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27화 (28/151)
  • 【27】 캐리(2)

    제이슨이 돌아가고 나서 캐리는 로크가 새로운 금속에 관해서 설명하는 것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느껴졌던 아이였다. 마법보다는 흑마법에 더 적합한 재능을 지니고 있어 그 기초를 가르쳐줬었다.

    그랬던 녀석이 이제는 자신과 견주어보아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로크.”

    한창 설명하던 로크가 말을 멈추고 캐리를 돌아보았다. 캐리는 그런 로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 원망 안 했어?”

    로크는 설명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먹고 살길이 없던 로크는 군에 자원입대했다. 운이 좋아 동부전선으로 배치되었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벡스 장군이 아니었다면 아낌없는 투자를 받아서 이만큼 빠르게 성장도 못 했을 테고, ‘미친 들소’의 팀원들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흑마도공학이라고 불리는 것은 대륙에 알려지지 않았다. 벡스 장군이야 전장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받아들였지만, 마탑에서도 인정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고군분투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캐리가 로크에게 연락을 취했다. 군에 전해져 온 소포에 들어있던 수정구에서 캐리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녀에 대한 미움보다 막혔던 흑마도공학에 대한 해결책이 목말랐던 로크는 그녀와의 연락을 통해서 데쓰 나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뒤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연락을 취해 왔었다.

    로크는 잠시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와 이렇게 만난 것은 헤어진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실 이번에 양식장에서 에고 기간트의 금속이 증식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누나를 불렀다.

    어쩌면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누나를 불렀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라면 누나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간극을 넘어서서 만난 그녀와 통신으로 하듯 새로운 금속에 관해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꿈꾸던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어색함을 잊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누나가 정확히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로크는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했지. 굶주림에 배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너무 일찍 알았거든. 하지만 군에 있을 때 누나가 먼저 연락했을 때 많이 힘들 때였거든. 누나 덕분에 위로가 됐어.”

    로크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가족은 가족이더라고. 지금은 원망하지 않아.”

    캐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크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다 컸네.”

    로크는 등에 전해진 충격에 신음을 흘리고는 물었다.

    “또 떠날 거야?”

    “하는 거 봐서.”

    캐리는 로크의 머리에 팔꿈치를 올린 채 연구소를 돌아보았다.

    “좋은 연구소를 얻었네.”

    로크는 그 말에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연구소를 돌아보았다. 15살. 이 나이에 이만한 장비들을 얻는다는 것은 마탑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마탑의 마도공학자들은 위계를 따지는 자들이었으니까. 능력 위주보다는 자신의 파벌을 중시하는 자들이었다.

    도제식 가르침이 가진 문제점이었다.

    반면 벡스 장군은 그런 것 따지지 않고 아낌없이 지원해줬다. 그래서 이 나이에 이만한 연구소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결과물로 보답해야지.”

    캐리는 혀로 입술을 핥고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역사에 한 획을 그어보자.”

    그녀가 고글을 꺼내쓰자 로크가 지금까지 알아온 금속에 대한 특징들을 설명해주기 시작했고 캐리도 더는 흘려듣지 않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캐리가 했던 말이 귀에 맴돌았다.

    흑마도공학자로서 현상범이자 도망자인 그녀는 아직도 꿈을 꾼다. 로크도 그 꿈에 동참하고 있었다.

    꿈을 가진 이들은 그 자체로 빛이 났다. 그녀는 단순히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좇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빛이 났다.

    제이슨은 훈련장의 중앙에 누워 있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양손검을 들어서 하늘을 겨눈 채로 가만히 누운 제이슨은 그 검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양손검도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미친 들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쓰던 무기도 이것이 아니었으니까.

    혼혈이 아닌 제이슨은 특별한 능력이 따로 없었다. 순혈의 오러 유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드물기가 가뭄에 콩 나는 듯했다.

