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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9화 (10/151)
  • 【9】 추적자(1)

    던전 1층을 지키던 이들은 발밑에서 전해진 진동으로 던전 2층에 누군가 잠입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알톤을 죽인 자를 찾는 것도 급했지만, 그렇다고 던전을 털리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 이때에 던전이 공략당하고 있다면 안톤을 죽인 자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던전으로 그들은 모였다.

    판톤을 제외하고 그레이스와 베로스는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용병단과 기사단을 데리고 던전에 진입했다. 던전은 대규모였기에 그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던전 1층을 쾌속으로 돌파한 그들은 2층으로 진입했고, 그곳에서 던전의 강대한 트랩에 일행들을 하나둘 잃었다. 천천히 던전을 공략했다면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침입자의 뒤를 쫓느라 그들은 정신없었다.

    천천히 쫓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빼앗기면 안 되니까.

    그렇게 내려갔던 그들은 곧 던전의 가디언이 골렘인 것을 확인했다. 3층을 내려가는 길이 네 곳이었는데 그중 판톤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디언들을 만났다.

    판톤은 가장 먼저 3층에 도달했고, 그가 도달한 것과 동시에 경고와 함께 공격이 시작됐다. 판톤도 어쩔 수 없이 기간트를 소환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골렘을 쓰러트리고 안으로 진입하려고 할 때 경고를 들었다.

    10초 후 폭발한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계단으로 몸을 피했다. 3층 전체가 폭발하고 2층도 무너져내렸다. 그 여파는 1층까지 전해졌고, 던전 전체가 무너져내렸다.

    기간트에 탑승한 채로도 판톤은 무너진 던전을 벗어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야 했다. 4천 포스를 낼 수 있는 다이노가 아니었다면 그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던전을 나온 판톤은 기간트를 역소환하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살아남은 것이 용했군.”

    2층에서 폭발을 맞이했기에 무너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몸을 빼냈지. 잘못했으면 그대로 죽을 뻔했다. 던전이 발견된 곳은 테롤 백작 성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는데 밀밭 일대가 전부 무너져 내렸다.

    “산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군.”

    산에서 발견된 던전이 이렇게 무너졌다면 산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탈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터였다. 판톤이 몸의 먼지를 털 때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말을 타고 달려온 기사들. 그들의 선두에는 테롤 성의 산양 기사단장 제스토가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판톤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던전에서 나온 건 내가 처음인가?”

    “예. 아직 다른 분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백작께서 찾으십니다.”

    판톤은 무너진 던전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됐어. 던전이 무너진 이상 이곳에서 볼 일은 없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판톤은 홀로 움직이는 이였다. 던전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곳에 더 남아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백작께서 찾으십니다.”

    판톤은 제스토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데려갈 재주는 있고?”

    서늘한 눈빛을 받은 제스토는 입을 다물었다. 기간트 라이더라고 하지만 엑스퍼트인 그가 오러 유저인 S급 용병인 판톤에게 비벼볼 수는 없었다.

    그가 작정한다면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 떠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한 가지 전해주자면 누군지 몰라도 던전에 가장 먼저 침입한 자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던전은 3층으로 이뤄져 있었고, 3층에서 일어난 폭발의 중심에 있었다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2층으로 빠져나왔음에도 기간트의 외갑 손상이 심했다. 10만 골드를 받았으니 수리비는 충분했지만, 히어로급 기간트의 외갑이 손상될 정도라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중심에 있었다면 히어로급 기간트라고 해도 멀쩡할 수 없었을 테니까.

    판톤이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제스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대 대규모 던전이 무너진 일이라 그 진상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를 그냥 보냈으니 이 일에 대해서 문책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한숨을 내쉰 제스토가 뒤에 선 기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던전에서 나올 이들이 더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살펴라. 이곳을 나오는 이들의 신원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건들지 못하는 인물들도 있지만, 누구인지는 모두 확인해야 한다. 무너진 던전을 복구하는 것도 큰일이지만, 그보다 큰일은 이곳을 이렇게 만든 자를 놓치는 것이다.

    판톤과 그레이스, 베로스는 모두 이곳에 안톤을 죽인 자가 들어왔을 거라고 했다. 적어도 안톤을 죽인 자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그자가 누군지 파악해야 의뢰라도 할 수 있을 테니 그를 놓쳐서는 안 됐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에 의식을 차린 제이슨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 정신을 차린 제이슨에게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깬 거냐?

    고개를 돌리니 은은한 빛이 모습을 드러냈고 엘하르트가 그 빛을 받으며 앉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데도 그냥 그림이 된다.

    “어떻게 된 거야?”

    -폭발에서는 견뎠는데 기간트를 유지할 수 없어서 넘겨 놓은 상태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바위 틈새에 끼여 살아남았다.

    제이슨은 이마에 빠직 핏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죽을 수도 있었다는 거야?”

    -너는 죽을 수도 있었지.

    으드득 이가 갈렸지만, 아직도 오러 홀이 저릿거려서 나서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어?”

    -3일.

    제이슨은 숨을 들이마시다가 인상을 굳혔다.

