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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42화 (43/151)
  • 【42】 격변(3)

    제이슨은 빠르게 알제리 왕국의 사절단은 훑어보았다. 사절단으로 온 이들의 대표는 알제리 왕국의 2왕자 톨로프였다. 1왕자는 적국에 마음 놓고 보낼 수 없으니 최선으로 택한 인선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외교 대신과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들. 저들 중 누가 엘렌일까?

    상대의 기억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에게 오러를 보냈지만, 연결은 되지 않았다. 아마도 봉인을 푼다고 바빠서 그런 것일 터.

    자신이 느꼈다면 상대도 자신을 느꼈을 가능성을 생각해서 눈이 마주치는 자들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눈을 마주치는 이들 하나 없었다.

    어차피 사절단도 장례식과 취임식에 모두 함께할 테니 아직 알아볼 시간은 많았다.

    사절단이 물러나자 다음 순서로는 일행이었다. 카이트 왕자는 벡스 장군의 어깨를 잡았다.

    “잘 와주었소.”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아니오. 그대가 함께 해주니 마음이 놓이오. 알제리 왕국에서도 취임식까지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소.”

    “다행이군요.”

    카이트 왕자는 벡스 장군에게 고개를 가까이하고는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것도 내 취임식까지뿐이오. 기다리시오.”

    “그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카이트 왕자가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이들이 ‘미친 들소’의 일원들인가?”

    “예. 이쪽이 대장 펠릭스입니다.”

    펠릭스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자 그에게 다가간 카이트가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대를 이어 내게도 충성하겠는가?”

    “충성하겠습니다.”

    카이트는 엘레나에게도 충성 서약을 받았다. 카이트는 마지막으로 제이슨의 앞에 섰다. 제이슨이 한쪽 무릎을 꿇자 그의 앞에 선 카이트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자네에 대해서 들었네. 비공식 오러 유저라고.”

    “예. 전하.”

    “공식적으로 작위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나?”

    “가능하다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럴 이유라도 있는가?”

    “정치는 어렵고, 저는 아직 제가 이루고자 한 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영지를 가지면 아무래도 제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카이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벡스 장군이 눈을 부라렸지만, 카이트가 손을 들어 그를 말렸다.

    “그대의 뜻은 잘 알겠다. 그러나 그래도 그대는 내게 충성을 맹세하겠는가?”

    “저는 전하의 검이자 왕국의 검입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그대의 뜻에 따라 자네의 정보는 비공개로 하되 작위는 받으라. 그대의 영지는 언제든 그대가 원한다면 국왕 직할령에서 내어주도록 하겠다.”

    “전하.”

    “이것은 왕궁 내에서도 나와 그대, 그리고 이곳에 모인 이들만 알 일이다. 그리하겠는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감히 거절하지 못하겠나이다.”

    카이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제이슨의 어깨에 올리며 말했다.

    “제이슨 폰 바론. 그대에게 하르트란 성을 내리고 백작의 작위를 내리겠다.”

    “명을 받듭니다.”

    카이트는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고맙네. 그럼 편히들 쉬고 있게. 아직 만나봐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

    왕궁 집사장의 안내를 받아서 이동한 방에서 펠릭스가 제이슨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축하한다.”

    “대장. 어깨 부서지겠어요.”

    “그런데 너 어째 전과 달라 보인다?”

    제이슨은 그 말에 씨익 웃어 보였다.

    “전역하고 나니까 살만하더라고요. 살찐 거 보이시죠?”

    펠릭스는 웃음을 터트렸고, 벡스 장군은 고개를 내젓고는 창가에 가서 섰다. 그리고는 뒷짐을 진 채 말했다.

    “왕궁의 근위대가 있다고 하지만 2왕자의 손길이 어디까지 뻗어있을지 모른다. 왕실 근위대도 솔직히 믿지 못해. 그래서 우리가 왕자님의 호위를 선다.”

    벡스 장군의 시선이 엘레나를 향했다.

