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0화 (11/151)
  • 【10】 추적자(2)

    정령석을 내려놓고 흔적을 지우기 위한 몇 가지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엘하르트가 물었다.

    -뭐하는 거냐?

    던전의 잔해를 벗어나 꼬박 세 시간을 달려왔다. 코어 카트를 처음 타본 엘하르트는 그것의 신기함에 감탄했는데 인간들이 별의별 것들을 다 만들었다고 중얼거리면서 따라왔다.

    제이슨은 흔적을 모두 지운 후에 답했다.

    “3일이나 지났다면 다른 놈들이 준비를 마쳤었을 테니까. 그들을 끌어내야지.”

    일부러 바론 백작 성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대로 간다면 테롤 백작과 가까운 이 중 하나인 엔텔 자작 성이 나온다. 그곳은 버젓이 마탑이 존재하니 그곳을 이용할 거로 여기게 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갈 생각은 없었다.

    코어 카트를 이용하면서 오러의 회복은 거의 끝난 상태다. 그런데 오러 홀 자체도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은 느낌. 확실히 몸에 변화가 생겼다.

    긍정적인 변화였지만, 무엇이 바뀐 것인지 파악해야 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렇게 준비한 것뿐이다.

    코어 카트를 쓸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지만, 그걸 이용하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흔적을 지우고 움직인다.

    엔텔 자작 성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 후에 다시 돌아간다. 흔적을 지우고 적진에 침투해 왔었기에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알제리 왕국의 레인저들도 못 찾아서 몇 번이나 뒤통수를 맞았었으니까.

    흔적을 지운 제이슨은 코어 카트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러를 운용하면서 달리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려면 두 발로 움직여야 했다.

    문제는 엘하르트였다. 그의 흔적마저 지우는 것은 어려워 결국 제이슨은 그를 업고 움직여야 했다. 적어도 추격자들의 탐사 거리를 완전히 벗어난 후에야 코어 카트를 쓸 수 있다.

    엘하르트를 업은 채 이동하면서 제이슨이 물었다.

    “그런데 넌 육성으로는 말을 못하는 건가?”

    “못할 것도 없지.”

    태연하게 대답하는 데 그 목소리도 묵직한 저음에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뭐 이런 요물이 다 있나 싶은 놈. 여자라면 반하지 않고 견딜 수 없으리라.

    -다만 육성으로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말 자체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

    제이슨은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리고는 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엘하라트는 에고인 주제에 상당히 무거웠다. 본체가 기간트인 것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었지만, 그런 엘하르트를 업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몇 배는 더 힘이 들었다.

    그렇게 이동한 제이슨은 충분히 거리를 벌린 후에 다시 코어 카트를 꺼냈다.

    -이제 갈 건가?

    “그래.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제이슨은 곧장 코어 카트를 출발했다. 다시 돌아오는데 세 시간. 아직 해가 뜨기 전의 테롤 성을 바라보던 제이슨이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같이 가지.

    “너 업고 돌아다닐 상황 아니야.”

    엘하라트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널 따라다니면서 움직이는 것은 보고 배웠다. 이 정도는 충분하겠더군.

    제이슨의 눈이 짜게 식었다.

    “그러니까 나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거야?”

    -그래. 기척 없이, 흔적 없이.

    “언제부터?”

    -보고 바로.

    “그런데 업혀 있었다. 이거지?”

    -흥미로웠다. 누군가한테 업혀 본 기억이 없어서.

    이가 갈렸지만 따지지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좋아. 그럼 따라와. 대신에 내가 하는 일에 끼어들지 마. 알겠어?”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좋아. 가자.”

    제이슨이 테롤 백작성으로 잠입을 시작했다. 내성 벽에 설치된 알람 마법을 지나가는 것은 로크가 만들어둔 침투 전용 세트에 들어있는 공간 왜곡 장치면 충분했다.

    동전 크기의 물건 두 개를 놓으면 그사이의 공간에 걸려있는 마법을 왜곡시키는 것으로 얼마든지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로크가 얼마나 천재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어지간한 마법들은 이거 하나로 거의 통과 되니까.

