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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7화 (8/151)
  • 【7】 만남(1)

    마치 다른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문 뒤의 공간은 넓고도 높았다. 그리고 고개를 위로 꺾어야 할 정도로 높은 곳에 한 대의 기간트가 묶여 있었다. 이마에 있는 두 개의 뿔 중 하나가 부러져 있었고, 왼팔은 손목부터 잘려나가 있었고 오른쪽 허벅지의 장갑이 박살 나 있었다.

    반파된 기간트.

    저리 높이 있는 데도 그 육중함이 느껴질 정도의 기간트였다.

    핏빛처럼 붉은 기간트의 사지에는 마법 술식이 새겨진 굵직한 사슬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목에도 커다란 고리가 씌워진 상태.

    “묶어 놓은 건가?”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의 기간트는 마치 형벌을 받는 죄인처럼, 봉인 당한 야수처럼 묶여 있었다. 제이슨은 뒤를 돌아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통로 저편에서 골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후우.”

    바이슨을 소환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저 마법 술식이 새겨진 사슬을 잘라낼 수 있을 테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연달아 오러 홀이 텅텅 빌 정도로 싸우다 보니 소환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장갑을 두 개 꺼내서는 끼고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기간트 소환은 할 수 없지만, 올라가서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장갑에서 생기는 흡력을 이용해서 벽을 타고 오른 제이슨이 묶여 있는 기간트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을 때 골렘들이 들이닥쳤다.

    골렘들은 안으로 들어왔지만, 제이슨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제이슨은 그때 마법 술식이 새겨진 사슬에 올라선 상태였다. 지금 제이슨을 공격하다가 사슬이 부서질 것을 염려했는지 골렘들이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다.

    제이슨은 그런 골렘들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러면 해볼 만하지.”

    이곳에서 오러가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골렘들을 부수면 된다. 제이슨은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 묶여 있는 기간트를 바라보았다.

    고대 마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간트. 에고 기간트의 발굴 현장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죄인처럼 묶여 있는 기간트라니. 마치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제이슨은 우선 기간트에 다가가기로 했다. 사슬 위를 걸어가던 제이슨은 우두커니 서서 올려다보는 골렘의 수가 스무 기가 넘어가는 것을 보고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이거 오러를 모두 회복하고도 감당하기 힘든 숫자다.

    그때 골렘들의 뒤편으로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미처럼 생긴 골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덟 개의 긴 다리로 들어오는 거미들의 크기는 대략 2미터. 그런 골렘들이 모두 열두 마리가 들어왔다.

    거침없이 벽을 타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제이슨은 사슬 위를 달려 묶여 있는 기간트의 가슴 위로 올라갔다.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바스타드 소드를 하나 뽑아 들고 주위를 살폈다. 열두 마리의 거미형 골렘은 이미 사슬이 있는 높이까지 올라와 제이슨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냐?

    갑자기 머릿속으로 울려오는 물음에 제이슨이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옆에 없었다. 오러 유저인 자신의 기감을 속이고 다가올 수 있는 존재가 있다?

    제이슨이 당혹스러워하며 바스타드 소드를 한 번 휘둘러 보았을 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고 물었다.

    제이슨은 그제야 자신의 발밑에 깔린 기간트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네가 한 말이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제이슨은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이미 거미형 골렘들이 사슬을 타고 기간트의 위로 올라온 상황이었으니까.

    -이런 버러지들이!

    순간 기간트에게서 강렬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제이슨은 물론이고 거미형 골렘까지 모두 튕겨 올랐다. 제이슨은 가슴 위에 서 있어서 수직으로 솟구쳤지만, 거미형 골렘들은 모두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제이슨은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었다고 여기며 사뿐히 기간트 위에 내려섰다. 제이슨은 그때 뒤에 서 있는 존재를 느껴 반사적으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터엉.

    아무렇지 않게 제이슨의 바스타드 소드를 막은 사내가 서 있었다. 군부에서 정말 잘 생긴 남자들이라면 질리도록 만나봤었는데, 그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의 미남이 서 있었다. 완전무결한 외모의 사내는 제이슨이 휘두른 바스타드 소드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눈을 들어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자괴감이 들 정도의 외모에 당혹스러웠지만, 제이슨은 할 말을 꺼냈다.

    “넌 누구냐?”

    사내는 무심한 눈으로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례한 자로군. 꺼져라.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발을 뻗어 제이슨의 가슴을 발로 찼다. 제이슨은 발에 차이면서도 눈을 부릅떴다. 오러 유저인 자신의 눈에 그의 발차기는 빤히 보였는데 반응하지 못했다. 마치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것 같은 순간.

    제이슨은 떨어지며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밑에는 골렘들이 제이슨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를 밀어 차 버린 바람에 위험하게 됐다. 제이슨은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골렘들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골렘들의 가슴이 열리며 마법들이 날아들었다. 기간트를 타고 있을 때나 버틸 수 있는 거지 맨몸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공격들이었다.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다급하게 구슬 하나를 꺼냈다. 구슬을 손에 쥐고 힘을 주어 깨부수자 제이슨의 몸 주위로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로크에게 쉴드 마법 반지를 주고 오지 말 걸 그랬다.

    콰콰콰쾅!

