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26화 (27/151)

【26】 캐리(1)

“무슨 문제인데?”

엘하르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동부전선에 나타났다는 에고 기간트가 있었지?

“응. 엘렌이라고 했던가?”

-맞아. 사도마다 특별한 능력이 있지만, 그녀의 능력은 어쩌면 지금 시기에 적응하는데 가장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무슨 능력인데?”

-기억을 읽는 능력. 사물과 사람을 가리지 않아.

제이슨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물의 기억을 읽는 것은 정령들의 도움을 얻으면 가능하지만, 사람의 기억을 읽기는 쉽지 않다.

“확실히 적응은 쉽겠네.”

-그런 그녀가 동쪽에서 힘을 개방했어. 거리가 멀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현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진짜? 기억을 읽는다면서 현신했다고?”

-그래. 에고 기간트가 가지는 위치를 알면서 현신했으니 더 문제지.

제이슨은 그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한 번 알아봐야겠네.”

대륙에 다섯 기만 존재하는 에고 기간트. 그런데 주인 없는 에고 기간트가 나타났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두의 주목을 끌 만한 일이다.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현신하지 않고 어디까지 상대할 수 있어?”

-열 제이슨 정도?

“농담하지 말고.”

엘하르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지금 내 상태로는 너 하나 정도가 전부겠지.

“지금 네 상태는 봉인이 된 상태잖아. 그런데도 날 상대할 수 있다고?”

-네 수준이 딱 그 정도다.

제이슨은 처음 엘하르트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의 공격은 특별하게 빠르지도 않았는데 피할 수 없었다. 마치 그렇게 되기라도 하기로 약속한 것처럼 발에 차여 떨어졌던 기억이 있었다.

“그럼 엘렌은 어때?”

-전투에 특화된 녀석은 아니지만 너 하나는 상대할 수 있겠지.

“그런데도 현신했다고?”

지금 제이슨은 오러 유저들 중에서도 상위에 든다. 직접 싸워보지 않았지만, 이제는 벡스나 펠릭스와도 싸울 수 있겠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런 자신을 에고 상태로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이것들은 모두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들이었다.

“현신한다고 해도 가동 시간이 짧지 않아?”

-가동 시간은 짧을 테지만, 본신의 힘을 다 내겠지.

“그러니까 그 힘을 꺼낼 만큼 일이 있었다, 이거지?”

-그래.

“그 정도 사건이었으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떻게든 밝혀지겠지.”

엘하르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참고로 녀석은 원하는 형태로 변할 수도 있다.

제이슨이 그 말에 멈칫했다.

“그게 가능하다고?”

기억을 읽는 에고가 변하는 것까지 가능하다면 무슨 짓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에고 기간트로 현신한 것보다 그쪽이 더 문제였다.

“그럼 그 녀석을 어떻게 찾지?”

-만나면 에고 상태라도 느낄 수 있을 거다. 너는 나의 기감을 얻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 기감은 어떻게 된 거야? 엘렌이라는 녀석한테만 반응하는 건가?”

-나도 조금 이상하게 느끼고 있어. 아직 봉인이 덜 풀려서 그런가? 그 녀석만 느껴지니까.

“혹시 너 엘렌이랑 연인 사이거나 그러지 않았지?”

-싱거운 소리군.

제이슨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우선은 알아보도록 할게. 문제는 해결해야지.”

엘하르트는 손을 휘휘 내젓고는 다시 안경을 꺼내 쓰고는 책을 펼쳤다. 제이슨은 책 제목을 보고는 물었다.

“‘기간트의 역사’? 뭐 그런 걸 보고 있어?”

-뭐 좀 알아볼 것이 있어서.

엘렌이라는 에고 기간트가 현신했다면 그 정보는 어떻게든 알려지게 되어 있다. 알제리 왕국 방향이기에 제이슨은 블랙 아울에 형의 소식을 물으면서 넌지시 물었는데 그런 소식은 없다고 했다.

에고 기간트가 나타났다면 대륙이 들썩일 일이라고 오히려 레이나가 너스레를 떨었다.

