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2화 (13/151)
  • 【12】 거래(2)

    계약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꼬장꼬장한 연구광 에르도는 이런 면에서는 깐깐한 만큼 정직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벡스 장군이 그와 계약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제이슨은 도합 2,550만 골드와 함께 앞으로 얻을 새로운 코어의 수익 중 5%를 얻는 계약서를 받았다. 그 사이에 옆에서 엘하르트는 테이블에 놓인 쿠키를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맛을 보는 것 같더니 지금은 거의 박살 내고 있었다. 제이슨은 모든 계약을 마쳤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도 엘하르트는 쿠키를 먹고 있었다.

    “이만 가자.”

    -잠깐만. 이건 우리 시대에는 있지도 않았던 건데? 뭔데 이렇게 맛있지?

    제이슨은 쿠키 부스러기를 보고는 말했다.

    “초콜릿을 입힌 쿠키야?”

    -이게 초콜릿인가? 이 달콤함이라니!

    그보다 이건 에고다. 에고가 이렇게 뭔가 섭취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맛까지 느끼다니. 본체는 기간트인 주제에!

    에르도는 엘하르트를 빤히 바라보다가 손짓했다.

    “세빌. 쿠키 좀 더 내주게.”

    “예. 준비하겠습니다.”

    세빌이 나가서 한 바구니의 쿠키를 내오자 엘하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걸 받아들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맙군.”

    저거, 저거 말하기도 힘들다고 하더니 잘만 말하고 있다.

    제이슨은 엘하라트를 끌고 나와서는 세빌과 함께 다시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이곳에서 일을 끝냈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수도 레이트로 보내주시오.”

    “따로 골드는 받지 않겠습니다.”

    “고맙군.”

    세빌은 워프 게이트에 마나를 주입했고, 곧 빛과 함께 제이슨은 수도의 마탑 지부에 도착했다. 마법사가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수도 레이트 마탑 지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이슨은 간단히 손을 들어 보이고 쿠키를 와삭와삭 씹고 있는 엘하르트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오!

    엘하르트는 수도의 모습을 보고는 감탄했다. 웅장한 건물들과 수많은 사람. 게다가 수도에 사는 이들은 다른 성보다 훨씬 부유한 이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얼굴에 여유가 있었고, 세련되게 옷을 입고 있었다. 귀티가 좔좔 흐르는 이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곳이 이곳 수도였다.

    열에 셋은 귀족이라고 할 정도의 곳.

    그런 그들은 마탑을 나와 걷는 이들에게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가 흠칫 놀랐다. 무난한 복색을 하고 있지만 쿠키를 먹기 위해서 목도리를 대충 끌어내려 얼굴을 모두 드러낸 엘하르트와 눈이 마주친 그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엘하르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지금 이렇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질질 끌고는 강철 심장 은행 트랑 왕국 지부의 앞에 도착했다. 제이슨이 안으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아가씨가 다가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빚 갚으러 왔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여인이 안내해 준 곳에 가니 잘 빼입은 직원이 창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이 물러가자 제이슨은 엘하르트와 함께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상환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채무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트레버 폰 바론입니다.”

    직원은 장부를 하나 꺼내서 확인해 보더니 말했다.

    “채무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아들입니다.”

    “그러시군요.”

    어차피 돈을 받으면 되기에 그들은 관계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직원이 장부를 내려놓고 영업 미소를 띄운 채 물었다.

    “이자 포함 757만5천 골드입니다. 얼마나 상환하실 예정이시죠?”

    “전액 상환 예정입니다.”

    제이슨의 담담한 대답에 직원의 얼굴이 잠깐 굳어졌다.

    “전액 상환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말씀을 나누실 것이 아니군요. VIP룸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직원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에는 VIP룸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소파와 벽에 걸려있는 강철 심장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때 안쪽에서 안경을 쓴 여인이 다가왔다. 잘 차려입은 여인은 제이슨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강철 심장 은행 트랑 지부 지부장을 맡은 엘리너라고 합니다.”

    지적인 외모에 그려지는 부드러운 미소. 그녀는 고객을 상대할 줄 알았다.

    “보고받았습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다과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소파로 시선을 돌렸을 때 엘하르트는 이미 소파에 앉아 수제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제이슨은 어색하게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엘리너가 맞은편에 앉아서는 장부와 함께 차용증을 내려놓고는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전액 상환하신다고 하셨는데 맞는가요?”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757만5천 골드입니다.”

    제이슨은 품에서 골드를 꺼냈다. 총 800만 골드를 꺼내서 내밀자 엘리너는 침착하게 돈을 받아 확인하고는 잔돈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차용증을 제이슨에게 건넸다. 제이슨은 자신의 가족을 수렁에 빠트렸던 차용증을 받아쥐고는 물었다.

    “이것으로 더는 본가와 강철 심장 은행은 채무 관계가 없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받을 돈은 확실히 받아내는 대신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키는 것이 저희 강철 심장 은행이니까요.”

    “믿고 가보겠습니다.”

    제이슨이 일어섰을 때 테이블 위의 수제 초콜릿은 텅텅 비어 있었다. 엘하르트는 볼 일 다 봤다는 듯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런 엘하르트를 끌고 나갔다. 제이슨이 나가는 것을 보고 엘리너가 입을 열었다.

    “알아봐.”

    “예. 알겠습니다.”

