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1화 (12/151)

【11】 거래(1)

제이슨의 뒤에서 코어 카트에 올라탄 엘하르트가 불쑥 물었다.

-이 길은 왔던 길이잖아? 왜 이리로 가는 거지?

“이미 왔던 길이니까. 내 뒤를 쫓던 자들이 흔적을 놓쳤으면 뭘 할 것 같아?”

-포기하나?

“그럴 리가.”

제이슨은 자신을 쫓는 이들이 누군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베로스 장군과 그레이스, 판톤까지 있다면 그들은 무너진 던전에서 골렘을 보았으니 큰 기대를 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던전의 가장 깊은 곳에서 탈출한 자가 있었다. 그가 무엇을 얻었든 확인은 해야 했다.

에고 기간트를 예상했다면 그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못한다. 북부 총사령관인 베로스 장군이 국경을 지키지 않고서 쫓아오는 행태.

하지만 그런 식으로 쫓아오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북부를 지켜야 하는 자리가 그리 가벼운 자리가 아니니까. 그와 ‘눈의 꽃’ 기사단이 없을 때 북부가 침략당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하니까.

문제는 그레이스와 판톤이다. 그들이야 용병들이니 작정한다면 언제까지고 따라붙을 수 있다.

그런 그들이 흔적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면 할 일은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가까운 엔텔 자작 성으로 가서 마탑을 이용하는 것이다.

코어 카트로 돌아오기에는 몇 시간이나 걸리는 시간을 되돌아오기보다 빠르게 테롤 백작 성으로 돌아가 상황을 확인하려고 할 터였다.

그러니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 엔텔 자작 성으로 가서 마탑을 이용하면 된다. 저들은 설마 자신들을 앞서갔던 제이슨이 그들보다 늦게 엔텔 자작 성의 마탑을 이용할 줄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마탑은 어지간한 권력 앞에서는 이용자에 대해 비밀을 지킨다. 저들이 알아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제이슨은 엔텔 자작 성 근처에서 코어 카트를 내려서 천천히 걸어갔다. 다시 돌아오는 동안 아침이 밝았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자연스럽게 엔텔 자작 성에 들어가니 엘하르트는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의 빼어난 외모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을 저어해서 제이슨은 그에게 목도리를 둘러줬다.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만으로도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자리에 멈춰 서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많이 변했군.

“그때는 어땠는데?”

-선택받은 이들을 위한 세상이었지. 부조리했던 세상이었으니까.

“그래?”

고대 마도 시대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데리고 마탑에 도착했다. 칙칙한 인상의 사내가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테롤 백작 성의 마법사는 전문판매원인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쪽은 업무에 지쳐있는 것이 티가 났다. 제이슨은 그런 사내의 앞으로 가서는 목적지를 밝혔다.

“마탑 제 7연구소.”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까?”

“에르도 님을 뵈러 갈 생각입니다.”

“50골드씩 100골드입니다.”

100골드를 건네자 삶에 지쳐 보이는 마법사가 워프 게이트에 마나를 주입했고 찬란한 빛과 함께 주변의 풍광이 변했다. 제이슨은 새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는 마법사를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에르도님을 뵈러 왔습니다.”

“선약이 되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마법사가 수첩 하나를 꺼내 들더니 그곳을 살피며 말했다.

“한 달 정도 기다리시면 뵐 수 있을 것 같네요. 약속을 잡아드릴까요?”

제이슨은 군말하지 않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고대 골렘의 코어를 꺼내 들었다.

“에르도님이 관심 있어 할 물건이 있어 가지고 왔습니다. 원하지 않으신다면 마탑 총단에 정식으로 판매하도록 하죠.”

코어를 살피던 마법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이쪽으로 와서 앉아계시면 에르도님에게 보고 드리고 오겠습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마법사가 떠난 사이에 새하얀 가운을 걸친 귀여운 인상의 여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찻잔을 들고 다가오다가 엘하르트가 목도리를 벗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들고 오던 찻잔을 떨어트렸다.

제이슨이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뜨거운 찻물을 뒤집어 쓸뻔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이슨이 찻잔을 내려놓자 엘하르트가 그걸 우아하게 집어서 한 모금을 마셨다. 그 모습에 옆에서 구경하던 여인이 쟁반을 가슴 앞으로 모은 채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었다.

“뭐 하고 있는 건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여인이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숙이고 총총걸음으로 멀어졌다. 처음 그들을 맞이했던 마법사가 다가와 말했다.

“에르도님이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제이슨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엘하르트도 그를 따라서 일어났다. 마법사를 따라간 곳은 간이 워프 게이트가 있었고 그곳에 오르자 곧장 마탑 제 7연구소의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이 서 있었다.

마탑 제 7연구소 수석 마도공학자.

동부 전선의 벡스 장군과 거래하는 마탑의 마도공학자로 이름만 들었지 얼굴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연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마탑에 그냥 팔게 되면 여러 가지 절차가 있다. 연구소들이 순서에 따라 코어를 받고 연구에 들어가는데 그의 순서가 언제 돌아갈지 모르니 그에게 직접 오면 절차를 무시하고 쉽게 거래가 될 것 같았는데 예상이 맞았다.

에르도는 안으로 들어오는 제이슨을 보고는 손을 내밀어 소파를 가리켰다. 최고급 가죽으로 만든 소파에 엘하르트가 풀썩 앉더니 엉덩이를 방방 뛰며 그 부드러움을 만끽했다.

