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46화 (47/151)
  • 【46】 압도(2)

    쉬안은 ‘눈의 꽃’ 여기사들 틈에서 전투의 흐름을 보았다.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의 면면은 2개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었지만, 왕궁을 전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병력이었다.

    하지만 베로니카 공주를 구출하기에는 충분한 전력이었다. 원래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돌아가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을 규합하면 왕권을 되찾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알제리 왕국과의 이야기도 잘 됐으니까.

    그걸 알았기에 이곳에서 베로니카 공주를 구해가는 것이 중요했다. 모레아도 이 자리에서 빼내기만 하면 증인이 없으므로 자신에게 국왕 암살 사건에 대한 것을 물을 수 없으리라.

    전투의 진행 상황은 순조로웠다. 벡스가 오러 유저들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강자라고 하지만 수적 열세는 뒤집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인간이 생각 외로 강해서 잠깐 걱정이 앞섰지만, 승기는 넘어오고 있었다.

    벡스는 아직 피해는 안 입었지만, 그와 함께 나선 겁 없던 녀석은 피투성이가 되고 있었으니까. 그때 그의 몸에 마갑이 입혀졌다.

    “뭐야?”

    아티펙트는 인가되지 않은 것은 쓰지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마갑을 입는 이유가 뭘까?

    오러 유저니 방어구만 갖추면 된다고 여긴 걸까? 하지만 그건 너무 쉽게 생각했다.

    왕실 근위 기사들은 아티펙트로 도배를 한 자들이었으니까. 마갑 하나 입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빨리 정리해라.”

    이건 시간 싸움이었기에 쉬안은 기사들을 재촉했다.

    제이슨은 베제트를 몸에 두르고 나서 씨익 웃었다. 투구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제이슨은 충만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기묘한 감각. 이것은 기간트를 이용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감각이었다.

    “베제트.”

    -예. 마스터.

    “보고 싶었다.”

    한마디 말을 하고는 그대로 튀어나갔다. 제이슨이 입은 것은 기간트인데 상대는 모른다. 이런 소형 기간트는 본 적이 없으니까.

    그저 마갑 정도로 생각할 테지만, 이걸 이용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크다.

    플린트가 다시 한번 찌르기를 날렸다. 기간트를 이용하기 전이라면 일일이 쳐내야 했는데 이제는 그사이를 뚫을 길이 보인다. 제이슨의 검이 그 길을 타고 들어갔다.

    “헛!”

    당황하며 황급히 뒤로 몸을 빼내는 플린트는 확실히 검술이 뛰어난 자였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가는 것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스걱.

    단 세 합 만에 플린트의 팔이 떨어졌다. 죽이고자 하면 죽일 수도 있었지만, 벡스는 제압을 명령했다. 그래서 그의 숨은 붙여놨다.

    제이슨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가 그려내는 검의 궤적에 걸린 푸른 늑대 기사들의 팔이 하나둘 잘려나갔다. 그렇게 그들을 모조리 제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가 걷는 걸음 하나하나 휘두르는 검격 하나하나가 상대를 제압하는 최적의 길이었다. 그 검을 보면서 플린트는 잘린 팔을 감싸 쥔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검성이라도 된다는 건가?”

    오러는 확실히 뛰어났으나 그 검술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여겼는데 다시 부딪쳐 보니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다.

    빠르지도 않은 데 그 검을 피할 방법을 못 찾았다. 그만큼 완벽한 검로를 그렸다.

    하이젤 왕국 제 일 검이라는 칭호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제이슨은 이미 푸른 늑대 기사단을 모조리 제압하고는 벡스를 노리는 왕실 근위 기사들을 향해 짓쳐 들어가고 있었다. 푸른 늑대 기사들보다 준수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지만,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이슨의 손속은 왕실 근위 기사들에게는 더욱 잔혹했다. 팔만 자르는 것이 아니고 검이 그려내는 궤적에 걸리면 몸도 머리도 거침없이 잘랐다.

    제이슨의 압도적인 무위 앞에서 베로스는 손이 꼬였고, 벡스에게 제압됐다.