    엘리너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방금 나간 둘을 바라보았다. 800만 골드나 되는 돈을 태연하게 꺼내는 것을 보면 보통 배포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옆에서 초콜릿이나 먹고 있던 사내. 딱 봐도 더 높은 이로 보였다. 태생이 귀해 보이는 이였으니까.

    아마도 그 돈을 내준 이가 아닐까 싶었다. 대체 누가 있어 바론 백작 성의 아들에게 그만한 돈을 내줄 수 있는 걸까?

    뭔가 돈 냄새가 났다.

    강철 심장 은행을 나와 걷는 중에 엘하르트가 말을 건넸다.

    -뭔가 조사할 생각인가 보던데?

    “왜? 뭔가 들었어?”

    -알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제이슨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내가 바론 백작가의 작은아들이라는 것과 군에 입대한 것까지는 알아낼 수 있겠지. 하지만 거기가 끝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런가?

    아무리 강철 심장 은행이 강력한 힘을 지닌 곳이라고 해도 절대로 동부 전선의 일은 알아낼 수 없다. 그렇게 정보가 쉽게 뚫릴 벡스 장군이 아니니까.

    제이슨이 걸음을 옮기는데 엘하르트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제이슨은 슬쩍 고개를 틀어 엘하르트의 손을 보았다.

    이 에고는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처음 자신을 발로 걷어찼을 때도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온다. 오러 유저의 간격이라는 것은 같은 오러 유저라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이슨이 어깨를 잡은 손을 따라 엘하르트의 얼굴로 시선을 주었다.

    “왜?”

    -저거.

    엘하르트의 시선이 닿는 곳. 제이슨은 그곳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곳에는 유리 진열장 뒤로 생크림 케이크가 전시된 곳이었다.

    “지금 저거 먹자고 날 붙잡은 거야?”

    -맛있어 보인다.

    제이슨은 잠시 분을 참고는 가게로 들어갔다. 몇몇 귀부인들이 차를 마시며 케이크를 먹다가 둘을 보고는 호기심의 시선을 던졌다. 물론 엘하르트에게는 아낌없이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제이슨은 자리를 잡고 차와 케이크를 골라다가 엘하르트의 앞에 내려줬다. 엘하르트가 포크를 들어 하나를 집어 먹는데 그 모습이 우아해 보여 물었다.

    “너 귀족이었어?”

    엘하르트는 눈을 감고 케이크의 맛을 음미하고는 대답했다.

    -선택받은 이였지.

    “선택?”

    엘하르트는 제이슨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저 우아하게 케이크를 먹었다. 그때 직원이 다가와 케이크를 건넸다. 엘하르트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직원이 미소를 지은 채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귀부인을 가리켰다.

    “저쪽에 계신 분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엘하르트는 귀부인을 향해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모습에 귀부인이 귀까지 붉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직원이 멈춰 있을 틈도 없이 귀부인들의 테이블에 불려 가더니 금세 엘하르트의 앞에 가게의 모든 케이크가 놓였다.

    눈앞에서 보면서도 어이가 없어지는 상황이었다. 제이슨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포크를 집어 들어 케이크를 향해 가져갔다.

    그때 엘하르트의 포크가 날아와 제이슨의 포크를 막았다.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포크를 밀면서 낮게 속삭였다.

    “맛 좀 보자.”

    -이건 내 몫이다.

    너무 당당한 말투에 제이슨은 힘을 주어보았지만, 포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러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제이슨은 한숨과 함께 포크를 거뒀다.

    “그래. 너 다 먹어라.”

    엘하르트는 그제야 승자의 미소를 짓고는 케이크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어째 부글부글 끓었다.

    테롤 백작이 자신의 방에서 암습을 당했다. 이마가 깨지고, 손목이 잘렸다. 손목의 상처는 치료도 불가능하게 태워버렸다.

    “우리를 농락했군.”

    베로스는 물론이고 그레이스 둘 중 하나만 이곳에 남아 있었어도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었을 터였다. 그들이 따라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일을 벌였다.

    “보기 좋게 당했어.”

    안톤의 죽음으로 자신들을 유인하고 던전을 턴 것도 열 받는 일인데 던전에서 탈출해서는 자신을 유인하고 테롤 백작도 노렸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제스토가 베로스와 그레이스가 있는 방으로 왔다.

    “테롤 백작이 뵙기를 청합니다.”

    베로스와 그레이스가 눈빛을 교환하고는 제스토를 따라 테롤 백작의 방으로 갔다. 침대에는 창백한 안색의 테롤 백작이 앉아 있었다.

    그는 베로스와 그레이스를 보고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오. 그보다 상대가 누군지 보았소?”

    “가면을 쓰고 있어 누군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곳까지 침투할 수 있던 것으로 보아 보통 실력자는 아닐 것으로 여겨집니다.”

    베로스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테롤 백작은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 때문인지 방비를 심각할 정도로 해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곳을 제집 드나들 듯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보통 실력자가 아니란 말이었다.

    테롤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렵게 청하겠습니다. 안톤을 죽이고, 저를 이렇게 만든 자를 잡아주십시오. 보답하겠습니다.”

    그레이스는 슬쩍 베로스를 보더니 영업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린 드래곤 용병단의 몸값은 비싸답니다.”

    “맡아주시겠습니까?”

    베로스도 끼어들었다.

    “본국의 백작을 해한 자이니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지. 나도 돕겠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베로스와 그레이스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 자를 쫓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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