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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52화 (53/151)

【52】 어그러진 계획(2)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안색은 굳어져 있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벡스가 입을 열었다.

“카틀란. 미친놈이 성격이 하나도 안 변했네.”

“그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제이슨의 물음에 벡스는 담담히 대꾸했다.

“예전에 함께 전장에 선 적이 있었지. 그때도 직감적으로 움직이는데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작전을 펼치고는 했거든. 그런데 이 미친놈 우리 실정을 정확히 알았네.”

전장의 양상은 기간트들 간의 전투로 많이 변했다. 하지만 성을 점령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그곳을 지키는 병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쪽은 아직 기간트도 다 모으지 못했다. 귀족들에게 기간트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전쟁에 얼만큼의 승산이 있는지, 얼마나 내줘야 자신들의 피해가 가장 적으면서도 줄을 잘 잡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재보느라 병력이 다 모이지도 않았다.

중앙군에 있는 기간트들과 북부 전선에 있는 기간트들을 다 모아도 병력의 열세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왕국 내에서 귀족들을 족쳐서 기간트들을 끌어모을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들어 곧장 국경을 넘었다.

적들이 진군해오는 지금. 전선의 열세를 어떻게든 만회해야 하는데 기사단 하나 무너트렸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벡스가 아울을 돌아보았다.

“지금 모인 적의 기간트는 어느 정도나 되나?”

“하이젤 총사령관 카틀란과 검은 표범 기사단장 허클러 백작이 히어로급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고, 그들이 고용한 블루 드래곤 용병단장이 히어로급 기간트를 가지고 있어 총 히어로급 기간트 3기와 나이트급 기간트는 102기, 워리어급 기간트 2,000기 내외로 추정됩니다.”

“미치겠군. 공식적인 거지?”

“예. 비공식적으로 하이젤 왕국이 보유한 히어로급 기간트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이쪽은 저희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요.”

각 왕국에서 비밀리에 키우는 자들은 잘 밝혀지지 않는다. 동부 전선에서 ‘미친 들소’는 워낙 깽판을 치고 다녀서 알려져서 그렇지 다른 왕국들은 그렇게 비밀리에 키운 이들을 잘 풀어놓지 않는다.

그러니 비공식적인 히어로급 기간트는 몇 기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우리 쪽은?”

“히어로급 기간트는 총사령관님과 펠릭스, 제이슨 백작과 저까지 포함해서 4기이고, 나이트급 기간트는 도합 58기, 워리어급 기간트는 852기 등록되었습니다.”

“거의 두 배가 넘는 전력 차이로군. 지원군 편성은 어떻게 되고 있지?”

“귀족들이 연합해서 눈치를 보는 중이라 아직 명확히 일정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국왕 전하께서 노발대발하고 계시다고 하시더군요.”

“노발대발이 문제가 아니야. 이 귀족 새끼들이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다가 북부 전선이 뚫리게 생겼는데.”

군량을 태우고 적들 요새의 워프 게이트 하나를 부쉈다. 군량이 부족하니 아예 이쪽 성을 모조리 밀어버리겠다는 결심을 한 거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이길 방법이 없다. 이 정도 물량전으로 갔을 때는 히어로급 기간트 한두 기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워리어급 기간트가 두 배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는.

“좋아. 수가 적다고 포기할 생각이었다면 이쪽으로 오지도 않았다.”

벡스가 제이슨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제이슨. 네 공은 인정한다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제대로 전쟁이 시작되게 됐으니 조금만 더 도와다오.”

제이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차피 이대로 왕국이 망하는 꼴 볼 마음도 없으니까.”

“좋아. 전선을 어디서 형성할지 고민해보자고.”

그들의 앞에 입체 지도가 펼쳐졌다. 물밀 듯 밀려 내려오는 적들을 막아야 한다. 모인 이들의 표정 모두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이만큼 불리한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트랑 왕국의 북부 전선에는 시시때때로 눈이 내린다. 전쟁을 선포한 지금도 겨울이라 그런지 눈이 내리고 있어 진군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카틀란은 자신의 직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눈 때문에 진군은 힘들지언정 적들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북부 전선으로 이제 트랑 왕국 총사령관이 된 벡스가 왔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가 총사령관이 됐다고 해도 부족한 병력을 채울 수는 없었다.

