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5화 (6/151)
  • 【5】 고대 던전(1)

    판톤이 가지고 온 안톤의 시신. 그 잘린 머리를 손에 쥐고 테롤 백작은 오열했다.

    “으아아악!”

    금이야 옥이야 키워왔던 아들이 머리가 잘려서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만큼 아들에게 거는 기대도 컸고, 아들은 뭘 해도 잘 해왔다.

    그런 아들의 잘린 머리를 든 채 오열하기를 한참. 테롤 백작은 아들의 머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평상시라면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이들. 그들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이 정도까지 도와줬지만, 그가 하려는 부탁은 더 많은 것은 내어줘야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내 아들의 복수를 부탁드리겠소.”

    오호장의 일인인 베로스 장군.

    대륙 3대 용병단의 단장 그레이스.

    S급 용병 판톤.

    그들을 개인의 복수로 부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아야 했다.

    “죽여서라도 좋소. 내 아들의 복수를 해준다면 고대 대규모 던전의 모든 권리를 넘겨드리겠소.”

    “모든 것이라면 던전을 넘겨준다는 뜻인가?”

    베로스 장군의 물음에 테롤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던전에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것에 대한 권리도 드리겠소. 내 아들의 복수를 해주시는 분에게는.”

    베로스 장군은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판톤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약속 잊지 마시기 바라겠소.”

    테롤 백작은 일어나는 판톤에게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10만 골드요. 내 아들의 죽음을 확인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요. 아들을 이렇게 만든 놈을 찾아주시오.”

    테롤 백작이 건넨 보상은 S급 용병이라도 쉽게 볼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이렇게 단시간에 벌기에는 큰돈. 판톤은 거절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보는 이들도 테롤 백작이 이 일에 얼마나 많은 것을 걸었는지, 어떤 심정인지를 이해했다.

    그레이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드님의 일은 유감이에요. 하지만 그 복수는 반드시 해드리죠.”

    그레이스가 먼저 빠져나가자 판톤도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베로스 장군은 그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능하면 사로잡아 오겠네.”

    “그리해주신다면 따로 성의를 보이겠습니다.”

    베로스 장군은 밖으로 나와서는 모인 이들을 돌아보았다. 판톤의 뒤를 쫓았던 여기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너희들을 따돌릴 정도더냐?”

    “죄송합니다.”

    누군가를 추적하면서 자신의 뒤를 따라붙는 이들을 따돌릴 줄은 몰랐다. 보험으로 들어놓았었는데 이리도 쉽게 따돌릴 줄이야.

    베로스 장군은 자신의 수하 레인저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트랑 왕국 내에서 사람을 찾는 일이다. 그걸 다른 이에게 빼앗겨서 왕국의 자산이 될 던전을 빼앗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내라.”

    일행들이 모두 튀어나가는 것을 보고 베로스 장군도 직접 움직였다. 연회에 모인 이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들 사이에서 유유히 안톤을 납치, 감금, 폭행에 이어 살인까지 저질렀다.

    손가락이 잘려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심문을 한 것이 분명한 상황.

    무엇을 알아내기 위해서였을까?

    그레이스가 정령을 불러서 확인해 보았지만, 그곳에서는 정령이 어떤 기억도 읽어내지 못했다. 마치 정령을 이용해서 읽을 것을 알았다는 듯이 흔적을 지워냈다. 무슨 수를 썼는지 그레이스조차 모르게 지워진 흔적. 사로잡으면 그 기술 또한 빼 와야 할 일이었다.

    “기대되는군.”

    단순히 고대 대규모 던전에서 뭐 좀 얻을까 했는데 잘만 하면 던전 자체를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베로스 장군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대륙에서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법한 인물들이 뒤를 캐고 있는 사이에 제이슨은 고대 대규모 던전에 잠입했다.

    고대 던전은 복불복인 경우가 많았지만, 아무리 운이 없다고 해도 제대로 던전을 파헤쳤을 때는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가치를 인정받으니까.

    하다못해 고대 마도 시대의 식기조차 사서 모으는 취미를 가진 자들이 있다. 그래서 그것의 가치만 인정받으면 얼마든지 돈은 복구할 수 있다.

    게다가 대규모 던전이라면 제대로 털었을 때 천만 골드를 상회 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얻을 수도 있었고.

    제이슨은 그래서 안톤의 시체를 숨기지 않았다. 뒤를 쫓는 이들이 분명 뛰어나지만, 숨기고자 하면 못 숨길 것도 없었다. 어디서든 가장 발달하는 곳은 전쟁터였으니까. 어떤 곳보다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는 동부 전선에서는 정말 별의별 것들을 다 개발해냈다.

