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6화 (17/151)

【16】 깨어나다(1)

“레이나. 엘하르트를 업어 줘. 내가 길을 열 테니까.”

“알겠어.”

레이나가 엘하르트를 업다가 휘청거렸다. 그의 묵직한 무게에 당혹스러워할 때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요새를 벗어나면 흩어져서 베타 집결지로 집결해야 할 거야.”

“바이슨을 다시 소환할 거야?”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나의 등에 업혀있던 엘하르트가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나와 함께 가자.”

“아니. 이번에는 아니야.”

-왜지?

‘이곳에서 네 본 모습이 드러나면 단순히 연구소 하나 박살 난 것이 아니라 사활을 걸고 달려들 테니까. 너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

에고 기간트의 등장은 거대한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아직 계약도 맺지 못한 기간트이니 대륙의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터였다.

그래서 아직은 엘하르트를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여기는 나 정도면 충분해.”

제이슨이 바이슨을 소환했다. 플레임 버스트의 폭발로 거의 흩어진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중장갑 기간트 바이슨에 오른 제이슨이 빠르게 말했다.

“일점돌파 할 거야. 놓치지 말고 따라붙어.”

“걱정하지 마!”

제이슨은 레이나의 대답을 듣고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쿵!

바닥이 뒤집히며 제이슨의 오러를 받아들인 바이슨이 돌진을 시작했다. 연기를 뚫고 나타난 바이슨은 마치 먼지구름을 뚫고 나타난 들소와 같이 저돌적이었다.

그리고 휘두르는 일검이 대기 중이던 기간트 한 대를 그대로 박살 냈다. 제이슨은 파괴된 기간트를 거둘 틈도 없이 연달아 검을 쳐냈다.

모든 기간트를 부술 필요는 없다. 저들을 쳐내고 블랙 아울의 요원들이 빠져나갈 길만 만들어 주면 된다. 제이슨은 달려드는 적들의 공격을 양손검으로 흘리고 쳐내기만 하면서 달렸다.

아군 기간트들이 있다 보니 요새에 배치해 둔 플레임 버스터를 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적들을 뚫고 나가서 거리가 벌어지면 분명 플레임 버스터를 사용할 테니 빠르게 그걸 살펴봐야 했다.

제이슨이 살펴보니 플레임 버스터 캐논 두 대가 좌우에 놓여 있었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내가 왼쪽을 맡지.

제이슨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기간트의 품으로 파고들어 그대로 밀었다. 기간트가 밀리는 것을 견디려고 자세를 낮추고 힘을 줄 때 그 머리를 내리누르고 뛰어넘으며 양손검을 휘둘렀다.

플레임 버스터 캐논이 그대로 두 조각이 날 때 길게 늘어난 사슬 하나가 플레임 버스터 캐논 하나를 그대로 박살 냈다. 그 대가로 엘하르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제이슨은 이제 마지막 기간트 방어선을 향해서 달렸다. 두 기의 기간트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마지막 오러를 쥐어짰다.

양손검에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기운이 맺히더니 그대로 두 기의 기간트를 향해 날아갔다. 기간트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온전히 피하지 못해 다리가 잘리고 팔이 잘려나갔다.

적의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던 기간트들이 뒤를 쫓아오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레이나가 기다렸다는 듯 연막탄을 터트렸다.

회색의 연기가 사방을 잠식했을 때 제이슨은 바이슨을 역소환하고 연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고글을 쓴 채 제이슨은 흩어지는 이들 중 둘이 겹친 곳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레이나!”

“제이슨?”

“엘하르트를 넘겨. 너무 느리다.”

“고마워. 미남 오빠가 너무 무겁네.”

제이슨이 엘하르트를 넘겨받았다.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아 아직 회복되기 전에 사슬을 휘둘러 플레임 버스터 캐논을 부순 것이 한계였나 보다.

제이슨은 레이나와 함께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서부 전선 연구소에서 일어난 불길은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제이슨은 등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달렸다. 에고인 엘하르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작전은 단순히 실패했을 뿐이 아니라 자신도 죽었을 터였다.

“고맙다.”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업은 채 발끝에 더욱 힘을 줬다.

먼지투성이에 핏자국이 묻어있는 갑옷을 입은 벡스 장군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세나의 옷도 난장판이었고, 펠릭스 또한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였다.

단순히 미끼로 간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알제리 왕국의 국경에서 대규모 회전이 있었다. 벡스 장군을 잡기 위해 알제리 왕국에서도 총사령관이 나왔다.

치열한 전투였지만, 피해는 비슷했다. 크게 얻은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는 상황. 하지만 미끼의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

벡스 장군이 갑옷을 입은 채로 회의실 의자에 앉았을 때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검은 부엉이 가면을 쓴 여인 아울과 레이나, 제이슨이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벡스 장군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물었다.

