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36화 (37/151)
  • 【36】 던전 찾기(2)

    제이슨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한 것을 파악한 캐리가 오히려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문제는 없을 거예요.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고작 팔 하나로 뭐가 바뀌나 싶겠지만, 아인종의 능력 중 일부라도 가져올 수 있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터였다.

    “그래서 갓 죽은 아인종의 시체를 구할 수 있는 겁니까?”

    “암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죠. 가격만 맞으면.”

    “그럼 구하세요. 돈은 제가 내드리죠.”

    “좋아요. 나중에 청구할게요.”

    캐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제이슨을 보고는 말했다.

    “실험에 동의해줘서 고마워요.”

    제이슨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신 형에게 문제가 생기면 평생 책임져야 합니다. 문제가 생겨서 팔을 교체해야 할 때마다.”

    “유상 교체는 가능해요.”

    “물론이죠.”

    제이슨의 확답을 들은 캐리가 기분이 좋아진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졌다. 사라진 팔을 재생시킬 방법은 없으니 결국 흑마법의 도움을 얻어야 했고, 제이슨이 아는 가장 뛰어난 흑마도공학자는 캐리였다.

    제이슨은 생각을 정리하고 지도책을 꺼내서 확인했다.

    알제리 왕국에 있는 고대 던전 의심 지역은 우선 열외 시켰다. 알제리 왕국에서는 이미 한 번 당했으니 그곳을 제외하고 다른 곳들을 알아보았다.

    고대 던전들의 위험성은 잘 알고 있다. 이번 던전처럼 기간트를 소환할 수 없는 곳에서는 홀로 던전을 뚫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고대 던전 의심 지역이 밀집되어 있고, 트랑 왕국과 교역이 활발해서 이동이 원활한 베르제 제국으로 가면 된다. 그곳에는 의심 지역이 세 곳이나 됐으니까.

    제이슨은 만약을 위해 단방향 장거리 텔레포트의 위치를 자신의 훈련소로 지정했다. 무지막지한 가격을 자랑하지만, 일이 있을 때는 이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준비를 마친 제이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을 내렸다면 서둘러야 했다.

    제이슨은 우선 조안나를 찾아가서 그녀에게 통신 장비를 전해줬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영지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로크는 ‘미친 들소’의 일원이고 그는 데쓰 나이트 두 기를 가지고 있었다. 회복 중이라고 하나 위급 상황에서는 쓸 수 있으리라. 게다가 캐리도 있다. 그녀는 로크보다 더 뛰어난 흑마도공학자. 데쓰 나이트를 최소 한 기는 가지고 있을 터.

    나이트급 기간트 세 기에 준하는 전력이 이곳에 있으니 자신이 돌아올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으리라.

    조안나는 아직도 클라이가 깨어나지 않는 것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기에 그녀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클라이가 회복되게 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 흑마법 뿐이니 네가 더 잘해야 한다고.

    캐리에게 책임지라고 했지만, 가족이 손을 봐주는 것이 더 좋다. 게다가 흑마법에 대한 재능이라면 캐리도 두손 두발 다 들었던 조안나가 빨리 힘을 얻는 것이 중요했다.

    제이슨은 조안나를 격려해주고는 트레버를 찾아가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전했다. 트레버는 적적하다는 뜻을 슬쩍 내비쳤으나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엘하르트의 봉인을 푸는 것이 우선이었고, 그러자면 신의 의지라는 것을 얻어야 했으니까.

    자신이 마스터만큼 강해지는 것이 요원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오러를 주입해줘도 쉽게 연결이 안 되는 것은 아무래도 봉인의 영향이 큰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고대 던전 탐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제이슨은 마탑 지부에 들러 던전 탐사용 물품 세트를 구매하고 곧장 베르제 제국으로 이동했다.

    베르제 제국까지 가는 길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었다. 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데다가 제이슨의 신분은 귀족으로 검증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행이라는 목적에 부합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타 왕국의 귀족이라고 하나 백작가의 자제일 뿐이다. 그랬기에 누구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제이슨은 부담 없이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고대 던전을 발견한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탐사를 마쳐야 했다. 만약 그가 고대 던전을 탐사 중에 다른 이들에게 발각이 된다면 이건 외교 문제로 커질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좋은 꼴 보기 힘들었다.

