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20화 (21/151)
  • 【20】 엘렌(2)

    에고는 잠이 없다. 지붕에 올라서 초콜릿을 까먹던 엘하르트는 문득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렴풋이 뭔가가 느껴졌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인지 아니면 봉인이 덜 풀려서인지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때 불쑥 지붕으로 제이슨이 올라왔다. 엘하르트가 돌아보자 제이슨이 물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올라왔는데 별일 없었어?”

    제이슨의 물음에 엘하르트가 오히려 놀랐다. 자신에게 뭔가가 느껴졌다는 것은 고대 마도 시대의 것 중 뭔가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컸다. 자신이 무서울 것이 없었다고 하나 이렇게 많은 봉인이 된 상황에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으니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자신도 어렴풋이 감지한 것을 어찌 제이슨이 감지했단 말인가? 고작 인간일 뿐인데.

    자신과 계약이라도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 또한 아니었다. 고작 두 번. 자신과 함께했을 뿐인 그의 이런 말은 놀라움과 함께 의구심을 가지고 왔다.

    대체 그 긴 시간 동안 세상은 어떻게 변한 걸까? 인간이 오러를 익히게 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나 자신과 두 번 함께 했다고 이렇게 육감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자신이 봉인되어 있던 수천 년의 시간. 무엇이 생겼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봉인이 조금밖에 풀리지 않아 명확하지는 않지만, 뭔가가 일어났다. 고대의 무언가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군.

    “그래?”

    고대의 물건은 돈이 된다. 그것도 엄청난 돈이.

    제이슨이 살짝 군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엘하르트가 말했다.

    -도서관이 어디 있지?

    “도서관은 뭐하게?”

    -조사할 것이 있다.

    제이슨은 뺨을 긁적였다.

    “우리 성에는 도서관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것은 없어. 아버지의 서재 정도가 전부야.”

    -그 안의 책을 봐도 되겠나?

    “그래. 아버지한테 부탁해 놓을게. 우선은 아버지 서재의 책을 이용하고. 마탑 지부가 들어서면 그때는 수도의 왕립 도서관을 이용하면 될 거야. 그곳에는 없는 책이 거의 없으니까.”

    -고대 마도 시대와 관련된 것들도 있나?

    엘하르트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고소를 금치 못했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고대라고 말한다는 것이 우스웠으니까.

    “고대의 자료들은 많지 않아. 그리고 공개된 것들도 많지 않고. 하지만 고대 마도 시대에 관해 연구한 역사학자들의 저서들은 꽤 있을 거야.”

    -재미있겠군.

    “재미? 책을 읽는 것이?”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은 제이슨이 지붕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찬 바람 쐬면 감기 걸린다. 아, 에고라 상관없나?”

    엘하르트는 제이슨의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실없는 녀석이다.

    제이슨의 부탁을 들은 트레버는 흔쾌히 서재를 개방해 주었다. 엘하르트는 서재의 소파에 앉아 역사에 관련된 책들을 가져다 쌓아놓았다.

    제이슨은 몰랐지만, 트레버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역사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준비해 놓은 덕에 엘하르트는 역사 관련 책들을 쌓아놓을 수 있었다.

    다만 책을 펼친 엘하르트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봉인되어 마법을 부릴 수 없는 지금. 생소한 언어로 적혀 있는 책들을 주루룩 넘겨 본 엘하르트는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언어가 많이 바뀌었군.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말에 한 가지를 깨달았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에고도 못 하는 것이 있다. 제이슨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글을 모르겠다면 조안나에게 부탁해 볼게. 조안나에게 배우도록 해.”

    그때 불쑥 트레버가 손을 들었다.

    “그런 거라면 내가 가르쳐주마.”

    “아버지?”

    “중앙 정계로 나갈 마음도 없고, 당분간 바쁠 일도 없으니 내가 가르쳐주마.”

    제이슨은 아버지도 심심하지 않으실 거라 여겨 엘하르트의 어깨에 손을 올려주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 어렸을 때도 가정교사보다 내가 더 잘 가르쳤으니까.”

    그러고 보니 백작 가문이나 됐는데도 아버지는 직접 글을 가르쳐 주셨었다. 가정 교사를 둔 것은 예절 교육이나 다른 부분이었다.

    엘하르트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부탁하지.”

    어쩐지 아버지의 얼굴에 즐거운 기색이 어렸기에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떠넘기고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된 것 훈련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간트 훈련장을 찾아가는데 헤이튼이 다가왔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응접실로 모셨는데 가보시겠습니까?”

    “그래.”

    제이슨은 자신을 찾아올 이가 없다고 여겼다. 군에서 10년을 보냈고, 그 전에는 성에서 지냈으니까. 자신을 찾아올 만한 이는 없었다.

    제이슨은 응접실로 향했다. 헤이튼이 맞았다면 접대에 소홀함은 없었을 터.

    그렇게 간 응접실에서 제이슨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를 볼 수 있었다.

    “형!”

    달려와 안기는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은 제이슨이 물었다.

    “로크.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냐?”

    제이슨에게 안기는 것을 실패한 로크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장군의 명령으로 왔지.”

    “장군의 명령?”

    전역한 자신을 벡스 장군의 명령으로 찾아올 일이 뭐가 있었나 싶었다.

    “헤이튼. 따뜻한 우유 한 잔 부탁해요.”

    “우유로 말입니까?”

    “로크는 아직 더 커야 하니까.”

    “형!”

    “그래서 싫어?”

    로크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굳이 그런 건 아니에요. 쿠키랑 먹으면 맛있으니까.”

    “쿠키도 부탁해요.”

    “준비하겠습니다.”

