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34화 (35/151)
  • 【34】 고대의 마법서(3)

    단테의 고문실에 놓인 물건들을 보고 제이슨은 놀랐다. 뭔가를 알아내기 위한 고문실이 아니라 이곳은 오직 고통을 주기 위해서만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형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제이슨은 가죽 주머니에 담겨 있는 것을 열어보고는 놀라워했다.

    “이거 히드라의 독인가?”

    마물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마물인 히드라의 독을 히드라의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 안에 담아 놓았다. 기간트가 나오고 나서 마물들의 위협도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히드라 정도 되는 마물이라면 대륙에서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기간트가 들어가기 힘든 오지에만 살고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놀라울 정도의 가격을 자랑하는데 그걸 고작 고문용으로 쓴다니 어이가 없었다.

    제이슨은 가죽 주머니를 들어서 단테의 어깨에 히드라의 독을 흘려주었다. 주르륵 흐르는 히드라의 독에 단테의 팔이 녹아내렸다.

    “끄아악!”

    비명을 지르는 단테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제이슨은 묵묵히 히드라의 독을 그의 양쪽 팔과 양쪽 다리에 소량만 흘렸다. 대량으로 쏟아내면 삽시간에 녹아내릴 테지만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흘려주면 고통은 극대화된다.

    비명을 내지르는 단테의 입에 고문실에 놓여 있는 동그란 구슬을 물렸다. 제이슨은 비명을 듣는 변태적인 취향은 없었기에 구슬을 물렸는데 단테는 자신의 입에 물린 구슬을 보고는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읍읍 거리는 그를 바라보던 제이슨은 구슬에 달린 작은 버튼을 눌렀다.

    철컥.

    “끄으읍!”

    단테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그 구슬이 뭘 뜻하는 건지 파악했다. 구슬에서 튀어나온 가시가 상대의 입안을 헤집는 도구였다.

    제이슨은 구슬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살짝 당겼다.

    “끄으으읍!”

    눈물을 줄줄 흘리는 단테를 바라보던 제이슨이 버튼을 다시 누르자 구슬의 가시가 안으로 들어왔다. 제이슨은 구슬을 꺼내주고는 단테의 입 안쪽을 살펴보았다.

    입안에 난 구멍에서 쏟아지는 피를 바라보던 제이슨에게 엘하르트가 옆에 놓인 작은 고리를 건넸다.

    “이건 뭐야?”

    -입에 물려주면 알게 될 거다.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군.

    제이슨은 작은 고리를 단테의 입에 물려줬다.

    치이익!

    “끄아악!”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고 제이슨이 고리를 잡아 뺐다. 그리고는 그것이 형의 혀를 태워버린 물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처가 난 곳을 급격하게 태워서 봉합하는 물건인데 이런 용도로 쓰는 줄은 몰랐군.

    제이슨은 그 말에 손에 든 구슬과 작은 고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교대로 물리면 되겠네.”

    단테가 황급히 입을 벌렸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에 제이슨은 구슬을 물려주었다. 단테의 두 눈을 바라보며 제이슨은 담담히 말했다.

    “잠깐 물고 있어.”

    단추를 눌러 가시가 튀어나오게 한 후에 부르르 떠는 단테를 무시하고 제이슨은 다리우스를 깨웠다. 의자에 묶여 있던 다리우스는 눈앞에서 고문을 당하는 단테를 보고 몸을 떨었다.

    제이슨은 그런 다리우스의 앞에 서서는 말했다.

    “클라이를 알고 있지?”

    다리우스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을 체념했다. 트랑 왕국을 뜨기 위해서 크게 한탕 했던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황. 클라이가 단테 손에서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기에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한가지 청이 있소.”

    “들어는 보지.”

    “내 모든 것을 내드릴 테니 이 던전을 열 기회를 주시오.”

    마지막 가는 길 학자로서의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나 보다.

    “네 모든 것? 바론 가문에서 훔쳐온 돈 말이냐?”

    “그 외에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이 들어있소.”

    제이슨은 양손이 잘린 그의 손목에서 여전히 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가만두면 이대로 죽을 것 같았기에 제이슨은 단테의 입에 물렸던 고리를 손목에 가져다 댔다.

    “끄흐읍!”

    억지로 신음을 참는 다리우스에게 제이슨은 속삭였다.

    “가진 모든 것을 내놓으면 편하게 죽게 해주마.”

