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41화 (42/151)

【41】 격변(2)

현 트랑 왕국의 국왕은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딸도 하나 있었지만, 이미 베르제 제국의 공작 가문에 시집갔다. 남은 아들은 셋.

1왕자는 덕망이 높고 지금까지 국왕을 도와 많은 일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동부전선의 벡스 장군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알제리 왕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쪽이 아니라 알제리 왕국은 병합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그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1왕자가 국왕이 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벡스 장군이 다시 군으로 로크를 불렀다면 뭔가 변고가 생겼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했다. 제이슨의 가문이야 누가 국왕이 된다고 해도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는 변두리의 가문이라고 하지만 왕권이 바뀔 때는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다.

제이슨은 우선 베제트에게 말해서 정문 입구 쪽 뚫린 정상의 문을 닫을 방법을 물었다. 그걸 지금 당장 막을 방법은 없었다. 직경 100미터짜리 돌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래서 우선은 환영 마법으로 문을 막는 방향으로 했다. 그래도 환영 마법이 가동된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한 후에 제이슨은 단방향 장거리 텔레포트를 이용해 성으로 돌아왔다. 로크는 제이슨이 연락을 받고 돌아오자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 저녁까지 복귀라서 조금만 늦었어도 못 볼 뻔했네요.”

“그러게 말이다.”

제이슨이 로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말했다.

“갈 때 가더라도 주고 싶은 게 있다.”

“주고 싶은 거요?”

“그래. 따라와.”

제이슨은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 안에는 이제 조안나의 양식장만 남아 있었다. 가장 높은 등급의 양식장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로크가 군으로 돌아가야 하니 그의 양식장을 치운 것이리라.

그리고 양식장 옆에는 유리관이 있었고, 그 안쪽에는 형이 누워 있었다. 양쪽 팔은 이미 봉합을 하고 치료를 시작한 상황으로 보였다.

제이슨이 다가가서 살피자 캐리가 설명했다.

“부작용은 없어 보여요.”

“깨어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래도 완전히 이식되려면 넉넉잡고 보름 정도는 살펴봐야 해요. 지금 깨어나면 지독한 고통을 느낄 거예요.”

“그럼 기다려야겠군요.”

“예.”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크를 돌아보았다.

“형. 그런데 뭘 주고 싶다는 거예요?”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서 와이번의 사체를 꺼냈다. 연구소 중앙에 놓인 와이번의 사체. 충격에 내장이 부서지고, 제이슨이 떨어지면서 오러를 몸에 둘렀던 탓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고 해도 남은 부위만 해도 상당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특히나 흑마도공학을 연구하는 로크에게는 상당히 귀한 물건이었다.

“우와!”

와이번은 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로크가 후다닥 달려와서 안으려고 하기에 제이슨이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려서 다가오는 것을 막고는 말했다.

“예첸 산맥에 갔다가 만나서 죽을 뻔했다. 그래도 잡고 나니 네 생각이 나더라.”

“고마워요.”

로크는 캐리가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고는 혹시라도 빼앗길까 싶어서 후다닥 아공간 주머니에 와이번을 쓸어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캐리가 섭섭하다는 듯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은 로크가 와이번을 챙기는 것을 보고는 또 한 마리의 와이번 시체를 꺼내서 캐리에게 말했다.

“이건 조안나랑 같이 연구하세요.”

“고마워요.”

캐리의 눈빛에서 섭섭함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왜 군으로 돌아오라고 한 거야?”

“전하께서 왕위 계승을 못 하고 돌아가셨어요. 대신들이 1왕자 님을 왕위 계승하려고 하는데 2왕자가 북부 전선으로 갔다네요.”

“북부 전선?”

베로스 장군을 떠올린 제이슨의 물음에 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로스 장군이 2왕자의 외조부 되잖아요.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서거 소식과 함께 북부 전선으로 갔다는 것부터가 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내전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모르죠. 하지만 벡스 장군은 1왕자 편이라서요. 일단 군으로 돌아오라고 하네요. 만약을 대비해서 왕궁으로 파견 근무를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미친 들소가 가는 거야?”

“펠릭스 대장도 회복이 끝났다고 하니까 셋이서 움직일 것 같아요.”

“너 데쓰 나이트는 전부 회복됐어?”

