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9화 (20/151)
  • 【19】 엘렌(1)

    아침 식사 시간에 엘하르트를 처음 본 브렐리아나와 조안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 준비를 하는 조안나의 눈이 너무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엘하르트를 보다가 다른 이들을 만나면 오크를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적어도 얼굴을 보고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제이슨은 디저트를 먹는 시간에 선물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에 수도에 잠깐 들러 이것저것 사 온 것들이 있었다.

    “아버지. 이건 아버지 드리는 선물입니다.”

    최고급 만달린 차를 본 트레버의 눈이 커졌다.

    “비쌌을 텐데.”

    “이 정도는 살만합니다.”

    한 통을 사면 한 달 정도 마실 수 있는 만달린 차가 한 통에 1천 골드나 했다. 어지간한 귀족들도 손을 벌벌 떨게 하는 찻값이었다.

    트레버도 다른 사치를 즐기지 않았기에 유일하게 즐기는 것이었다.

    “잘 마시마.”

    흐뭇한 미소를 짓는 트레버를 바라보던 브렐리아나가 물었다.

    “네가 가문의 빚을 다 갚았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니?”

    “무리였으면 사지 않았을 거예요. 이것 받으세요.”

    제이슨은 브렐리아나를 위해 준비한 것을 꺼내 밀어주었다.

    “이건 어머니 거예요.”

    “내 것도 사 왔니?”

    빚을 다 갚아서인지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는지 브렐리아나는 별생각 없이 제이슨이 건넨 선물을 열었다가 얼른 닫았다. 그리고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다시 상자를 열었다.

    영롱한 광채를 뿜어내는 보석으로 만든 목걸이와 귀걸이는 대륙력 2752년 특별판으로 나온 물건으로 수도에서 가장 유행하는 디자인이었다.

    물론 가격이 워낙에 비싸서 아무나 살 수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제이슨도 사면서 잠깐 고민했을 정도로 비쌌던 물건.

    하지만 그간 마음 고생했던 어머니에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사온 물건이었다.

    “이거 브랙스 물건이니?”

    “예.”

    “이거 1만 골드는 할 텐데···.”

    역시 백작 부인. 중앙에서 멀다고 해도 어머니는 대략적인 가격을 알고 있었다. 특별판으로 나온 물건이라 그보다 더 비쌌지만, 제이슨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돌아왔을 때 제대로 된 선물도 못 해드렸잖아요. 그래서 준비해 왔어요.”

    “받아도 될지 모르겠구나.”

    “받으셔도 돼요.”

    제이슨은 이제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생 조안나에게는 커다란 상자를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 줬다.

    “이건 뭐야?”

    “이것도 브랙스 제품이야. 올해 한정판으로 나온 것으로 대륙에 딱 열 벌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고.”

    조안나가 상자를 열어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연보랏빛 드레스로 사교계에 나서게 될 동생을 위한 선물이었다. 조안나가 옷을 손으로 만져보고는 감탄했다.

    “예쁘다.”

    “사교계에 나갈 때 입도록 해.”

    “고마워. 오빠.”

    엘하르트에게 향했던 시선을 선물로 끌어들인 제이슨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형도 곧 찾아서 데리고 올 겁니다. 그러니 모든 시름 내려놓고 지내세요.”

    트레버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영지 걱정은 하지 말고. 너도 이제는 편히 쉬어라.”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대로 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엘하르트 덕에 한 단계 성장한 자신의 오러 심법을 제대로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했다.

    엘하르트 같은 귀한 것을 얻었는데 3년만 쥐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예전에는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가 요원하니 반쯤 포기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벽을 하나 넘은 지금이라면 빠르게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렇게 해서 엘하르트를 온전히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에고 기간트를 집에서 놀리는 마스터가 되어 보는 것도 뭔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그 정도가 되면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리라.

    제이슨은 식사를 마치고 기사단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꼼꼼한 헤이튼은 기사단의 훈련장도 깨끗하게 정리를 해놓았다. 아직 기사단을 다시 들이지 않았음에도.

    제이슨은 무작정 돈을 풀지 않았다. 밀을 수확하고 나면 다시 기사단을 고용할 여력이 생긴다. 자신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모두 해결했으니 나머지는 아버지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지금 당장 기사단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기사단 훈련장은 기간트 훈련도 겸할 수 있기에 상당히 넓었다. 그런 기사단 훈련장의 그늘에 가서 앉은 제이슨이 엘하르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방해하지 못하게 해줘.”

    -그러지.

    엘하르트는 제이슨의 곁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는 편히 앉아 초콜릿을 까먹었다. 자신이 꿈꾸던 뒹굴거리는 삶은 엘하르트가 누리고 있는 것이 배가 아팠지만, 저 잘난 척하는 엘하르트와 계약하려면 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제이슨은 바닥에 앉아서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숨을 따라 들어온 기운들이 오러 홀에 들어가 오러로 전환되었고,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정성이 떨어지니만큼 오러 심법을 수련하는 순간에는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러 심법을 수련한 제이슨은 점심시간이 지나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헤이튼이 찾아왔지만, 엘하르트가 고개를 내젓자 조용히 물러났다.

    집사장인 그는 제이슨이 무엇을 하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기에 그를 방해하지 않고 저녁 준비에 힘을 쏟으라고 주방에 알렸다.

    제이슨은 해가 저물어 갈 때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엘하르트는 그런 제이슨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오러와 일체가 되는 경험은 드물다. 게다가 아무런 도움도 없이 홀로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선택받은 자들도 쉽게 겪지 못했던 것.