어지간히 병력 차이가 나야지 승부가 될 터.

카틀란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트랑 왕국의 북부 전선의 요새 폴른을 바라보았다.

“준비 됐나?”

10만의 대군 중 본대인 이곳에는 8만의 병력과 나이트급 기간트 72기, 워리어급 기간트 1,500기가 있었다.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지만, 이곳이 주력부대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 북부 전선을 장악할 생각이었다.

카틀란은 폴른 요새를 눈에 담고 있다가 손짓했다.

“우선 저 요새부터 내게 가져와라.”

카틀란의 손짓에 명령이 전해졌고 워리어급 기간트들이 일어나 요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워리어급 기간트 100기가 만들어 내는 굉음이 울렸다. 저들이 요새를 둥글게 포위하고 손에 들린 투창을 던졌다. 투창은 길이만 3미터에 달하는 것이었는데 워리어급 기간트들은 능숙하게 투창을 던졌다.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투창이 요새의 주위에 꽂히자 마법 방어진이 반응했다.

파지지직.

마법 방어진이 반응하는가 싶더니 곧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개의 투창이 폭발하는 순간 요새의 마법 방어진이 사라졌다.

하이젤 왕국에서 그간 개발했던 최신 마법 방어진 무력화 무기가 성공적으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전쟁의 양상을 다르게 할 무기.

요새 하나에는 100개면 되지만 성의 마법 방어진의 수준에 따라서 최대 수백 개까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최신 무기를 시험하기 위하기도 했던 것. 원래 계획대로라면 쉬안 왕자를 통해서 트랑 왕국을 손에 넣었어야 했는데 계획이 틀어졌으니 시험장으로 쓰기 딱 좋았다.

요새의 마법 방어진이 무효화 된다면 수성은 의미가 없다.

그때부터는 압도적인 수로 밀어붙일 뿐이다.

100기의 워리어급 기간트가 무기를 뽑아 들고 요새를 향해 돌진했다. 그런데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요새의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기간트들을 바라보던 카틀란은 요새의 깃발이 바뀌길 기다렸는데 깃발이 바뀌지 않았다.

“뭐지?”

인상을 굳힌 카틀란은 다시 손짓했다. 100기의 워리어급 기간트가 다시 요새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카틀란은 이번에도 한참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뭔가 잘못됐다.

카틀란의 시선이 옆에 선 사내를 향했다. 푸른 머리를 뒤로 넘겨 묶은 사내는 카틀란의 시선에 물었다.

“제가 나서라는 겁니까?”

“부탁하지. 놈들이 뭔가 준비한 것 같으니까.”

“그러죠. 비싼 돈값은 해야 하니까.”

블루 드래곤 용병단장 그렌달이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준비해라.”

전쟁 용병단이자 대륙 3대 용병단 중 하나인 블루 드래곤 용병단이 앞으로 나섰다. 워리어급 기간트 200기를 집어삼킨 요새를 향해 블루 드래곤 용병단이 나섰다.

그렌달이 휘하 용병단원 모두 기간트를 소환한 채 요새를 향해 걸어갔다. 그렌달은 요새에 가서는 그 안을 살피고는 인상을 굳혔다.

그곳에는 이백 명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워리어급 기간트가 아니라 오로지 시신만 남아있는 곳을 돌아보던 그렌달이 인상을 굳혔다. 주위에는 기간트 대전을 벌인 흔적이 없었다.

그렌달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레보. 확인해 봐라.”

나이트급 기간트 한 기가 역소환되고 그곳에서 나온 초록 머리의 사내가 땅에 손바닥을 올리더니 땅의 정령 놈을 소환해서 주변을 살피더니 인상을 굳혔다.

“상대편에 정령사가 있나 봅니다. 읽히지 않습니다.”

“귀찮게 됐네. 그럼 적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 거야?”

“예.”

그렌달이 굳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샅샅이 조사해라.”

“예.”

