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28화 (29/151)
  • 【28】 캐리(3)

    마도공학자들은 이제 두 단계로 나뉜다. 마나와의 친화도가 높아 직접 설계 및 제작까지 가능한 마도공학자들과 천재적인 머리로 오로지 공학만 파고들어 설계만 하는 이들.

    설계만 할 수 있는 이들은 마도공학자들이 공돌이라고 부르면서 무시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제이슨은 우선 조안나의 마나 친화도를 측정하기로 했다. 마나 친화도만 있다면 전문적으로 마도공학을 시켜볼 생각이었다.

    도제 사회가 나쁘다고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까.

    제이슨이 조안나와 향한 곳은 바론 성 마탑 지부였다. 제이슨이 조안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무료하게 앉아있던 제시가 영업 미소를 띠며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힘차게 소리치는 제시를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바론 성은 사람들이 찾을 거리가 없다 보니 손님이 없었다. 어차피 밀 농사만으로도 먹고 사는 곳이다 보니 용병조차 드나들지 않아 파리만 한창 날리고 있었다.

    “마나 친화도 측정할 수 있죠?”

    “측정 가능합니다.”

    “그럼 측정 부탁드릴게요.”

    “잠시만요.”

    제시가 후다닥 지부의 안으로 들어가더니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대체 뭘 하려고 저러는가 싶었지만, 굳이 괘념치 않았다. 옆에 있던 조안나가 조용히 물었다.

    “오빠. 이거 통과하면 진짜 마도공학을 배울 수 있는 거야?”

    “그래.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고. 확인해 보자.”

    조안나가 기대하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씨익 웃었다. 자신이 집을 비웠던 10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싶었다. 그래도 꿈을 가졌다니 좋은 일이었다.

    “준비 다 됐습니다.”

    제시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가운데는 허리 높이까지 올라온 단에 수정구가 하나 놓여 있었다.

    “마법진 위에 올라가셔서 수정구에 손을 올리세요.”

    조안나가 두근거리는지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제이슨이 미소를 지은 채 바라봐주자 그녀는 곧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마법진 위에 올라가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시작하겠습니다.”

    제시가 마법진을 가동하자 곧 작은 빛의 입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그것들이 원을 그리며 조안나의 주위를 휘감는가 싶더니 수정구로 밀려들었다.

    화악!

    그러더니 모든 빛의 입자가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제이슨이 제시를 돌아보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어? 이런 경우는 못 봤는데.”

    “무슨 소립니까?”

    “이건 마나 친화도가 문제가 아니에요. 마나 부적응자라고 해야 할 정도인데요?”

    “마나 부적응자라면 마나 친화도가 마이너스라는 겁니까?”

    “예. 마나 집적진의 마나를 튕겨낼 정도라면 마나 친화도는 기대하지 마셔야 합니다. 오히려 마나를 접하는 것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제이슨은 제시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괜찮아. 공학을 공부해도 되는 일이니까.”

    제이슨은 제시를 돌아보며 물었다.

    “얼마입니까?”

    “아니에요. 마나 친화도가 잘 나왔다면 받을 염치라도 있지만, 마나 부적응이 나타났는데 받을 염치는 없어요. 그리고 저희 워프 게이트 주 이용 고객이시니 자주만 이용해 주세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제이슨은 마탑 지부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물었다.

    “한 가지 더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확인해 봐도 될까?”

    어딘가 시무룩해 보이던 조안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슨은 그녀를 데리고 로크를 찾아갔다. 캐리와 함께 정밀 세공을 하고 있던 로크는 조안나와 찾아온 제이슨을 보고는 작업을 멈췄다. 고글을 들어 올린 로크가 조안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쩐 일이야?”

    목소리에 반가움이 가득한 모습을 보고 제이슨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 제이슨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온 로크에게 조안나는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 설명했다.

    “마나 친화도가 마이너스라고 하더라고. 마도공학자가 될 수 없을 거라고 했어.”

    로크가 제이슨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쪽으로 온 거예요?”

    “혹시 몰라서. 그냥 공학자보다는 그게 낫지 않아?”

    그때 캐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공돌이가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공돌이가요?”

    “공돌이는 무시는 받아도 배척은 받지 않으니까.”

    뭔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동부전선에서는 오직 성과만 보았기에 다른 것은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대우가 어떨지는 생각도 못 해 봤었다.

    제이슨은 잠시 고민해보다가 조안나에게 물었다. 결정은 자신이 할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할래?”

    조안나는 로크를 바라보다가 주먹을 꼭 쥐고는 말했다.

    “해 볼래. 로크도 하는 거잖아.”

    로크는 그 말에 씨익 웃고는 말했다.

    “어차피 확인만 하는 거야. 문제 될 건 없어.”

    로크가 돌아보고 눈빛으로 의견을 묻기에 제이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크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양식장의 검은 액체를 용기에 담아서 중앙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마나 친화도 확인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거야. 용기를 이렇게 잡고 앉아있으면 돼.”

    로크가 먼저 시범을 보이자 조안나가 용기 안에서 찰랑이는 검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그저 검은 물처럼 보이지만, 마나와는 성질이 다른 음차원 에너지를 저렇게 실체화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제이슨이 바라보는 가운데 조안나가 용기를 쥔 채 눈을 감았다. 로크는 마법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편하게 있어. 시작할 거야.”

    우우웅.

    마법진이 주변의 빛을 빨아들였다. 마나 친화도를 확인할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는 작은 구체가 조안나에게 모여들더니 곧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야?”