마치 아이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소파가 비명을 내질렀다. 엘하르트의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알았기에 제이슨은 그를 말렸다.

“가만히 있어. 이거 생각보다 비싼 거야.”

엘하르트는 더 할 생각도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앉아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조성됐다.

모든 것이 모두 엘하르트의 중심이 된 것 같은 분위기. 에르도의 시선도 엘하르트를 향했고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제이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 이 에고랑 같이 다니면 여러 가지 귀찮을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이슨은 품에서 고대 골렘의 코어를 꺼냈다. 소리 나게 테이블에 올려놓자 그제야 모두 마법이 풀린 것처럼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대 골렘의 코어로군. 어디서 구했나?”

“그것까지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지.”

에르도는 코어를 살펴보면서 감탄했다.

“고대 마도 시대라고 일컫지만, 그들이 만든 골렘의 코어들에도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이건 그중에서도 후기에 나온 모델인 것 같군.”

“그런 것까지는 몰랐습니다.”

에르도는 품에서 외눈 고글을 꺼내 착용하고는 코어를 찬찬히 살폈다.

“호오. 역시 후기에 나온 것이라 그런지 몇 가지 못 보던 방식이 적용되어 있어. 연구할 가치가 크군.”

에르도는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혹시 골렘의 본체는 없나?”

“있기는 한데 여기서 꺼낼 수는 없어 보이는군요.”

“좋아. 그럼 내 연구실로 가세.”

에르도를 따라 걸어가 간이 워프 게이트에 오르자 그들은 곧 거대한 연구소에 들어섰다. 두 기의 골렘이 해부되어 있었고, 기간트도 몇 대가 놓여 있었다.

엘하르트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살피자 에르도가 경고했다.

“거기 잘생긴 청년. 함부로 만지다 위험하니 만지지는 말게.”

제이슨은 에르도가 얼마나 꼬장꼬장한 인간인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었다. 로크와는 직접 안면이 있지만, 자신과는 접점이 없었는데 악마가 따로 없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엘하르트에게는 저렇게 무르게 대하는 것이 신기했다.

에르도는 제이슨을 연구소의 공터로 데리고 가더니 말했다.

“꺼내보게.”

아공간 주머니에서 제이슨은 골렘의 기체를 꺼냈다. 5미터에 달하는 기체를 내려놓자 에르도는 기체의 상태를 보고는 감탄했다.

“확실히 후기의 골렘이로군. 상태도 좋아. 코어와 기체까지 180만 주겠네.”

에르도는 좋은 물건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말로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제이슨은 미소를 지은 채 두 기의 골렘을 더 꺼냈다.

에르도는 세 기의 골렘과 코어를 보고는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호오. 이러면 연구할 거리가 더 많아지지. 아주 좋아. 세 기를 다해서 550만 골드를 주지.”

제이슨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절차를 건너뛴 것은 물론이고 값도 더 넉넉하게 받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제이슨이 마지막에 만났던 7미터짜리 골렘의 코어를 꺼내 들었다.

“그럼 이건 얼마나 하겠습니까?”

에르도는 제이슨이 꺼내 든 것을 보고는 어찌나 다급했는지 블링크까지 써서 다가왔다. 그는 제이슨의 손에 들린 코어를 꼼꼼히 살피며 물었다.

“이건 어디서 구한 건가?”

“7미터짜리 골렘이 가지고 있던 코어입니다.”

“믿기지 않는군. 고대에는 에고 기간트 외에는 모두 따라잡았다고 여겼는데 이 코어 자체는 지금의 마도공학으로도 따라잡지 못할 수준이야.”

“얼마짜리 코어입니까?”

“5,500 포스는 되어 보이는군.”

현존하는 최고의 코어는 4,500포스까지 만들어냈다. 물론 그것도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아서 실용화는 되지 못한 상황. 그런데 5,500포스짜리 코어를 발견했다.

골렘의 것이라고 하나 개발만 하면 지금까지의 기간트 시장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제이슨도 쓸만하겠다 싶어서 집어왔지 이런 물건인 줄은 몰랐다.

에르도는 외눈 고글을 벗어 던지고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묻지 않겠네. 하지만 이건 우리 제 7연구소에서 연구해야 하네.”

“그야 뭐 가격만 적당히 챙겨주시면.”

에르도의 시선이 뒤따라 온 마법사에게 향했다.

“세빌. 우리 연구소 올해 예산이 얼마나 남았지?”

“550만을 지불하고 나면 2,300만 정도 남았습니다.”

“젠장! 그것밖에 없어?”

에르도가 제이슨의 앞으로 다가와서는 그 꼬장꼬장한 얼굴에 억지 미소를 지었다. 어째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일시불로 2,000만을 내주겠네. 그리고 이 코어를 연구해서 개발한 코어의 순이익의 5%를 내주지. 어떤가?”

기간트의 구성 요소 중 가장 큰 부분은 코어다. 코어의 출력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 이걸 개발해서 지금까지 나오지 못한 코어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가치는 몇천만 수준이 아니다.

앞으로 히어로급 기간트는 모두 이 코어를 달아야만 할 수도 있다. 코어 하나의 가치가 최소 100만에 달할 터. 한 대 팔릴 때마다 5%면 5만 골드씩 받는다. 최대 200대면 천만 골드를 더 얻을 수 있다.

제이슨은 드물게 웃으며 말했다.

“계약서 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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