    그런데 제이슨은 오늘도 짧지만, 온전히 오러와 일체가 되어 심법을 수련했다. 성장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너 정도 되는 자들이 얼마나 있지?

    제이슨은 질문의 의도는 파악하지 못하고 답했다.

    “오러 유저는 비공식 유저까지 포함하면 대략 이백 명 정도 돼. 그리고 마스터가 알려진 것은 여섯 명이야. 다섯 명만 에고 기간트를 가지고 있고, 에고 기간트는 없지만 그 경지에 이른 이가 하나 있지.”

    -재능을 묻는 거다.

    “재능?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사실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던 것이 동부 전선에 있는 오러 유저 벡스 장군과 펠릭스 모두 자신보다 강했기에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았다.

    엘하르트는 더 묻지 않고 일어났다. 자신이 그 물꼬를 터줬다고 하지만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보이는 제이슨을 보니 잘한 짓인가 의문이 들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가 뭐라고 생각하건 말건 힘껏 기지개를 켜고는 말했다.

    “벌써 해가 졌네.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엘하르트는 앞장서 걷는 제이슨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고 뒤따랐다. 놀라운 재능을 보이지만 아직 그 경지는 미약했다.

    3년 안에 자신과 계약할 수준까지 올라올지는 지켜볼 일이었다.

    힘껏 기지개를 켠 로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슨이 가져다준 연구 과제가 이제야 성과가 보였다.

    “대체 이런 건 어떻게 만들 생각을 한 걸까?”

    고대 마도 시대는 아직도 대부분이 비밀에 싸여있다. 그 시대의 골렘을 통해서 기간트를 개발하고 혁신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하지만 아직 그 시대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멀었다.

    로크가 통신 수정구에 손을 가져가다가 멈칫했다.

    “응?”

    ‘미친 들소’는 동부 전선의 가장 핵심 전력인 만큼 그들의 신분을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서 훈련장과 연구소가 모두 격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인가받은 이들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제이슨이 전에 쓰던 훈련장에 처음 보는 여인이 서 있는 것이 영상 감지 장치에 잡혔다.

    로크가 개발해 낸 것으로 흑마법의 데빌 아이를 아티펙트화 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그곳에 비치는 모습은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로크는 반사적으로 통신 장비에 손을 올렸다.

    “비상! 비상! 침입자 발생!”

    알제리 왕국에게 한 방 먹여준 이후로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는데 버젓이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는 모습을 보니 보통 인물이 아닌 것 같았다.

    로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새로운 무기를 집어 들었다. 사출 형 무기로 신형 거미줄을 쏘아내는 웹 캐논은 제법 묵직했다.

    “신형 무기를 시험해 볼 수 있겠네.”

    로크가 웹 캐논을 어깨에 걸치고 제이슨의 개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로크가 도착했을 때 제이슨의 개인 훈련장 안쪽에서 여인은 바닥에 손을 올리고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손 위에는 생소한 빛의 문자가 나타나 있었다. 로크는 그녀를 향해 웹 캐논을 겨눈 채 말했다.

    “천천히 두 손 들고 일어나.”

    여인은 슬쩍 시선을 돌려 로크를 확인하고는 관심을 끊었다. 다시 주변을 살피는 모습에 로크가 헛웃음을 흘렸다. 전장에서 서포터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그 또한 ‘미친 들소’의 일원이었다.

    웹 캐논의 방아쇠를 당기자 거미줄이 날아가면서 촤락 펼쳐졌다. 그제야 여인이 반응했다. 가볍게 손을 휘두르니 그 손길을 따라서 투명한 냉기의 칼날이 일어나 그대로 거미줄을 잘랐다.

    그녀의 관심이 그제야 로크에게 향했다.

    “봉인지를 지키던 수호기의 무기를 가지고 있군.”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로크는 움찔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등 뒤에 선 누군가와 부딪친 로크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펠릭스와 엘레나가 서 있었다.

    제이슨이 빠지고 남은 ‘미친 들소’의 인원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에 로크가 남겼던 비상경보 덕분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저 여인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로크는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가 몸을 떨었다. 저 눈빛은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감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눈빛이었으니까.

    펠릭스가 자신의 무기인 배틀 액스를 꺼내며 말했다.

    “이곳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천천히 대화를 나누자고.”

    말을 마치기 무섭게 펠릭스가 돌진했다. 동부 전선의 2인자. 벡스 장군 외에는 견줄 자가 없는 오러 유저 펠릭스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가 배틀 액스를 내리쳤다.

    인정 사정 보지 않는 공격. 로크는 상대를 생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도 없었다.

    쩌엉!

    투명한 냉기의 칼날이 어느새 형태를 이뤄 얼음 칼날이 되어 펠릭스의 배틀 액스를 막았다. 오러를 두른 배틀 액스가 막힌 것에 펠릭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넌 대체 뭐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에이미의 기억을 읽었을 때만 해도 제대로 믿지 않았다. 인간이 오러를 다루게 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펠릭스를 보니 확실히 인간들에게도 오러가 전해졌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만 오러를 손에 넣었어.”

    얼음 칼날의 주위로 강렬한 냉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을 꽁꽁 얼렸다. 그 모습을 보고 펠릭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찌나 강한 냉기인지 몸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었다.

    “기간트를 소환해라!”

    엘레나가 바이슨을 소환해 탑승하는 모습을 본 여인이 얼음 칼날을 강하게 뿌리치자 펠릭스가 뒤로 밀려났다. 여인은 펠릭스가 밀려나는 타이밍에 맞춰 뒤로 훌쩍 뛰어올랐고, 강렬한 빛에 휩싸이더니 본모습을 드러냈다.

    펠릭스는 앞에 나타난 기간트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에고 기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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