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31화 (32/151)
  • 【31】 반갑다

    히어로급 기간트의 출력이 뛰어나다고 하나 스무 기의 나이트급 기간트를 향해 돌진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래서 검은 투견 기사단의 기사들은 방패를 소환해 방어를 굳히고 방진을 짰다.

    코어의 출력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나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 히어로급 기간트가 독주하던 시대는 끝났다.

    검은 투견 기사단의 탈리아 세 기가 방패로 공격을 방어하고자 나섰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전력이었으니까.

    그런 그들의 앞에서 바이슨의 거대한 양손검 위로 불꽃처럼 터져 나오는 것을 본 이들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마스터들의 전유물인 오러 블레이드였다. 정확히는 마스터의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거나 하지 않았지만, 그 위력은 섬뜩했다.

    황급히 뭉쳐있던 세 기의 탈리아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보다 오러 블레이드가 빨랐다.

    쯔가각!

    방패째로 세 기의 탈리아가 베어졌다. 무너지는 세 기의 탈리아를 보면서 황급히 거리를 벌린 이들은 투척용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투척용 도끼가 날아들자 바이슨은 양손검으로 날아드는 도끼들을 쳐내고는 가장 가까운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오러 블레이드의 사용은 시간적 한계가 있으니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목표가 된 탈리아는 뒤로 물러났고, 다른 이들은 투척용 도끼를 재차 던졌다.

    하지만 바이슨의 돌진 속도가 그들의 예상을 넘어섰다. 아무리 히어로급 기간트라고 하지만 저런 덩치의 기간트가 낼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섰다.

    쯔각.

    또 한 기의 탈리아가 파괴되었을 때 처음으로 검은 투견 기사단의 머릿속에 공포가 자리를 잡았다.

    위이이잉.

    분노가 머리를 뜨겁게 달궜을 때 제이슨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엘하르트에게 퍼붓듯이 오러를 쏟아냈다. 제이슨의 과도한 오러를 받아들인 바이슨의 코어가 비명을 내질렀지만, 오버 히트된 코어는 평상시 바이슨의 움직임을 상회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해졌다.

    그러나 부족함을 느꼈다. 엘하르트와의 연결을 통해서 느꼈던 것에 비하면 도구의 미흡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거면 충분하다.

    이 검은 투견들을 베어 넘기는 데는.

    사방에서 투척용 도끼들이 날아들었지만, 제이슨은 그 모든 것이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날아드는 투척용 도끼들 사이로 바이슨을 이끌었고, 그 경로에 걸리는 탈리아가 하나씩 쓰러졌다.

    벌써 일곱 기의 탈리아가 쓰러졌고, 제이슨은 흩어져 있는 탈리아를 쫓아 달렸다. 넓은 공터에서 사방에 흩어져 있던 탈리아 간의 간격이 점점 넓어지고 그들은 공격보다 방어에 집중했다.

    수적으로 압도하고 있었음에도 머릿속에 들어온 공포는 그들을 방어에 집중하게 했다.

    이미 오러 블레이드는 뽑아내고 있지도 않았다. 기간트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기간트에 오르기 전에는 못 느꼈던 것이었다. 엘하르트와 싸울 때 그가 펼치던 모든 공격은 마치 그리되어야 했던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지금 제이슨은 그걸 느꼈다. 자신이 노리는 공격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마음. 그리고 그것이 이뤄지면서 자신감이 넘쳤다.

    분노를 연료로 삼아 오러를 끌어올렸고, 기묘한 감각으로 펼치는 검 앞에서 탈리아는 손쉽게 허물어졌다. 한 기에 일검 이상을 쓰지 않았다.

    마치 합을 짜고 펼치는 것처럼 그려지는 검술 앞에서 탈리아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한 기의 기간트가 쓰러질 때마다 검은 투견의 기사들은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제실력을 발휘 못 하는 그들은 제이슨의 검을 감당하지 못했다.

