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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8화 (9/151)
  • 【8】 만남(2)

    발에 차여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엘하르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네가 설마?’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떨어지던 엘하르트의 모습이 투명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다시 제이슨의 눈앞에 나타났다.

    엘하르트는 팔짱을 낀 채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여실히 말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잖아.”

    제이슨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엘하르트는 가만히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날 공격했다는 것은 함께 할 의사가 없다는 건가?

    “받은 대로 갚아줬을 뿐이야.”

    엘하르트는 제이슨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엘하르트가 제이슨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넌 정말 날 닮은 미친놈이구나.

    스스로를 미친놈이라고 하니 살짝 무서워졌지만, 제이슨은 퉁명스럽게 자신의 어깨를 잡은 엘하르트의 손을 쳐냈다.

    “치워. 그보다 널 구속에서 풀어주면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는지 그것부터 말해야 하는 것 아냐?”

    엘하르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날 구속에서 풀어준다면 네가 이곳에서 죽지 않게 해주지.

    “이곳에서 죽어?”

    -지금 상황을 봐서 알겠지만, 이곳은 날 가둬두기 위한 봉인지다. 봉인지가 침입자를 막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 같나?

    제이슨은 인상을 구긴 채 답했다.

    “설마 폭발이라도 시킨다는 건가?”

    -그래. 날 가둘 수 없으면 폭발시키겠지.

    “그럴 거면 애초에 죽여버리지 왜 살려둔 거야?”

    -그럴 수 없었으니까. 날 죽여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상황이었거든. 대신 보험을 들어둔 것이었지.

    엘하르트는 제이슨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조건이 되나?

    제이슨은 고개를 내저었다.

    “보통 에고 기간트들은 마스터의 기간트가 돼. 그런데 너는 왜 기간트를 내놓지 않고 날 무사히 빼주는 것이 조건이지?”

    -그야 네 수준이 미달이니 그렇다.

    제이슨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어디 가서 빠진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공식적으로 대륙의 오러 유저는 100명 내외다. 비공식적으로 더 있을 수 있겠지만, 각 왕국에서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 그 정도였다.

    제이슨도 비공식적 오러 유저 중 하나였다. 언젠가 벡스 장군과 술자리에서 로크가 물었을 때 답하기를 비공식 오러 유저들을 다 통틀어도 대륙에는 이백 명이 안 될 거라고 했다. 최소 대륙에서 이백 위 안에 드는 자신이다.

    그런데 수준 미달이라니?

    “이런 다 부서진 기간트에게 수준 미달?”

    엘하르트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네가 가진 그 쓰레기 기간트와 비교하는 건가? 감히! 이 엘하르트를?

    “내가 수준 미달이라고 한 건 어떻고?”

    엘하르트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재력은 인정해 줄만 하나 지금 네 수준에서는 탑승해도 자력으로 가동할 수 없다. 너는 나를 움직일 가장 기본이 되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내 도움 없이 날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나와 맹약을 맺고 싶다는 건가?

    제이슨은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다섯 기의 에고 기간트의 주인은 모두 마스터라고 불리는 지고한 존재들. 그들 수준에 이르러야 에고 기간트를 가질 수 있다는 건가?

    “그래서 안 된다는 건가?”

    -말했듯이 나는 너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줄 거다.

    “그리고?”

    -각자 갈 길 가는 거지.

    “솔직하게 말해서 널 구하지 않고도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있는데?”

    엘하르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더 큰 걸 제시해 봐.”

    엘하라트는 제이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답했다.

    -좋아. 앞으로 1년. 너와 함께 해주겠다.

    “내 마음대로 조종도 할 수 없는데 뭘 함께 해주겠다는 거야?”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는 거다. 내가 도우면 넌 나와 함께 할 수 있지.

    “자력으로 날 돕겠다?”

    -그래.

    “3년.”

    -3년?

    “이곳에서 고대부터 있었다면 얼마나 오래도록 기다려 온 거야? 그렇다면 3년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잖아.”

    엘하르트는 인상을 굳힌 채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하지만 나와 맹약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상태로 너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

    “에고 형태로?”

    -그래. 그래도 괜찮은가?

    “안 될 건 없지. 혹시 이 구속구를 부술 방법이 따로 있어?”

    엘하르트가 자신을 구속한 사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맹약을 맺을 수 있다면 스스로 파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니 직접 부숴야만 해.

    “이걸 부수라고?”

    묶여 있는 사슬의 크기는 제이슨이 뽑아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것에 그려진 마법 술식이 가진 힘 자체도 만만치 않았다.

    -기간트로 부숴야겠지. 두 개만 부숴도 나머지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

    제이슨은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바이슨을 소환하고 이걸 부수려면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켜야 했다. 지금 상태로는 정말 운이 좋아야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해보자고.”

