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51화 (52/151)
  • 【51】 어그러진 계획(1)

    전신을 관통하는 기묘한 감각.

    그 감각에 몸을 맡기고, 달려나가는 제이슨의 앞으로 기간트를 소환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여우 기사단의 나이트급 기간트 돌루프 12기가 워프 게이트 앞에 나타났다.

    새하얗게 도색한 6미터에 달하는 거체의 기간트 12기와 그들의 뒤로 워리어급 기간트 24기가 나타나 이루는 벽을 보고 제이슨은 혀를 내둘렀다.

    이 인간들 이렇게 방비가 잘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짧은 시간에 모두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만만히 볼 수 없었다. 제대로 훈련된 자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달려들면서도 제이슨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히어로급 기간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정도 수라면 이미 싸워봤다.

    고대 골렘들과 함께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뒤에는 고대 골렘보다 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이가 있었다. 이미 작전은 전면전이 되어 버렸다.

    하얀 여우 기사단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뒤로 다른 기간트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쪽으로 시선이 쏠린 만큼 군량 창고 쪽으로 인원이 적게 몰린다.

    제이슨이 한 걸음을 더 성큼 내딛는 순간 워리어급 기간트들이 먼저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이 가진 투창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검을 휘둘렀다.

    달리면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투창 두 개를 옆으로 튕겨낸 제이슨이 간격을 줄이고 들어가자 나이트급 기간트 돌루프들이 뽑아 든 검이 날아들었다.

    카칵!

    베제트만 두른 제이슨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검들이 날아들었는데 제이슨은 그 검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바닥을 차고 올라 날아드는 검을 발아래로 흘리고는 검면을 밟고 다른 검을 차고 뛰어오른 제이슨의 검이 그려낸 궤적이 돌루프의 가슴을 갈라냈다.

    좌우에서 검이 날아들 때 제이슨은 이미 돌루프의 머리를 차고 허공에서 뛰어오른 뒤였다. 날아드는 검이 허리를 베어 오기에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검을 흘려낸 제이슨의 검이 그 손목을 잘라냈다.

    잘린 손목을 잡아당기며 품으로 파고들어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검이 들어가는 순간에만 오러를 두르는 것으로 최대한 힘을 아꼈다.

    마나 폭탄을 이용해서 워프 게이트를 부숴야 했는데 적이 이렇게 진을 친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려고 레이나를 안에까지 집어넣어 주다가 적들이 몰려오게 생겼다.

    제이슨은 두 기의 기간트를 쓰러트리고는 곧장 워프 게이트로 향하는 길을 그려냈다. 돌루프의 어깨를 밟고 날아드는 검면을 박차 반대편 돌루프의 얼굴에 처박히게 하고는 힘껏 도약했다.

    발끝 아래로 지나가는 검들을 피해 허공에서 크게 선회한 제이슨이 검에 오러를 잔뜩 몰아넣었다. 검에 단단히 맺힌 오러 블레이드를 제이슨은 워프 게이트가 있는 건물의 벽을 베었다.

    마법 방어진이 반발했지만, 그것마저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제이슨은 워프 게이트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이미 저들은 연락을 취했고, 사방에서 지원군이 몰려오는가 보다.

    하지만 그렇게 놔둘 마음은 없었다.

    제이슨은 워프 게이트 마법진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내리쳤다. 워프 게이트 같은 고급 마법진은 외부의 충격에도 강하지만, 제이슨의 오러 블레이드는 예전과 달랐다.

    콰콰쾅!

    워프 마법진의 보호 방벽을 그대로 가르고 들어간 오러 블레이드가 강타하자 워프 마법진에 들어오던 빛이 깜빡이면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제이슨은 연달아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러 워프 마법진을 박살 냈다. 마나 폭탄으로 완전히 날려버리지는 못했지만, 이거 수리하려면 며칠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제이슨이 워프 게이트를 박살 냈을 때 무너진 벽을 뚫고 새하얀 돌루프들이 검을 들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도 워프 게이트가 박살 난 것을 보고는 경악했다.