제이슨은 형의 소식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훈련장으로 가서 그레이스에게서 얻은 갑옷을 확인해 보았다. 엘하르트의 뿔에 뚫렸던 부위가 워낙에 커서 자체 수복 중인데도 아직은 흉물스럽게 옆구리 부위가 회복 중이었다.

그때 훈련장으로 찾아온 로크가 제이슨이 입고 있는 갑옷을 보고는 놀라워했다.

“형! 그거 리오 공방에서 만든 펠타 갑옷 아니에요?”

“맞아. 자체 수복 중이야.”

“와! 이걸 입고 다니는 정신 나간 인간을 볼 줄은 몰랐는데.”

제이슨은 로크의 목을 휘어 감았다.

“뭐 임마?”

“아악! 그거 가격 형도 알잖아요!”

“알지. 비싸서 살 수 없지만, 있으면 좋다는 것 정도는 알지.”

“뭐 그렇기는 한데. 가성비가 나빠서요.”

“명품이 다 그렇지 뭐.”

제이슨이 덤덤히 답하자 로크는 비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형. 그보다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어요.”

“부탁? 무슨 부탁?”

로크가 주저하다가 말했다.

“누나를 불러도 될까요?”

“누나? 너 누나도 있었어?”

“예.”

“예쁘냐?”

로크가 짜게 식은 눈으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이 그 눈빛을 보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건 군 생활할 때 말했어야지.”

“별로 친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왜 불러?”

“연구에 누나 도움이 필요해서요.”

제이슨은 그 말에 조금 놀랐다. 로크는 마도공학자 중에서도 천재로 꼽을 수 있는 이다. 그런 그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니 믿을 수 없었다.

“너보다 똑똑해?”

“아뇨!”

발끈하는 로크를 보고 제이슨은 확신했다. 누나라는 이도 보통 인물이 아닐 거라는 것을.

“부르면 와?”

“올 수밖에 없는 미끼가 제 손에 있으니까요.”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그럼 불러.”

“진짜 불러도 돼요?”

“왜? 문제 있어?”

“조금요.”

제이슨이 로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

“누나는 현상범이에요.”

“현상범? 현상금이 얼만데?”

로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궁금해요?”

“그래. 얼마짜리인지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지니까.”

“3천 골드였던가?”

“잡범이네.”

로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 정도면 문제없어. 잡으러 오는 이들도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닐 테니까.”

“고마워요.”

로크가 손을 흔들고 가기에 제이슨이 그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네 누나 예쁘냐고!”

“몰라요!”

로크가 후다닥 도망치기에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갑옷을 해체했다.

“짜식. 군 생활할 줄 모르네.”

누나가 있었다면 진즉에 말했어야 했다. 그래야 군 생활 조금 덜 굴렸을 테니까.

로크의 미끼가 효과가 좋았는지 그의 누나는 워프 게이트를 타고 그날 저녁에 찾아온다고 했다. 현상범이 떳떳하게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에 어이가 없었지만, 제이슨은 로크와 함께 그녀를 마중 나갔다.

마탑 지부의 앞에서 기다리며 제이슨이 물었다.

“불편한 건 없어?”

“필요한 것들은 다 챙겨오기도 했고 조안나가 잘해줘요.”

“응?”

제이슨이 로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안나랑 얘기하냐?”

“가끔 간식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그래요. 게다가 얘기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똑똑하더라고요.”

“조안나가?”

“예. 마도공학에도 관심이 많던데요?”

제이슨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쪽으로는 공부해본 적이 없을 텐데?”

“아니던데요? 기초는 거의 떼었던데요?”

제이슨은 조안나에 대해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사교계에 내보낼 생각만 했는데 언제 마도공학에 대한 기초를 쌓은 걸까?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마도공학자가 되려면 마나 친화력이 높아야 하지 않아?”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공학과 접목된 뒤로 공학자들도 설계에 참여하니까요. 마나 친화력이 높아서 직접 만들 수 있는 이들에 비해 대우는 열악하지만요.”

“그래서 마나 친화력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어요.”

“그래?”

제이슨은 로크를 흘끔 바라보았다.

“다른 마음은 없는 거지?”

“무슨 마음요?”