    제이슨은 ‘눈의 꽃’ 기사들의 뒤에 선 쉬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설마하니 하이젤 왕국의 기사들이 이렇게 손쉽게 쓰러질 줄은 몰랐다.

    “무슨···.”

    내로라하는 기사들이 이리도 손쉽게 쓰러질 수도 있는 걸까? 마치 지도 검술을 배우는 것 같다고 여길 만큼 수준 차이가 났다.

    휘두르는 검에 팔을 밀어 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지경이라 쉬안이 인상을 찌푸린 채 부들거리고 있을 때 제이슨이 그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지금 순순히 체포되면 재판을 받을 건데 그게 아니라면 일단 사지 중 하나는 내놓으셔야겠습니다.”

    “재미있는 말이군요.”

    모레아가 베로니카의 목에 단검을 겨눈 채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을 보고 제이슨이 멀뚱히 바라보자 그녀가 독이 묻어있다는 단검으로 손에 상처를 냈다.

    정말로 독이 지독한지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는 핏물이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손에서 쏟아진 핏물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일어서고 있었다. 독을 뿜어내는 포이즌 골렘을 단숨에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아티펙트를 못 쓰는 것은 물론이고 마법도 통제가 되는데 어떻게 그걸 깼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캐리가 입을 열었다.

    “매개체가 된 독이 지독한 거라 조심해야 해요.”

    제이슨은 그 말에 베제트를 불렀다.

    ‘독이 위험해?’

    -상처만 입지 않으면 됩니다.

    “간단하네?”

    제이슨은 눈앞에 선 3미터짜리 포이즌 골렘이 뿜어내는 독기 때문에 물러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거 하나 믿고 도망칠 생각인가 본데 잘못 알았다.

    제이슨은 양손검을 높이 들었고 오러를 일으켰다. 기간트를 탄 채로도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킬 수 있었는데 소형 기간트인 베제트를 이용하는 중이라 지금의 오러 블레이드는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오러 블레이드의 날카로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검을 쓰는 방법. 그것이 중요했다.

    포이즌 골렘이 양팔을 벌리며 사방으로 독을 분사하려는 순간 제이슨의 검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서걱.

    반으로 잘린 포이즌 골렘 사이로 제이슨이 그대로 돌진했다. 베로니카 공주가 실제로 모레아의 편에 서서 일을 벌였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구해주는 것이 맞다.

    심문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나중의 문제. 포이즌 골렘이 폭발하면서 터져 나온 독안개 때문에 누구도 제이슨을 보지 못했다. 전력을 다해서 달린 제이슨이 검을 휘둘렀다.

    스걱.

    베로니카 공주의 목을 겨누고 있던 단검을 쥔 손목이 그대로 잘려나갔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베로니카 공주의 목을 죄고 있던 손목을 꺾어 바닥에 찍어 눌렀다.

    “꺄악!”

    모레아보다 베로니카 공주의 비명이 먼저 들렸다. 얼굴에 피가 튀었으니 아마도 당분간 정신 차리지 못하리라. 제이슨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검을 뻗었다.

    제이슨의 검이 쉬안 왕자의 목에 겨눠지자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모두 무기를 버리게 하라는 뜻이죠.”

    “감히!”

    제이슨은 실수인 척 쉬안 왕자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오러를 두르고 있는 검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목이 베이고 피가 철철 흘러나오자 쉬안이 목을 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감히 왕자인 내게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제이슨은 모레아의 손목을 잡은 채 일어나 쉬안의 어깨를 검면으로 눌렀다. 쉬안이 무릎을 꿇자 제이슨이 차분하게 말했다.

    “무기를 버려라.”

    제이슨의 외침에 ‘눈의 꽃’ 기사들도 무기를 모두 버렸다. 제이슨은 그제야 벡스를 바라보았다. 벡스는 제이슨과 시선이 마주치자 천천히 다가와서는 픽 웃음을 흘렸다.

    “그건 어떻게 된 거냐?”

    “운이 좋았는지 작동하더군요.”

    벡스는 단순히 마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제이슨이 하이젤 왕국 제 일 검을 제압한 것은 물론이고 푸른 늑대 기사단의 기사들까지 모두 제압했다.