    “죽여라!”

    워프 게이트가 부서진 순간 그들의 눈이 뒤집혔다. 제이슨은 그들이 펼치는 파상 공세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목적을 이뤘다고 하나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펠릭스가 히어로급 기간트를 탄 오러 유저고, 엘레나도 나이트급 기간트를 타지만 정령의 도움을 얻는 그녀는 충분히 강하다.

    그래도 한 개 기사단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제이슨은 마음껏 날뛰기로 했다. 엘하르트를 소환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도 베제트와 함께 하는 지금 그는 강했다.

    워프 게이트를 박살 내느라 많은 양의 오러를 썼지만, 기간트를 탄 채로 싸울 때는 격이 달라진다. 오러 유저조차 눈 아래로 보는 제이슨이 폭풍의 핵이 되었다.

    워프 게이트 쪽으로 몰리는 수많은 기간트와 병사들. 그렇다고 군량 창고를 지키는 이들이 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성에 대기 중이던 기사들. 그들도 상황이 심각한 것을 보고는 만약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그림자 사이로 불쑥 올라온 이가 있었다.

    검은 전신 슈트를 입은 아울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기사 하나의 목을 베었다. 어찌나 기척도 없었는지 가까운 곳에 있던 다른 기사도 못 느낄 정도였다.

    워프 게이트 쪽에서 일어나는 소음이 워낙 크기도 했다. 그렇게 세 명의 기사들을 죽였을 때야 기사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기간트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때 군량 창고 안쪽에서 동시에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기간트가 남긴 흔적도 녹이는 독무가 하나도 아니고 동시에 수십 개가 터진 것은 아울이 외부에서 기사들을 죽일 동안 침투한 요원이 이뤄낸 성과였다.

    기간트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을 때 아울이 빠르게 통신을 보냈다.

    -흩어져서 복귀한다.

    아울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간트들이 무기를 휘둘렀지만, 도망만 치려고 한다면 오러 유저가 얼마든지 도망을 칠 수 있다. 기간트를 소환하면 오히려 일이 더 복잡해질 터라 아울은 맨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떨어져 내리는 무기들 사이로 몸을 피하는 아울에게 기간트들의 시선이 집중된 사이에 요원과 함께 온 기사들이 몸을 빼냈다. 아울도 그걸 보고는 흘끔 하얀 여우 기사단과 미친 들소가 싸우고 있는 곳을 흘끔 보았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얀 여우 기사단이 나섰을 때 발각된 것을 보았을 때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걱정만 했다. 그래서 최대한 작업을 빨리 마치고 몸을 빼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어째 하얀 여우 기사단의 기간트가 빠르게 줄고 있었다. 나이트급 기간트는 고작 2기. 워리어급 기간트는 이제 8기밖에 안 남았다.

    저 정도만 남았다면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아울은 안심하고는 이미 몸을 빼낸 이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신이 끌어준 시간 동안 아군도 모두 몸을 빼냈다. 그러니 이제 자신도 몸을 빼내면 되리라.

    “살아남아라.”

    작게 중얼거린 아울이 연막탄을 터트리고는 그대로 몸을 빼냈다.

    쿠웅!

    하얀 여우 기사단의 마지막 기간트가 쓰러졌을 때 제이슨은 그 중앙에 서서 검을 비스듬히 내린 채 호흡을 길게 내뿜었다. 사실 워프 게이트를 부술 때 워낙 많은 오러를 써서 오러 홀이 빈 상태였다.

    그 뒤로도 하얀 여우 기사단의 7할에 가까운 수를 홀로 베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제이슨이 주위를 둘러보자 그들 주위로 요새의 기간트들이 서 있었는데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고작 세 기의 기간트로 나이트급 기간트 12기와 워리어급 기간트 24기를 쓰러트렸다.

    그러니 감히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겠지. 지금 당장은 이쪽도 서 있기 힘들 지경이지만, 두 발로 당당히 서 있으니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것이리라.

