “컥!”

    카틀란은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 때 오러에 둘러싸인 검이 그대로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아무리 오러 유저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오러의 유입이 끊긴 기간트의 작동이 멈추자 외장갑을 뜯어낸 제이슨이 숨이 끊어진 카틀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틀란의 목이 떨어지자 제이슨은 그걸 집어 들고는 소리쳤다.

    “하이젤 총사령관 카틀란이 죽었다!”

    제이슨의 외침에 그를 따라온 돌격대원들이 소리쳤다.

    “하이젤 총사령관 카틀란이 죽었다!”

    요새가 무너지면서 지휘부가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총사령관의 죽음은 적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트렸다. 그래도 저항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 다시 벌어졌다.

    “검은 표범 기사단장 허클러가 죽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트랑 왕국 총사령관 벡스가 벌인 일에 적군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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