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44화 (45/151)

【44】 검시(2)

제이슨이 고개를 숙여 보이자 캐리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카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정관 옆에 서서 아버지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자세히 듣고 싶군.”

“노쇠의 저주를 걸었다면 심장은 검게 물들어 있을 겁니다. 꺼내봐야 한다는 건 그런 뜻이었고, 그렇게 꺼낸 심장은 추적 장치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뒤를 쫓을 수 있습니다.”

카이트는 말없이 아버지의 시신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다. 허락한다.”

“그런데 왕궁 내에서는 인가받지 못한 아티펙트는 쓰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추적에 필요한 건가?”

“예.”

“내가 인가해주겠다. 심장을 꺼내봐라.”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캐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티펙트 없이 심장을 꺼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심장을 꺼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그 말에 카이트가 벡스 장군을 돌아보자 그의 시선이 제이슨을 향했다. 마치 네가 데리고 온 사람의 일이니 네가 책임지라는 것처럼 보였다.

제이슨은 결국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캐리를 보며 물었다.

“심장만 적출하면 됩니까?”

“가능하겠어요?”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끝에 오러를 주입하고는 전대 국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든 것처럼 평안히 누워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제이슨이 결심을 굳히고 가슴을 그어 내렸다.

죽어서 그런지 핏물이 왈칵 쏟아지지는 않았다. 천천히 흘러나오는 핏물을 보던 제이슨은 가슴을 온전히 그어 내리고 좌우로 가슴의 뼈를 잡고 벌렸다.

캐리가 다가와서 그 안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확실히 노쇠의 저주네요. 꺼내주세요.”

제이슨은 심장에 연결된 핏줄들을 잘라내고는 심장을 꺼냈다. 검게 물든 심장을 보고 카이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 감히.”

아버지가 저주에 걸려 죽은 모습을 보고 괜찮을 이는 없었다. 카이트가 어금니를 깨물고는 말했다.

“벡스 장군. 제롬 경을 데리고 오시오.”

벡스 장군이 나가서 궁정 마법사 제롬 경을 데리러 간 사이 캐리는 작은 통을 하나 꺼냈다. 안에 음차원 에너지가 들어있는 통을 꺼내서 그 안에 심장을 넣었다.

캐리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걸 이용하면 찾을 수 있어요.”

카이트는 아버지의 옷을 여며서 심장 부위를 가렸다. 피가 흘러나와 젖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던 카이트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에 문이 열리고 제롬 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안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다가 켈벤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켈벤님?”

“오랜만일세.”

“어쩐 일이십니까?”

말을 하며 고개를 돌리던 제롬은 캐리의 손에 들린 통에 들어있는 심장을 보고는 눈을 부릅뜨고 후다닥 달려와 국왕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새파랗게 질린 그를 보고 카이트가 말했다.

“저 아티펙트만 인가해주면 되네.”

“왕자님. 대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제롬 경.”

카이트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롬 경. 그대가 못 찾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나 아버지는 저주에 걸려 죽었네. 왕궁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몰랐던 책임은 나중에 물을 테니 인가를 하시오. 그래야 범인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오.”

카이트는 제롬 경에게 다가가 한마디 했다.

“진범을 찾지 못하면 내 이 분노는 누가 감당해야 하겠소?”

“바, 바로 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제롬 경이 앞장서자 카이트가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풀어서 벡스 장군에게 건네며 말했다.

“벡스 장군. 이걸 가지고 가면 앞을 막는 이들이 없을 거요. 그 범인을 찾아내는데 막는 자들은 베어도 좋소.”

“그게 누구든 말입니까?”

“누구든. 어떤 새끼든!”

서늘한 눈빛의 카이트가 말했다.

“범인만 내 앞에 데려다 놓으세요.”

“그리하겠습니다.”

제롬 경을 따라 이동한 일행은 왕궁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베로스 장군과 술잔을 기울이던 쉬안은 자신을 찾아온 왕실 근위 기사를 보고는 물었다.

