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21화 (22/151)
  • 【21】 그레이스(1)

    엘하르트를 가르치던 트레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어에 소질이 있는 이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수는 없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달으니 오래 갈 것도 없었다. 문자를 가르치고, 기본적인 단어를 가르치고 사전을 건네주니 혼자서 사전을 독파하는 중이었다.

    이런 천재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던 트레버는 서재로 찾아온 제이슨과 새로운 손님을 볼 수 있었다. 제이슨은 로크를 소개하고는 용건을 말했다.

    “아버지. 제 후임인데 잠깐 이곳에서 지낼 수 있냐고 하네요.”

    “방이야 있으니 얼마든지 내주어라.”

    “기사단의 훈련장을 빌려줘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상관없다. 어차피 기사단도 없으니. 그런데 네 후임이면 군인이냐?”

    “예.”

    “어린 친구가 고생하는구나. 휴가라도 나온 건가?”

    “뭐 비슷합니다.”

    벡스 장군의 생각은 간단했다. 폭탄 돌리기 하듯 제이슨에게 에고 기간트의 팔을 보냈지만, 그걸 연구할 시간을 벌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엘하르트는 제가 잠깐 데리고 가겠습니다.”

    엘하르트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지만, 제이슨의 눈빛을 읽고는 사전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고 가도 되겠는가?”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네.”

    트레버는 엘하르트의 말투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탓하지 않았다. 그런 말투가 당연한 외모와 분위기였기에 그저 어디의 왕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 가졌을 뿐이다.

    엘하르트가 따라 나오자 제이슨은 기사단 훈련장으로 가서는 로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 좀 꺼내 봐.”

    “잠깐만요.”

    로크가 품에서 구슬 몇 개를 꺼내 사방에 던졌다. 엘하르트는 그걸 살펴보고는 감탄했다. 주변과의 공간을 분리하는 특이한 마법이었다.

    로크는 그제야 아공간 주머니에서 이번에 얻은 팔을 꺼냈다. 팔뚝부터라고 하나 길이만 2미터가 넘는 물건을 꺼내서 내려놓았다.

    그걸 본 엘하르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어디서 구한 거지?”

    육성으로 묻는 물음에 로크는 엘하르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안경을 슬쩍 올린 로크가 물었다.

    “이 팔의 주인과 비슷한 분위기군요. 처음에 만났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알겠네요.”

    로크가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에고 기간트죠?”

    제이슨은 대답 대신 꿀밤을 날렸다.

    “악! 형!”

    “넘겨짚지 마. 그보다 묻고 있잖아.”

    로크는 입을 비죽 내밀고는 설명했다.

    “오늘 새벽에 요새에 침입한 에고 기간트의 팔입니다. 일부분이지만 에고 기간트의 팔을 연구할 좋은 기회죠.”

    엘하르트는 그 팔뚝을 어루만졌다. 그의 입에 드물게 미소가 그려졌다.

    “누가 잘라냈지?”

    “벡스 장군이 나서서야 잘라낼 수 있었죠. 상성이 맞지 않으면 상대하기 힘들더라고요.”

    “꼴 좋군.”

    제이슨은 엘하르트가 고소해 하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새벽이라면 그때지?”

    제이슨의 물음에 엘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제이슨은 육성이 아니라 엘하르트에게 마음으로 물었다.

    ‘이 팔의 주인은 냉기를 다뤘다고 하던데 누군지 알아?’

    -그래. 이건 사도 중의 하나. 엘렌이다.

    ‘사도?’

    -신이 되고자 했으나 신이 되지 못했던 자들.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싸우면 이길 수 있어?’

    엘하르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쉽지는 않아. 녀석이 어떤 상태로 깨어났는지 모르니까. 온전한 힘을 그대로 가지고 깨어났다면 지금 상태로는 힘들지. 하지만 팔을 하나 잃었으니 해볼 만할 것도 같군.

    엘하르트가 만약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면 제이슨은 고민하지 않고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로크를 데리고 있는 것으로 가족이 위험해진다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으니까.

    제이슨은 로크를 돌아보았다.

    “그럼 여기를 네 공방으로 꾸밀 거야?”

    “그래야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이 팔의 주인이라고 해도 이곳은 쉽게 찾을 수 없을 테니까요.”

    “쉽지는 않아도 찾을 수는 있다는 말이지?”

    “에고 기간트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로크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 이번 연구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커 보였다. 하긴 에고 기간트는 마스터들의 전유물. 마스터 전속 마도공학자들이나 연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팔뚝 하나를 얻어낼 수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 없었다. 애지중지 흠집이나 하나 날까 조심했을 마도공학자들에 비하면 로크는 마도공학자로서 꿈을 이룬 거나 마찬가지였다.

    씹고 뜯고 맛볼 수 있는 에고 기간트의 팔뚝을 얻었으니까.

    제이슨은 로크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말했다.

    “뭐 필요한 것은 없어?”

    “데쓰 나이트의 핵은 남아 있어서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거. 연구만 잘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너 에고 기간트의 장갑으로 데쓰 나이트를 강화하려고?”

    “남은 군 생활 편하게 하려면 별수 있나요? 일단 뽑아 먹을 수 있는 것 전부 뽑아 먹고 나서요.”

    로크가 키득거리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그의 머리를 슥슥 흐트러트렸다.

    “열심히 해라. 뭐든 건져야지.”

    “걱정하지 말아요.”

    벽에 기댄 채 숨을 고르던 여인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팔뚝 아래에서 느껴지는 환각통에 여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이런 꼴을 당할 줄은 몰랐네.”

