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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53화 (54/151)
  • 【53】 대승(1)

    구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상황에서 나타난 듀라한은 사실 검은 표범 기사단에게는 큰 위험이 있는 적은 아니었다.

    듀라한은 워리어급 기간트와 나이트급 기간트 사이의 전력을 지닌 존재였으니까. 문제는 듀라한의 기동력이었다. 해골마를 타고 다니는 듀라한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며 물러나던 병사들의 진형에 뛰어들었다.

    검은 표범 기사단을 제외하고도 기간트들을 소환해서 병사들의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런 워리어급 기간트들을 듀라한이 뛰어넘으면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카틀란이 소리쳤다.

    “흑마법사가 있다! 찾아라!”

    흑마법사. 또는 흑마도공학자. 거의 씨가 말라서 구경하기 힘들다고 알려졌지만, 트랑 왕국의 동부 전선에서 종종 모습을 드러냈었다.

    흑마법을 부린다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쓰는 전법은 의외였다. 듀라한을 잡기 위해서 워리어급 기간트의 사이가 벌어진 틈으로 구울들이 빠져나갔다.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사이에 카틀란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도 기간트를 소환해서 타고 오르며 소리쳤다.

    “그렌달!”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성 밖에서도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숙영지에 6만이나 병력이 있고, 그곳에서 야습으로 흑마법사의 구울이 날뛰기 시작하면 정말 걷잡을 수 없어진다.

    블루 드래곤 용병들도 기간트에 올랐다. 그들이 합류하면서 듀라한들을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시선을 끌었을 때 성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있었다.

    히어로급 기간트인 바이슨이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뛰어내리면서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히어로급 기간트는 워리어급 기간트로 막으려면 피해가 커진다.

    최소 나이트급 기간트 이상이 막아야 했기에 나이트급 기간트들이 나타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구울들을 죽이던 검은 표범 기사단장인 허클러 백작도 그쪽으로 달렸다.

    예상되는 오러 유저의 수는 최소 셋. 카틀란은 히어로급 기간트 세 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여기고 살피는데 호위로 데리고 있는 나이트급 기간트 한 기가 무릎을 꿇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도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벼락처럼 검을 휘둘렀다.

    전력이 크게 뒤지는 트랑 왕국이 노릴 이는 자신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틀란 또한 하이젤 왕국을 이끄는 장군 중 하나로 그 실력 또한 오러 유저. 쉽게 당해줄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그를 호위하는 나이트급 기간트로만 이뤄진 백곰 기사단의 기사들도 방패를 들어 올리며 방비를 굳혔다.

    나이트급 기간트가 갑자기 쓰러진 것도 놀라웠지만, 그들의 반응은 신속했다.

    카틀란이 휘두른 검격이 섬전처럼 대기를 갈라낼 때 백곰 기사단의 기간트 사이로 떨어지는 2미터 정도의 기체가 눈에 들어왔다.

    소형 기간트라고 보기에도 너무 작았다. 마갑을 두른 정도의 크기. 하지만 그 움직임은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오러 유저가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조차 넘어서고 있었다. 또 한 기의 백곰 기사단의 기간트가 쓰러졌을 때 카틀란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에 대해 들은 보고가 떠올랐다. 하얀 여우 기사단을 궤멸시킨 존재.

    자신들이 마법 방어진을 부술 수 있는 신 무기를 개발했듯이 적들도 새로운 마갑을 개발한 것이 아닐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러 유저에 새롭게 개발된 마갑. 기간트보다 작은 만큼 움직임이 예상을 뛰어넘게 빨랐다. 부족한 공격력은 오러 블레이드로 보충하고 속도만을 높인 존재라면 이것만큼 까다로운 자도 없다.

    카틀란은 그래서 뒤로 물러나며 검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쩌저저정!

    카틀란의 오러가 바닥을 강타하는 순간 주위가 꽁꽁 얼기 시작했다. 가공할 냉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카틀란은 뛰어오르는 존재를 보았다.

    백곰 기사단의 기간트를 뛰어넘어 곧장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갑을 입은 상대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때 저 멀리에서 날아드는 매서운 핸드 액스가 있었다.

    기간트가 다루는 핸드 액스는 그 크기가 최소 1미터가 넘어간다. 그렌달이 날려 보낸 핸드 액스가 상대의 등을 노리는 것을 보고 그에 맞춰 냉기를 가득 머금은 프로즌 오러를 휘둘렀다.