    그랬기에 제이슨은 첫 번째 의심 지역인 베르제 제국의 예첸 산맥 인근의 영지에서 나와서는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투명 망토를 두르고 코어 카트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렸다.

    그렇게 이동한 후에 예첸 산맥을 보고 제이슨은 습관적으로 오러 홀의 오러를 전해주면서 감탄했다. 말로만 들었지 예첸 산맥을 직접 와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높고 험준한 산맥이었다.

    “우와.”

    지금 무척이나 급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베르제 제국의 영토 중 1할에 달하는 거대한 산맥이라고는 듣기만 했지 직접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산맥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예첸 산은 대륙 최고봉이었다. 제이슨은 그 높디높은 예첸 산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절로 내쉬었다.

    지도상에는 표기되었지만, 명확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제부터 고대 던전 탐사를 시작해야 했다.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어디지?

    “연결된 거야?”

    -여기가 어디냐고.

    “베르제 제국의 예첸 산. 여기부터 확인해 보려고.”

    -그랬나? 예첸 산의 가장 깊은 곳에 고대 던전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찾아봐.

    제이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장 깊은 곳인데 정상에서 찾아보라고?”

    -던전의 입구를 찾거든 다시 연결을 시도해라. 연결 시간을 짧게 가져야 자주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좋아.”

    엘하르트의 도움은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하다. 고대 룬어를 해석해야 하는 부분 같은 곳에서. 그러니 지금 당장은 자신의 힘으로 찾아봐야 했다.

    던전 탐사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아서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위치를 특정하고 찾는 것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제이슨은 예첸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투명 망토를 두르고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나뭇가지를 밟고 달리는 제이슨은 산을 오르다가 간간이 보이는 몬스터를 보고는 아직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곳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쩐지 가장 가까운 도시가 코어 카트를 타고도 두 시간이나 떨어져 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산을 오르던 중에 제이슨은 굉음이 울리는 것을 듣고는 투명 망토를 두른 채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곳에서는 지금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붉은 드래곤 문양이 그려진 나이트급 기간트 둘과 워리어급 기간트 다섯 기가 몬스터 일곱 마리를 포위하고 싸우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레드 드래곤 용병단의 주 활동 무대가 제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곳에서 상대하고 있는 것은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날개가 없지만, 그 단단한 비늘과 날카로운 이빨의 거체. 두 발로 선 신장이 7미터에 달해 나이트급 기간트들 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드레이크가 일곱 마리다 보니 기간트 수가 같았지만, 쉽사리 승기를 잡지 못했다.

    드레이크의 브레스는 마법 방어를 중첩한 방패로 방어하며 원거리에서 작살을 날려서 드레이크를 사냥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기간트 대전만을 해왔던 제이슨이 보기에는 충격적인 몬스터 사냥법이었다.

    제이슨은 신기한 구경이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저들이 이곳에서 사냥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고대 던전과 연관이 없이 그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라면 굳이 그들과 엮일 필요가 없었다.

    제이슨은 드레이크 한 마리가 쓰러지면서 승기를 잡은 레드 드래곤 용병단의 전투에서 관심을 끄고 제이슨은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제이슨은 정상으로 이동하면서 그렇게 요란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몇 곳이나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그곳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토벌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이들을 피해서 만년설이 쌓인 예첸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인상이 굳어졌다.

    “정상에서 찾으라고?”

    엘하르트는 알고 있었을까? 지금 예첸 산 정상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녀석들을.

    “와이번들이네.”

    말로만 들었었다. 아룡 중에 하나인 드레이크나 와이번들은 서식지가 제국에 고정되어 있으니까. 그들의 사체가 엄청난 돈이 된다고 하고, 그 가죽은 고가에 판매되지만, 막상 그들의 서식지가 정해져 있으니 잡고 싶다고 잡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은 제이슨도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저렇게 군락을 이루는 와이번들은 대체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걸까?