    펠릭스를 만나고, 벡스 장국도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무기라고 받은 것이 양손검이었고, 스스로 전투에서 실전 검술을 익혔다.

    군 시절에는 검술과 오러에 대한 수련을 오직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해왔다. 그렇게 쌓아 올린 실력이 지금의 수준이었다.

    그때의 꿈이라면 전역이었다. 전투에 지쳤다고 여겼으니까. 명령에 따라 싸우는 것에 지쳐있었다.

    그렇게 쫓아가던 꿈을 이뤘다. 전역했고, 가족에게 돌아왔지만 뒹굴고 싶다던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다시 싸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전투에 지친 것이 아니었다. 명령을 따라서 싸우는 것에 지쳐갔다. 오직 명령에 따라서 치르는 전투에 지쳤을 뿐 전투 자체는 즐겼다.

    “싸우는 것을 즐기게 된 건가?”

    위기 상황에서도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짜릿함을 느꼈다. 가만히 양손검의 검극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어와 양손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 미세한 감각을 느끼며 제이슨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외면했던 자신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제이슨은 결심을 굳히고 엘하르트를 찾아갔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옆에 초콜릿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책장을 넘기고 있는 모습은 여유로웠다.

    그런 엘하르트의 앞에 선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엘하르트.”

    엘하르트는 책장을 넘기던 손길을 멈추고 시선을 들어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은 그 눈빛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도와줘.”

    엘하르트는 조용히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꽂은 엘하르트가 빤히 바라보았다.

    -뭘?

    “열 제이슨이 되어야겠어.”

    엘하르트는 제이슨이 하는 말에 되물었다.

    -왜?

    “어차피 즐겨야 한다면 더 큰물에서 즐겨야겠으니까.”

    -재미있군.

    “도와줄래?”

    엘하르트는 대답 대신 곧장 훈련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마주한 뒤에야 말을 꺼냈다.

    -난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다.

    “그래 보여.”

    -친절한 가르침은 기대하지 마.

    “그런 기대 따위는 안 해.”

    엘하르트는 훈련장에 놓인 무기들을 보다가 물었다.

    -뭘 도와줄까? 채찍?

    제이슨은 대답 대신 양손검을 뽑아 들고는 말했다.

    “우선 네가 나는 상대할 수 있다는 말부터 확인하고.”

    엘하르트는 제이슨을 빤히 바라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진즉에 말하지 그랬어? 때려달라고.

    제이슨은 바닥에 누워서 헛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돌리니 훈련장 한쪽에서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엘하르트가 눈에 들어왔다. 제이슨의 시선을 느꼈는지 엘하르트가 책을 덮으며 물었다.

    -깼나?

    지금은 자신 정도는 감당한다고 했을 때 농담이라고 여겼다. 그만큼 자신도 있었고, 결심도 굳혀서 제대로 붙어봤는데 엘하르트의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았다. 엘하르트가 자신의 검을 피해내는 것부터 뻗는 주먹까지 보았는데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마치 그리되어야 했던 것처럼 이뤄진 일격이었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제이슨이 몸을 일으키며 턱을 쓰다듬었다. 대체 무슨 기술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기에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네 문제가 뭔지 알아?

    “뭔데?”

    -실전 검술이라는 거지.

    “그게 왜?”

    지금까지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위기 상황에서 바로바로 터져 나오는 감각적인 검술.

    -명확한 한계가 있지. 그건 칼부림일 뿐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지금은 제대로 된 명가가 없나? 무의 극의를 보고자 하는 이들?

    제이슨은 그 말에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 왕국에는 없지만, 몇 개의 가문이 있지. 에고 기간트의 주인들이 대부분 그런 가문의 가주인 것 같네.”

    -그나마 다행이군.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니.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너 설마 마스터들은 모두 너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거야?”

    -그들 정도 되어야 나와 비슷한 시각에서 볼 수 있겠지.

    제이슨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엘하르트에게 말했다.