“무슨 일인가?”

“왕궁 마법 통제소에 제롬 경과 벡스 장군을 비롯해 몇 명이 들어왔습니다.”

“마법 통제소에?”

“예.”

쉬안이 인상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베로스 장군이 담담히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지는 알아봐야죠. 뭔가 찜찜한데.”

베로스 장군은 술잔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알제리 왕국과의 교섭은 어떻게 될 것 같냐?”

“아, 그건 벡스 장군의 목으로 10년짜리 평화 협정을 맺을 생각입니다.”

“벡스 그놈의 목이라. 하긴 그만큼 탐날 것도 없기는 하지. 그래서 그놈 목은 어떻게 치려고?”

“다 계획해 두었습니다. 그보다 벡스가 뭐하고 다니는지 한 번 보러 가시겠습니까?”

“직접 가려고?”

“예. 무슨 수작인지 한번 봐야겠네요. 뭔짓을 하는지 알아야 수를 쓸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지. 함께 가세.”

쉬안과 베로스가 밖으로 나가자 그 뒤를 따라 ‘눈의 꽃’ 기사들이 따라붙었다. 쉬안은 일행들을 이끌고 마법 통제소로 향했다.

왕궁 마법 통제소는 왕궁의 지하에 있는데 수십 개의 마법진이 톱니처럼 맞물려 있었다. 이 마법진 하나의 가격은 천만 골드가 넘었다.

히어로급 기간트 열 기를 사고도 남을 골드가 들어야 하는 이 마법진은 마법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마탑에서도 이걸 만들 때는 최고급 마도공학자 팀이 몇 년에 걸쳐서 만들어야 했다.

하나만 잘못돼도 오작동하는 정밀한 마법진.

그 마법진을 보며 캐리도 감탄했다. 현 마도공학의 결정체는 기간트라면 마법진의 정점에 있는 것은 이 마법 통제 마법진이었다.

원하는 아티펙트만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마법진.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왕궁 수호대라고 따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대대로 마법 통제소를 지키는 이들로 그들은 온갖 마법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기간트는 소환하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난장을 피울 이들은 없을 터였다. 대대로 왕궁 수호대의 대장은 오러 유저였으니까. 온갖 마법 장비를 갖추고 있는 오러 유저를 상대로 기간트 없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허튼짓하는 이들은 없었다.

제롬은 캐리가 꺼낸 물건을 바라보며 그들 앞에 놓인 원형 테이블을 향해 손짓했다. 캐리가 그곳에 원통을 올려놓으니 곧 마법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제이슨도 말로만 들었지, 톱니처럼 맞물린 마법진들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원통형 장치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캐리가 그걸 들더니 말했다.

“북쪽이에요.”

“방향만 가르쳐주는 겁니까?”

“아뇨. 거리도 알려줘요.”

벡스 장군이 앞장서며 말했다.

“도망칠지도 모르니 서두르지.”

“알겠습니다.”

일행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곳에는 쉬안과 베로스 장군, ‘눈의 꽃’의 여기사들이 서 있었다.

쉬안은 고개를 삐딱하게 꺾고는 벡스 장군과 그 뒤에 서 있는 캐리,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다른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벡스 장군과 그 뒤에서 작동하는 아티펙트에 관심이 갈 뿐이었다.

검은 액체 속 얼핏 보이는 것을 확인한 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심장인가?”

벡스 장군은 캐리를 몸으로 가리고는 말했다.

“비키십시오.”

“벡스. 무례하구나.”

베로스가 앞으로 나서자 벡스 장군은 그를 빤히 바라보며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에 베로스도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벡스. 곧 왕위에 오르실 분이다. 이 무슨 무례인가?”

벡스는 손에 든 반지를 보였다.

“1왕자께서 내주신 반지입니다. 저희는 지금 국왕 전하 암살 사건에 대해 수사하는 중이고, 이것에 관련하여 어떤 방해도 용납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벡스의 시선이 쉬안을 직시했다.

