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50화 (51/151)
  • 【50】 북부 전선(2)

    북부 전선이라고 하면 트랑 왕국 북부의 성 두 개와 국경에 포진해 있는 다섯 개의 성을 일컫는다.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만 3만에 베로스가 아끼던 ‘눈의 꽃’ 기사단과 그들과 다르게 북부 전선을 계속해서 지켜온 ‘북풍’ 기사단이 존재했다.

    트랑 왕국의 오러 유저였던 베로스까지 그곳을 지키고 있었으니 전쟁 억제력이라면 충분했다. 하지만 하이젤 왕국에 베로니카 공주의 목과 플린트의 목을 비롯해 푸른 늑대 기사단의 기사들의 목을 잘라 보냈다. 푸른 늑대 기사단 단 한 명만 살려서 보냈으니 하이젤 왕국은 뒤집혔다.

    게다가 카이트 국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당하게 전쟁 선포를 했고 그에 하이젤 왕국은 가용 가능한 전 병력을 국경으로 보냈다. 중앙군 5만에 국경 주둔군 3만. 귀족들에게서 뽑아낸 병력 2만까지 더해서 10만에 달하는 병력.

    하이젤 왕국에서 이름난 다섯 개 기사단 전원이 모였고, 귀족들에게서도 기간트를 협조받았다. 그들은 베로니카 공주의 복수를 천명했다.

    트랑 왕국의 전쟁 선포에 하이젤 왕국의 국왕 리차드는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는 듯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전쟁 선포는 트랑 왕국이 했는데 준비는 하이젤 왕국이 더 빨랐다. 그래서 아직 북부 전선은 제대로 방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 오라고 한 겁니까?”

    제이슨이 황당하다는 듯 회의실에 모인 이들을 돌아보았다. 벡스 장군과 펠릭스, 그리고 올빼미 가면을 쓴 여인은 아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백발의 중후한 인상의 사내와 푸른 빛의 단발머리 여인이었다.

    벡스 장군은 대수롭지 않게 제이슨의 말에 대답했다.

    “북부 전선의 ‘눈의 꽃’ 기사들은 이번에 처형당하는 대신 공으로 과를 덮으라고 했고, ‘북풍’ 기사단은 쓸만한 전력이기는 한데 수가 부족해.”

    “그러니까요.”

    “그래서 네가 필요했다.”

    제이슨은 헛웃음을 흘리고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제이슨이 자리에 앉자 단발머리 여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눈의 꽃’ 기사단장 마릴렌이라고 해요.”

    중후해 보이는 백발의 사내도 팔짱을 풀고는 말했다.

    “‘북풍’ 기사단장 케이요.”

    “제이슨입니다.”

    그들과 인사를 마친 제이슨의 시선이 벡스에게 향했다.

    “총사령관 된 것 축하드립니다.”

    “고맙군.”

    “그런데 저는 왜 부르신 겁니까? 이제 군인도 아닌데.”

    “군인이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아니니 자네에게 이렇게 협조를 구하는 것 아니겠나?”

    전군 총사령관이 호출하고 국왕이 등을 떠밀었다. 제이슨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아시다시피 군인이 아니니 받을 건 받아야겠네요.”

    “골드로 줄까? 성으로 줄까? 아니면 뭘 줄까?”

    제이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제가 달라는 것 다 주실 겁니까?”

    “달라는 것의 가치만큼 굴리면 되니까.”

    제이슨은 픽 웃음을 흘렸다. 원하는 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달라고 하기 전에 확실히 두말할 수 없는 공을 세워야 했다.

    “제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우리 군이 준비될 동안 저들이 전쟁을 시작 못 하게 해야지. 선제 타격이 필요하다.”

    “진심이십니까?”

    전력이 부족한데 적을 공격한다는 것은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전력이 비었을 때 공격당하면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괜찮아. 네가 있잖아.”

    “예?”

    “하이젤 왕국의 제 일 기사단이라는 푸른 늑대 기사단을 홀로 무너트린 네가 있잖아.”

    “그거야 그들이 기간트가 없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죠.”

    벡스가 눈짓하자 아울이 수정구 하나를 테이블에 굴렸다. 테이블의 중앙에 멈춘 수정구에서 영상이 나왔다. 제이슨이 바라보자 벡스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저곳은 하이젤 국경 요새 벨론이다. 첩보에 따르면 지금 그곳에 있는 것은 보급 창고로 저들의 군량 중 3할 가량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리고 하얀 여우 기사단이 지키고 있기도 하고.”