    “카이트 왕자님의 곁은 나와 엘레나가 지킨다. 펠릭스. 그대는 알제리 왕국 사절단을 살펴보게. 그들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자들이니까.”

    “알겠습니다.”

    제이슨이 손을 들자 벡스 장군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저는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전하의 용건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만, 장례식과 취임식은 치르고 가야 하니까. 여기서 편히 쉬다 가라. 어차피 문제가 생기면 로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되니 별문제는 없지 않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개인 활동을 하도록 하죠.”

    벡스 장군과 미친 들소 전원이 밖으로 나가고 나서 제이슨은 혼자 남아 창밖을 보았다. 왕궁 내에서는 아티펙트가 작동하지 않는다.

    허락된 아티펙트를 제외하고는 어떤 아티펙트도 쓸 수 없는 마력장이 설치되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기간트도 왕궁 내에서는 소환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간트를 이용한 공습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왕실 근위대는 기간트 라이딩 실력보다는 검술 실력이 우선이다. 쟁쟁한 검사들이 이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와 다시 연결해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제이슨은 가볍게 투덜거리고는 창가로 가서 왕궁 내에 돌아다니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카이트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줄을 서서 들어오는 무리들. 그 끝없는 행렬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문득 북쪽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베로스 장군과 북부전선의 병력은 분명 강력하다. 베로스 장군은 벡스 장군과 다르게 오직 북부전선만을 지키려고 하는 이가 아니었기에 정치를 해서 그를 따르는 이들도 제법 되었다.

    그가 작정하고 나선다면 왕국 내의 귀족 중 적어도 2할은 움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전이 벌어지면 좋은 꼴 보기 힘들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슬쩍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전은 지금 당장 벌어지지 않겠지만, 엘렌이 이곳에 와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제이슨은 펠릭스를 찾아갔다.

    알제리 왕국의 사절들이 안내받은 건물을 살피기 좋은 위치에 올라서 있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왕궁의 지붕에 올라가서 소형 망원경으로 살펴보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니 그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이상한 점은 없습니까?”

    “알제리 왕국의 사절단 말이냐?”

    “예.”

    “별다른 이상한 점은 아직 없었다.”

    “그래요?”

    제이슨은 저들 중 분명 한 명은 인간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걸 밝힐 방법이 없었다. 왕궁의 이 삼엄한 마법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뚫고 들어온 것을 보면 단순히 변신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능력을 더 지닌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적어도 이 마법 경계를 뚫을 정도의 실력은 있었다.

    “할 말이 있어 온 거냐?”

    제이슨은 태연하게 펠릭스의 옆에 앉아서는 알제리 왕국의 사절단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답했다.

    “혼자 있으려니 심심해서요.”

    “심심하면 다시 돌아와라. 네 자리는 언제나 비워두마.”

    “아후. 그런 말은 마세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펠릭스는 더 말하지 않고 알제리 왕국 사절단 쪽을 살폈다. 제이슨은 펠릭스의 옆에 앉아서 눈으로 오러를 보내보았다. 시력이 확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오러의 움직임을 느낀 것인지 펠릭스가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군에 있을 때도 굉장한 재능을 지녔던 녀석이었다. 그러니 오러 유저까지 올라왔던 것.

    그런데 안 본 사이에 뭔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떡 주무르듯이 주무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한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손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낀 펠릭스가 말했다.

    “취임식이 끝나고 나면 대련이라도 한 번 하자.”

    “그럴까요?”

    군 생활 내내 펠릭스에게 갈굼을 당했다. 그 덕에 무사히 군을 전역했다고 하지만 마음이 꽁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이슨은 그걸 갚을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미소를 지은 채로 알제리 왕국 사절단의 면면을 살폈다.

    총 열두 명의 사절단. 그들 중 왕자와 외교 대신. 그리고 호위 기사들. 그들 중 누가 엘렌일까?

    제이슨은 펠릭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사절단으로 온 자 중 외팔이가 있었습니까?”

