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3화 (4/151)

【3】 납치(1)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는 제이슨이 테롤 백작 성에서 사 온 쿠키를 먹었다. 흔한 쿠키였지만, 요즘에는 이런 군것질거리도 할 여력이 없었는지 모두 맛있게 쿠키를 먹었다.

식사를 모두 마친 제이슨은 가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여행 좀 다녀오겠습니다.”

“여행?”

“군에 있어서 제대로 된 여행을 즐기지 못했거든요. 한 보름 정도만 다녀오겠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다시 나가는 거냐? 며칠 쉬다 가지.”

집안 꼴을 보니 도저히 이곳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놈들을 추적하는 길은 어려워진다.

“다녀오는 길에 선물 사 오겠습니다.”

“선물은 바라지도 않는다. 몸 건강히 다녀오너라.”

집에 돌아와 뒹굴뒹굴할 생각으로 12시간을 신나게 달려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이 짜증의 대가는 반드시 받아낼 생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밖으로 나온 제이슨은 헤이튼에게 자신의 방으로 찾아오라고 말을 전했다. 지금 당장 자신은 밖으로 나가 이 일을 끝까지 파헤쳐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을 이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군에서 많은 돈을 벌어왔지만, 강철 심장 은행의 빚을 갚을 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그 돈은 이번 사기 친 자들에게서 받아낼 것이었다.

제이슨은 자신의 방을 바라보았다. 10년 전 그대로인 방은 돌아올 거라고 생각 못 했는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 제이슨은 그런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면서 제이슨은 청소를 시작했다. 군에서 자신의 방은 자신이 관리하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청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지를 털어내고 이불을 비롯해 모든 것을 각까지 잡은 제이슨이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니 곧 헤이튼이 안으로 들어왔다. 제이슨은 헤이튼에게 자리를 권했다.

헤이튼이 자리에 앉자 제이슨은 용건을 꺼냈다.

“지금 성의 상황에 관해서 얘기해 봐요.”

헤이튼은 잠시 주저하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해 성의 관리에 들어가는 경비가 20만 골드였습니다. 지금은 성의 관리에 쓰이는 골드를 5천 골드까지 줄였습니다.”

“병사를 줄이고, 기사단도 없앴겠군요.”

“그들을 고용할 돈이 없어서 기사단은 해체했고, 경비 병력도 크게 줄였습니다.”

“시녀들도 많이 돌려보낸 것 같더군요.”

“예.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돌려보냈습니다.”

제이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헤이튼 앞에 내려놓았다. 헤이튼이 바라보자 제이슨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군에서 많은 돈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집안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제가 바로 잡을 문제고 우선은 성 관리를 제대로 해야겠어요.”

제이슨이 눈짓하자 헤이튼이 주머니를 꺼내 열어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은 도련님?”

“10만 골드에요. 기사단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은 그걸로 시녀를 고용하고 일반 병사들을 다시 고용하세요. 1년 안에 모든 것이 원상 복구될 겁니다.”

헤이튼은 제이슨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10년 전 소년이 지금은 당당한 대장부가 되어 돌아왔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될 것 같은 느낌.

헤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 강철 심장 은행에 상환하지 않고 오직 성의 복구에만 쓰겠습니다.”

“그러라고 헤이튼에게 준 겁니다. 그리고 그 정도 갚는다고 빚 청산에 큰 도움도 안 되고요.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답게 삽시다.”

“맡겨주십시오.”

헤이튼도 인력의 한계에 부딪혀 성이 관리가 안 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이제 돈이 생겼으니 다시 성을 예전처럼 꾸밀 때가 됐다.

제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보름 정도 나갔다 올 건데 방 관리는 부탁드리죠.”

사람이 없고, 돈이 없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방 관리를 부탁해도 된다. 제이슨이 문을 열고 나가자 헤이튼이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

“몸조심하십시오.”

“그럼 돌아왔을 때 바뀐 성을 기대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헤이튼이라면 믿고 맡겨도 된다. 제이슨은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성을 뛰쳐나갔다. 경비를 서고 있던 놀란이 벽에 기대고 서 있다가 몸을 바로 하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다가가 말했다.

“놀란. 내성 경비는 백작성의 얼굴이다. 갑옷은 빛이 나도록 닦고, 경비에 임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라. 경비병의 수가 줄어 힘든 것은 이해하나 경비병은 추가로 모집할 예정이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근무를 서라.”

제이슨의 말 한마디에 서린 위엄에 놀란이 바짝 놀라 정신 차리고 섰다. 각이 잡힌 그의 모습을 보고 제이슨이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

말을 마친 제이슨은 성을 벗어나 다시 고글과 코어 카트를 꺼냈다.

“짜증 나는군.”

12시간 주행을 견딜 만큼 몸이 튼튼하다고 해도 고역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코어 카트를 가동한 제이슨은 다시 한번 테롤 성으로 출발했다.

테롤 성에 돌아온 제이슨은 이곳을 떠나갈 때와 다른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인근 영지가 대박 난 것에 대해 감흥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안톤. 안톤.”

안톤은 어렸을 적에 본 적이 있었다. 이웃한 성의 후계자. 형과 곧잘 어울리고는 했는데 비열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형이랑 죽이 잘 맞아서 곧잘 사고를 치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스케일이 남달랐다. 그리고 전처럼 둘이 함께 사고를 쳤는데 망한 것은 바론 성밖에 없었다.