“만약 이걸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암살 사건의 조력자로 보고 즉결처형을 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쉬안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며 벡스가 물었다.

“국왕 전하 암살 사건을 조사하는 저희를 방해하시겠습니까?”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판이었다. 그 섬뜩한 살기를 받으며 쉬안의 안색이 붉어졌다.

“감히···.”

스릉.

벡스의 검이 반쯤 뽑혔다. 베로스와 ‘눈의 꽃’ 기사들도 검을 반쯤 뽑았다. 벡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묵묵히 쉬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해하시겠습니까?”

제이슨도 분위기를 보고는 검에 손을 올렸다. 기간트를 꺼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손을 쓴다면 벡스가 베로스를 맡는 동안 나머지 전부를 벨 자신은 있었다.

쉬안은 그 기세를 읽고는 어금니를 깨물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대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쉬안이 결국 옆으로 한발 물러났다.

벡스 장군은 그를 흘끔 보고는 검에 손을 올린 채 걸었다. 언제든 출수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채 걷는 그를 바라보던 쉬안이 물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군.”

벡스 장군이 걸음을 멈추자 쉬안이 캐리의 손에 들린 통을 가리켰다.

“그 통에 들어있는 건 누구의 심장인가?”

“누구의 것일 것 같습니까?”

쉬안의 인상이 천천히 찡그려졌다.

“너 설마···?”

쉬안이 다가가려고 할 때 벡스 장군의 검이 반 이상 뽑혔다.

“분명 경고했습니다.”

“너 이 새끼. 그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거로 생각하는 거냐?”

쩌엉!

어느새 뽑혀 나온 벡스 장군이 휘두른 검을 베로스가 받아냈다. 쉬안은 자신의 목 앞에서 멈춘 검을 보고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설마하니 왕궁에서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베로스의 안색도 나빠졌다.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쉬안의 목이 날아갈 뻔했다. 게다가 벡스 장군이 힘을 거두지 않았다면 받아내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경고였다.

경고가 아니라 작정하고 휘둘렀다면 검을 받아냈다고 해도 쉬안이 다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으리라.

벡스 장군은 천천히 검을 거두고는 걸음을 옮겼다. 쉬안은 다리가 풀리려는 것을 억지로 붙들고는 멀어지는 벡스의 등을 바라보았다.

캐리의 설명을 따라 이동하던 중에 그들이 발을 멈춘 곳을 바라보며 벡스 장군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정말 이곳인가?”

“예. 이곳에 있어요.”

“이곳은 지금 하이젤 왕국의 사절단이 머무는 곳이네.”

캐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최소 1년은 국왕 전하의 곁에 있었어야 했어요.”

“그러니 나도 믿기 힘든 것 아니겠나?”

제이슨이 그러는 사이에 끼어들었다.

“잠깐 확인해 보죠.”

“뭘 말이냐?”

제이슨은 벡스 장군을 지나쳐 하이젤 왕국 사절단이 머무는 곳을 지키는 왕실의 병사에게 다가갔다.

“이곳에 찾아온 이가 있나?”

“6왕비 모레아님이 와 계십니다.”

제이슨이 돌아보자 벡스 장군이 그에게 다가왔다.

“정말 6왕비가 이곳에 있다는 건가?”

“예.”

제이슨은 6왕비까지 있는 줄도 몰랐다. 대외적으로는 3왕비까지만 알려져 있었으니까. 국왕이 이렇게 열심히 왕비를 만들고 있는 줄은 몰랐다.

솔직히 부러웠다.

벡스 장군이 고개를 돌려 손짓하자 저 멀리 지붕 위에 있던 펠릭스가 그대로 도약하더니 앞에 내려섰다.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요란하게 내려선 펠릭스 덕분에 하이젤 왕국의 사절단 호위 기사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 그들의 뒤편에 하이젤 왕국의 공주 베로니카가 있었고 그녀의 뒤쪽에 한 귀부인이 부채를 들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캐리가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예요.”

벡스 장군이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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