블루 드래곤 용병단원들 중 기간트 두 기와 조사를 하는 이들 둘씩 조를 짜서 요새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샅샅이 조사했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다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기간트를 역소환 당한 채 죽었다. 죽인 흔적은 검과 도끼, 단검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최소 세 명 이상의 적이 있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렌달은 이미 적이 빠져나갔음을 확인했다. 모든 탐색 장비에도 걸리지 않은 것을 보면 상대는 이곳에서 기간트 라이더 200명을 쓰러트리고는 사라졌다.

고작 2분. 셋이서 이만한 인원을 그 짧은 시간에 죽였다는 것은 그들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졌다는 얘기다. 그것만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였다.

큰 피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요새 하나를 점령하는데 그 정도라면 이해할만한 수준이었다.

“돌아가자.”

그렌달의 보고를 들은 카틀란은 굳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 요새를 바라보았다. 고작 셋이서 그만한 일을 벌였다면 최소 오러 유저라는 얘기였다.

요새를 내주기는 해도 그냥 내놓지는 않았다. 블루 드래곤 용병단을 보내지 않고 계속 워리어급 기간트를 보냈다면 얼마나 더 죽어 나갔을지 몰랐다.

“대단한 녀석들이군. 그들은 몸을 빼낸 건가?”

“어디에도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카틀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아. 요새로 진입한다. 마도공학자들을 먼저 보내서 요새의 통제권을 가지고 오도록.”

“예.”

명령을 받은 이들이 물러나자 카틀란의 시선이 그렌달을 향했다.

“블루 드래곤 용병단은 요새의 경비를 신경 써주게. 자네들 정도나 되어야 막을 수 있을 것 같군.”

“그러죠.”

“부탁하지.”

카틀란은 그리 말하고는 요새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적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식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200이나 되는 워리어급 기간트 라이더를 잃은 것은 꽤 큰 손해였다.

“약은 수를 쓰는군. 벡스.”

요새를 점령하고 그 외부에 8만에 달하는 병력이 야영을 준비했다. 계속해서 눈이 내리니 이곳에서 얼마간 지내야만 했다.

요새에 머물 수 있는 인원은 최대 2만. 6만에 달하는 병력은 외부에 숙영지를 조성했다. 카틀란은 요새의 회의실에 앉아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했나?”

“우선 구덩이를 파고 묻었습니다.”

“그들의 신원 파악은 끝났지?”

“예. 모두 파악이 완료됐습니다.”

카틀란은 테이블에 펼쳐 놓은 입체 모형 지도를 내려다보며 작전에 관해 설명하려고 할 때 병사 하나가 달려와 보고했다.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란이냐?”

“오늘 이곳에서 죽었던 200명의 기간트 라이더들이 되살아났습니다.”

“뭐?”

카틀란이 인상을 굳힌 채 밖으로 나왔을 때 밖에서는 소란이 일고 있었다. 죽은 기간트 라이더들이 파묻혔던 구덩이에서 기어 나와 병사들을 공격했고, 병사들 또한 구울로 변하고 있었다.

급속도로 번지는 죽음의 기운에 카틀란이 인상을 굳혔다.

“병사들은 물러나라! 검은 표범 기사단은 구울들을 처리해라!”

병사들이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그곳으로 허클러 백작의 검은 표범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간트에 탑승한 그들 앞에 구울따위는 걸리적거릴 것이 없었다.

지금 죽은 이들도 일반 병사들. 그 수가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기간트들이 구울들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요새 안에서 전투를 벌일 때 요새의 성벽의 보초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성벽의 보초를 죽인 자리에서 제이슨이 뒤를 돌아보았다.

“너까지 불러올 줄은 몰랐다.”

“저 아직 군 생활 많이 남았어요.”

로크가 씨익 웃어 보였고, 그 옆에 선 펠릭스와 엘레나, 아울을 비롯한 블랙 아울의 침투 요원들이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시작할게요.”

로크가 양손을 구울들이 쏟아져 나온 구덩이를 향해 내밀고는 눈을 감았다.

드드드드.

구울들이 쏟아져 나온 구덩이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존재가 있었다. 4미터에 달하는 듀라한 일곱이 해골마를 타고 나타나자 제이슨이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워리어급 기간트에 비견되는 듀라한을 일곱 기나 소환한 로크가 휘청였다.

그런 로크를 부축해준 엘레나를 바라보던 제이슨이 다른 일행들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그럼 야습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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