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7화 (18/151)
  • 【17】 깨어나다(2)

    제이슨은 기간트 바이슨의 수리를 맡긴 동안 엘하르트의 회복을 돕기 위해 펠릭스를 찾아가 자신이 훈련하던 개인 훈련장을 빌렸다.

    아직 후임이 들어오지 않아 제이슨이 쓰던 개인 훈련장이 비어 있었다. 제이슨은 그곳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동부 전선에 배치되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도 오래 걸렸었다. ‘미친 들소’는 위험한 만큼 그 대우가 확실했다.

    개인 훈련장도 기간트를 소환한 채 훈련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으니까.

    제이슨은 그 훈련장의 내부를 살피다가 엘하르트를 돌아보았다.

    “준비됐어?”

    -준비됐다.

    엘하르트가 훈련장의 중앙에 서서는 자신의 본체로 현신했다. 10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거체. 한쪽이 부러진 뿔에 핏빛처럼 붉은색의 거체를 일으킨 엘하르트는 변한 것이 없었다.

    왼쪽 팔은 손목부터 잘려나가 있었고, 그곳에는 손 대신 봉인구가 채워져 있었고 그곳에 연결된 사슬은 이제 팔에 둘둘 둘려 있었다.

    그 길고 긴 사슬이 팔뚝까지 휘감고 있었고, 오른족 허벅지도 여전히 장갑이 부서진 채 골조만 보였다.

    -내게 올라라.

    제이슨이 엘하르트에 탑승해 컨트롤러에 손을 올리자 오러가 쭈욱 빨려 들어갔다. 제이슨은 오러가 빨려 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에는 오러가 바닥을 보여서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이슨의 오러 홀이 맹렬히 회전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이거밖에 안 되나?

    진짜 자존심을 긁는 솜씨가 많이 늘었다. 제이슨은 더욱 오러를 뽑아내며 말했다.

    “더 가져가도 돼.”

    우우우우웅.

    제이슨은 오러가 뽑혀나가는 것을 채워 넣다가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일정한 운율에 맞춰서 오러가 뽑혀나갔다. 어차피 오러 홀을 돌리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없다 보니 제이슨은 그 운율에 몸을 맡겨봤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운용하던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마치 격류처럼 빠르게 흘러가면서 굽이치듯 쏟아지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오러의 흐름이 자신처럼 느껴졌다.

    생명의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근원이 되는 오러와 하나가 되는 경험은 처음 겪는 것이었다. 제이슨은 그 오러의 격류에 빠져서 이리저리 쓸려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그것은 미처 몰랐지만, 지금까지 오러를 깨닫고 그걸 익힌 심법에 따라서 돌리기만 해왔던 것과는 달랐다. 혼연일체. 시간도 잊고 주위도 잊었다.

    그렇게 오러와 하나가 됐다.

    엘하르트는 제이슨이 익힌 오러 심법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을 돕겠다고 오러를 전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움을 주고자 했다.

    3년간 제이슨의 도움을 받아서 이 고리의 봉인들을 하나씩 파괴해 나가야 하니 도움을 주었다. 단순히 오러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러를 공조하고 그걸 자신이 아는 심법에 따라 운용했다.

    떠다 먹여줄 생각은 없었다. 눈앞에 식탁을 차려줄 생각일 뿐이었는데 제이슨이 그 오러에 동조하더니 오러와 하나가 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솔직히 의외였다.

    오러와 하나가 되는 것은 자신이 살던 시대에도 선택받은 자들조차 쉽게 얻지 못하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큰 성장을 가져온다.

    깨달음의 순간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자신도 할 일이 있었다.

    깨달음을 얻어서인지 제이슨이 넘겨준 오러가 예상보다 많았다. 이 정도라면 목에 차고 있는 봉인구의 봉인 하나 정도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어에 전해진 오러가 증폭되어 봉인구의 봉인의 틈을 파고들었다. 보통 봉인구가 아니다. 시간이 오래되어 약해진 것은 사슬이나 그랬지, 이 봉인구의 봉인은 아직도 자신을 옥죄고 있었으니까.

    봉인구에 새겨진 열두 가지 봉인 술식 중 하나가 균열이 일어나더니 깨졌다. 엘하르트는 깨진 봉인을 중심으로 주위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 싸울 수 있게 됐다. 스스로 가동하는 시간도 늘어난 상황이다.

    엘하르트의 입가에 오랜만에 미소가 그려졌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더는 오러가 빨려 나가지 않았지만, 격류처럼 흐르는 폭급하고 도도한 흐름을 인지하고 그대로 몸 안의 오러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겼던 제이슨은 점점 의식이 돌아오면서 그 흐름을 온전히 인지했다. 그래서 그 흐름에 따라 오러를 운용하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오러 홀에 갈무리했다.

    제이슨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새 엘하르트는 에고로 돌아간 상태였다.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찾아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한 거지?”

    엘하르트는 제이슨을 빤히 바라보다가 답했다.

    -방향을 잡아줬지만, 오러와 일체가 된 건 네가 한 거다.

    “어쨌든 단초를 줬다는 거잖아. 고맙다.”

    -고마우면 마카롱.

    제이슨은 픽 웃음을 흘렸다. 오러 유저가 되고 치열한 전장에서 실전으로만 굴러 어떤 누구보다도 전투에 능숙해졌지만, 오러를 다루는 면에 있어서는 벽에 막혀 있었다.

    그 벽을 넘어섰다. 게다가 새롭게 익힌 오러 심법은 전의 것보다 안정성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순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운의 양이 훨씬 커졌다. 게다가 그 속도도 빨라졌다.

    제이슨은 양손 검을 뽑아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화아악!