둘의 사이가 틀어졌거나 아니면 그 뒤에 누가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우선 안톤을 만나봐야 했다. 그냥 가면 만나줄 리가 없을뿐더러 둘이 조용히 얘기를 나눠야 하니 결국 납치를 해야 했다.

제이슨은 여관방을 잡고 방의 가구들을 옮겼다. 방 가운데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제이슨은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준 높은 용병들도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성의 후계자를 납치하는 일. 쉽지는 않으리라.

제이슨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어도 용병들이 모이다 보니 성은 시끌시끌했다.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망토를 꺼내 둘렀다.

특수 제작된 망토로 투명화 기능이 있었다. 기척까지는 숨기지 못하지만, 그 부분은 제이슨이 배운 기술이면 충분했다. 제이슨은 방에서 투명화를 걸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기척도 없이 내려선 제이슨은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우선 자신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을 만한 이들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내성으로 걷기 시작했다.

테롤 성의 경비는 확실히 전과 달랐다. 반짝거릴 정도로 잘 닦은 갑옷을 입고 서 있는 경비병들. 어디를 보아도 빚에 허덕이는 바론 성과는 달랐다.

의심에서 확신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안톤은 그 돈 전부는 아니어도 얼마 이상은 해 먹은 것이 분명했다.

제이슨은 내성의 성벽을 향해 달려 단숨에 뛰어올랐다. 성벽 위에 올라선 제이슨은 성벽 위 순찰이 지나가는 것을 살피고는 내성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성 안쪽에는 파티라도 열었는지 시끌시끌했다. 제이슨은 소란스러움을 따라 이동했다. 정원에 마련된 연회장에서 연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굳혔다.

간단히 안톤만 낚아채려고 했는데 이곳에 모인 이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녹색 드래곤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이들은 대륙 3대 용병단 중 하나인 그린 드래곤 용병단이었다. 게다가 지금 테롤 백작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녹색 머리에 귀가 뾰족한 여인은 하프 엘프이면서 오러 유저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그린 드래곤 용병단의 단장 그레이스였다.

아무리 기척을 숨기는 훈련이 잘된 제이슨이라고 해도 정령을 다루는 그레이스의 곁으로 다가가면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반대편에서 또 한 무리를 이끄는 인물은 제이슨도 아는 얼굴이었다. 제이슨이 있는 동부 전선과 반대로 북부 전선을 수호하는 인물이었다.

푸른 머리에 푸른 눈. 하프 머메이드인 오호장의 하나 베로스 장군이다. 저런 거물이 이곳에 나왔을 줄은 몰랐다.

그의 호위 기사단인 ‘눈의 꽃’도 함께 있었다. 모두 여성으로 이뤄진 호위 기사단인데 머메이드와의 혼혈로만 이뤄져 그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했다.

아름답지 못한 것은 존재 가치도 없다고 따지는 베로스 장군의 성격을 잘 반영하는 기사단이었다. 실력도 대단한 인물들이었는데 그런 이들이 이곳에 있었다.

고대 대규모 던전이라면 저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다.

게다가 혼자 서 있는 인물도 눈에 들어왔다. 검은 피부에 거검을 들고 있는 사내. 홀로 다니는 인물이지만 검은 늑대라고 불리는 S급 용병 판톤이다.

오러 유저인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제이슨은 그들이 감지하지 못할 멀찍한 거리에 떨어져서 안톤을 찾았다. 안톤은 눈꽃송이 모양의 문양이 그려진 ‘눈의 꽃’ 여기사에게 수작을 걸고 있었다.

머메이드와의 혼혈들로 이뤄진 ‘눈의 꽃’ 여기사들은 전투력도 상당하지만, 여차하면 남자를 유혹하는 것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그 때문에 벡스 장군이 베로스 장군을 벌레 보듯이 하는 것도 있었다.

안톤이 비열한 눈빛을 숨기며 수작을 걸고 있었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리라. 여기사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문제는 여기사와 함께 있으면 제이슨이라고 해도 흔적없이 납치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를 제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흔적이 남는다.

제이슨은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그래서 단신으로 들어왔는데 이곳은 이미 용담호혈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연회를 연다는 것은 멀지 않아 던전에 진입한다는 얘기일 테니까.

저들이 던전에 들어갈 때 안톤이 따라 들어간다면 그를 납치할 기회는 없어진다.

제이슨이 고민하는 사이에 안톤이 여기사와 슬그머니 연회장을 벗어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눈치를 보니 베로스 장군도 그쪽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안톤을 꼬셔서 자신들에게 이롭게 일을 진행할 생각인가 본데 그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벡스 장군과 베로스 장군은 유명한 앙숙이었으니까.

제이슨이 은밀하게 안톤의 뒤를 밟았다. 기척 없이 뒤를 밟은 제이슨은 안톤이 여기사의 손을 잡고 다가가 키스를 하려는 순간 여기사의 뒷목을 가격했다.

여기사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안톤의 눈이 커질 때 그의 턱에 제이슨의 주먹이 꽂혔다. 제이슨은 쓰러지는 안톤을 품에 안고는 그대로 그곳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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