“예. 회복 끝났어요. 오히려 더 강화됐죠.”

“아직 에고 기간트의 장갑은 이식 못 했지?”

“그건 아직 멀었어요. 그것 때문에 이번 일 끝나면 다시 벡스 장군에게 말해서 돌아올 생각이에요.”

제이슨은 로크의 머리를 슥슥 비벼주고는 말했다.

“그래. 돌아와라.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고.”

로크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만 한 장치를 내밀었다. 제이슨이 그걸 바라보자 로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뭔데?”

“만약에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걸 이용해서 저한테 오시라고요.”

단방향 장거리 텔레포트. 좌표를 로크로 설정한 것이었다. 로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이건 공간 이동 방해 마법진도 뚫을 수 있는 거예요. 공간 왜곡으로 길을 강제로 뚫게 했거든요.”

“너 이거···?”

“이번에 개발 완료한 거예요. 아직은 두 개 밖에 못 만들었는데 하나 형 주는 거예요.”

“네 보험인데 뭘 그리 생색내는 거냐?”

“대량 생산은 힘들 것 같은데 하나 더 만들게 되면 형 줄게요.”

“그래. 이건 꼭 필요하겠다.”

고대 던전 탐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처지에서 상대방이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마법진을 펼쳐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마법 장치는 꼭 필요했다.

“부탁하마.”

로크가 씨익 웃고는 말했다.

“그럼 저는 잠깐 조안나랑 얘기 좀하고 올게요. 이제 가봐야 하니까요.”

“그래라.”

로크가 조안나와 눈빛을 교환하더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제이슨은 가만히 팔짱을 낀 채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의 눈빛에서 걱정을 읽었는지 캐리가 담담히 말했다.

“아직은 친구로 보이네요.”

“아직은 이군요.”

캐리가 제이슨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로크가 마음에 안 들어요?”

“마음에 들죠. 하지만 아직 군인이잖습니까. 전역하고 나서라면 모를까 그 전에는 안 됩니다.”

단호한 제이슨의 말에 캐리는 픽 웃고는 말았다. 그래도 자신은 동생 편이었다.

“예첸 산맥이라면 몬스터 소굴이나 다름없는데 그곳에는 왜 가신 거예요?”

제이슨은 그 물음에 미소를 짓고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늑대형 골렘을 꺼냈다. 그걸 보고 캐리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서 새로운 골렘이 있는 던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고대 던전을요?”

“예.”

“대단하네요.”

캐리가 고글을 써서 늑대형 골렘을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이거 신기하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건데 이거 반응 속도가 대단했겠는데요?”

“그걸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신경 선이라고 해야 할까? 데페린 선이 일반 골렘에 비해 두 배는 두꺼워요. 게다가 이 나선 형태로 꼬아놓은 것도 왜 그런지 확인이 필요하겠네요.”

“확실히 민첩함이 남달랐습니다.”

“이거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겠어요.”

“잘 부탁하죠.”

우선 늑대형 골렘을 연구하는 것을 봐서 고대 던전으로 데리고 가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조안나의 실력이 빠르게 성장한다면 둘을 함께 데리고 가는 것도 좋으리라.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를 뒤져서 자료실에서 가져온 늑대형 골렘의 설계도를 꺼내서 내밀었다. 캐리가 그걸 받아들고는 확인해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연구 시간이 대폭 줄겠어요. 기간트는 더 발전할 것이 없다고 개소리하던 마도공학자들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겠네요.”

마도공학자들에게 쌓인 것이 많았나 보다. 캐리가 의욕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연구소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거처처럼 사용하던 훈련장에 도착한 제이슨이 바위 위에 앉아서는 오러를 엘하르트에게 전했다.

연결이 성공했는지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쁘다.

“뭐가 그렇게 바빠?”

-에테르 코어에는 신의 의지가 깃들어 있거든. 그걸 이용해서 봉인을 풀려고 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당분간은 찾지 마라.

“그럼 다음 던전 탐색은 안 가도 된다는 거야?”

-지금 당장은 필요 없다.

제이슨은 픽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의 정세가 하 수상한 지금 고대 던전 탐색을 계속할 수 없었는데 마침 엘하르트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니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고.”

-그러지.