    제이슨은 뺨을 긁적이다가 물었다.

    “설마 그곳을 치러 가자는 건 아니죠?”

    벡스가 씨익 웃었다.

    “역시 너는 눈치가 빨라서 좋다니까.”

    군시절에는 갈구기만 하던 벡스와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위치가 올랐다는 것도 좋지만 이건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국경 요새들은 모두 전선의 성들과 양방향 워프 게이트가 있다는 거 아시죠? 그리고 그건 파괴하기 전에는 방해도 안 되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지금 그곳을 치러 간다고요?”

    “맞아. 그래서 양방향으로 공격할 거다. 워프 게이트를 파괴하는 팀과 군량 창고를 노리는 팀.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적의 진군을 최소 일주일 이상 막을 수 있다.”

    “그거야 그렇지만.”

    성공만 한다면 확실히 적의 발길을 붙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전 자체가 쉽지 않다. 요새에 주둔 중인 기사단이 하얀 여우 기사단이라고 하지만, 주둔 중인 기간트 라이더는 훨씬 많다.

    게다가 전쟁을 선포한 지금 그곳의 경계 태세는 최고 수준이다. 그런 곳을 치러 간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그런 위험한 작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래도 ‘미친 들소’는 침투 작전에 투입된 적은 많지 않았다. 매복이나 우회 돌격은 많았어도.

    제이슨은 인상을 굳힌 채 말했다.

    “잘못하면 그곳에서 발이 묶여서 다 죽을 수도 있어요.”

    벡스는 테이블에 두 손을 올리고 영상에 나오는 벨론 성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최정예로 꾸릴 생각이다.”

    벡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도와다오.”

    제이슨은 쓴웃음을 지었다. 위험한 것은 알지만, 자신의 실력이면 도망은 칠 수 있다. 무엇보다 안 되면 로크가 있는 곳으로 도망치면 되니까.

    어떤 방해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탈출 방법이 있다면 위험도는 크게 낮아진다. 그리고 자신이 안 가면 그만큼 더 위험해진다.

    “도와드리죠. 그리고 일의 위험도를 보건대, 성공하면 저 비싼 걸 받을 겁니다. 정말 상상도 못 하실 거로.”

    “상상은 했고?”

    “물론이죠.”

    제이슨이 씨익 웃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벡스도 미소를 지었다.

    우우웅.

    단방향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하기 위해 침투한 요원은 아울이었다. 오러 유저나 되는 이를 고작 마법진 좌표를 잡는 데 썼다는 것이 벡스의 파격적인 인사였다.

    마법진을 이용해서 두 번에 걸쳐 온 인원은 열 명.

    제이슨은 자신과 함께 온 이들을 보았다. 레이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제이슨에게 물었다.

    “그런데 미남 오빠는 어딨어?”

    “찾지 마. 오늘은 없어.”

    “아쉽네.”

    엘하르트의 실력을 아는 레이나가 손을 비비더니 말했다.

    “오늘도 잘 부탁해요.”

    제이슨은 자신과 팀을 이룬 이들을 바라보았다. 최정예로 뽑은 이들. 제이슨은 펠릭스와 엘레나, 레이나와 함께 워프 게이트를 공격하기로 했다.

    워프 게이트까지 무사히 잠입하기만 한다면 그걸 부수는 것은 레이나가 할 일이다. 그녀가 가진 마나 폭탄으로 터트리면 되니까.

    그동안 그녀를 지켜주면 된다. 아마 그곳이 공격당한 것을 알게 되면 하얀 여우 기사단 전원이 달려들 터였다.

    이미 레드 드래곤 기사단을 홀로 박살 낸 경험이 있는 제이슨은 워프 게이트를 타고 다른 이들이 넘어오기 전에만 처리하면 된다고 여겼다.

    군량 창고를 부수는 것은 아울과 블랙 아울의 침투 요원. 그리고 ‘눈의 꽃’ 기사단장 마릴렌과 기사 셋이 왔다. 군량 창고 쪽은 아울이 오러 유저인데다가 워프 게이트를 선제공격할 거라 위험도가 떨어진다.

    아울이 시계를 꺼내 들고는 말했다.