    인간들에게 오러가 전해진 것도 놀라웠지만, 설마하니 그 오러를 다루는 자들이 기간트를 탄 채로 오러를 쓸 줄은 몰랐다. 그런 자가 둘이나 있었고, 그중 하나는 상성이 맞지 않아서 팔이 잘렸다.

    아무리 상성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이 기간트를 탑승한 채 자신들의 흉내를 낼 줄은 몰랐다.

    “너무 서둘렀어.”

    기억을 읽었던 여인의 수준이 너무 미약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기간트를 탄 채 오러를 다루는 자들은 소문으로만 들었다고 했고, 직접 보지 못했기에 이만한 위력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여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이 되려고 했던 것이 이렇게 되돌아온 건가?”

    찬탈자의 봉인이 풀린 것을 깨닫고 그를 처리할 생각만 했다. 하지만 인간들의 발전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 미천한 것들이 자신에게 대적할 수준까지 올라왔을 줄은 몰랐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여인은 벽에서 등을 떼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찬탈자에게 가기 위해서는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 수천 년간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이 가능했다.

    “휘익! 예쁜데?”

    “야야. 팔도 하나 없는데 예쁘면 어쩌려고?”

    “뭘 어째? 팔 하나 없어도 저 정도 몸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잖아.”

    “크크크. 이런 미친놈.”

    용병으로 보이는 세 명의 무리를 보고 여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황홀하다는 듯 군침을 흘리는 이들을 향해 다가간 여인이 손을 내밀었다.

    “역시 내 이 근육을 보면 안 반하는 여인이 없다니까?”

    술이 얼큰하게 취한 이들이 시시덕거렸다. 그런 그들에게 다가간 여인의 손이 사내의 뺨을 만지는가 싶더니 목으로 내려갔다.

    우득.

    사내 하나의 목이 뒤틀린 것을 보고 다른 둘이 황급히 무기를 잡았지만, 그보다 여인이 빨랐다. 냉기의 칼날에 둘의 목이 떨어지자 그 머리들을 주워든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좋겠구나.”

    여인은 머리들에서 기억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마탑의 지부를 재설립하는 데는 돈이 꽤 많이 들었다. 철수하면서 워프 게이트 마법진을 철거했기 때문에 새로 워프 게이트 마법진을 설치해야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맡겼다가는 가까운 시일 내에 마탑 지부를 세울 수 없음을 알고 직접 나섰다. 다른 건 몰라도 성에 워프 게이트가 없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했으니까.

    코어 카트를 이용하는 자신도 가장 가까운 성으로 이동하는 데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다른 이들은 며칠씩이나 이동에 시간을 할애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이제 사교계에 진출할 조안나를 생각해서라도 워프 게이트는 필요했다. 워프 게이트도 없는 귀족가의 영애라는 말을 들었다가는 무시 받기에 십상이니까.

    그런 꼴을 볼 생각이 없었기에 직접 나서서 마탑 지부를 설립하기로 했다. 워프 게이트가 없어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직접 찾아왔다.

    워프 게이트를 설치할 고위 마도공학자와 조수 두 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제이슨을 보고는 아는 척을 했다.

    “앗!”

    제이슨도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이 의아해서 물었다.

    “제시? 토렐 백작 성 담당 아니었나?”

    제이슨이 토렐 백작 성에 들렀을 때 만났던 영업 실력이 제법 좋았던 마법사였다. 그녀는 제이슨의 물음에 활짝 웃고는 말했다.

    “고대 던전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다 떠났거든요. 토렐 백작 성에 썩기에는 제 재능이 아까워서 전출 지원을 했어요. 이곳에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고 마탑 지부가 들어오면 제가 지부장으로 온답니다. 승진했죠.”

    영업에 소질이 있는 그녀였기에 제이슨은 잘됐다고 여겼다.

    “제시! 놀지 말고 일해라!”

    “예! 스승님!”

    고위 마도공학자의 부름에 달려간 제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미소를 지었다. 고대 던전 같은 이슈가 없는 바론 백작 성의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니 지부장이 되었다고 해도 승진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제이슨이 지켜보는 가운데 워프 게이트 설치가 끝났다. 세 시간이 걸려서 작업을 마친 후에 고위 마도공학자가 마력을 주입하자 워프 게이트에서 하늘로 빛줄기가 솟구쳤다. 새로운 좌표가 열리는 것을 지켜본 제이슨은 함께 나와 있던 로크에게 말했다.

    “여기다가 데빌 아이 하나 설치해 줘.”

    “왜?”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성에 찾아올만한 이들이 없거든. 찾아온다면 이유가 있는 것일 테니까.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

    “5천 골드.”

    “원가가 2천 골드 아니냐?”

    “형. 그건 군에 납품할 때 얘기지. 나도 골드 필요하다고.”

    제이슨은 픽 웃고는 5천 골드를 꺼내서 내밀었다. 로크가 얼른 채가기에 제이슨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래. 대신 최신형으로 부탁한다.”

    “맡겨두라고. 마탑에서도 못 알아채도록 준비할 테니까.”

    데빌 아이로 감시하는 체계를 만들어두면 만약을 대비할 수 있으리라.

    워프 게이트가 생기고 삼 일. 마탑 지부가 영업을 시작한 첫날. 방문객이 있었다.

    제시는 방문객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

    제시는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녹색 머리에 뾰족한 귀.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그린 드래곤 용병단의 갑옷.

    그린 드래곤 용병단장 그레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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