    레이나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제이슨이 벌이는 일을 보았다. 자신도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로서 기간트를 타고 도와야 하나 했는데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열세 기의 기간트를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히어로급 기간트라고 해도 혼자서 나이트급 기간트 다섯 기를 상대하면 그것만으로도 엘리트라고 부른다. 코어의 출력은 두 배 이상 차이 난다고 해도 기간트는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오러 유저와 엑스퍼트 사이의 간격을 좁혀준 것은 기간트의 발전이었다. 맨몸으로 싸운다면 오러 유저가 홀로 열 명 이상의 엑스퍼트를 쓰러트릴 수 있지만, 기간트로 싸운다면 다섯 기를 상대하기도 힘들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지금 열네 번째 기간트가 쓰러지면서 나머지 기간트들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이슨은 그들을 도망치게 놔둘 마음이 없었나 보다.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던 투척용 도끼들을 발로 차서 날려 도망치는 기간트 한 대의 다리 관절에 꽂히게 하는 기예를 보이더니 양손검을 던져 또 하나의 기간트의 등을 관통했다.

    어떤 무기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졌고, 마치 투척술을 평생 갈고 닦은 마냥 기간트에 적중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희한한 놈이군.”

    “그런 평가로 끝날 문제가 아니죠. 미남 오빠. 제이슨이 군 시절에도 잘 나갔지만,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블랙 아울은 미친 들소의 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아군의 전력 파악은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었으니까. 만약 제이슨이 저만한 기간트 라이딩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벡스 장군이 그를 놓아줄 리 없었다.

    벡스 장군이라고 해도 나이트급 기간트 열을 상대할 수 있을까?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아니라면 기간트간의 싸움에서 그런 기록적인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제이슨은 어떤가? 전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레이나가 놀라워하는 사이에 엘하르트는 부축하고 있는 제이슨의 형 클라이를 추스르며 제이슨이 날뛰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가르쳐도 모르더니 기간트를 타고는 깨달았나 보다. 그것도 저런 저급한 수준의 기간트를 타고 깨달음을 얻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반쪽짜리인가?”

    엘하르트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모든 기간트를 쓰러트린 제이슨이 바이슨을 탄 채 걸어왔다.

    레이나는 제이슨이 기간트를 역소환하지 않고 다가오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제이슨은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절망의 뇌옥을 내리쳤다.

    콰르릉!

    절망의 뇌옥이 무너져 내렸다.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지만, 제이슨은 개의치 않았다. 높이 들었던 검이 다시 한번 절망의 뇌옥을 내리쳤다.

    콰릉!

    알제리 왕국의 역사와 함께 해왔던 절망의 뇌옥이 무너지는 모습에 레이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무너진 뇌옥 안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죄인들. 그들은 밖으로 나와서 무심하게 검을 내리치는 바이슨을 올려다보았다.

    평생을 벗어날 수 없다고 알려진 뇌옥이 무너지고 있었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깔려 죽은 이들도 있었지만, 살아나온 이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모두 기적으로 느껴졌다.

    레이나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온갖 흉악범과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자들. 쉽게 죽이지 못하고 이곳에 처박아 놓아야 됐던 자들.

    그들이 한 사람을 중심으로 뭉쳐있었다. 레이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장대한 체구에 하얀 수염의 사내.

    현 국왕의 숙부로 전대 국왕의 동생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그를 두려워 한 전대 국왕이 가둬 놓은 롤로 공작이었다. 그가 갇힌 지 벌써 이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살아있었다.

    블랙 아울은 클라이가 이곳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큰 그림을 그렸다. 제이슨이 클라이를 구하는 사이에 침투 요원은 롤로 공작에게 접근했다.

    그가 무사히 무너지는 뇌옥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주위에 있는 이들이 무사한 것도 그들 사이에 말없이 섞여 있는 침투 요원 덕분이리라.