    제이슨은 자신의 투명 망토와 기척 숨기기로 저 와이번 떼를 피해서 탐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어떻게든 도망칠 길을 미리 찾아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첸 산의 정상의 만년설에 군락을 이룬 와이번의 개체 수는 대략 서른 마리 정도. 둥지에는 새끼 와이번들이 있는데 그 주위를 지키고 있는 것들은 사방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감히 다가올 존재들도 없어 보이는데 왜 저리 신경이 곤두서있나 싶었지만, 제이슨은 그 주위를 천천히 움직이며 확인해 보았다.

    최대한 와이번들을 피해서 뒤적이며 혹시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던전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제이슨은 팔짱을 낀 채 와이번의 둥지를 바라보았다.

    어째 저기가 가장 의심이 됐다. 문제는 상주하고 있는 와이번의 수만 해도 족히 일곱 마리는 된다는 점이었다. 바이슨을 소환하면 싸워볼 만하겠지만, 산의 정상이 그리 넓지 않아서 전투가 쉽지는 않으리라.

    제이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와이번의 둥지로 접근해 보았다. 투명 망토의 성능과 자신의 기척 죽이기로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다가갔는데 둥지를 지키던 와이번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고개를 휘휘 돌리는 것을 보고는 순순히 물러났다.

    제이슨의 체향마저 감지하는 것을 보니 기척 죽이기도 쓸모가 없었다. 고대 던전의 입구가 이런 곳에 있다면 아무리 트레저 헌터들이라고 해도 찾을 수 없으리라.

    아니, 찾았다고 해도 감히 탐사할 꿈도 꾸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제이슨은 그때 저 멀리서 날아오는 와이번을 보았다. 와이번의 날카로운 발톱에 잡혀 오는 것은 검게 그을린 트롤이었다. 와이번이 적어도 예첸 산맥 내에서는 최상위 포식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이슨은 날아오는 와이번을 바라보다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아무리 와이번이라고 해도 무거운 트롤을 잡고 날아오다 보니 속도가 다른 와이번들보다 느렸다.

    제이슨은 그래서 와이번이 자신의 앞을 지나갈 때를 맞춰 도약했다. 와이번이 아닌 트롤이 두르고 있던 가죽을 쥔 제이슨은 그렇게 와이번과 함께 새끼 와이번들이 있는 둥지로 날아갔다.

    만약의 상황에는 기간트를 소환해서 한바탕 드잡이질할 계획도 있었다. 기간트에 탑승했을 때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싸운다면 아무리 와이번에게라도 쉽게는 안 당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끌며 던전 입구를 찾으면 그곳으로 도망가면 그만이다. 아무리 와이번이라고 해도 던전 안으로는 쉽게 못 들어올 테니까. 저 덩치 때문에라도.

    어깨뼈를 뚫은 발톱 때문에 저항도 못 하는 트롤을 새끼 와이번 무리에 떨어트렸다. 둥지에 떨어진 트롤에게서 제이슨은 훌쩍 떨어져서 빠르게 둥지를 살폈다.

    검게 그을린 트롤은 새끼 와이번들을 향해 포효를 터트리며 저항하려 했지만, 둥지 주위에서 떠오른 와이번들이 그 팔과 다리를 물어뜯어서 조각내버렸다.

    새끼 와이번들이 좋다고 달려들 때 제이슨은 둥지 근처에서 던전의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끼륵?

    그런데 트롤의 조각을 씹어먹던 새끼 와이번 하나가 제이슨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제이슨은 그 모습에 이런 피투성이인 곳에서 자신의 체향을 맡았나 싶어 긴장했다가 정신을 차렸다.

    트롤이 조각나면서 쏟아졌던 피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투명 망토에 형체가 드러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이 없었다. 빠르게 와이번들을 상대하면서 던전 입구를 찾아야 했다. 만약 찾지 못한다면 봐둔 퇴각 경로로 도망쳐야 했다.

    “바이슨 소환.”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이슨 소환?”

    기간트가 소환되지 않았다.

    -끼아악!

    주변의 와이번들까지 떠올랐고, 제이슨은 조금 전 조각난 트롤을 떠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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