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29화 (30/151)

【29】 재회(1)

조안나의 결정에 로크는 신이 나서 그녀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해주기 바빴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보면서 살짝 걱정도 됐다.

로크는 미친 들소에서 누구 하나 자신의 의견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었으니까. 그때는 그의 어려운 말에는 주먹으로만 답해주던 사람들만 있었다.

엘레나가 그나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녀는 미소 지으면서 귀만 기울였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심정을 느낀 로크는 점점 말수가 줄어갔다.

그랬던 로크가 이제 또래에 같은 부분을 이해하는 조안나에게 말을 해줄 수 있다는 것에 기뻐서 두서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로크가 신나서 떠드는 것을 보고는 캐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지금 당장은요.”

캐리가 보기에도 지금 당장은 뭔가를 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캐리가 제이슨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기간트 훈련장에 설치된 연구소를 나오면 기사들의 체력 단련장이 있다.

요즘 제이슨이 매일 같이 엘하르트와 대결을 하면서 얻어 맞는 곳. 오늘은 조안나의 마나 친화도 검사 때문에 하루 쉰다고 말했었다.

체력 단련장을 돌아보던 캐리에게 자리를 권한 제이슨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찻주전자와 찻잔을 꺼냈다. 아버지가 차를 즐겨 마셨던 탓인지 제이슨도 대화를 나눌 때는 차를 마시는 것을 선호했다.

마시지 않는다고 해도 향이 좋았다. 조용히 차를 끓이는 제이슨을 캐리가 바라보다가 물었다.

“여기서 매일 훈련 중이었죠? 비명이 매일 들렸어요.”

“비명까지는 아닐 겁니다. 신음 정도겠죠.”

캐리가 낮게 웃는 사이 차를 끓인 제이슨이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차향을 맡은 캐리가 한 모금을 마시는 사이에 제이슨은 그녀에게 초콜릿도 한 상자 꺼내줬다.

엘하르트가 좋아하는 단맛과 다르게 제이슨은 다크 초콜릿을 좋아했다. 쓴맛에 가까운 초콜릿을 꺼내놓으니 캐리가 하나 맛을 보더니 진한 미소를 지었다.

“초콜릿 취향이 맞네요.”

“입에 맞다니 다행입니다.”

제이슨은 캐리의 앞에 앉아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로크의 누나로 그가 연구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서 불렀지만,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로크를 믿었고, 그가 믿는 그녀를 믿었으니까.

흑마도공학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캐리와 로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제이슨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흑마도공학자들의 공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떳떳하게 공방을 차릴 수는 없죠.”

“제가 아는 건 로크와 캐리. 이렇게 둘입니다. 동부전선에서는 흑마도공학자라고 해도 대우가 나쁘지 않았죠. 벡스 장군은 로크에게 아낌없이 지원을 해줘서 그가 얼마나 큰 전력이 되는지 알았습니다.”

“로크가 운이 좋았죠.”

“지원만 잘 받는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살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게 어렵죠. 흑마도공학자들을 지원해주는 이들은 없으니까요.”

“제 동생에게는 제가 있습니다.”

캐리는 제이슨의 말에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부럽네요.”

제이슨은 캐리의 시선을 그대로 받으며 물었다.

“제 동생에게 적어도 연구실을 차려주고 원하는 것들을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스승님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연구실을 차려주려면 지금 로크가 가진 수준의 연구실이 필요해요. 꽤 많은 골드가 들어갈 겁니다.”

“얼마나 들까요?”

“고위 흑마도공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양식장이 필요해요. 그것만 100만 골드가 든다는 건 알고 있죠?”

“알고 있습니다. 다른 건 또 뭐가 있습니까?”

“자잘한 것들도 있지만 흑마법에 쓰일 재료들도 구해야 해요. 그리고 그건 정상 경로로는 구할 수 없어요.”

“양식장을 만드는 데도 암시장을 이용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잘 아시니 다행이군요. 아시다시피 암시장에서 물건을 구하면 꽤 비싸죠.”

“그거야 제가 감당하죠.”

캐리는 담담히 대답하는 제이슨을 빤히 바라보았다. 캐리는 찻잔을 집어 들어 한 모금을 마시며 중얼거렸다.

“부럽네요.”

제이슨은 그녀를 따라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캐리의 큰 눈을 직시했다. 빤히 바라보는 데도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로크는 동부전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겠죠. 아직 5년이 남았으니까요.”

“전 제 동생을 군에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보여요.”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제 동생을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마도공학자들이 도제식이라면 흑마도공학자는 아예 배울 기회가 없다. 그녀나 로크를 붙잡지 않는다면.

캐리는 제이슨의 제안에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답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현상범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게 맡기겠다고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도 있었지만, 제이슨은 순순히 답했다.

“저는 로크를 믿습니다. 그리고 로크는 당신을 믿더군요. 그거면 됩니다.”

캐리가 황당하다는 듯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을 떠난 지 7년이에요. 그 아이는 절 몰라요.”

“제가 믿지 말아야 한다는 얘깁니까?”

제이슨의 두 눈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처음 받아보는 신뢰의 눈빛에 캐리가 오히려 당황했다.

이 남자, 뭘 안다고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하지만 그 눈빛에 대고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캐리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은 없어요. 조언은 해주었지만.”

“알고 있습니다.”

제이슨이 이렇게 전폭적으로 믿고 들어오자 캐리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가르침에 대한 제 자율과 제 안전을 보장해 준다면 조안나를 대륙의 역사에 남을 흑마도공학자로 키워 드리죠.”

“잘 부탁드립니다.”