    연달아 날아든 마법이 꽂히며 제이슨은 그 충격에 날아가 바닥을 굴러야 했다. 마법 폭격을 당할 때 그걸 견디기 위해 만든 로크의 일회용 마법 대피소인데 그게 박살 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옷이 찢어지고 피부에도 화상을 입은 상태. 오러 유저인 제이슨이라고 해도 오러 홀이 빈 상태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제이슨은 숨을 길게 토해내고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거미형 골렘과 골렘들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제이슨이 바스타드 소드를 든 채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드니 기간트 위에 미남자가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딱 기다려라.”

    제이슨은 그리 말하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거미형 골렘들을 바라보았다. 거미형 골렘들의 입이 열리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끈끈한 거미줄이 날아왔다. 제이슨은 거미줄을 피하려고 바닥을 굴러야 했다.

    입에서 먼지 섞인 침을 뱉으며 제이슨은 거미형 골렘들을 향해 돌진했다. 전장에서는 오러 홀이 바닥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오러를 다루는 법이 더욱 정교해졌다.

    휘두르는 검격이 거미형 골렘에 닿는 순간에만 오러가 바스타드 소드의 날에 맺혔다.

    서걱.

    거미형 골렘을 베어내던 제이슨은 전력을 다해서 옆으로 굴렀다. 제이슨이 피한 자리에는 골렘의 커다란 칼이 꽂혀 있었다. 골렘의 움직임 자체는 그리 빠르지 않지만, 그 반경이 무시무시할 정도다.

    “미치겠네.”

    거미형 골렘이 쏘아내는 거미줄을 피하며 반격하기도 숨차 죽겠는데 골렘까지 가세했다. 그 와중에 제이슨은 자신을 이곳으로 떨어트린 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숫제 턱을 괴고 구경하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거기서 딱 기다려라.”

    제이슨은 이를 악물고 날뛰기 시작했다. 거미형 골렘을 유인해서 그 거미줄로 골렘을 공격하게 했다.

    아무리 골렘이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투 경험이 부족하니 이런 상황에 대처가 미숙했다. 거미줄에 걸린 골렘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혀를 내둘렀다.

    거미줄의 성능이 상상 이상이었다. 제이슨은 그래서 거미 하나는 그대로 목을 잘라내고는 아공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거 하나 챙기느라 골렘의 커다란 칼을 피하는 게 늦어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잘려나갔지만,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제이슨은 그렇게 거미형 골렘을 이용해 골렘들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면서 하나하나 거미형 골렘들을 처리해나갔다.

    오러 홀의 오러를 악착같이 아끼면서 싸웠지만, 혼자서 이들 모두를 상대할 수 없었다. 특히 골렘들은 손도 못 대는 중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거미형 골렘은 모두 쓰러트렸다.

    제이슨은 골렘들이 거미줄에 맞아 느려진 것을 보고 벽을 향해 달렸다. 골렘들이 뒤쫓아 오지만 그 속도가 느려져 있어 여유가 있었다. 제이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벽을 향해 뛰어올랐다.

    장갑을 이용하면 오러 소모 없이 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속도가 문제였다. 발바닥에 오러를 일으켜 벽을 밟으며 달려 올라간 제이슨은 삽시간에 사슬 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사슬 위까지 오른 제이슨이 숨을 헐떡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골렘들도 이 사슬 위에 있으면 공격하지 않았다. 아마도 공격하다가 사슬에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제이슨은 그제야 한숨 돌리고 사슬 위에 일어났다. 저 멀리 사슬에 묶여 있는 기간트 위에 서 있는 미남자를 바라보던 제이슨이 사슬 위를 걷기 시작했다. 자신을 저 골렘들 사이로 처박았던 자.

    기이한 놈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리 쉽게 당하지 않는다. 제이슨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던 사내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요란한 경고음이 들렸다.

    -경고! 경고! 침입자 다수 발견.

    제이슨은 누가 이곳에 왔는지 대충 짐작했다. 던전 내부에서 기간트로 싸움질을 하고 다녔으니 당연히 그걸 파악한 이들이 몰려왔을 터였다. 던전의 입장 순서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상황.

    기회가 됐으니 우루루 몰려왔을 상황. 대륙에서도 이름을 떨치는 셋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리 제이슨이라고 해도 무리다. 골렘과는 다른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곳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뭐라도 얻어가야 했는데 이곳에는 딸랑 봉인된 기간트만 있었다.

    제이슨이 고민하다가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마지막에 자신을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무례한 자라고 했던가?

    제이슨은 사내의 앞에 서서는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제이슨이다.”

    사내의 두 눈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다짜고짜 발을 내지르지는 않았다.

    “넌 누구지?”

    사내의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그려졌다. 남자인 제이슨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미소.

    -엘하르트.

    “엘하르트?”

    엘하르트는 고개를 돌려 골렘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제이슨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나를 닮았더군.

    “무슨 소리야?”

    엘하르트가 양팔을 펼치며 말했다.

    -이 구속에서 나를 풀어준다면 너와 함께 해주겠다.

    제이슨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엘하르트는 이 기간트의 에고다. 에고가 이렇게 형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지만, 고대 마도 시대의 물건이니 자신의 상식이 통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까는 소리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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