    저들의 처지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덤벼들자니 죽을 것 같으리라. 하얀 여우 기사단에 비하면 요새 수비대의 수준은 뻔하니까.

    게다가 이쪽에는 떡 하니 히어로급 기간트가 서 있었다. 몇몇 부위에 상처가 있지만, 그런 것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이해했으리라.

    워낙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격하게 싸우는지라 지금 그의 몸 여기저기 상처가 남아있었지만, 확실히 범접하기 힘들었다.

    제이슨은 너부러진 기간트들을 회수했다. 적들이 빤히 바라보는 가운데 기간트들을 회수하는 모습에도 그들은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다가오지 못했다.

    회수하지 않으면 어차피 적의 전력이 될 테니 이런 건 회수하는 것이 맞다. 결코, 전공이 탐나서가 아니다.

    제이슨이 기간트를 회수하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는지 펠릭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참 너다. 안 가냐?

    “그냥 문으로 걸어나가도 못 건드릴 것 같은데요?”

    -미쳤냐? 워프 게이트 망가졌으니 저쪽도 난리 났을 텐데.

    “알았어요. 그래도 따라와 봐요.”

    제이슨은 검을 회수하고 당당히 걷기 시작했다. 성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요새 수비대는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그리고 슬금슬금 옆으로 피했다.

    아무리 공주의 복수를 천명했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 차이를 보였는데 감히 나서지 못했다. 지금은 덤벼 들어봐야 죽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그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그 길을 걸어간 제이슨은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시간을 끌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제이슨의 검에 맺히는 찬란한 오러 블레이드. 검이 작아져서 그런지 마스터들이 보여주는 오러 블레이드를 흉내 낼 수 있었다.

    제이슨은 그 오러 블레이드를 있는 힘껏 성문을 향해 내리쳤다.

    꽈앙!

    성문은 외벽에서 가하는 공격에 대한 방어 마법진은 상당하지만, 내부에서는 그 충격에 대한 방어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제이슨도 지친 몸으로 공격을 가할 자신이 있었고.

    성문이 박살 났고 그 사이로 제이슨이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펠릭스와 엘레나, 레이나도 당당히 걸어 나왔다. 밖으로 완전히 나온 제이슨은 베제트를 해제하고 코어 카트를 꺼냈다.

    펠릭스와 엘레나도 기간트를 역소환하고 코어 카트를 꺼내 그 위에 올랐다.

    제이슨을 따라 약속 장소로 이동한 그들은 모두 코어 카트에서 내리고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솔직히 위험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도 작전은 성공했다.

    펠릭스가 제이슨의 어깨를 팡 두드렸다.

    “네 덕분이다.”

    “저 비싼 몸입니다.”

    “비싸도 돼. 이만큼이나 했으니까.”

    오랜만에 펠릭스의 칭찬이었지만, 제이슨은 개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모두 무사했다는 것이었으니까.

    아울이 때맞춰 말했다.

    “준비 끝났어. 돌아가지.”

    아울이 준비해 놓은 마법진이 빛을 발하자 모두 그 위로 올라섰다. 빛과 함께 그들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콰앙!

    하이젤 총사령관 카틀란의 주먹에 탁자가 반으로 쪼개졌다. 카틀란의 차가운 시선이 좌중을 훑었다.

    “군량 창고가 녹아내리고, 하얀 여우 기사단 전멸. 워프 게이트 손상. 이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보고 한 건가?”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대답을 못 했다. 그들도 그 보고를 믿기 힘들었으니까. 국경 요새의 방비를 위해 들인 돈이 얼마인데 이곳을 뚫고 들어와 군량 창고에 독을 풀어서 녹아내렸고, 하얀 여우 기사단이 전멸했다.

    전쟁 중이라고 하나 이렇게 과감하게 손을 쓸 줄은 몰랐다.

    카틀란이 부서진 책상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들이 왜 이런 무모한 작전을 펼쳤다고 생각하나?”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카틀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지? 그런 거지?”

    카틀란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준비해. 한 방 맞았으니 제대로 돌려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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