    제이슨이 알람 마법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자 그를 따라서 엘하르트가 움직였다. 제이슨은 그가 능숙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이슨처럼 소리도 기척도, 흔적도 없이 엘하르트는 잘 따라왔다. 그런 그를 데리고 제이슨은 테롤 백작의 성으로 잠입했다. 새벽에 지나가는 순찰들이 있었지만, 오러 유저인 제이슨을 감지할 수는 없었다.

    몇 개의 알람 마법들이 있었지만, 공간 왜곡 장치를 설치하면서 빠르게 잠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잠입한 제이슨은 테롤 백작의 방에 도착했다.

    가면을 꺼내 얼굴에 쓴 제이슨이 엘하르트에게도 가면을 건넸다. 가면을 쓴 엘하르트는 이런 순간이 재미있다고 여긴 건지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제이슨은 그렇게 테롤 백작의 방에 들어섰다.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그를 내려다보던 제이슨은 우선 방에 음파 방해 장치들을 설치했다.

    소리 없이 움직여 방에 모든 장치를 설치한 제이슨은 테롤 백작의 목에 단검 한 자루를 겨누고 그의 뺨을 두드렸다. 테롤 백작은 눈을 떴다가 자신의 목에 겨눠진 단검을 보고 시선을 들어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네놈이냐?”

    목에 단검이 겨눠진 채로도 그는 태연했다. 그 눈빛을 보면서 제이슨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안톤은 이 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열하고 독한 자의 눈빛. 전형적인 귀족이다.

    자신의 가문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것이 이 자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냥 죽여서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아주 바닥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래.”

    “던전을 무너트린 것도 넌가?”

    제이슨은 빙긋 웃고는 단검의 손잡이로 그의 이마를 내리찍었다.

    “아악!”

    귀족이 되고 이런 고통을 받아 본 적이 없던 테롤 백작이 비명을 질렀다. 사실 고통스러운 것보다도 이렇게 소리를 질러 병사들을 부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마를 따라 흐르는 핏물만 느껴질 뿐이었다.

    제이슨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리 지르고 싶으면 질러도 돼. 내 칼에 네 목이 떨어지는 것이 빠를지 아닌지 시험해보고 싶다면.”

    모든 마법 장치를 뚫고 이곳까지 들어온 자였다. 나쁜 짓을 벌여왔던 만큼 성의 경비는 보통 삼엄한 것이 아닌데도 태연하게 잠입했다. 그러니 저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누가 의뢰한 거냐?”

    이 정도 능력자를 고용할 정도의 인물이 누가 있을까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는 중에 제이슨은 빙긋 웃더니 다시 한번 단검을 내리쳤다.

    빠각!

    “크윽!”

    신음을 토하는 테롤 백작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보고 제이슨의 눈이 반짝였다. 마도공학자들이 기간트를 개발하면서 얻은 것 중 하나가 아공간에 대한 개발이었다.

    그 수준 높은 마법도 이제는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다. 그 가격이 워리어급 기간트 구입비에 비견될 정도로 비싸서 문제지.

    어떤 형태로도 만들 수 있는 아공간 아티펙트를 알아본 제이슨은 칼을 휘둘렀다.

    스걱.

    테롤 백작은 자신의 팔이 잘려나간 고통에 입을 쩍 벌렸다. 너무 큰 고통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제이슨은 테롤 백작의 아공간 아티펙트가 달린 손목을 들어 올렸다. 예상대로 주인의 팔과 하나가 되어 있어서 이렇게 잘라내야만 했다.

    고가의 물건인 만큼 도난 방지는 물론이고 주인이 아닌 다음에는 열지도 못한다. 제이슨은 그것을 알았기에 팔을 잘라 아공간 아티펙트를 회수했다.

    테롤 백작이 손목을 부여잡고 제이슨을 쏘아보았다.

    “그걸 네가 열 수 있을 것 같냐?”

    “아니.”

    제이슨은 담담히 대답했다. 아공간 아티펙트를 지니고 다닌다는 것은 다른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것. 그건 그만큼이나 이 안에 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아마 테롤 백작의 자산 중 현물 자산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산은 아공간 아티펙트에 들어있을 터. 제이슨은 테롤 백작의 앞에서 아공간 아티펙트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강제로 그걸 잡아 뜯었다.

