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22화 (23/151)
  • 【22】 그레이스(2)

    날고 기는 자들을 준비했지만, 그들도 추적에 실패했다. 하긴 이미 시간이 꽤 지난 후였고, 도망치는 자도 프로였다. 그래서 추적팀은 그대로 붙여놓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베로스 장군이 마탑과의 인연을 통해서 고대 골렘의 코어를 구입한 것이 있는지 조사했다. 북부 사령관인 그는 마탑과 꽤 깊은 인연이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고대 골렘의 코어나 고대 골렘을 판매한 이는 없었다.

    베로스 장군이 더 알아보려고 할 때 북부의 하이젤 왕국의 병력이 국경에 집결 중이라는 첩보를 접하고 북부로 돌아갔다. 아마 당분간 못 돌아올 터.

    그래서 그레이스는 다른 방면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테롤 백작과 원한 관계에 있는 이들을 찾았고 그들 중 갑자기 큰돈을 얻은 이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마탑이 아니면 분명 손해를 보지만 추적을 피하는 솜씨가 대단했던 것을 생각하면 깔끔하게 암거래 상인들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제값은 못 받겠지만, 추적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그린 드래곤 용병단이 잘 나간다고 해도 그들 전체를 건드릴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돈이란 생기면 쓰고 싶게 마련이다. 그러니 최근에 돈을 쓰기 시작한 곳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곳이 이곳 바론 성이었다. 강철 심장 은행에 큰 빚을 져서 가문이 기울어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마탑 지부를 새로 설립했다.

    마탑 지부 하나 설립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10만 골드. 백작급 영지에서 못 구할 정도는 아니나 강철 심장 은행의 빚을 못 갚아서 이자에 이자가 붙는 중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마탑 지부를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조사해 볼 생각이었다. 어디서 그만한 돈을 구했는지 그리고 돈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레이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따라서 이번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함께 온 다섯 명의 그린 드래곤 용병단원들이 그 눈빛을 받고는 빠르게 흩어졌다.

    저들은 이제 이곳에서 정보를 모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취합한 후에 직접 백작성에 찾아가 백작을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레이스는 입맛을 다셨다.

    “이번에는 맞았으면 좋겠군.”

    적들과 싸우는 전쟁 용병인 그녀는 이렇게 끝을 알 수 없는 추격전에 질리고 있었다. 걸린 것이 크지 않았다면 나서지 않았으리라.

    지루함 없는 짜릿한 전투가 벌써 그리워졌다.

    제이슨은 아침을 가족과 함께 먹고 수련을 시작했다. 뒹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오러 심법을 익히는 것은 그 자체가 휴식이자 즐거움이었다.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기는 하나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기에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오러를 깨우친다고 해도 그걸 쌓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데 이것은 오러가 쌓이는 속도가 빨랐다.

    그렇게 오전 수련을 마치고 일어난 제이슨은 로크의 연구소를 찾아갔다. 이제 밥을 먹으러 갈 시간이라 같이 점심이나 하자고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의 5미터 달하는 높이의 수조가 놓여 있었다. 저걸 가져왔을 줄은 몰랐다.

    검은 액체가 가득 차 있는 것은 양식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흑마법을 기반으로 한 마도공학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흑마법에 사용되는 음차원 에너지를 모아서 만든 것으로 저 수조에 들어있는 액체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비싼 물건이었다. 저거 하나가 히어로급 기간트의 가격이 넘으니까.

    벡스 장군에게 저걸 만들겠다고 예산 청구했을 때 그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아직 검증되기 전이었기에 이놈 미친 거 아니냐는 듯 바라보았었는데 결국 저것 덕분에 데쓰 나이트를 비롯해 수많은 발명품이 튀어나왔고,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로크가 전장에서 얻은 골드로 가장 먼저 군에서 사들인 것이 저 통이었다.

    그런데 양식장 안에 뭔가 들어있었다.

    제이슨이 다가가 그게 뭔지 바라보자 로크가 작업대에서 일어났다.

    “형. 왔어요?”

    “이 안에 뭐야?”

    로크가 눈을 반짝였다. 저런 눈빛을 할 때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줄줄 나올 가능성이 있어 황급히 말리려고 하는데 로크가 빨랐다.

    “이번에 얻은 에고 기간트의 장갑을 잘라내서 넣어 봤어요. 데쓰 나이트에 이식하려고 준비한 거예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이거 살아있어요.”

    “무슨 소리야?”

    “이런 금속은 처음이에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금속이에요.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모르겠더라고요. 설명하기 힘든데 이건 살아있어요.”

    “살아있다?”

    로크가 조각 하나를 제이슨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한 가지 확인하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세요.”

    제이슨이 조각을 손에 쥐자 로크가 안경을 쓰고 물러나며 말했다.

    “오러를 주입해 줘 봐요.”

    “오러를?”