    벡스 장군이 그런 면에서는 또 지원해주는 것을 아끼지 않아서 동부 전선에서만 나오는 것들이 꽤 있었고 그것들이 제이슨의 아공간 주머니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제이슨은 안톤의 시신으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그사이 경계가 심하지 않은 고대 대규모 던전에 몰래 잠입했다. 지키고 있는 이들이 꽤 되었지만, 자신을 직접 추적하는 셋을 제외하고는 그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던전에 잠입한 제이슨은 우선 던전 입구는 건들지 않았다. 최초에 던전을 발견하고 확인차 던전을 진입했던 흔적을 지나서 몇 개의 함정은 그냥 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들어온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고심하면서 안으로 들어간 제이슨은 던전 2층에 들어가고 나서야 긴 숨을 토해냈다. 고대 던전 탐사가 처음은 아니었다. 동부 전선에서 발견된 고대 던전 때문에 피 튀기게 전투를 치른 적도 있었으니까.

    그때 어찌나 알제리 왕국의 저항이 심했는지 결국 ‘미친 들소’팀이 몰래 들어가서 던전의 알맹이만 쏙 빼먹은 적이 있었다. 던전을 털어먹을 때는 좋았지만, 나올 때 걸려서 또 죽을 뻔했었다.

    제이슨은 그때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래도 그때의 가닥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던전의 함정들을 몰래 피해서 2층까지 진입했다.

    던전 1층의 함정들이야 원래 맛보기식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았으니 이 정도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던전 2층의 내부를 돌아보며 제이슨은 뺨을 긁적였다.

    돌격대대에서 무력을 담당했던 제이슨은 남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이것저것 배워왔지만, 고대 던전이라는 것이 혼자서 다 해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함정 하나하나에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던전 가디언들의 수준도 만만치 않았다. 기간트를 소환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 그때는 흔적이고 뭐고 최단시간 돌파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지.”

    10년간의 군 생활은 오직 전투와 전투뿐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던 시절. 전역과 함께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생각을 했는데 일이 터지니 몸이 반응했다.

    뭔가를 뒤로 미뤄놓는 성격은 아니었다. 군에서도 자기 할 일을 미리 다 처리하고 나서 시간을 만들어서 쉬던 버릇이 있었으니까.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를 뒤져서 작은 해골 하나를 꺼냈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더 큰 해골이었는데 그걸 바닥에 던지자 이마에 박혀 있는 마력석이 빛나더니 곧 해골 고블린이 나타났다.

    제이슨은 고글을 쓰고는 해골 고블린과 시야를 연결하면서 새삼 로크의 천재성을 떠올렸다. 그 어린 나이에 동부 전선 최고의 마도공학자로 이름 떨치는 천재 마도공학자. 돌격대대의 괴물들 틈바구니에서도 비벼볼 정도의 괴물인 녀석이었다.

    로크가 만들어 준 해골 고블린은 탐사용이나 정찰용으로 쓰고는 했다. 고대 던전을 털어먹을 때도 써먹었던 것.

    제이슨은 해골 고블린을 던전 안으로 들이밀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움직이는 해골 고블린이 은밀히 지나가는 동안 그 시야를 공유한 제이슨은 던전의 규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대규모라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고대 마도 시대의 던전에서는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고대 던전을 털기 전에 머리가 부서져라. 공부했던 것에 따르면 정말 온갖 것들이 튀어나온다고 했다. 그래도 이 정도 규모의 던전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1층만 대충 탐사해보고 대규모 던전임을 확신했겠지만, 2층은 더 넓었다. 물리적으로 이만한 던전이라면 테롤 백작성 지하에도 영향을 미쳤을 크기인데 그렇다면 그들이 이제야 발견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해골 고블린이 두 시간을 은밀히 움직여서 도착한 곳에는 계단이 보였다.

    “3층까지 있어?”

    제이슨이 놀라워할 때 해골 고블린과의 연결이 끊겼다. 해골 고블린이 인지하기도 전에 박살 났다는 것은 던전 가디언일 가능성이 컸다. 제이슨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눈을 반짝였다.

    “3층짜리 고대 던전이라.”

    어쩌면 기대 이상의 물건을 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전에 던전 가디언부터 상대해야겠지만.

    제이슨은 고글의 야간 투시 기능을 켠 채로 던전으로 진입했다. 이미 두 시간이나 걸려서 해골 고블린으로 던전의 함정들을 파악했기에 그것들을 지나쳐 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해골 고블린이 진입했을 때보다 훨씬 빨라 15분 만에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다.

    계단을 발견한 순간 제이슨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쿵!

    제이슨이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칼이 꽂혀 있었다. 뒤로 물러난 제이슨이 상대를 확인하고는 씨익 웃었다. 신장 5미터에 커다란 칼을 바닥에서 뽑아내는 청동빛 거체.

    “골렘이 있네?”

    골렘이 있다는 것은 이 던전이 대박이라는 뜻이었다. 대신에 위험도는 최상으로 올랐다.

    제이슨은 오른손으로 심장을 누르며 소리쳤다.

    “바이슨 소환!”

    심장이 뛰고, 코어가 공명한다. 제이슨의 뒤로 6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중장갑 기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두 개의 뿔에 온통 검은빛의 중장갑 기간트. 트랑 왕국 동부 전선에 공포로 군림하는 ‘미친 들소’의 기간트. 바이슨이 소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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