    파지지직!

    강렬한 전기가 튀었지만, 오러 유저인 제이슨은 아무렇지 않았다. 손에 보이지 않게 오러를 두른 제이슨이 아공간 아티펙트를 잡아 찢어버리자 그것과 연결된 아공간 좌표는 사라졌다.

    이제 그 안에 든 것은 누구도 찾지 못한다.

    테롤 백작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단검으로 그를 겨눴다. 그를 지금 당장 죽이지는 않지만, 그를 바닥까지 끌어내릴 첫걸음을 내디뎠다.

    “무슨 짓이냐!”

    제이슨은 씨익 웃고는 그의 이마를 다시 한번 내리찍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기절한 그의 팔목을 제이슨은 응급 지혈용 팩을 꺼내 그의 손목에 붙였다.

    치이익!

    손목 부위가 타들어 가는가 싶더니 고통에 테롤 백작이 다시 깨어났다. 제이슨은 귀찮다는 듯 다시 그의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켰다.

    이렇게 절단 부위를 태워버리면 신관이 와도 붙이지 못한다. 잘린 팔도 튀어나오게 할 수 있는 대신관이나 성녀급을 부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이들은 돈으로도 움직일 수 없다.

    그런 이들을 움직이려면 억만금의 돈과 인맥이 있어야 하니까.

    제이슨은 그렇게 테롤 백작을 영원히 불구로 만들었다.

    기절한 테롤 백작을 내려다보며 제이슨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

    “아직 끝난 거 아냐. 기다리고 있어.”

    제이슨이 돌아서자 그를 바라보던 엘하르트가 흘끔 테롤 백작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저렇게 만든 이유가 있나?

    “내 가족을 건드렸거든.”

    -그런데 살려둔다고?

    “아니. 더 바닥까지 끌어내리려고 살려두는 거야. 그냥 죽일 수는 없잖아.”

    -그건 마음에 드는군.

    원체 재수 없는 녀석이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또 통했다.

    “가자. 앞으로 바빠질 거야.”

    레인저가 고개를 숙인 채 보고했다.

    “사라졌습니다.”

    베로스의 시선이 그레이스를 향했다. 그녀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정령석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놈 봐라?”

    코어 카트는 어지간한 이들은 감히 살 엄두도 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카트에 들어가는 코어 자체가 기간트에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 그 가격이 끔찍할 정도로 비쌌으니까.

    마탑의 워프 게이트가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걸 쓰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그걸 이용해서 이동하는 바람에 그걸 쫓아오는 것도 힘들었다.

    그레이스는 물론이고 베로스에게도 코어 카트는 고작 다섯 개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레인저를 모두 데려오지 못하고 고작 한 명 밖에 데리고 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수색에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흔적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레이스가 옆의 바위에 앉아서는 투덜거렸다.

    “이거 완전히 엿 먹은 것 같은데.”

    “우릴 낚기 위해서 이곳까지 끌어들였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잖아.”

    베로스는 그레이스의 맞은편에 서서 물었다.

    “왜?”

    그레이스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답했다.

    “안톤이 죽었어. 목을 잘랐다는 것은 아무래도 원한 관계일 가능성이 크지. 테롤 백작의 평판이야 잘 알고 있을 테고.”

    베로스는 상황을 짐작하고는 인상을 굳혔다.

    “테롤 백작을 노렸다는 건가?”

    “엔텔 자작 성으로 가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보자고. 솜씨를 보니 우리가 단시간에 찾을 방법은 없어 보이니 그놈의 목적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

    베로스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대륙 3대 용병단이 이렇게 여유가 있나?”

    “그건 북부 총사령관인 당신이 할 말이 아닐 텐데?”

    “끝까지 쫓을 기세군.”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장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골렘이 지키는 던전. 그 안에서 나온 것이 무엇일지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다. 왕국의 운명을 바꿀 물건이 나왔다면 북부를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당분간 함께 움직여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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