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43화 (44/151)
  • 【43】 검시(1)

    쉬안과의 만남이 끝나고 나서 카이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후우. 일이 꼬이는군.”

    벡스 장군이 그의 곁에서 물었다.

    “트레이 후작을 부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영지에 일이 있어 조금 늦는다고 했는데 서둘러 오라고 해야겠군.”

    카이트는 목이 타는지 테이블에 올려놓은 잔에 술을 따라서 한 모금 마셨다.

    “아버지께서 나와 맺기로 했던 국혼이었는데 그걸 동생이 채갔네. 그 말은 아버지의 죽음마저 의심해 봐야 할 일이야.”

    “제롬 경이 이미 확인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그것조차 이제는 믿을 수 없군.”

    “제롬 경이 넘어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카이트는 술잔의 술을 마저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믿을만한 마법사가 있겠나?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군.”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하지.”

    카이트는 제이슨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못난 꼴을 보였군.”

    “아닙니다.”

    “그래도 자네가 있어서 든든하군.”

    카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트레이 후작이 올 때까지 잠시 쉬고 싶군.”

    “나가 있겠습니다.”

    “고맙네. 백스.”

    벡스를 따라 나온 제이슨은 넌지시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가 어떻게 돼?”

    “하이젤 왕국에서 저렇게 나왔다는 건 북부가 넘어가는 거 아닙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하이젤 왕국의 국력은 트랑 왕국에 비해서 조금 처지는 정도다. 하지만 트랑 왕국은 알제리 왕국과의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전대 국왕이 하이젤 왕국과 국혼을 은밀히 준비했었나 보다.

    국혼으로 북부의 위험을 잠재우고 알제리 왕국과의 전쟁에 집중하려 했던 계획이 어그러졌다. 가만둬도 국혼이 진행됐을 텐데 2왕자 쉬안의 손을 하이젤 왕국이 잡았다는 것은 한 가지를 뜻한다.

    하이젤 왕국이 뭔가 얻을 것이 있으니 그의 손을 들어줬으리라.

    “그런데 곤란하군요.”

    카이트는 친 동부전선 파지만, 쉬안은 다르다. 그는 북부전선을 밀어주는데 그가 하이젤 왕국의 편을 들어준다고 하면 아무래도 동부전선에 실어주는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베로스 장군이 동부전선의 모든 것을 빼먹으려고 할 수도 있는 일.

    카이트가 왕이 되어야 했다.

    제이슨이 그런 고민을 할 때 벡스 장군이 말했다.

    “나는 마도공학자를 알아보러 가마. 넌 어떻게 할 거냐?”

    “저는 펠릭스 대장을 돕고 있습니다.”

    “고맙구나.”

    벡스 장군은 제이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떠났다. 제이슨은 왕실 근위 기사들과 함께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엘레나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펠릭스의 곁으로 갔다.

    제이슨은 펠릭스에게 와서는 물었다.

    “뭐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하이젤 왕국의 인물들이 알제리 왕국의 사절단과 만나고 있다.”

    카이트와 인사를 나누고 어디를 갔나 했더니 이것들이 알제리 왕국의 인물들과 만나고 있었다.

    “이거 안 좋은데요?”

    “뭐가?”

    “하이젤 왕국에서 2왕자의 편에 서기로 했습니다. 2왕자와 국혼을 한다고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뭔가를 약속받은 것 같은데 그들이 알제리 왕국의 인물들과 만난다고 하니까요.”

    펠릭스는 말없이 사절단이 묵는 곳을 살폈다.

    “벡스 장군은 뭐라고 하더냐?”

    “국왕 전하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해서 믿을만한 마도공학자를 구하러 갔습니다.”

    “하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의심해 볼 만한 문제구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왕궁의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가뜩이나 엘렌이 이곳에 와 있는 것 같아서 어떻게 찾아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국왕 전하를 죽인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겠지.”

    궁정 마법사가 찾아내지 못한 것을 알아낼 정도라면 보통 실력으로는 안 된다. 제이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 잠깐 영지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영지에는 뭐하러?”