태연하게 대꾸하는 모습을 보니 제이슨은 조금 안도했다. 로크가 뛰어난 아이라는 것도 맞고 사람도 좋은 녀석이라는 것은 알지만, 아직 군인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인 데다가 복무 기간도 많이 남았으니 조안나의 짝으로는 아직 이르다.

그때 로크가 입을 열었다.

“저기 나오네요.”

마탑 지부에서 제시의 환대를 받으며 나오는 몸에 딱 붙는 가죽 갑옷에 왼쪽 허벅지에는 전통을 차고 허리춤에는 소형 석궁을 착용한 여인이었다.

제이슨은 그녀의 복장을 보고 로크에게 물었다.

“마도공학자 아니야?”

“맞아요.”

로크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누나! 여기!”

여인은 로크를 확인하고는 다가왔다. 그리고는 후드를 넘기고는 로크를 와락 끌어안았다. 로크가 그녀의 가슴에 숨 막혀서 파닥거리자 여인은 그를 놓아주고는 말했다.

“오랜만이다?”

로크는 숨을 몰아쉬고는 투덜거렸다.

“숨 막혀 죽을 뻔했잖아!”

여인은 로크의 머리를 슥슥 비벼주고는 고개를 돌려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은 보석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굉장한 미인이었다.

“제이슨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캐리에요.”

캐리는 환하게 웃었고, 제이슨도 마주 미소를 짓고는 마차를 가리켰다.

“타시죠.”

“이런 대접 받는 것 오랜만이네요. 고마워요.”

마차에 올라 내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이슨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로크가 연구를 도와달라고 할 정도면 보통 뛰어난 분이 아니신 것 같네요.”

캐리는 슬쩍 로크를 보고는 답했다.

“동생을 높게 봐주신 건 고마운 일이지만, 안 본 지 오래돼서 모르겠네요. 이 녀석이 얼마나 늘었는지 모르니 그건 봐야겠지만, 뭐 제가 키우다시피 했죠.”

“키워주기는. 나 8살 때 사고 치고 도망자 됐잖아.”

캐리가 로크의 볼을 잡고 쭉 늘이며 말했다.

“아구아구. 그래서 삐졌어요?”

“진짜!”

로크가 캐리의 손을 쳐내고는 볼을 만지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실력은 진짜예요.”

제이슨은 캐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스스로를 믿는 이들만이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 그려져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

이만한 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마차는 내성 저택에 도착했고, 그들은 훈련장에 도착했다. 로크의 연구소로 쓰이는 훈련장 안으로 들어온 캐리는 양식장을 보고 감탄했다.

“우리 동생 성공했네. 양식장까지 가지고 있고.”

“이거 봐봐.”

로크가 양식장 앞에 손을 올리자 양식장 표면에 마법진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안쪽에 있던 푸른 금속이 올라왔다. 제이슨이 처음 보았을 때는 손바닥만 하던 것이 지금은 팔뚝만 해졌다.

색은 검푸르게 변했지만, 정말 성장하고 있었다.

캐리는 로크가 꺼낸 푸른 금속을 보고는 주머니에서 고글을 꺼내서 썼다. 그걸 보니 보기와 다르게 정말 마도공학자였다.

그녀가 꼼꼼하게 푸른 금속을 살피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그녀 또한 흑마법을 기반으로 한 마도공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만든 이론의 기초를 배우고 로크가 흑마법을 기반으로 한 마도공학자가 된 걸지도 몰랐다.

캐리는 로크가 말하지 않아도 푸른 금속을 확인하고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처음 보는 건데? 게다가 이거 살아있잖아?”

“맞아. 그보다 놀라운 건 생각보다 음차원 에너지와 상성이 잘 맞아. 이것 봐봐.”

로크가 양식장에 넣기 전의 푸른 금속을 꺼냈다. 그걸 보고 캐리가 눈을 반짝였다.

“네가 왜 날 불렀는지 알겠다.”

캐리가 로크의 머리를 쓱쓱 만져주며 물었다.

“진짜 만들어 보려고?”

“이거라면 가능해 보여서요.”

제이슨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뭘 만든다는 거죠?”

캐리는 로크의 목에 팔을 감으며 답했다.

“우리의 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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