    “가르쳐 줘.”

    -말했듯이 난 가르치는 재주는 별로 없다.

    엘하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나면서부터 그 수준에 이르러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이 수준에 오를 수 있는지는 가르쳐 줄 수 없어.

    “워! 순간 재수 없었던 것 알아?”

    -하지만 네가 깨달을 때까지 보여줄 수는 있지.

    제이슨이 자기도 모르게 턱을 만졌다.

    “그거 계속 때리겠다는 말이지?”

    -몸으로 느껴야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으니.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른 꿍꿍이는 없는 거지?”

    -내가 널 때려서 얻는 것이 뭐가 있겠나? 나도 귀찮음을 감수하고 하는 일이다. 싫으면 말아라.

    “싫다는 건 아냐.”

    제이슨은 다시 양손검을 들고 엘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오러 유저들과 마스터들은 에고 기간트의 존재 여부가 가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인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완성도 또한 마스터들과 오러 유저들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다면 그들은 기간트가 없어도 충분히 강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욱 그곳에 도달해보고 싶었다. 그 앞길에 엘하르트의 주먹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걸 뛰어넘어 자신도 엘하르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제이슨은 시작하기 전에 물었다.

    “너 처음에 나한테 맞았던 것은 어떻게 된 거야?”

    -묶여 있었으니까.

    묶여 있는 놈을 때렸다는 말에 제이슨은 슬쩍 얼굴을 붉히고는 말했다.

    “좋아. 그럼 또 간다.”

    제이슨은 벼락처럼 달려들며 양손검을 휘둘렀고, 엘하르트는 부드럽게 공격을 피하며 주먹을 날렸다.

    빡!

    아침 식사 자리에 나온 제이슨은 양쪽 눈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그런 제이슨을 보고 트레버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훈련 중이에요.”

    “훈련? 누구한테 얻어맞은 것 같은데?”

    제이슨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브렐리아나가 제이슨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그레이스는 갑자기 사라졌나 보더구나.”

    제이슨은 담담히 답했다.

    “워낙 바쁜 몸이잖아요. 대륙 3대 용병단을 이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렇겠구나. 그럼 어제 마차로 데리고 온 미인이 있다던데. 식사 초대는 안 하니?”

    제이슨이 답하기 전에 조안나가 얘기를 꺼냈다.

    “로크의 누나라고 하시는데 굉장한 마도공학자 같아요.”

    “그러니? 어려 보이는 데 대단하구나.”

    “둘의 얘기를 따라가기조차 힘들었어요.”

    그 말은 거의 따라갔다는 말과 같았다. 제이슨은 새삼 조안나를 바라보았다. 트레버도 그 말에 관심을 보였다.

    “조안나. 마도공학을 공부한 적이 있니?”

    “책으로만 보다가 로크에게 많이 배우고 있어요.”

    트레버는 새삼 놀랐다. 마도공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아는 그였기에 딸의 말에 급관심을 가졌다. 예전이라면 딸이 마도공학을 하고 싶다고 해도 시켜줄 수 없었다.

    도제식으로 가르침을 전수 해서 스승에게 막대한 돈을 줘야 했으니까. 빚에 눌려 살던 때에는 하고 싶다고 해도 시켜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늦어도 내년부터는 예전의 성세를 되돌릴 수 있을 테니까.

    “마도공학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니?”

    트레버의 질문에 조안나는 잠시 주저하며 나이프를 만지작거렸다.

    “···예. 배워보고 싶어요.”

    트레버가 제이슨을 돌아보고는 물었다.

    “도제식으로 배워야 한다고 들었다. 혹시 믿고 맡길만한 이가 있을까?”

    제이슨은 조안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창 사교계에 나가서 춤을 추고 즐겨야 할 나이에 마도공학을 해보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미소가 그려졌다.

    자신의 꿈을 좇는 이들은 언제나 빛났다.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