    “못 봤는데?”

    엘렌의 팔을 잘랐다고 하기에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변신할 때는 그 영향을 받지 않나 보다. 제이슨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지붕 위에 눕고는 말했다.

    “저들 중 따로 움직이는 녀석 있으면 제게 말해주세요.”

    “왜?”

    “두 무리로 나뉘면 제가 한쪽을 감시하겠다는 뜻이죠.”

    “그래 주면 고맙지. 알겠다.”

    제이슨은 펠릭스의 옆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뭔가 소란스러움이 들려와 제이슨은 고개를 들어 왕궁으로 들어오는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마차 두 대가 줄 서 있는 이들을 그냥 무시한 채 안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펠릭스도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인상을 굳혔다.

    “허! 베로스 장군이군.”

    “베로스가 왔다고요?”

    마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2왕자 쉬안 폰 트랑과 베로스 장군이 내렸다. 그리고 그의 호위 기사들인 ‘눈의 꽃’이었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마차가 멈추자 쉬안이 그곳으로 가서 한 여인을 에스코트했다. 검정 일색의 드레스를 입은 새하얀 피부의 여인. 그러고 보니 마차의 주위에는 독특한 복색의 인물들이 있었다.

    새하얀 갑옷에 푸른 늑대를 그린 자들.

    “저거 하이젤 왕가의 문양 아닙니까?”

    펠릭스는 인상을 굳힌 채 답했다.

    “맞아. 하이젤 왕가의 문양이다. 2왕자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이는 거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라. 알제리 왕국 사절단을 살피는 것은 내가 할 테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제이슨은 펠릭스를 두고 벡스 장군을 찾아갔다. 벡스 장군이 1왕자 카이트의 곁을 지키고 있었기에 다가가니 카이트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 제이슨이 함께하게 해주었다.

    접견실에 대기 중이던 귀족들은 분분히 물러났고, 그들 사이를 2왕자 쉬안과 검은 일색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베로스, 그리고 하이젤 왕가의 기사가 걸어왔다.

    접견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왕실 근위 기사가 그들의 무기를 모두 수거했다. 이걸로 최악의 상황은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무기 없이 저항할 수는 없을 테니까.

    접견실 안으로 들어온 쉬안은 카이트를 보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자리에 앉아있네?”

    “장례 준비도 하지 않고 어디를 갔다 오는 거냐?”

    “아버지가 추진하시던 결혼 준비 때문에 다녀왔지. 인사해. 이쪽은 하이젤 왕국의 공주님이신 베로니카 폰 하이젤 양이야. 내 약혼녀지.”

    카이트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북부 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하이젤 왕국과는 국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카이트와의 결혼이었다.

    카이트의 시선이 베로니카를 향하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직접 본 적 없다고 하지만 자신의 짝이 되었을 여인이 동생의 약혼녀가 되어 나타났다.

    국왕 서거 소식이 들린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카이트의 시선이 쉬안을 향했다.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냐?”

    “내가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 말이야.”

    쉬안은 카이트를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형이 날치기로 즉위식을 하려고 한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카이트가 의자 손잡이를 부서지라 움켜쥐는 모습을 보고 쉬안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왕위 계승을 못 하고 돌아가셨으니 그건 귀족회의를 열어야지 형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될 일이잖아.”

    카이트의 서슬 퍼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쉬안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마침 귀족들도 모두 모였으니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귀족회의를 거쳐서 누가 다음 대의 왕에 어울릴지 알아보자고.”

    카이트의 시선이 베로니카를 향했다. 알제리 왕국과의 적대적 관계는 개선의 여지가 없었지만, 하이젤 왕국과는 조금씩 관계가 개선되고 있었다. 그 방점을 찍을 것이 국혼이었는데 그걸 동생이 가로챘다.

    국왕의 죽음. 그리고 때를 같이해서 움직이는 하이젤 왕국.

    국왕의 죽음에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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