    헤이튼이 나가자 제이슨이 로크를 바라보았다. 로크는 둘만 남자 제이슨에게 귀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장치를 건넸다.

    “이건 왜?”

    “비밀 유지가 필요해서 그래요.”

    이걸 착용하고 있으면 둘의 대화는 누구도 듣지 못한다. 제이슨이 귀에 장치를 집어넣자 로크도 귀에 장치를 넣고는 입을 열었다.

    [어제 저희 팀 숙소에 습격이 있었어요.]

    제이슨은 인상을 굳힌 채 물었다.

    [다친 사람은?]

    [펠릭스 대장과 엘레나가 크게 다쳤어요. 벡스 장군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죠.]

    제이슨이 놀라서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대장이랑 엘레나가?]

    로크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과 기사단이 늦게 도착했으면 저도 당할 뻔했어요. 뒤에서 지원하다가 데쓰 나이트도 2기나 부서졌어요.]

    [데쓰 나이트가?]

    데쓰 나이트는 로크가 소환할 수 있는 것인데 들어가는 코어까지 생각한다면 최소 나이트 골렘 이상 가는 전력이다. ‘미친 들소’의 전력에 로크가 괜히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데쓰 나이트가 2기나 파괴되었다면 대체 어떤 놈들이 습격했다는 건가?

    [대체 누가 온 거야?]

    로크가 대답하기 전에 헤이튼이 우유와 쿠키를 준비해 와서 대화가 잠시 끊겼다. 그렇게 내온 따뜻한 우유에 쿠키를 찍어 먹는 사이에 헤이튼이 알아서 물러났다.

    로크는 쿠키를 와삭 씹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 보는 에고 기간트였어요.]

    [에고 기간트?]

    문득 어젯밤에 엘하르트가 했던 말과 자신이 느꼈던 감각이 떠올랐다. 그것이 설마 에고 기간트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마스터가 온 거야?]

    [아뇨. 기간트 라이더도 없이 혼자 움직이는 에고 기간트였어요. 그런 건 전설로도 전해지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지 아직도 파악이 안 됐어요.]

    엘하르트도 혼자서 가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일 때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걸 어떻게 막았어?]

    [펠릭스 대장과 벡스 장군이 합세한 공격에 왼쪽 팔뚝 아래가 잘렸어요. 상성이 좋았죠.]

    [상성?]

    [냉기를 다루더라고요.]

    프라메드 일족과의 혼혈인 벡스 장군은 플레임 오러를 능숙하게 다룬다. 오러 유저들 간에 순위는 무의미하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인물이다.

    제이슨이 아지랑이처럼 일으키는 오러 블레이드를 그는 플레임 오러로 능숙하게 다루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금의 제이슨이라면 한 번 비벼 볼 만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러니 에고 기간트를 상대할 수 있었나 보다.

    [그럼 에고 기간트는 어떻게 됐어?]

    [팔이 잘리고 나서 도망쳤어요.]

    [추적은?]

    [블랙 아울 요원들이 따라붙었는데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아요. 코어 카트보다 빠르게 도망쳤으니까요.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장군님 정도인데 장군님이 따라갈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그렇겠네. 그럼 뒤만 쫓은 건가?]

    [그런데 알제리 왕국 쪽으로 넘어가서 뒤를 쫓는 것도 무리가 있을 거예요.]

    냉기를 다루는 에고 기간트.

    엘하르트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알려주러 온 거야?]

    물론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미친 들소’가 습격당해서 사망자가 나왔다면 제이슨도 복수하기 위해 나설지 모를 일이나 죽은 이도 없었고, 군을 전역한 자신을 찾으러 올 이유가 없었다.

    로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 에고 기간트는 형이 사용했던 훈련장을 찾아와서 뭔가 조사하고 갔어요.]

    [거기를? 왜?]

    자신이 뭔가를 느꼈던 것처럼 그 에고 기간트도 뭔가를 느끼고 찾아온 걸까? 그렇다면 곤란했다.

    제이슨이 그런 고민을 할 때 로크가 말했다.

    [형이 전역하고 테롤 백작 성의 고대 던전이 무너졌다는 것을 파악했던 블랙 아울의 보고가 있었죠. 역학 조사 결과 장군께서는 형이 고대 던전에서 뭔가를 얻었고, 그것이 에고 기간트를 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 있었죠.]

    제이슨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가장 피해야 할 존재에게 엘하르트를 들킨 것 같았다.

    [···억측이군.]

    로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장군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보고 있어요. 그리고 언제 다시 습격이 올지 모른다고 하여 저를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무슨 소리야?]

    에고 기간트가 다시 습격하는 것이랑 로크가 이곳에 오는 것이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로크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거의 팔뚝만 한 굵기의 손가락 하나만 잡고 슬쩍 꺼내 보였다.

    [이걸 연구하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왜 네 연구실이 아니라 여기서 하라는 건데?]

    [장군 말씀이 여기가 더 안전할 것 같다나요? 연구 장비들은 다 챙겨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장소만 빌려주시면 돼요.]

    제이슨은 확실히 깨달았다. 벡스 장군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했다. 제이슨이 고대 던전에서 뭘 가지고 온 건지 모르지만, 그것이 에고 기간트를 불러냈다는 것을.

    그러니 만약 그 팔을 찾으러 온다면 그걸 책임지라는 말이다.

    이해는 갔다. 동부 전선의 주요 전력인 ‘미친 들소’가 중상을 입을 정도에다가 장군이 직접 나서야 상대할 수 있는 통제되지 않는 에고 기간트.

    그걸 상대하느라 생기는 전력의 누수는 동부 전선을 위험하게 만든다. 그러니 차라리 책임지라고 보냈다.

    “이 인간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