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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3화 (14/151)
  • 【13】 동료(1)

    “동쪽으로는 오줌도 안 쌀 생각이었는데.”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며 동부 전선 최전방 요새를 바라보았다. 수도에서 군인이 아닌 이상 단번에 요새로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국경의 도시로 이동한 후에 코어 카트를 이용해서 와야만 했다.

    엘하르트는 입에서 사탕을 굴리며 제이슨의 뒤에 서 있었다. 이 에고가 어찌나 단 것만을 찾는지 제이슨은 수도에 간 김에 사탕 가게를 들렸다.

    그리고 가게를 털었다.

    설마 살면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라는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에고라서 이가 썩지는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은 없었다.

    뭐 엘하르트를 만나면서 얻게 된 고대 골렘들의 코어를 이용해서 번 돈이라 아깝지는 않았다. 그리고 돈에 그렇게 연연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엘하르트는 동부 전선의 요새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알제리 왕국으로 넘어가려면 이곳을 통하는 게 좋아. 도움도 조금 얻어야 하고.”

    -그런가?

    더는 관심이 없다는 듯 사탕을 입에서 굴리는 엘하르트를 데리고 제이슨은 요새로 다가갔다. 요새 경비병이 제이슨을 발견하고는 앞을 막았다.

    “멈추십시오.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제이슨도 처음 보는 이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새로 온 이인가 보다.

    “신입이냐?”

    경비병의 눈빛에 당혹스러움이 서렸다. 보통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은 군 관련자들이었으니까.

    그때 경비 초소에서 나온 고참 병사가 달려와 제이슨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이슨님! 전역했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장군님 뵈러 왔다.”

    “장군님을요?”

    “그래. 안에 계시지?”

    “안에 계실 겁니다. 그래도 이제 민간인이시니 안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

    고참 병사가 초소로 돌아가서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곧 밖으로 나와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시랍니다. 알아서 들어오라시는 데요?”

    “여전하시네.”

    아무나 들어오게 해주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요새의 경비는 삼엄하다. 사실 왕국에서도 잘 모르는 용담호혈이 이 동부 전선이었다.

    제이슨이 가는 길에 눈이 마주친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그들의 시선은 엘하르트에게 고정되었다. 제이슨은 이제는 익숙해진 그 시선을 무시하며 요새의 최상층까지 올라갔다.

    문 앞에 서 있던 벡스 장군의 오른팔 세나가 제이슨을 발견하고는 그 뒤에 선 엘하르트까지 일별하고는 입을 열었다.

    “다시는 안 올 것 같더니. 무슨 일이야?”

    “장군께 제안할 것이 있어서.”

    “안에서 기다리신다.”

    세나가 옆으로 물러났다. 훤칠한 키에 적발 미녀. 하지만 저 붉은 머리의 마녀가 얼마나 잔혹한 인간인지 알게 된다면 가까이하지 못하게 되리라.

    물론 아군일 때는 그녀만 한 이도 없다.

    제이슨이 다가가 벡스 장군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제이슨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엘하르트가 따라 들어왔다. 집무실에 앉아서 서류에 서명하던 벡스 장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 특유의 빈정거림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그의 시선은 엘하르트에게 고정되었다.

    “재입대 부탁을 하러 온 것 같지는 않군. 그런데 뒤에 친구는 누구지?”

    “새로 사귀게 된 친구입니다.”

    벡스 장군은 짜게 식은 눈으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네가? 친구를?”

    “그건 무슨 뜻입니까?”

    “아니다. 그보다 친구를 데리고 오다니. 친구가 입대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벡스 장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픽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래? 그럼 날 찾아온 이유가 뭐냐?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 쌀 것처럼 나간 지 고작 일주일 만에 돌아온 이유가 궁금해서 시간 낸 거다.”

    제이슨은 그 말에 자리에 앉아서는 말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제안할 것도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과 제안이라.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군.”

    벡스 장군은 이제야 관심이 생겼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거기 앉아라.”

    집무실의 소파에 앉으려고 할 때 엘하르트는 벌써 앉아서 사탕을 빨고 있었다. 벡스 장군도 그 대범함에 픽 웃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차를 가져와라.”

    문이 열리고 세나가 직접 차를 내왔다. 차향은 좋았지만, 벡스 장군이 군것질거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쿠키등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엘하르트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제이슨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벡스 장군이 딱 하나 즐기는 것이 있다면 차였기에 그의 차는 제이슨도 좋아했다.

    제이슨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전선은 어떻습니까?”

    “뭐 특별할 것은 없었다. 일주일 만에 뭔가 일어날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지금 로크는 놀고 있겠군요.”

    “뭔가 연구 중이겠지.”

    “부탁보다 제안을 먼저 하겠습니다.”

    “궁금하니 어서 말해 봐.”

    “로크 좀 불러주십시오.”

    벡스 장군은 군말하지 않고 세나에게 로크를 불러오라고 전했다. 그리고 로크는 정말이지 바람처럼 달려왔다.

    천재 마도공학자. 그 기반이 흑마법이라 사실 마도공학자들 사이에 배척을 당했지만, 그 놀라운 재능을 확인한 벡스 장군은 그를 데리고 와서 ‘미친 들소’ 전속 마도공학자가 되었다.

    “형!”

    로크는 달려와 제이슨을 와락 끌어안았다. 제이슨이 그 머리를 만져주는 사이에 뒤로 물러났던 로크는 엘하르트를 보고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로크가 에고라는 것을 알아보나 싶었는데 그가 움찔 놀라서 물러나며 속삭였다.