    그때 상대가 검을 휘둘렀는데 그 궤적을 따라 오러의 파편이 날아들었다. 냉기로 얼리는 프로즌 오러로 다 막기 힘들 정도로 넓게 퍼져 날라오는 공격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그 반동을 이용해서 허공으로 조금 더 높이 떠올랐고, 그의 발아래로 핸드 액스가 지나갔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길이 막혔고, 그 사이로 백곰 기사단의 기간트들이 다시 늘어섰다.

    총사령관의 목을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잡아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상대의 실력을 보면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잡아 죽여야 했다. 카틀란의 외침에 백곰 기사단과 블루 드래곤 용병단의 기간트들이 몰려들었다.

    야습에서 제이슨의 목표는 카틀란이었다. 붙기만 하면 그를 죽일 자신은 있었다. 기간트를 탔을 때만큼은 마스터 부럽지 않은 경지를 지녔으니까.

    하지만 그의 앞을 막고 선 백곰 기사단에게 들키지 않고 공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걸리지 않고 다가와서 베제트를 소환해 몸에 두르고 뛰어들었다.

    단 한 기의 백곰 기사단의 기간트를 쓰러트리고 접근하려고 했을 때 카틀란이 귀신처럼 그를 파악하고 반응했다. 그리고 백곰 기사단도 악착같이 그를 지키고자 했다.

    그래도 기회를 만들어서 딱 하나의 길을 발견해서 도약했을 때 블루 드래곤 용병단장 그렌달이 던진 핸드 액스가 그를 방해했다.

    제이슨이 오러 레인을 뿌리고 솟구쳐서 공격을 피했지만, 카틀란으로 향하는 길이 다시 막혔다. 백곰 기사단은 카틀란을 지키기 위한 기사단이라 그런지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한 장비들을 하고 있었다.

    두꺼운 방패를 가지고 몸을 가리니 카틀란의 기간트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제이슨은 카틀란을 놓치고 그냥 물러날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잡기 위해 다가오는 그렌달을 노린다.

    제이슨이 백곰 기사단이 아니라 반대로 뒤돌아 그렌달을 향해 달려들자 그가 호기롭게 검을 휘둘렀다. 그렌달의 손에 들린 창에서 냉기의 폭풍이 밀려왔다.

    그렌달은 상대를 느리게 만드는 냉기의 폭풍으로 선공을 취하고 날카로운 창으로 숨통을 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베제트의 성능을 잘 몰랐다.

    베제트는 제이슨의 오러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제이슨의 오러를 흡수해서 얇게 오러를 둘러주었다. 제이슨도 깨달음을 얻었던 것으로 오러를 몸에 두르고 그대로 냉기를 가로질렀다.

    냉기의 폭풍이 무용해졌다고 해도 창의 찌르기는 매서웠다. 제이슨은 그 창이 날아드는 것을 빤히 바라보며 검을 휘둘렀다.

    카카칵.

    검이 창대를 쳐내고 그 사이로 치달렸다. 딱 두 걸음 만에 제이슨은 그렌달의 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이슨의 오러 블레이드가 그렌달이 탄 기간트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오러 유저이자 대륙 3대 용병단의 단장으로서는 고작 일합에 목숨을 잃는 것이 믿을 수 없었겠지만, 승부는 빠르게 났다. 그렌달은 제이슨의 경지도 몰랐고, 냉기 폭풍이 통하지 않을 지도 몰랐다.

    그것으로 승부가 갈렸다.

    제이슨은 그렌달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그대로 달리며 자신을 노리고 달려드는 블루 드래곤 용병단의 나이트급 기간트 세 기를 더 베어내고는 그대로 성벽으로 몸을 빼냈다.

    야습으로 더 이상의 성과를 낼 수는 없었다.

    벡스는 돌아온 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펠릭스. 상처는 어떤가?”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을 정도입니다.”

    검은 표범 기사단장인 허클러와 검은 표범 기사단의 나이트급 기간트에 포위된 상황에서 몸을 빼낸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로크도 무리해서 소환술을 펼친 덕분에 기진맥진해서 당분간 전투에 참여도 못 할 지경이 됐다.

    벡스는 제이슨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그렌달을 죽였다고?”

    “예.”

    제이슨도 며칠간 쉬지 못하고 전투를 치른 덕분에 지쳐 있었다. 오러를 다루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친 것이 아니라 정신이 지쳤다. 군인일 때도 정신이 마모되는 것 같았는데 그만큼이나 처절하게 적들을 베었다.

    기간트를 역소환 시키고 기간트 라이더 백 명씩 두 번이나 쓸어 버릴 때는 도살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야습을 계획했을 때 전쟁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물론 실패했지만.