    “현재 시각 11:00. 앞으로 한 시간 후 ‘미친 들소’는 벨론 요새의 동쪽으로 진입. 그리고 우리는 정확히 한 시간 오 분 후에 북서쪽으로 진입. 이십 분 후에 동시에 작업에 들어갑니다.”

    펠릭스가 아울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무사히 작전을 마치면 내가 한 잔 사지.”

    “그쪽이 더 위험해. 그러니 특히 조심하고.”

    “하얀 여우는 너희가 만날 테니까.”

    “그깟 여우 새끼가 들소한테 덤빌 수야 있나.”

    간단히 답한 펠릭스가 손을 들어 보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제이슨이 그 뒤를 따라가다가 불쑥 물었다.

    “펠릭스. 혹시 아울이랑 사귀십니까?”

    펠릭스의 손이 번개처럼 날아들었지만, 제이슨은 예전의 제이슨이 아니었다. 슬그머니 한 걸음 걸어서 피하자 펠릭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이슨이 홀로 플린트를 잡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뭐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그의 실력이 뛰어나면 작전 성공률이 그만큼 오르기에 펠릭스는 전방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제이슨의 호기심은 레이나가 풀어줬다.

    “한 팀이나 다름없잖아요.”

    정보는 블랙 아울이 무력은 ‘미친 들소’가 해온 작전이 한둘이었던가? 정분이 날만도 한 일이었다.

    제이슨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펠릭스는 눈을 한 번 부라리고는 말했다.

    “집중해.”

    “그 술. 제가 꼭 사게 해 드리죠.”

    제이슨의 너스레에 펠릭스도 픽 웃고 말았다. 저 멀리 벨론 요새가 눈에 들어왔다. 기간트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서 든든한 성벽에 마법 방어진이 도배되어 있다.

    국경의 요새들은 어지간한 성보다 더 방비가 잘 되어 있다. 제이슨은 그런 벨론 요새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통하겠죠?”

    로크가 만들어 준 공간 왜곡 장치로 요새의 알람 마법을 뚫지 못하면 입장부터가 불가능하다. 그 말을 들은 레이나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랑 지금까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알제리 왕국도 아직 못 막았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펠릭스가 담담히 말했다.

    “동쪽 성벽에서 워프 게이트까지 직선거리가 얼마였지?”

    “500미터 정도였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내가 방벽을 찢는다. 최단 시간으로 돌파해서 워프 게이트를 폭파해.”

    “그렇게 무식하게 진행해도 됩니까?”

    “만약을 상정해야지.”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십 분 남았다. 휴식을 취해라.”

    제이슨은 그 말에 편하게 앉은 채 벨론 요새를 바라보았다. 하이젤 왕국과의 전쟁에 있어서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무너트리기만 해도 전쟁은 늦춰지고, 트랑 왕국의 전력이 모일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십 분은 금방 지나갔고, 펠릭스가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간다.”

    벨론 요새까지는 투명 망토를 두른 채 다가간 후에 성벽 앞에서 장비들을 꺼냈다. 침투는 레이나가 전문이기에 그녀가 공간 왜곡 장비들을 꺼내서는 작동시키자 마법 방어진에 구멍이 났다.

    레이나의 통신 장비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봐요. 통한다니까.

    레이나가 먼저 안으로 진입하자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공간 왜곡으로 뚫은 공간을 지나 요새 안으로 진입했을 때 알람이 울렸다.

    웨에에에엥!

    “이런 미친 새끼들! 바닥 전체에 압력에 반응하는 알람 마법진이 설치되어있어요.”

    압력에 반응하는 알람 마법진 자체가 설치하기도 힘들고 비싸다. 그걸 성벽 근처에 전부 깔아 놓았을 줄은 몰랐다.

    블랙 아울이 알제리 왕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하이젤 왕국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실수도 나왔다.

    펠릭스가 앞으로 튀어나가며 말했다.

    “돌파한다!”

    펠릭스가 앞으로 달려가는 동안 워프 게이트의 앞으로 몰려드는 이들과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슨은 그걸 보고는 검을 뽑아 들고는 말했다.

    “베제트.”

    촤라락!

    베제트가 제이슨의 전신을 꼼꼼히 감쌌다. 제이슨은 베제트를 몸에 두른 채 펠릭스보다 앞으로 튀어나가며 말했다.

    “제가 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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