엘하르트의 마지막 말을 들은 제이슨은 편안히 자리에 앉아서 오러 심법을 운용했다. 벽을 하나 넘으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한 오러 심법은 이제 안전성까지 얻었다.

호흡과 함께 오러 심법에 집중한 제이슨 주위의 대기가 출렁이며 그에게 몰려들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로크를 구하러 갈 수 있었기에 별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벡스 장군은 미친 들소 전원을 대동한 채 영지를 찾아왔다.

동부전선 총사령관인 벡스 장군의 방문에 성은 발칵 뒤집혔다. 트레버도 갑작스러운 방문에 허둥지둥 그를 안내하고 준비했는데 벡스 장군은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돈을 쓰는 것은 무기를 제외하고는 없는 이였다. 나머지 돈은 모두 동부전선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제이슨만 따로 불러서 오직 용건만을 밝혔다.

“준비해라.”

“저요? 왜요?”

예전에야 벡스 장군은 가르침을 내린다는 핑계로 종종 대련해서 쥐어패기도 했고, 군에서는 계급이 깡패이니 순순히 당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제이슨은 군도 전역했고, 이제는 대련해도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혹시라도 벡스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제는 베제트라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베제트를 두른 상태에서는 그것도 기간트라고 엘하르트와 비슷한 영역에서 싸울 수 있었다.

기간트를 탄 오러 유저도 죽일 정도로 강해졌는데 뭐가 겁난다고 벡스 장군에게 고분고분 말을 듣는단 말인가?

벡스 장군은 제이슨에게 간단히 말했다.

“1왕자님이 널 보고 싶다고 하시더구나.”

“저를요?”

“그래. 미친 들소에서 전역한 오러 유저. 너를.”

“설마 왕궁에 보고한 겁니까?”

“내 밑에 있을 때야 알려지면 효용성이 떨어지니 숨겼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지.”

“와! 진짜 이러실 겁니까?”

벡스 장군은 담담히 그 시선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그러니 준비해라.”

제이슨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갈 수는 없겠죠?”

“국왕 전하의 장례식과 새로운 국왕 전하의 취임식까지는 참석해야겠지. 새로운 국왕 전하 눈 밖에 나고 싶은 거냐?”

아무리 귀족이 득세하고 오러 유저로서 성장했다고 해도 일국의 국왕 눈 밖에 나서 좋을 건 없었다.

“갑니다. 가요.”

제이슨은 대신 조건을 내걸었다.

“대신 로크는 이곳에 남겨주세요.”

“로크를?”

“로크가 연구할 것도 있고, 제가 없는 동안 성을 지킬 전력과 언제든 제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편이 필요하니까요.”

벡스 장군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렇게 해라. 로크도 이곳에 남고 싶어 하더군. 연구할 거리가 많이 남았다고.”

로크는 그 얘기에 미소를 지었고, 제이슨도 안심했다.

“그럼 저도 준비하겠습니다.”

“한 시간 주마. 서둘러라.”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서둘러 준비를 마쳤다.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니 검정색 예복을 챙긴 제이슨은 벡스 장군과 펠릭스 대장, 엘레나와 함께 그들은 워프 게이트를 타고 왕궁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사람이 모두 검정색 예복을 입고 입궁하기 위해 줄을 섰다. 하지만 이 줄은 계급에 따라 언제든 순서가 바뀔 수 있었다. 그리고 벡스 장군은 그 순위가 상당히 높았다.

줄을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가는 벡스 장군을 보고 사람들이 곳곳에서 인사했지만, 벡스 장군은 그걸 무시한 채 걸었다. 왕궁 외부의 워프 게이트를 나와서 마차에 오르니 곧장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차를 타고 이동해 왕궁으로 들어간 제이슨은 문득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기묘한 감각. 예전에도 느꼈던 것이라 고개를 드니 그곳에는 1왕자 카이트 폰 트랑이 알제리 왕국의 사절단을 맞이하고 있었다.

적대국인 그들이 사절단은 보낸 것은 의외였지만, 어쩌면 왕국을 염탐하기 가장 좋은 것이 사절단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이슨은 사절단의 인물들을 훑어보면서 자신이 느낀 이 감각이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엘하르트의 말대로라면 이건 엘렌이라는 에고 기간트에게서 느꼈던 것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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