    그를 꺼내고 알제리 왕국에 내란을 일으킨다. 더는 동부전선에 신경 쓸 수 없도록.

    절망의 뇌옥을 형체도 남기지 않고 부수고 짓밟은 제이슨은 바이슨을 역소환하고 내려왔다. 그런 제이슨의 곁으로 롤로 공작이 다가왔다.

    “내 숙원을 풀어주었군.”

    제이슨은 다가오는 그를 향해 검을 겨눴다. 롤로 공작의 뒤편에 서 있던 자들이 앞으로 나섰지만, 롤로 공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제이슨은 개의치 않았다.

    “꺼져.”

    죄수복을 입고 있기에 제이슨은 그들을 베지 않았다. 롤로 공작은 제이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클라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큰 도움을 받았고, 그걸 갚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바를 알려주었다.

    “저 친구. 일주일 전에 잡혀 왔지. 간수들의 말을 듣자니 프레이 백작의 영지에서 보냈다는 말만 들었네.”

    제이슨의 눈이 롤로 공작을 향했다. 롤로 공작은 그 눈빛을 그대로 받아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제이슨은 검을 거두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제이슨.”

    “그 이름을 잊지 않도록 하지. 나는 롤로라고 하네.”

    “롤로 공작?”

    “20년도 전의 작위일세.”

    제이슨도 기억하는 이름이었지만, 그뿐이다. 그와는 엮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프레이 백작의 이름만 기억한다.

    제이슨은 엘하르트에게서 형을 받아 안고는 코어 카트를 꺼내서 올라탔다. 레이나는 자신의 코어 카트를 꺼내고는 엘하르트를 돌아보았다.

    “미남 오빠. 이번에는 내 뒤에 타.”

    “그러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롤로 공작이 뒤돌아서 섰다.

    “그럼 이야기를 마저 들어볼까?”

    블랙 아울의 침투 요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단방향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서 단숨에 영지로 돌아온 제이슨은 형의 상태를 곧장 알릴 수 없었다. 제이슨은 혼절한 그를 연구소로 데리고 갔다.

    제이슨이 데리고 온 클라이의 상태를 보고 조안나는 놀라서 기절했다. 아직 제대로 된 전장의 흉험함을 경험하지 못한 그녀는 돌아온 클라이의 모습을 감당하지 못했다.

    제이슨은 클라이를 살피는 로크에게 물었다.

    “회복은 불가능하겠지?”

    “팔이 잘린 게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팔을 녹였어요.”

    로크의 대답에 제이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녹였다고?”

    “예. 그것도 천천히.”

    제이슨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로크는 잠든 클라이의 입을 열어 안을 살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혀도 회복 불가능하게 잘라내고 태웠어요.”

    “혀를 태워?”

    로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어 클라이의 머리카락 안쪽을 살폈다. 그리고는 그곳에 그려진 마법진을 보고는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금제가 걸려 있어요.”

    “금제?”

    “여기 봐봐요.”

    제이슨은 로크가 보여준 곳에 난 마법진을 볼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자라서 가려졌다고 하나 그 안에 그려진 마법진을 보니 금제가 확실했다.

    “풀 수 있겠어?”

    “마법 패턴을 분석하면 풀 수는 있을 텐데 오래 걸릴 거예요.”

    제이슨은 잠들어 있는 형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팔을 녹이고, 혀를 잘라낸 후에 태워버렸다. 그리고 뭔지 모를 금제까지 걸었다는 거야?”

    “형.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뭐였을까?”

    제이슨은 그 말에 담담히 답했다.

    “다리우스를 찾았나 보네.”

    “다리우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로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형을 보살펴줘.”

    “형. 어디 가게?”

    “다녀올 곳이 있다.”

    제이슨은 연구소를 나가며 문에 기대고 서 있는 엘하르트를 지나치며 말했다.

    “가자.”

    -어디로?

    “그 미친 새끼 잡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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