    자신이라고 해도 그 정도 신위를 보일 수는 없었다. 실제로 베로스는 제압했지만, 왕실 근위 기사들이 끼어들어서 애를 먹고 있었으니까.

    왕실 근위 기사들까지 모조리 제압한 것은 제이슨이었다.

    그의 놀라운 신위는 자신보다도 윗줄로 놔야 했다. 그때 소란을 들은 이들이 달려왔다.

    왕실 근위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들 앞에서 벡스는 1왕자 카이트의 반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카이트 왕자님의 명령에 따라 국왕 전하 암살 사건의 용의자와 그를 도우려고 한 자들을 체포하는 중이다. 이곳에 있는 모두를 체포해서 구금하라! 심문을 진행하겠다.”

    “예!”

    왕실 근위 기사들은 국왕 전하 암살 사건이라는 말에 눈에 불을 켜고 사람들을 체포했다. 이미 무기를 버린 이들이 하나둘 체포되었다.

    제이슨은 체포되는 이들을 바라보며 베제트를 역소환했다. 왕궁 내에서도 소환이 가능한 기간트. 그 효용성은 놀라웠다.

    “괜찮냐?”

    제이슨은 왕실 근위 기사 뒤를 따라온 펠릭스를 보고는 물었다.

    “어? 여기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알제리 왕국 사절단은요?”

    “지금 그들이 문제가 아니잖아. 어차피 그들은 왕실 근위 기사와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다. 늦지 않게 오려고 서둘렀는데 벌써 끝났다니 의외군.”

    제이슨 일행의 전력은 오러 유저 둘 뿐이라고 해도 되었기에 애를 먹을 줄 알고 알제리 왕국 사절단 감시를 포기하고 달려왔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여기는 저희가 처리할 테니 알제리 왕국 사절단에게 가보세요.”

    “그래. 마무리 잘해라.”

    펠릭스는 무사하니 됐다는 듯 다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캐리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제이슨의 신위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괜찮아요?”

    “예. 괜찮아요. 그보다 하나 청이 있는데 들어주실래요?”

    “뭐든 말하세요.”

    국왕 암살 사건 용의자를 찾은 것은 모두 캐리의 공이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카이트가 뭐든 들어주리라.

    “저 흑마법사의 모든 장비를 갖고 싶어요. 그녀가 연구했던 것까지 얻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내놓을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심문에 참여해도 될까요?”

    “심문에요?”

    “저들이 뭘 두려워할지 아니까요.”

    제이슨은 그 말에 벡스를 돌아보았다. 벡스는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그런 거라면 오히려 부탁하고 싶군. 먼저 심문할 기회를 주겠소.”

    “감사합니다.”

    캐리가 활짝 웃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마나 구속구를 찬 채 끌려가는 모레아를 보았다. 6왕비였던 그녀가 대체 누구의 뜻에 따라 이 일을 벌였을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어쩌면 하이젤 왕국과도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를 일. 그만큼 중요한 심문이었다.

    제이슨은 벡스의 명령에 따라 카이트에게 보고하기 위해 그의 방을 찾아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카이트는 창밖을 보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왕실 근위 기사단의 부단장과 엘레나가 있었다.

    엘레나가 눈인사하기에 그걸 받아준 제이슨은 카이트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국왕 전하 암살 사건의 용의자인 6왕비 모레아를 체포하는 과정에 그녀를 도우려고 한 하이젤 왕국의 베로니카 공주 휘하 푸른 늑대 기사단 전원을 체포했고, 그녀를 도우려고 했던 쉬안 왕자와 베로스 장군 휘하 ‘눈의 꽃’ 기사들을 체포했습니다.”

    카이트는 황당하다는 듯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가 잡아들인 이들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왕실 근위 기사 전원이 나서도 부족할 전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원 구금됐고, 이제 곧 모레아 6왕비의 심문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좋다. 그 자리에는 나도 참석하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제이슨이 한발 물러났을 때 밖에서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제리 왕국의 사절단이 왕자님을 뵙기를 청합니다.”

    “들라 해라.”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톨로프 왕자와 외무 대신. 그들의 호위로 들어오는 네 명의 기사들을 보았을 때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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