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49화 (50/151)

【49】 북부 전선(1)

대련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수호검 샤이드 대공은 제이슨의 앞에서 검을 뽑아 든 채 태산처럼 서 있었다.

대륙 전역을 뒤져보면 이름을 알린 오러 유저들은 백 명 내외다. 그 수는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큰 변동은 없었다. 물론 그건 알려진 수였고, 각 왕국이나 제국에서는 은밀히 키운 오러 유저들이 있다.

그 수는 언제나 알려지지 않지만 대략 백 명 정도를 꼽고 있다. 그러니 그들 모두를 합치면 이백 명 내외다.

하지만 대륙에 마스터라고 알려진 이들은 언제나 다섯 명이었다.

에고 기간트를 다룰 수 있는 이들만이 마스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들의 실력 또한 다른 이들과 궤를 달리한다고 했다. 그 까마득한 경지에 오른 이를 처음으로 접했다.

대륙에 고작 다섯 명. 제국에서도 고작 한 명만 있는 마스터다.

그런 수호검이 직접 검을 겨뤄보자고 했으니 수많은 검사는 그것만으로도 감격할 지경이지만, 제이슨은 달랐다.

확실히 수준의 격차가 있는 이들의 지도 대련이라는 것은 언제나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은 기억만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지도 대련을 강제당하고 있었다. 숨을 깊이 고른 제이슨이 천천히 양손검을 들어 가리키자 샤이드 대공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먼저 시작하시게.”

제이슨은 어차피 피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붙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숱하게 엘하르트에게 얻어 맞으면서 실력이 올랐다고 여겼다.

새로운 오러 심법으로 마스터는 못 되었을지언정 대거리를 해볼 만한 수준은 될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제이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땅을 박찼다.

단숨에 거리가 좁혀지고 제이슨의 양손검이 벼락처럼 샤이드 대공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샤이드 대공은 자신이 선수를 양보해도 어지간한 검사들은 자신에게 검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제이슨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에 픽 웃음을 흘린 샤이드 대공이 검을 들어 올렸다.

쩌어엉!

제이슨은 양손검이었고, 돌진에 더해서 전력으로 내리쳤음에도 샤이드 대공은 한 손 검으로 가볍게 그걸 받아냈다. 단 일 검을 나누는 것만으로 상대의 기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만든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검만 휘두르는 것인데도 이리 차이가 난다.

엘하르트와는 다르다.

엘하르트의 공격은 마치 잘 짜인 합과 같았다. 그 공격은 보고도 막아 지지 않는 마치 그렇게 되도록 운명 지어진 것 같은 공격이다.

제이슨이 기간트에 탔을 때는 흉내 낼 수 있는 경지.

하지만 지금 보여주는 샤이드 대공의 검은 그것과 다르다. 엘하르트에 비하면 떨어져 보이나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그 끝에 선 검이다. 빠르고, 단단했다.

제이슨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한 호흡에 검을 뿌리기 시작했다. 폭발적인 오러 심법에서 나오는 연환격. 그렇게 뿌리는 검격을 받아낸 샤이드 대공이 슬쩍 한발을 내디디며 검을 쳐냈다.

처음으로 그가 펼친 반격. 딱 호흡이 끊어져 연환격이 멈칫하는 순간이었다. 어찌나 호흡을 이리도 잘 파고 드는지.

꽝!

제이슨이 뒤로 주룩 밀려나자 그 모습을 보면서 샤이드 대공이 드물게 웃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와 검을 뿌리기 시작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거센 공격 앞에서 제이슨은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야 했다. 일격을 교환할 때마다 손아귀가 저릿거리고 팔이 찌르르 울렸다.

한손검으로 오러 조차 싣지 않았는데도 이리 강맹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다섯 번만 더 검을 나누면 검을 쥐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샤이드 대공의 공격이 멎었다. 그는 천천히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검을 거두었다.

“잘 보았네.”

덜덜 떨리는 팔을 숨기기 위해서 양손검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는 주먹을 쥐었다.

“확인은 다 되셨습니까?”

“어째서 알려지지 않은 것인가? 오러 유저들이 많다고 하나 줄을 세워보면 적어도 스물 안에는 들겠거늘.”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벡스와도 해볼 만하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나 보다.

“과찬이십니다.”

“잠깐 시간이 괜찮겠나?”

제이슨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 깊었지만, 그렇기에 시간이 있었다. 지금 당장 트랑 왕국으로 돌아갈 것도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샤이드 대공에게 반대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대련도 강제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그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카이트 국왕의 밀사로 와서 황제가 도와주기로 했다지만, 샤이드 대공과 척을 져서도 좋을 것이 없었다.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샤이드 대공이 대련장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석탁과 의자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샤이드 대공이 자리를 권하기에 그곳에 앉으니 샤이드 대공은 품에서 술병을 하나 꺼내 건넸다.

제이슨이 술병을 받아서 놀란 얼굴로 바라보자 샤이드 대공은 또 하나의 술병을 꺼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호검은 황제의 그림자가 아니십니까?”

“오늘은 퇴근했네.”

수호검은 황제의 그림자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니 순 뻥이었나 보다. 가볍게 술병을 들어 올리기에 따라 하니 술병을 부딪친 샤이드 대공이 목젖을 꿀렁이며 시원하게 술을 들이켰다.

제이슨도 그 모습을 보고는 따라서 술을 비웠다. 병에 특별한 마법이 설치된 것인지 시원한 술은 향 또한 좋았다.