    제이슨도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갔는데 캐리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돌아보니 캐리는 복잡한 눈빛으로 조안나를 보고 있었다.

    제이슨은 걱정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요.”

    잠깐의 침묵 뒤에 들려온 대답. 제이슨은 캐리의 시선을 따라 조안나를 돌아보았다.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조안나가 그 자리에서 용기를 손에 쥔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박!”

    로크가 외치는 소리에 제이슨은 캐리가 잡고 있던 손목을 풀고는 로크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형! 봤어요?”

    “보긴 봤지만, 설명을 해줘야 알지.”

    로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이 정도면 역대급이에요. 누나. 그렇지 않아?”

    “친화도만이라면 믿을 수 없을 정도야. 흑마도공학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봐도 될 정도로.”

    제이슨이 놀라서 돌아보자 조안나도 그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용기의 음차원 에너지가 마치 파도치듯 출렁이고 있었다.

    로크는 그녀에게 다가가 용기를 회수하고는 그 손을 꼭 잡아주었다. 조안나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못 보고 로크가 소리쳤다.

    “조안나! 이건 해야만 해. 이만한 재능을 가지고 이 길을 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배신이야!”

    따악!

    제이슨은 로크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동생에게 그 길을 가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역사에 남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자신이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자신의 동생에게 강요할 마음은 없었다.

    제이슨은 습관처럼 로크를 응징했고 멱살을 잡혔다. 제이슨은 자신의 멱살을 쥔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 동생에게 뭐하는 겁니까?”

    어금니를 깨물고 쏘아보는 캐리의 눈빛에 제이슨은 양손을 들어 보이며 사과했다.

    “사과하죠.”

    “사과는 제 동생에게 해야죠.”

    제이슨이 돌아보니 로크가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자신의 누나를 바라보며 엄지를 추켜세우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런 로크에게 정중히 말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이제 그의 선임도 아닌데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

    “와! 대박! 내가 형한테 사과를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좋냐?”

    “당연하죠!”

    제이슨은 캐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내 동생입니다. 함부로 하지 말아주세요.”

    “주의하죠.”

    로크가 환호하며 캐리에게 양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누나!”

    빡!

    거침없이 날린 주먹에 로크가 그대로 뻗었다. 깔끔한 스트레이트에 로크가 쓰러지자 제이슨은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꿀밤 한 대 때렸다고 멱살을 쥔 그녀가 날린 주먹질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건가?

    캐리는 오히려 그런 제이슨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며 당당하게 대꾸했다.

    “내 동생이에요.”

    같은 말이지만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제이슨은 대답 대신 한방에 기절한 로크를 보고는 엄지를 추켜세웠다. 그림처럼 깔끔한 주먹질이었다. 한두 번 휘둘러 본 게 아닌 솜씨.

    캐리는 쓰러진 로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조안나와 제이슨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로크의 말은 사실이에요. 솔직히 친화도만을 본다면 저나 로크보다도 월등해요. 압도적으로. 실제로 이 정도 재능을 가진 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을 정도예요.”

    “하지만 직접 말했잖아요. 공돌이가 더 나을 거라고.”

    캐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마도공학자들은 우리를 멸시하죠.”

    제이슨이 가만히 바라보자 캐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이룬 것이 없어서였죠. 지금 우리가 해낸 가장 위대한 업적이 데쓰 나이트였는데 그건 나이트급 기간트 수준밖에 안 되니까요.”

    제이슨은 반박하지 않았다. 분명 나이트급 기간트를 홀로 두 대나 운용할 수 있는 로크는 대단했지만, 자신이나 펠릭스에 비하면 언제나 전력이 낮게 평가되었다.

    캐리는 양식장으로 시선을 주었다.

    “로크와 나는 그 벽을 깰 거예요. 우리의 꿈을 이루게 되면 더는 마도공학자들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될 거예요.”

    제이슨은 그 말에 양식장에서 증식하고 있는 금속을 바라보았다. 마도공학자들이 이룬 최대의 업적은 히어로급 기간트다. 에고 기간트는 그들도 아직 흉내 내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업적을 넘어설 업적을 이룰 거라고 했다. 대체 뭘 만들고 있는 걸까?

    “끄응.”

    신음을 흘리며 일어난 로크가 턱을 좌우로 움직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왜 누워있는 거지?”

    제이슨은 그 말에 캐리의 주먹이 로크의 의식을 온전히 끊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크는 일어나다가 턱이 욱신거리는 것에 투덜거리며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형.”

    “왜?”

    “난 조안나가 흑마도공학을 배웠으면 좋겠어.”

    제이슨은 로크의 말에 조안나를 돌아보았다. 만약 흑마도공학을 해야 한다면 로크와 캐리라는 스승이 이곳에 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온전히 조안나의 몫이다.

    로크가 말을 이었다.

    “흑마도공학을 배우면서 함께 만들게 되면 그 업적을 나눌 수 있으니까. 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어.”

    제이슨은 순간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 캐리의 눈총을 받고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

    “이제 마도공학을 배워야 할 애한테 바람 넣지 마.”

    “형. 제가 어지간하면 이런 말 안 해요. 공학에 대한 부분 이해는 빠른데 이만한 재능까지 가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잖아요.”

    제이슨이 로크와 투닥거리고 있을 때 조안나가 끼어들었다.

    “오빠. 나 할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조안나가 두 주먹을 꼭 쥔 채 말했다.

    “나 흑마도공학을 배워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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