    “형. 취향이 이쪽이었어?”

    “이건 또 무슨 신선한 개소리야.”

    제이슨은 로크의 머리에 알밤을 먹이고는 모두 자리에 앉았다. 제이슨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번에 얻은 물건이 있는데 그게 신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로크가 연구를 맡았으면 합니다.”

    “신무기가 될만한 연구 소재를 가져왔다는 건가?”

    “예.”

    “우선 그것부터 보지.”

    “여기서 꺼내기에는 좁은데 로크의 연구소로 가면 어떻겠습니까?”

    벡스가 로크를 돌아보았다.

    “괜찮겠나?”

    “제가 얼마나 깔끔한지 아시잖아요. 지금 가도 좋습니다.”

    “그럼 가보지.”

    모두 로크의 연구소로 향했다. 마도공학자의 연구소치고 지나칠 정도로 깔끔한 것이 병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로크는 고글을 꺼내 쓰고는 씨익 웃었다.

    “내가 연구할 거리라니까 엄청 궁금하네. 뭘 가져온 거야?”

    마치 선물을 기다리는 것 같은 로크의 모습에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거미형 골렘을 꺼냈다. 2미터에 달하는 거미형 골렘을 보고 로크의 눈이 잔뜩 커졌다.

    “우와! 이거 처음 보는 형태의 골렘인데?”

    달려들어서 살펴보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말했다.

    “거미형 골렘도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여서 그런 건데 그보다는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해.”

    제이슨이 골렘의 거미줄 사출구를 가리켰다.

    “여기서 사출되는 거미줄. 기간트의 움직임도 둔하게 만들 수 있더라고.”

    “진짜?”

    로크가 사출구를 확인해 보더니 아공간 주머니에서 만능 스패너를 꺼냈다. 원하는 형태로 변해서 어떤 것이라도 해체할 수 있는 만능 스패너를 이용해서 사출구를 열어본 로크는 그 안에서 조합되는 용액들을 살펴보다가 그 안의 장치를 건드렸다.

    촤악!

    밖으로 튀어나가는 거미줄이 벽에 붙자 그곳으로 다가가 로크가 잡아당겨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우와! 이거 엄청 질긴데요? 어지간한 힘으로는 당기지도 못하겠어요.”

    벡스 장군도 그 말에 다가가 잡아당겨 보았다. 오러 유저인 그가 힘껏 당기자 거미줄이 늘어났는데 끊어지지는 않았다. 벡스 장군이 그걸 놓고는 로크를 돌아보았다.

    “만들 수 있겠나?”

    “다행히 원형 그대로 가져와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조합식을 찾아봐야 하지만 그건 조사가 가능하니 어떤 재료가 쓰였는지 안다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로크 지금부터 시작해. 그리고 집무실로 가서 마저 얘기하지.”

    벡스 장군은 제이슨을 데리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소파에 앉은 벡스 장군은 제이슨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우리 군을 위해서 이런 신무기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돈을 바라고 가져온 거냐?”

    마탑에도 가져다 팔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모두가 이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야 의미가 없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제이슨은 필요해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제이슨이 고개를 내젓자 벡스 장군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좋아. 네 부탁이 뭔지 궁금해졌어. 말해 봐.”

    “알제리 왕국으로 가야 합니다.”

    “알제리 왕국으로?”

    참신한 미친 소리를 들었을 때나 나올 법한 표정. 제이슨은 벡스 장군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는 차분하게 답했다.

    “형님이 그쪽으로 갔다고 하는데 찾아와야 합니다.”

    벡스 장군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알제리 왕국이랑 트랑 왕국이 20년째 전쟁 중인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영토 전쟁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

    “예.”

    “그런 왕국으로 네 형님을 찾으러 가겠다고? 네가 죽인 알제리 왕국군 기간트 라이더가 몇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지?”

    “명령으로 한 일이니 제 탓은 아니죠.”

    벡스 장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은근히 날 까는 것 같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이슨이 웃으며 말하자 벡스 장군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래서 널 알제리 왕국으로 은밀히 집어넣어 달라는 거냐?”

    “예. 그래서 말인데 ‘블랙 아울’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벡스는 제이슨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깊은 눈으로 제이슨을 바라보던 벡스 장군이 입을 열었다.

    “네가 얼마나 ‘블랙 아울’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작전에 바탕이 되는 것이 그들이라는 것을요.”

    “그들 하나하나에 너희만큼 많은 돈이 든 것도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벡스 장군은 소파의 손잡이를 검지로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가져온 신무기의 가치가 크다고 하나 요원 하나하나의 가치에는 못 미친다는 것도 알지?”

    “압니다.”

    벡스 장군은 제이슨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피하지 않는 그 두 눈. 동부 전선에서 자신의 두 눈을 저렇게 직시할 수 있는 자는 다섯을 넘기지 못한다. 그런 놈 중 하나를 내보내면서 속이 쓰렸는데 이렇게 다시 자신의 앞에 돌아왔다.

    그러니 조금 골려줄까?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어째 느낌이 쌔하다. 벡스 장군은 잘 모르나 본데 눈꼬리가 살짝 아래로 내려간 저 표정을 지었을 때마다 ‘미친 들소’ 팀 전원이 죽다 살아났었다.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힘든 임무였다. 그리고는 무사 귀환을 축하한다며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셨었지.

    무사 생환 후에 마시는 술은 그만큼 맛있었고, 전우애가 깊어지는 토악질의 밤이었었다.

    벡스가 지금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움을 줄 테니 너도 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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