    과연 오러 블레이드가 맺히는데 걸린 시간이 훨씬 짧아졌다. 게다가 깨달음을 얻으며 오러 홀도 넓어졌다.

    검에 대한 깨달음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오러에 대한 깨달음이 단숨에 격상되었다. 제이슨은 오러 블레이드를 거두고는 엘하르트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전과 달라져 보였다. 마치 후광이 비치는 것과 같았다. 가뜩이나 눈부시던 외모가 이제는 빛나기 시작했다.

    “너도 무슨 일 있었어?”

    -봉인을 하나 풀었다. 전보다는 오래 싸울 수 있겠지.

    “그거 기쁜 소식이네.”

    -그리고 너도 이제야 기본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을 얻었다.

    “기본?”

    -나와 함께 할 가장 기본적인 수준까지는 올라왔다는 거지. 적어도 나와 함께 싸워도 전처럼 쓰러지지는 않을 거다.

    이제야 엘하르트에 오를 자격이 됐다는 말에 쓴웃음을 지은 제이슨은 그래도 희망을 품기로 했다. 그래도 그 수준까지 오른 것이 어디인가?

    “다행이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사흘.

    “진짜?”

    개인 훈련장에 들어갔을 때는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누구도 들어오지 않는다. 오러 유저 수준에 오른 이들이라면 언제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을지 모르고, 깨달음이 방해를 받는다면 그것만큼 큰 손해가 없기에 지정된 규율이었다.

    제이슨은 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기고는 엘하르트를 돌아보았다.

    “바이슨의 수리가 끝났겠다. 그리로 가자.”

    생각지도 못했던 기연을 얻으면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바이슨의 수리 시간이 사흘 걸린다고 했는데 그에 맞춰서 깨어났다는 점이었다.

    정비소에서 정비를 마친 바이슨을 되찾은 제이슨은 레이나를 찾아갔다. 숙소에 있다는 말에 찾아가니 그녀는 앞치마를 두른 채 오븐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바라보는데 어느새 그녀의 뒤로 다가간 엘하르트가 말했다.

    “직접 구운 건가?”

    “언제 왔어요?”

    “지금.”

    “잠깐만 기다려요.”

    레이나가 식탁으로 가서는 구워 온 마카롱 사이에 크림을 넣고 합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한 마카롱을 접시에 올려놓은 레이나가 테이블에 그걸 올려놓자 엘하르트가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엘하르트가 손을 뻗자 레이나가 그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

    “마실 것도 준비해올 테니 기다려요.”

    엘하르트는 순순히 손을 내리고 기다렸다. 레이나가 준비해온 핫초코를 건네주자 엘하르트는 그걸 마시고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 작은 표정의 변화를 알아본 레이나가 미소를 지었다.

    평상시보다 배는 달콤하게 만든 핫초코인데 엘하르트의 입에는 잘 맞았나 보다.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짓고 달콤함에 빠진 것을 바라보던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남 오빠가 더 잘생겨진 것 같은데? 잘못 본 건가?”

    제이슨은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 진행 상황은 어때?”

    레이나는 엘하르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융 상회를 통해서 우회 입국한 것까지는 파악이 됐어. 알제리 공국의 국경을 넘으려면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육로로 이동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까지 파악했나 봐. 우회 입국한 뒤로 돌프 성에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어.”

    “지금은 돌프 성까지 추적한 건가?”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제리 왕국 내의 정보 길드와 접선 중이야. 그들의 도움을 얻으면 시간이 조금 걸려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제이슨은 그녀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돈이야?”

    “돈을 많이 들이면 빠르게 찾을 수 있겠지?”

    제이슨은 고민하지 않고 품에서 10만 골드를 꺼내 건넸다.

    “오! 조금 많은데?”

    “선수금이야. 찾기만 해내면 10만 골드를 더 내줄 생각이야. 그리고 다리우스도 수배해줘.”

    “다리우스는 몸값이 조금 나가는데?”

    “현상금이 얼마였지?”

    “10만 골드.”

    “선수금 5만 골드. 다리우스 포획시 20만 골드를 더 내준다고 해.”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너무 손해 보는 거 아냐?”

    “그 인간한테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서.”

    이번 작전에서 번 돈이 많았기에 이렇게 지를 수 있었다.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제리 왕국 내에 있는 것을 확인했고, 아직도 마도공학자 행세를 하고 있다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거야. 현상범 사냥꾼들만으로는 그 정도 돈을 투자해서는 남는 것이 없어서 못 찾았겠지만, 돈이 들어가는 만큼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것 같네.”

    “부탁할게.”

    “좋아. 그런데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뭔데?”

    레이나가 잠깐 주저하다가 말했다.

    “테롤 백작 성에서 발굴 중이던 고대 던전이 무너져 내렸어. 그리고 그 고대 던전 때문에 모여있던 발굴단 중 베로스 장군과 그린 드래곤 용병단 단장 그레이스가 국내의 정보 길드 검은 달을 수배했어. 그리고 마탑에는 고대 골렘의 코어 구매 여부를 조사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 말은 누군가 고대 던전을 털어갔다는 말이야. 그들보다 빠르게.”

    “그래서?”

    레이나는 제이슨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전역하고 네가 향한 곳이 테롤 성이었어.”

    제이슨이 덤덤히 바라보자 레이나가 물었다.

    “너야?”

    “아니.”

    제이슨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답했다. 레이나는 그런 제이슨을 빤히 바라보다가 활짝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고대 던전이 혼자 털고 싶다고 털어지나? 그냥 베로스 장군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돼서 같이 웃자고 얘기 꺼낸 거야.”

    “꼴 좋네. 북부나 지키고 있을 것이지 왜 기어 내려왔데?”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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