    “공기가 희박하군.”

    -억지로라도 깨우려고 했었다. 이대로라면 3시간 안에 너는 죽을 것 같아서.

    제이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너진 바위 틈새의 벽들을 만져보았다.

    “곤란하군.”

    엘하르트가 고정하고 있던 기체를 거두면서 한 차례 더 무너져서 높이 3미터에 좌우로 2미터 정도의 공간에 갇혔다. 마지막에 오러 홀을 쥐어짜 오러 홀에 문제가 생긴 지금. 몸의 회복이 우선이었다.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를 뒤져서 포션을 하나 꺼내 마셨다. 오러 홀에 입은 상처는 포션으로 낫지 않지만, 체력은 회복된다.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삭신이 쑤시던 것이 사라지자 제이슨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면서 오러 홀을 살폈다. 다행히 오러 홀에 균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런 상처를 입었으면 적어도 몇 달은 고생해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상태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원래 오러 홀의 오러를 다 쓰면 다시 차오를 때까지 잘 쓰지 않는데 이번에는 엘하르트에게 강제로 빨려 나가는 바람에 오러 홀이 텅텅 빈 상황이다.

    3일 동안 기절해 있었다고 해도 그동안 오러 홀이 회복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무리가 왔었다는 뜻. 이제 오러 홀을 달래고 다시 오러를 채워야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남은 시간은 고작 세 시간. 하지만 무리해서 이곳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알차게 사용해서 한 번에 돌파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제이슨이 오러를 회복하는 것을 보고 엘하르트는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곳에 갇히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으나 인간들이 기간트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 수준은 저급하다고 하나 흥미로웠다.

    세상이 어찌 변했기에 인간들이 버젓이 기간트를 다루게 된 걸까? 선택받은 이들만이 다룰 수 있던 것이 어찌 인간에게까지 전해졌는지 모를 일이다.

    엘하르트는 제이슨이 주변의 기운을 흡수해 자신의 몸에서 오러로 전환하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전환한 오러 또한 선택된 이들에게만 전해지던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엘하르트는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협상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니 훗날 써먹을 곳이 있어 보였다. 문제는 저렇게 회복한 정도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어차피 봉인구가 부서진 지금. 자신은 시간만 지나면 충분히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이야 숨을 안 쉬어도 상관없으니 시간이야 오래 걸리겠지만, 이곳에서 대략 1년 정도 있다가 나가면 될 문제였다.

    이번에 꽤 많은 기력을 소비했지만,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력으로 회복해 나갈 수 있다.

    그래도 고작 1년이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렸던 길고 긴 시간을 기다렸는데 고작 1년을 못 기다릴까? 하지만 제이슨이 탈출할 수 있다면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제이슨은 그사이 제법 많은 양의 오러를 회복할 수 있었다. 오러 홀을 달래는 것에 시간을 들이기는 했지만, 오러 홀이 빠르게 회복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보다 회복 속도가 빨랐다.

    제이슨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지상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한 50미터 정도?

    제이슨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던전이 밀밭에 있었던 것을 떠올린 제이슨은 양손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숨을 골랐다.

    지금까지 모은 오러를 모조리 끌어올린 제이슨은 확실히 자신이 전과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뭔지 확인할 틈은 없었다. 지금 당장은 탈출이 우선이었으니까. 제이슨은 일렁이는 검을 들고 천장을 조준했다. 그리고 전력으로 오러를 방출했다.

    콰앙!

    천정이 부서지면서 사방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제이슨이 도약했다.

    던전이 무너지고 이틀 동안 그레이스의 그린 드래곤 용병단과 베로스 장군의 ‘눈의 꽃’ 기사단이 나왔지만, 판톤보다 깊은 곳에 들어갔던 그들은 사망자가 일곱이나 됐다.

    다친 이들도 꽤 있어서 그들은 지금 테롤 백작 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판톤은 빠르게 빠져나왔지만, 뒤늦게 나왔던 그들이 입은 피해는 제법 컸다.

    중상자도 꽤 있어서 그들은 테롤 백작 성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우르르릉!

    던전이 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진동에 성에서 테롤 백작과 식사하던 베로스 장군과 그레이스가 눈을 마주치더니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이 무너진 던전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 하나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 하나만 남아 있었다.

    베로스 장군은 그곳을 지키고 있던 제스토를 돌아보았다.

    “누가 나왔나?”

    “무너지는 소리에 나와보았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레이스는 정령을 소환하고는 말했다.

    “아니. 먼저 빠져나갔어. 투명 망토를 두르고 있나 본데?”

    그레이스가 베로스 장군을 돌아보며 물었다.

    “레인저들 데리고 있지?”

    “그런데?”

    “이놈은 같이 추적하지. 보상보다도 던전의 중심에 있던 놈이야. 뭘 가져왔는지 알아내야 하지 않겠어?”

    “협력하자는 건가?”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급했는지 이번에는 정령석도 안 뿌리고 도망갔더군. 쫓을 수 있겠어.”

    베로스 장군의 입가에도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그럼 함께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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