    벡스는 미소를 지은 채 창밖에 시선을 주었다.

    “오러 유저도 하나 잡았고, 나이트급 기간트 열일곱 기와 워리어급 기간트 219기를 잡은 건가?”

    로크가 탁자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들며 답했다.

    “일반 병사들은 대략 2천 명 이상 줄었어요.”

    적의 전력이 최소 1할 이상 줄었다. 아직도 열세인 것은 사실이나 이 정도 피해를 본 상황에서 눈이 이렇게 쏟아지니 지금 당장 군을 움직이지는 못할 터였다.

    그들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을 테니까.

    제이슨은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다.

    “요새 하나 내준 건 괜찮습니까?”

    “아, 그거 말인가? 그건 그들에게 악몽이 될 거야.”

    벡스가 저런 말을 할 때는 언제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었다. 적군에게.

    “그럼 생각해 둔 것이 있나 보죠.”

    “요새 하나 날려 먹는 것이지만 그 대가가 하이젤 왕국이라면 해 볼 만하지.”

    벡스는 로크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는 말했다.

    “로크가 이번에 개발한 마법을 써먹기로 했지.”

    제이슨은 로크를 돌아보았다. 그가 이번에 개발한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요새 안쪽에다 무슨 짓을 해놓은 것이 틀림 없었다.

    벡스는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일 저녁. 공격을 가한다.”

    회의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고생했으니 쉬고 내일 공격에 가담하라는 말에 제이슨은 배정받은 방으로 이동했다. 침대 위에 앉아 오러 심법을 수련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던 제이슨의 귀로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봉인이 거의 풀렸다.

    제이슨은 엘하르트가 먼저 연결해준 것에 기뻐하며 눈을 떴다.

    “그럼 이제 현신이 가능한 거야?”

    -아니. 봉인을 온전히 풀어야지 현신이 가능할 거야. 그래도 네 오러라면 최대 1분 정도는 현신할 수 있어.

    “고작 1분?”

    에고 기간트 한 기를 소환해서 탑승한다고 해도 고작 1분이라면 차라리 베제트와 함께 싸우는 것이 더 이득이다. 제이슨의 대답을 들은 엘하르트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게 이것 하나는 도움을 줄 수 있겠군.

    제이슨은 왼쪽 손목 위로 나타나는 반투명한 사슬을 보았다. 엘하르트가 사용하던 봉인의 사슬이 실체화되어 제이슨의 왼쪽 팔뚝을 휘감았다.

    “어떻게 한 거야?”

    -내가 현신하지는 못해도 이 정도는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나 이거 못 다루는 것 알잖아.”

    -베제트가 괜히 전투 보조 시스템인줄 알아? 충분히 보조해줄 수 있어. 네가 직접 다루는 것에 미치지 못해도 새로운 무기가 되어줄 거다.

    제이슨은 그 말에 자신의 팔을 두른 쇠사슬을 바라보았다. 손으로 그걸 만져본 제이슨이 씨익 웃었다.

    “그래도 이거 보니까 네가 느껴지는군.”

    -힘드냐?

    제이슨은 침대에 털썩 몸을 눕히고는 말했다.

    “지긋지긋한 전쟁.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요새를 점령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워프 게이트의 장악이다. 워프 게이트를 장악해서 아군과 연결하면 그곳을 통해서 지원을 받는 것이 기본이었다.

    요새를 무너트리지 않고 점령했기에 하이젤 왕국군 소속 마도공학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도 워프 게이트 장악이었다. 트랑 왕국에서 쓰는 고유 마법진을 파훼하고 그 자리에 하이젤 왕국 고유 마법진을 그리는 것만으로 적들은 워프 게이트를 쓰지 못한다.

    워프 게이트를 장악하고 그곳을 지키는 것은 마도공학자와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워프 게이트는 요새의 지하에 있는 것이라 이곳을 장악한 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았다. 빼앗길 염려는 없는 곳이니까.

    당연히 그들은 워프 게이트 쪽보다는 외부의 침입자에 대비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래서 워프 게이트 위에서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며 떨어지는 물건을 파악하는 것이 늦었다. 워프 게이트가 가동한 것도 아니었고 그 위에 공간이 열리고 떨어진 다섯 개의 마나 폭탄이 바닥에 닿는 순간 가공할 폭발을 일으켰다.

    쿠콰콰콰쾅!

    요새 지하의 워프 게이트가 박살 나며 일어난 폭발의 충격에 요새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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