    “그보다 저 다시 들어올 때 쉽게 들어올 방법 없겠습니까?”

    “벡스 장군에게 말해 놓으마. 벡스 장군 이름을 대면 쉽게 들어올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제이슨은 수많은 사람이 아직도 인사를 하기 위해 줄 서 있는 것을 보고 지나쳐 서둘러 워프 게이트를 탔다. 영지로 돌아온 제이슨은 곧장 연구소로 가서 캐리를 만났다.

    다시 돌아온 로크와 함께 연구하고 있던 캐리는 제이슨의 방문에 물었다.

    “왕궁으로 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같이 왕궁으로 가주시겠습니까?”

    “예? 왕궁으로요?”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캐리가 조금 당황해서는 말했다.

    “뭔가 잊으셨나 본데 저 현상범이에요.”

    “이번 일 잘되면 그 현상범을 지울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일이 뭔데요?”

    “그건 가면서 얘기하죠.”

    제이슨의 부탁을 들은 캐리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이슨의 눈을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표정을 보니 중요한 일인가 보네요.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돕도록 하죠.”

    “고맙습니다.”

    제이슨이 돌아보니 로크가 조안나와 속닥이다가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다녀와요.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요.”

    “그래. 부탁한다.”

    제이슨은 로크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캐리와 함께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왕궁으로 이동했다. 왕궁을 바라보던 캐리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수도도 아니고 왕궁으로 올 일이 있을 줄은 몰랐던 탓이리라.

    캐리는 줄을 선 이들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왕궁 밖에까지 줄을 서 있었으니까.

    제이슨은 그들을 지나쳐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서 뭐라 그러는 이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왕궁 앞까지 가니 엘레나가 나와 있었다.

    “엘레나!”

    “따라오세요.”

    엘레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엘레나가 캐리를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제이슨이 모셔온 분이라니 어떤 분일지 궁금하네요.”

    제이슨은 한 번에 설명할 생각이었다.

    “벡스 장군부터 보고 얘기하죠.”

    “그래요. 따라와요.”

    엘레나는 제이슨보다 나이도 많았지만, 누구에게나 공대했다. 친절한 그녀를 따라 벡스 장군을 만나러 가니 그는 카이트 왕자의 접견실 옆방의 휴게실에서 쉬고 있었다.

    벡스 장군은 제이슨과 캐리를 보고는 물었다.

    “영지에 다녀왔다고?”

    “예.”

    “그런데 누구를 데려온 거냐?”

    제이슨은 캐리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국왕 전하 검시에 도움을 받기 위해 함께 왔습니다.”

    캐리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데리고 왔을 거라고는 알았지만, 그게 국왕을 검시하는 일일 줄은 몰랐다.

    벡스 장군은 캐리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믿을만한 이냐?”

    “로크의 누나입니다.”

    벡스 장군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현상범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

    “맞습니다.”

    벡스 장군은 당당하게 말하는 제이슨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눈을 보더니 말했다.

    “좋아. 하지만 혼자에게 맡길 수는 없다. 함께 검시를 맡기도록 하지.”

    “누구를 모셔왔습니까?”

    “마탑의 부탑주.”

    “예?”

    제이슨이 놀라서 바라보자 벡스 장군은 덤덤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인맥 중에는 그만한 인물이 없었지. 지금 검시를 하러 갔으니 함께 가도록 하지.”

    마탑의 부탑주라고 한다면 마도공학계의 2인자다. 그런 그를 데리고 온 것을 보면 벡스 장군의 인맥도 보통이 아니다 싶었다. 오러 유저 중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라고는 해도 마탑에 워낙 많은 돈을 쏟아 넣는 우량 고객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벡스 장군을 따라간 곳은 왕궁의 지하였다. 그곳에는 수정 관에 누워있는 전대 국왕이 있었다. 그리고 고글을 쓴 채 시신을 살피는 노인이 있었다.

    밖은 왕실 근위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홀로 국왕의 시신을 살피던 노인은 벡스 장군과 일행이 들어오자 허리를 피고는 물었다.

    “이보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결과를 들으러 온 건가?”