    “그럼 이 고대 던전은 그냥 버린단 말이오? 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니 부탁드리겠소!”

    처절하게 소리치는 다리우스를 바라보던 제이슨이 엘하르트를 돌아보았다. 이 던전은 고대 골렘이 있는 던전도 아니었고,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던전은 마지막 문 하나를 남겨놓고 있었다. 고대 룬어를 술술 읽는 엘하르트가 있는 이상 들어가는 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제이슨은 히드라의 독이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를 들고 와 다리우스의 팔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자비를 내릴 때 받아.”

    “내게 마지막 문을 열게 해주지 않는다면 더는 할 말이 없소.”

    “그럼 그렇게 하던가.”

    제이슨은 다리우스의 어깨에 한 방울의 히드라의 독을 떨어트렸다.

    “끄아아악!”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마도공학자가 견뎌낼 수 없는 고통이다. 살이 녹고 뼈가 녹는 고통은. 제이슨이 두 번째 방울을 떨어트리기도 전에 다리우스가 황급하게 소리쳤다.

    “모, 모든 걸 드리겠소. 그러니, 그러니 제발 죽여주시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문에는 자신도 취미가 없었으니까.

    제이슨이 목의 고리를 풀어주자 다리우스는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걸려 있는 마법들을 해제했다. 제이슨은 그 안에 든 것들을 확인하고는 약속대로 다리우스의 목을 쳤다.

    제이슨은 그사이 팔과 다리가 반쯤 녹아 정신을 잃은 단테의 팔과 다리에 다리우스의 주머니에 있던 포션을 꺼내 부어줬다. 녹아내린 부위가 회복되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단테의 뺨을 두드려 그를 깨웠다.

    정신을 차린 단테는 자신의 팔과 다리가 회복되는 것을 보며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입에 물고 있는 바늘 달린 구슬 때문에 말은 하지 못했다.

    제이슨은 많은 양의 히드라 독을 쏟아내면 회복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적정량만 쏟아부었다. 고통을 주기에는 그것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제이슨은 단테의 입에서 구슬을 꺼내고는 고리를 물린 후에 말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

    제이슨은 그의 팔과 다리에 다시 히드라의 독을 쏟아내고는 구슬을 입에 물렸다. 일을 마친 제이슨이 엘하르트에게 고갯짓을 해 그들은 고문실을 나와 던전의 벽으로 걸어갔다.

    고대 룬어가 가득 적힌 벽을 보고 엘하르트가 팔짱을 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이게 뭔데?”

    -인간들에게 처음으로 마법을 알려줬던 ‘태초의 서’.

    “이름이 거창하다?”

    -이름만 거창한 게 아니야. 이걸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이의 손에 들어가면 이만한 물건도 없지.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야?”

    -‘태초의 서’에는 신의 의지가 미약하나마 들어있지. 그리고 그걸 이용하면 내 봉인을 단번에 네 개는 풀 수 있어.

    지금도 엘하르트는 충분히 강한데 봉인을 단번에 네 개는 풀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진짜야? 그럼 빨리 열어.”

    엘하르트가 사슬을 휘감은 주먹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부수려고?”

    -지금의 나는 마법을 쓸 수 없다. 그러니 별수 없지.

    제이슨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검을 들어 앞을 가렸다. 마지막 문인만큼 어떤 마법적인 트랩이 깔렸을지 모르니 알아서 조심해야 했다.

    그런 제이슨을 흘끔 본 엘하르트가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쿠웅!

    벽에 제이슨의 주먹이 박히자 균열이 쩌저적 일어나더니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뭔가 대단한 트랩이 준비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그저 무너져 내린 벽 뒤에 직경 20미터 정도 되는 공동이 나왔을 뿐이었다. 공동의 중앙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 한 권의 고풍스러운 책자가 있었다.

    거의 어른 상체 크기의 거대한 책자를 보고 제이슨은 감탄했다.

    “엄청 무겁겠네.”

    -신의 의지를 꺼내면 사라질 책이니 관심 가지지 마.

    “마도공학자들에게 비싸게 팔릴 텐데.”

    엘하르트가 한심하다는 듯 돌아보기에 제이슨은 양손을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엘하르트가 공동의 중앙으로 걸어가 책에 손을 얹도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이슨도 공동의 안쪽에 뭐가 있나 싶어 슬쩍 살펴볼 때 이변이 일어났다.