제이슨이 내민 손을 캐리가 굳세게 잡았다.

흑마법을 기반으로 한 흑마도공학은 마나와는 성질이 다른 음차원 에너지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마왕의 힘을 빌린다는 낭설이 있었지만, 로크에게 들은 대로라면 세상에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마나와 상반되는 에너지가 존재해 그걸 이용하는 것이 흑마도공학이라고 했다.

생기의 에너지인 마나를 이용한 원소 마법과 다르게 음차원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면 죽음에 가까운 힘을 쓰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멀리하지만, 그 효용성은 이미 로크가 입증했다.

조안나를 위해 제이슨은 캐리와 함께 암시장을 다녀왔다. 양식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음차원 에너지 집적 마법진과 더불어 그 핵을 준비해야 했다.

음차원 에너지를 실체화할 수 있는 용기등 필요한 재룟값만 100만 골드에 달했다. 시간은 덤이다.

이제 막 흑마도공학을 배우는 조안나에게 양식장을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귀중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양식장의 핵을 처음 작동시키는 흑마도공학자의 능력에 따라 양식장의 질이 달라진다고 했다.

조안나나 로크가 만든 것도 상급의 양식장이었는데 그들은 솔직히 조안나의 재능을 보고 기대하고 있었다. 어쩌면 최상급의 양식장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모든 마법진을 만들고 양식장의 핵을 가동하는 자리에서 모두 긴장한 채 조안나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제이슨도 함께했다.

“위험한 건 아니죠?”

“위험하지 않아요. 양식장에 모이는 음차원 에너지의 주인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기도 해요.”

캐리가 양식장의 보호벽에 손을 대며 조안나에게 소리쳤다.

“긴장하지 마. 배운 대로 하면 돼.”

“알겠어요.”

조안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양손으로 핵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캐리가 가르쳐준 대로 집중했다.

우우우우웅!

주변의 대기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거 진짜 안 위험한 것 맞죠?”

“그···럴 걸요?”

위이이이이잉!

점점 더 격렬해지는 소음과 함께 조안나가 손에 쥔 핵이 검게 물들었다. 제이슨이 반사적으로 아공간에서 검을 반쯤 뽑았을 때 훈련장의 문이 열렸다.

제이슨이 돌아보자 엘하르트가 안경을 쓴 채 걸어와서 그의 옆에 섰다.

-이건 또 오랜만에 보는군.

“양식장을 알아?”

-우리 시대에도 있었지.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알겠더군. 흑마법사들은 이 시대에 안 남았던데? 대륙력 1132년에 대학살 이후로 남아나지 않았더군.

“그랬어?”

-그런데 저 정도 재능을 가진 이는 그 녀석 말고는 없었는데.

“누구?”

엘하르트는 대답하지 않았고, 온통 검게 물들었던 핵에서 검은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빛마저 흡수하는 것 같은 검은 물살을 보면서 로크가 감탄했다.

“누나. 이게 믿어져?”

“솔직히 못 믿겠다.”

캐리는 양식장의 보호벽 너머로 쏟아져 내리는 검은 물살을 보았다. 조안나의 발목까지 차오른 음차원 에너지를 보며 물었다.

“너는 며칠 걸렸지?”

“사흘.”

“그래. 나도 오 일 걸렸었는데 바로 반응하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재능인가 본데?”

캐리의 중얼거림을 들은 엘하르트가 피식 웃더니 뒤돌아 나갔다.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양식장 안쪽에서 핵을 손에 쥔 채 환하게 웃는 조안나를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온 엘하르트는 문에 기대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양식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안에 모여있는 저급한 음차원 에너지를 보고는 친구를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조안나가 보여준 것은 달랐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놀라울 정도로 그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엘하르트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초콜릿을 입에 하나 넣고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 초콜릿이 오늘은 이상하게 쓴맛이 났다.

조안나의 연구실이 완성됐고, 로크와 캐리가 그녀를 가르치며 함께 작업을 해나가기로 했다. 연구실 하나를 차리는 데만 거의 200만 골드가 들었지만, 그 효용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저들이 말하는 꿈이라는 것에 완성이 되면 보여주겠다고 하기에 더 묻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나온다면 흑마도공학자들을 꿈꾸는 이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기대도 되었다.

지금처럼 괄시받고 공방이 아니라 연구실을 갖는 것이 꿈인 흑마도공학자들이 아니라 공방을 짓고,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만한 가치를 고작 200만 골드를 들여서 얻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제이슨은 조안나에 대한 일이 끝나고 다시 수련에 들어갔다. 아직도 엘하르트의 주먹은 피하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그 주먹을 피하지 못했고, 작정하고 날리는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마치 그리되어야 했다는 듯이 이뤄지는 공격.

도저히 실마리도 나오지 않고, 매일 두 눈만 시퍼렇게 멍들고 있었다.

제이슨이 바닥에 누워서 정신을 차렸을 때 엘하르트가 한마디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네 오러에 대한 재능은 제법이야. 그런데 네 실력은 형편없군. 이 정도 해도 모르겠으면 평생 모를 거야.

제이슨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 잘난 입에서 제발 나와 함께 해달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제이슨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하자. 이번에는 다를 거야.”

-그 말만 서른두 번째다.

엘하르트는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슨이 양손검을 쥔 채 뛰어들려고 할 때 헤이튼이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제이슨이 검을 내리고는 헤이튼을 돌아보았다.

“훈련 중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자신을 찾아올 이는 없다고 여겼기에 제이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보자 레이나가 헤이튼의 뒤에 서 있었다. 블랙 아울이 먼저 찾아올 일은 없었다.

“찾았어?”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네 도움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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