“대충 듣기는 했다.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을까?”

아울이 나직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새로운 기간트 장갑의 생산 라인을 파괴하고 연구소의 절반을 불태웠습니다.”

벡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당분간 몸을 사려야겠군. 아주 난리가 나겠어.”

벡스의 시선이 레이나를 향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서부 전선 연구소 수석 마도공학자 마르코 사살. 그의 실험실에 있던 연구 과제들을 모조리 가져왔습니다. 저희 마도공학자들이 살펴본 결과 이번에 그들이 만들려고 했던 돌격 장갑에 대한 설계도와 함께 그의 실험실에 설치되어 있던 삼중 마법 방벽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

벡스의 얼굴에 피로함이 가시는 것이 보였다. 레이나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 외 대략 일곱 가지 연구자료가 있었습니다. 대략 가치로는 2천만 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1년 예산 이상을 뽑아냈군.”

아울이 공식적으로 밝혔다.

“블랙 아울이 행했던 두 가지 작전 모두 성공했음을 알립니다.”

벡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래. 피해는?”

“블랙 아울 요원 둘이 사망했습니다.”

벡스는 그 말에 품에 손을 넣더니 술병을 꺼냈다. 세나가 어느새 다가와 술잔을 내려주자 벡스는 잔에 술을 따랐다. 여섯 잔의 잔에 모두 술을 채우자 벡스가 잔을 하나 집어 들었다.

곧 나머지 인원들이 잔을 들어 올리자 벡스가 잔을 높이 들고는 말했다.

“그들의 희생 덕에 동부 전선의 평화가 있음을 잊지 말자.”

“잊지 말자.”

단숨에 술잔을 비우자 벡스가 잔을 내던져 깨트렸고, 모두가 그를 따라 술잔을 깼다.

“세나. 희생자의 가족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라.”

“처리하겠습니다.”

벡스의 시선이 제이슨을 향했다.

“이번 작전은 동부 전선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는 작전이었다. 네 도움이 아니었다면 실패했을 가능성이 더 컸지.”

벡스는 아울에게 시선을 주었다.

“당분간 ‘블랙 아울’의 눈은 서부 전선에 삼 할만 남겨두고 먼저 제이슨을 돕는다. 알제리 왕국에 뿌려둔 눈과 귀를 이용해서 그를 도와라.”

“그리하겠습니다.”

벡스의 시선이 레이나를 향했다.

“그 모든 책임을 레이나. 자네가 맡아라.”

레이나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벡스는 제이슨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원했던 것만큼의 보상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나?”

“바이슨의 수리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좋아. 무상으로 수리해주도록 하지. 정비소에 맡겨놓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벡스는 모인 이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고생 많았다.”

아울과 레이나, 제이슨이 나가자 벡스가 한숨을 내쉬며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제이슨이 블레이크를 죽일 정도였나?”

“오러 유저들 간의 강약의 차이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러 가지 요소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오러 유저들의 대결 아니겠습니까?”

“어떻게든 붙잡았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군.”

“마음이 떠난 녀석을 붙들어 봐야 뭘 하겠습니까?”

벡스는 쓴웃음을 짓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군에서 10년을 보냈다는 것은 이제 쓸만해 졌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다들 떠나간다.

대승을 거뒀지만, 어쩐지 지친 하루였다.

제이슨은 침대에 누워 마카롱을 까먹고 있는 엘하르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맛있냐?”

엘하르트는 흘끔 제이슨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우물우물 먹는 것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으니까.

제이슨은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놓고는 물었다.

“힘을 많이 쓴 것 같은데 도와줄 방법이 없나?”

-날 돕겠다고?

“이렇게 가동시간이 짧아서야 짐밖에 안 되잖아.”

엘하르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지만, 제이슨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자격이 안 된다고 무시한 엘하르트였으니까.

-그래. 넌 자격이 안 돼.

“너 독심술도 익혔냐?”

-미약하지만 너와 연결되어 있어 읽을 수 있었던 거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도움이 될 방법이 있어? 혹시 그 봉인 사슬을 부숴주면 되나?”

엘하르트는 제이슨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네 실력으로는 안 돼.

“무슨 소리야? 그때도 부숴줬잖아.”

-그래. 그때는 다섯 개로 나뉘어 있어 가능했지만, 지금은 달라. 세 개로 준 만큼 지금 네 능력으로는 부술 수 없다.

더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는데도 엘하르트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방법이 없어?”

-있기는 하지.

“뭐야?”

-내 본체에 탑승해서 네 오러를 주입하는 것. 그러면 내 힘으로 봉인을 조금씩 풀 수 있지. 그리고 봉인이 풀리는 만큼 내 힘을 되찾는 속도도 빨라질 거다.

“그거면 돼?”

-아주,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될 거다.

어째 속을 긁는 솜씨가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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