    ‘태초의 서’에서 찬란한 빛이 솟구치더니 엘하르트를 휘감았다. 그리고 바닥에 순식간에 나타난 마법진을 보고 제이슨은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엘하르트가 뭔가 한다고 했지만, 이렇게 즉각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엘하르트를 휘감은 빛은 물론이고 마법진에서 솟구친 빛의 사슬이 그의 전신을 옭아맸다.

    드드드드.

    어느새 본체로 현신한 엘하르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한 손으로 짚었다.

    제이슨은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엘하르트!”

    -마법진에 들어오지 마!

    “어떻게 된 거야?”

    -제길. 그때 느꼈던 것이 이것이었나?

    엘하르트는 전신을 옥죄는 마법진의 사슬을 보고는 양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마법진에서 나온 사슬 때문에 제대로 팔도 들지 못했지만, 결국 힘껏 들어 올린 엘하르트가 힘껏 양팔을 내리쳤다.

    콰아앙!

    공동 전체가 울릴 정도의 충격에 마법진의 사슬들이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지만, ‘태초의 서’에서 솟구친 빛은 엘하르트의 목에 두른 고리 위로 한 겹 더 씌워졌다.

    엘하르트가 오른손으로 빛을 움켜쥐었지만, 빛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제이슨이 그걸 보고 땅을 박찼다. 허공을 박차고 솟구친 제이슨이 전력을 다한 오러 블레이드로 엘하르트의 목을 감싼 빛의 고리를 내리쳤다.

    쩌엉!

    전력을 다한 오러 블레이드로도 자그마한 흠집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제이슨이 빛의 고리에서 전해진 반탄력에 튕겨 날아가 바닥을 굴렀을 때 엘하르트가 어떻게든 빛의 고리를 벌리며 소리쳤다.

    -제이슨! 이대로는 재봉인이 되고 만다.

    제이슨이 진탕된 내부를 다스릴 틈도 없이 재차 달려들 때 엘하르트가 손이 잘려나간 팔을 내밀며 말했다.

    -봉인을 피할 방법은 하나뿐이야.

    제이슨이 엘하르트의 앞에 멈췄다. 엘하르트가 제이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계약만이 재봉인을 피할 수 있다.

    “계약하자고?”

    -그래. 하지만 네가 계약자로서의 조건을 만족할 때까지 난 현신이 불가능할 거다.

    “무슨 소리야?”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시간이 없다. 따라 해.

    최대한 빛의 고리를 잡아 늘이며 왼팔을 내민 엘하르트가 소리쳤다.

    -나 엘하르트는 태초의 신 ‘엘’이 세계와 약속한 태초의 언약에 따라 제이슨 폰 바론과 계약을 하고자 한다.

    제이슨은 엘하르트가 내민 왼손을 향해 왼손을 내밀며 그 말을 따라 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나 제이슨 폰 바론은 태초의 신 ‘엘’이 세계와 약속한 태초의 언약에 따라 엘하르트와 계약을 하고자 한다.”

    두 가닥 빛의 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동굴 안에 어떻게 이런 이적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할 틈도 없이 그 빛의 기둥이 둘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엘하르트가 인간의 형태로 돌아왔다. 전과 다르게 목에 균열이 간 빛의 고리를 두른 엘하르트가 제이슨의 왼손을 잡고는 말했다.

    -억지로 계약을 맺어 당분간은 연결조차 힘들 것 같다.

    “어떻게 된 거야?”

    -도망···.

    “뭐?”

    빛의 기둥이 사라지고 엘하르트의 모습도 사라졌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엘하르트에게 뭔가를 물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수작 때문에 엘하르트가 재봉인 당할 뻔했고, 그 대신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엘하르트를 재봉인하려 한 자가 찾아오리라.

    제이슨은 단방향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 장치를 꺼내 작동시키고는 품에서 마나 폭탄도 하나 꺼냈다. 빛이 자신을 휘감을 때 제이슨은 마나 폭탄을 공동의 중앙을 향해 던졌다.

    제이슨의 몸이 사라진 순간 마나 폭탄이 공동의 중앙에 떨어졌고,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콰콰콰쾅!

    빛이 사라지자 제이슨은 자신의 훈련소에 돌아왔다. 둘이 갔다가 홀로 돌아온 상황. 제이슨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엘하르트.”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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