    제이슨이 손에 쥔 조각에 오러를 주입하자 금속이 그걸 흡수하면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했다. 그건 손에 쥐고 있는 제이슨은 물론이고 로크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살아있어요. 오러를 주입하니 경도가 급격하게 증가했어요. 기간트 회로도에 쓰이는 데페린을 제외하고 오러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처음 보네요.”

    “신기하군.”

    엘하르트의 몸을 뜯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 또한 이런 장갑을 가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 제이슨은 양식장에 들어있는 장갑의 조각을 보며 물었다.

    “신기한 것은 알겠는데 양식장에 넣은 건 증식이 가능할까 봐서 그래?”

    “조금이지만 증식을 시작했어요. 마치 재생하는 것처럼요.”

    “재생? 설마 잘려나간 팔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거야?”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장갑의 자체 수복 기능인지 아니면 충분한 조건이 되면 증식하는 것인지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제이슨은 양식장을 보며 물었다.

    “설마 이걸 느끼고 찾아오지는 않겠지?”

    “형. 알잖아요. 제 전문 분야가 공간 왜곡이라는 거. 여기는 지금 제 연구소만큼이나 철저하게 공간 왜곡이 되어 있어요. 감지는 불가능해요.”

    “그래도 조심하고 또 조심해. 에고 기간트라는 것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 같으니까.”

    지금까지는 에고 기간트는 현대 마도공학으로 만들 수 없는 코어를 지녔을 뿐이고 다른 점은 에고가 들어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확실히 다르다.

    마치 인간과 같은 에고에 살아있는 것 같은 장갑. 골렘을 기반으로 개발한 기간트와는 본질이 다른 존재다.

    엘하르트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형. 그보다 이것 좀 보세요.”

    로크가 옆에 떠 있는 둥근 컨트롤러를 돌리자 앞에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마탑 지부의 입구를 비추는 데빌 아이의 화면이었는데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나타났다.

    “그레이스?”

    “맞죠? 그린 드래곤 용병단장.”

    “맞아.”

    로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역시 장군님 생각이 맞았어.”

    “맞긴 뭘 맞아.”

    “그보다 어떻게 할 거예요?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뭔가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

    솔직히 저들이 자신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다. 적어도 실수한 곳은 없었으니까.

    제이슨은 화면에 나오는 그레이스가 용병들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의심은 하겠지만, 확신은 못 했을 거야. 만나봐야겠어.”

    로크는 그 눈빛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형. 자신 있어요?”

    “무슨 자신?”

    “그 눈빛 딱 사고 치기 전의 눈빛인데.”

    제이슨은 로크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사고는 무슨 사고.”

    “형. 그레이스에요. 그레이스.”

    “알아.”

    저번에는 피했다. 베로스 장군이나 그레이스. 솔직히 쟁쟁한 그들은 물론이고 판톤도 쉽지 않았다. 뒷감당은 둘째치고 그들과 싸우는 것도 승부를 자신할 수 없었다.

    이제는 아니다. 붙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새롭게 얻은 오러 심법이라면 벡스 장군과도 해볼 만할 것 같았다.

    그러니 그레이스도 베로스 장군과도 일대일이라면 자신이 우세하다.

    “준비가 필요하겠어.”

    그리고 같은 수준이라고 해도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는 다르다. 제이슨의 말을 들은 로크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저런 눈빛일 때의 제이슨은 건들지 않는 것이 좋았다.

    바론 성의 여관은 숙박업보다 식당의 역할이 주였다. 아무래도 밀 농사를 주로하고 특별한 것이 없는 곳이다 보니 찾아오는 이들이 거의 없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곳이다 보니 그레이스는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어디를 가도 귀족보다 더 대접을 받는 것이 그녀였는데 이런 후진 여관에서 지내려다 보니 짜증이 일었다.

    의자에 앉은 그녀가 물었다.

    “뭣들 좀 알아냈어?”

    “전에 성에서 일하다 잘린 시녀가 있었는데 다시 복직했다고 하더군요.”

    “그래? 확실히 돈이 생겼나 본데?”

    그때 수염이 가득 난 사내가 말했다.

    “군에 들어갔던 둘째 아들이 돌아왔답니다. 10년 만에 돌아왔다고 하는데 그가 돌아오고 나서 성이 제대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서 복무 했는지 들었어?”

    “그것까지는 영지민들이 알지 못합니다.”

    “그래?”

    그레이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조사해 봐.”

    “예.”

    “언제 돌아왔데?”

    “13일 날 돌아왔다고 하던데 곧 다시 떠났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13일?”

    그레이스가 일행을 돌아보았다. 날짜가 얼추 맞는다. 마탑 지부가 없었으니 그 짧은 시간에 오갔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들이 추격하는 이는 코어 카트까지 있었으니까.

    “점점 더 냄새가 나는데?”

    그녀의 부관 베넷이 물었다.

    “단장. 베로스 장군에게도 말할까요?”

    “베로스에게? 왜?”

    “아무래도 왕국 내에서는 그의 영향력이 강하니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레이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미쳤어? 나눠 먹을 생각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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