지도 대련이었지만 새로운 벽을 본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엘하르트처럼 뜬구름 잡기식이 아니었다. 검술의 오묘함보다는 마스터에 오른 육체적 능력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검술의 경지를 보였다면 아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으리라.

순수하게 자신의 기량만을 보려고 했던 것.

지도 대련치고 얻어맞지 않고 끝난 것도 다행이라 여겼다. 제이슨이 술병을 내려놓자 샤이드 대공이 담담히 말했다.

“조금 무례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군. 그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일국의 밀사로 왔는데 다짜고짜 대련을 신청했으니 분명히 무례하다고 할만한 일이었다. 샤이드 대공은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럴 마음은 없었네. 자네의 수준이 대단하다고 하나 그만한 수준의 검사는 제국 내에도 적어도 다섯은 넘을 테니까.”

오러 유저들 수준에서 스물 안에 들 거라고 하더니 그만한 강자가 다섯은 넘을 거라고 하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마음 같아서는 베제트를 소환해서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솔직히 그렇게 해도 이길 자신은 없었지만.

샤이드 대공은 가만히 제이슨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런 아저씨가 뭐 이리 끈적한 눈으로 바라보는 걸까?

“자네 혹시 에고 기간트를 가지고 있나?”

“예?”

너무 당황해서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샤이드 대공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내 에고가 자네에게 반응하더군.”

엘하르트는 엘렌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걸 알아챘을까?

그 대답은 의외의 곳에서 들려왔다.

[엘메이를 확인했습니다. 공방에서 개발한 네 번째 에고 기간트입니다.]

‘무슨 소리야?’

[저는 프로토 타입의 전투 보조 시스템입니다. 저 이후로 딱 일곱 개의 전투 보조 시스템이 개발되었고, 그 중 엘메이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그럼 널 느꼈다는 건가?’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부르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과 연결되었을 때 엘메이라는 전투 보조 시스템이 파악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대륙에 알려진 다섯 기의 에고 기간트가 전투 보조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 된 셈이었다. 그런데 전투 보조 시스템이 일곱 개라고?

‘지금 대륙에는 다섯 기의 에고 기간트만 나와 있는데?’

[두 기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제이슨은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나머지 두 기도 어디 있는지 아나?’

[제작 자체는 다른 곳에서 했기 때문에 그 위치는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저를 기반으로 전투 보조 시스템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 개체 수만 파악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이슨은 베제트와 대화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바로 앞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샤이드 대공이 있었으니까.

“아닙니다.”

“그런가? 하긴 이 시끄러운 녀석도 자네가 에고 기간트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 않았네. 그저 자네에게서 아련한 느낌이 느껴진다고 했지.”

베제트를 기반으로 전투 보조 시스템들이 개발되었다면 부모와 같은 존재다. 그걸 느꼈다는 걸까?

“신기한 일이군요.”

샤이드 대공은 남은 술을 모조리 비우고는 말없이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바라보던 샤이드 대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많이 뺏었군. 그만 일어나지.”

제이슨도 술을 마저 쭉 비우고는 샤이드 대공을 따라 함께 걸었다. 샤이드 대공은 제이슨에게 더 캐묻지 않았다. 그저 제이슨을 칸트 공작이 기다리고 있는 마차로 데려다줄 뿐이었다.

샤이드 대공은 제이슨이 마차에 오르기 전에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마주 잡자 샤이드 대공은 마지막으로 권했다.

“제국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샤이드 대공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돌아갔다. 마차에 오르니 칸트 공작은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술 마셨나?”

“샤이드 대공께서 주신 술 한잔했습니다.”

“샤이드 대공이 자네를 마음에 들어 했나 보군.”

제이슨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황제 폐하께서도 저를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칸트 공작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제 돌아갈 건가?”

“보고드리러 가야 하니까요.”

“알겠네. 아내가 카이트 국왕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도 있으니 잠시 집에 들렀다 가게.”

어차피 돌아가는 길. 플로렌 공작 부인의 청 하나 들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뒷짐을 지고 있던 펠레드가 창밖으로 떠나가는 칸트 공작의 마차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술 냄새라. 기분이 좋았나 보네.”

“좋았습니다.”

“퇴근하고 내일 보고하러 오지. 뭘 또 왔나?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샤이드 대공은 말없이 펠레드의 뒤에 가서 섰다.

“그래서 에고 기간트를 가지고 있던가?”

“에고 기간트는 아닌 것 같고, 뭔가 다른 걸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고대의 물건으로 보입니다.”

펠레드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탐나는군.”

지금까지 탐나는 물건은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적이 없던 펠레드의 눈이 탐욕스럽게 빛났다.

카이트는 제이슨의 보고를 듣고는 직접 걸어와 그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줬다.

“수고했네.”

제이슨이 카이트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일어나자 그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알제리 왕국에 대한 제국의 압박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들었네. 국경으로 황금 그리폰 기사단을 이동시키고 마법 병단도 이동했다고 하더군.”

펠레드 황제는 생각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어떻게 하루 만에 제국의 삼 대 기사단 중 하나인 황금 그리폰 기사단을 움직이고, 마법 병단까지 움직인 걸까?

카이트는 제이슨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막 돌아왔는데 이런 말 하기 미안하네만, 북부 전선으로 가줄 수 없겠나?”

“북부 전선으로요?”

“전군 총사령관이 자네가 꼭 필요하다고 하더군.”

제이슨이 눈썹을 찡그렸다.

“전군 총사령관이 누군데요?”

“벡스.”

이 인간. 동부전선 사령관에서 전군 총사령관으로 승진했다. 그렇다고 자신을 막 부르면 쓰나? 이제 군인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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