    제이슨이 도약하면서 바이슨을 소환했다. 바이슨에 올라탄 제이슨은 자신이 가진 모든 오러를 끌어모았다. 양손검에 오러가 일렁이기 시작했을 때 제이슨은 그것을 그대로 휘둘렀다.

    다리를 속박하고 있던 구속구에 오러 블레이드가 작렬했을 때 던전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쿠쿠쿠쿠!

    -위험! 위험! 엘하르트의 봉인에 치명적인 공격이 가해졌습니다. 엘하르트가 깨어날 수 있습니다.

    제이슨은 자신의 전력이 실렸던 공격에도 두 개의 사슬에 큰 흠집이 났을 뿐 부서지지 않는 것을 보았다. 제이슨은 그래서 바이슨의 손을 내밀어 봉인 술식이 적힌 사슬을 움켜쥐었다.

    바이슨의 체중이 실리자 사슬이 견디지 못하고 끊어졌다. 제이슨은 바이슨을 역소환하고 곧바로 끊어진 사슬의 일부를 잡고 반동을 이용해서 솟구쳤다.

    다리의 두 개 구속구를 잘라냈지만, 양팔을 고정하던 봉인구는 그대로여서 엘하르트는 양팔이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렸다. 제이슨이 그 어깨에 오르자 엘하르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러면 내 힘을 온전히 낼 수 없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해.

    “충분하다고?”

    -그래. 보여주마. 내게 탑승해라.

    제이슨은 빛과 함께 자신이 엘하르트의 내부로 들어온 것을 느꼈다. 두 개의 컨트롤러가 좌우에 있는 상태. 제이슨이 엘하르트에 탑승하고 시야를 개방하자 곧 주위의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골렘들이 무기를 집어 던지고 있었다. 날아드는 무기들을 보며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만인가?

    한마디 말과 함께 양쪽 팔을 구속하고 있던 사슬이 벽에서 뽑혀 나왔다. 봉인 술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뽑혀 나오는 사슬을 보면서 제이슨은 새삼 엘하르트의 힘에 감탄했다.

    벽에서 뽑혀 나온 사슬을 휘둘러 날아들던 무기를 쳐낸 엘하르트가 바닥에 내려섰다.

    쿵!

    굉음과 함께 먼지가 치솟았다. 왼쪽 손도 없고, 오른쪽 허벅지도 부서진 상태였지만 엘하라트가 몸을 일으키자 골렘들이 다 저 밑으로 보였다.

    그 압도적인 거체. 엘하르트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것은 지금까지 억눌렀던 것을 폭발시키는 것.

    엘하르트가 오른손으로 사슬을 잡아 휘둘렀다.

    촤악!

    달려들던 골렘들이 마치 칼에 잘린 것처럼 두 조각이 났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보면서 왈칵 피를 토했다.

    “너 이 새끼. 말도 안 하고.”

    엘하르트가 움직이면서 제이슨은 자신의 몸에 있던 오러가 쭉 빨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남아 있던 오러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가서 펼친 한 수.

    제이슨이 숨을 헐떡이는 동안 외부에서 알림이 울렸다.

    -위험! 위험! 엘하르트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10초 후에 봉인지를 자동으로 폭발합니다. 모두 대피하십시오.

    제이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던전 3층에서 지상까지 10초 안에 무슨 수로 나간다는 말인가?

    “10초밖에 없다잖아!”

    -우리는 나가지 않는다.

    “뭐?”

    엘하르트는 차분하게 말했다.

    -최대한 힘을 아껴라. 이곳에서 버틸 테니까.

    “널 죽이려고 만든 건데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야? 미쳤어?”

    -가능하다. 놈들이 날 묶는데 사용했던 이것으로 견딜 수 있다.

    엘하르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사슬을 휘둘렀다. 허공을 빙빙 돌던 사슬이 엘하르트의 몸을 휘감았다. 엘하르트가 몸을 웅크리고 사슬이 마치 고치처럼 그 몸을 둘렀을 때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슬에 걸려있는 방어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네 오러가 필요하다. 내 힘에는 반응하지 않으니까.

    “여기서 더 끌어내라는 거냐?”

    -못 끌어내면 죽는다.

    “힘 나는 말이네.”

    제이슨은 이곳에서 죽을 마음이 없었다. 개고생하고 군에서 전역했는데 이렇게 이름 모를 곳에서 죽어줄 수는 없었다. 제이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오러 홀이 아파져 올 정도로 오러를 끌어올렸다.

    우우웅.

    제이슨의 오러를 받아들인 사슬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마법 술식은 자체 방어 기능도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로도 단숨에 부술 수 없었던 마법 술식이 가동하면서 빛을 뿜어냈을 때 던전이 폭발했다.

    꽈아앙!

    세계가 무너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전해지는 충격만으로 제이슨은 혼절했다. 오러 홀의 바닥까지 오러를 끌어쓴 상황에서 받은 충격은 아무리 제이슨이라고 해도 견딜 수 없었다.

    제이슨은 혼절하면서 중얼거렸다.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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