    “그건 아니고 검시를 도울 이가 있어 데리고 왔습니다.”

    마탑의 부탑주. 켄벨은 그 말에 수염을 쓸어내리며 불쾌한 기색을 내보였다.

    “나를 못 믿어서 그런 건가?”

    “조수도 없는데 혹시 놓칠 부분이 있을까 싶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보수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흠. 뭐 꼭 보수 때문은 아니지만. 나와 손발을 맞출 이라니 궁금하기는 하군.”

    켄벨은 뒷짐을 진 채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어디 와서 한 번 살펴보게. 나는 대충 둘러봤으니.”

    캐리는 부담 가득한 얼굴로 다가가 고글을 끼고 국왕의 시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켄벨이 벡스 장군에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정밀 검사는 해보아야겠지만, 마법적인 흔적은 보이지 않네. 독살이라면 검사를 해보아야 할 것 같군. 하지만 만약 독살했다면 발견하기 쉽지 않을 걸세.”

    국왕을 죽이는 데 있어서 마법사들이 검시할 것을 빤히 알고 있을 이들이 독살했다면 그건 흔적을 찾지 못할 것을 준비했다는 얘기였다.

    벡스 장군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부탁드리겠습니다.”

    “노력은 해보겠네. 하지만 장담은 못 하겠군.”

    그때 캐리가 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켄벨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들은··· 자네 흑마도공학자였나?”

    꺼내든 도구를 보고 묻는 물음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부탑주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흑마도공학에 대한 멸시는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고, 정상에 오른 이라면 더 오랜 시간 그들을 멸시해왔을 테니까.

    캐리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작은 상자를 열어 벌레 한 마리를 꺼내 국왕의 시신 위에 올려놓고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벡스 장군도 호기심이 동해서 뒷짐을 진 채 바라보았다.

    벡스 장군이야 로크에게 이미 아낌없이 지원해준 전력이 있었고, 자기 일에 도움이 된다면 흑마도공학자가 아니라 어떤 존재의 도움도 거부하지 않을 이였으니까.

    캐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국왕의 시신의 심장 위에서 꼬물거리는 벌레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거 심장을 꺼내봐야 알겠는데요?”

    “뭔가 의심되는 것이 있는가?”

    “이 벌레는 마력충이라고 하는데 음차원 에너지의 향을 맡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분명 심장에 음차원 에너지의 흔적이 있다는 뜻이죠.”

    캐리는 벌레를 작은 상자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심장에서 마력의 향이 난다는 건 적어도 1년 이상 공을 들여야 하는 마법을 썼을 가능성이 커요. 노쇠의 저주가 가장 유력해요. 오랜 시간을 들여서 걸면 음차원 에너지도 미량만 남아서 마법으로는 검색이 안 될 테니까요. 죽음도 자연사처럼 보이고요. 다행히 수정관이 보존 마법이 걸려 있으니 심장을 꺼내 보면 확인할 수 있어요.”

    벡스 장군은 말없이 캐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확신하는가?”

    “확신은 못 해 드리죠.”

    당당하게 말하는 캐리를 바라보던 벡스 장군이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왕자님에게 보고하고 오겠다. 제이슨.”

    “예.”

    “이곳에 누구도 들어오게 하지 마라.”

    “누구도입니까?”

    “그래. 특히 쉬안 왕자 측 인물은 누구도 진입 못 하게 해라.”

    “진짜로 오면 다 벱니다?”

    “그래. 왕실 근위 기사도 못 들어오게 해라. 그들도 못 믿겠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다녀오십시오. 여기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벡스 장군이 떠나자 켈벤은 뒷짐을 진 채 뚱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만약 아니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국왕의 시신에 손을 댄다고 한 건가?”

    “9할 이상은 확신해요.”

    “흠. 그 말을 책임져야 할 걸세.”

    캐리는 켄벨을 가볍게 무시하고 제이슨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심장을 꺼내게 되면 이걸 건 흑마법사를 찾을 방법이 있어요.”

    국왕을 죽인 범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2왕자를 끝낼 수 있다.

    “그 방법이 뭔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이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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