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2화 (3/151)
  • 【2】 귀환(2)

    헤이튼은 정중히 눈을 내리깔고는 답했다.

    “가주님을 뵙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제이슨은 헤이튼이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를 탓하지 않았다. 하긴 이런 문제는 헤이튼에게는 세부 내역을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에게 듣는 것이 옳았다.

    헤이튼이 먼저 말해줘서는 안 될 문제였다.

    “미안해. 너무 흥분했네.”

    제이슨이 헤이튼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말했다.

    “아버지. 어디 계셔?”

    “지금 서재에 계십니다.”

    “좋아. 서재로 가지.”

    “방은 전에 쓰시던 방 정리해 놓으라 하겠습니다.”

    “됐어. 방 정리는 내가 할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헤이튼을 따라 걸으며 제이슨은 인상을 점점 일그러트렸다. 저택 곳곳에 거미줄을 보니 지금 집안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헤이튼도 깔끔하기는 병적인 수준인데 집안이 이렇게 됐다는 것은 일손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10년 사이에 집안 사정이 말이 아니게 됐다.

    헤이튼은 서재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헤이튼?”

    “작은 도련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안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서재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앞이마가 훤히 드러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눈매의 중년 사내.

    바론 성의 성주. 트레버 폰 바론이었다.

    트레버는 제이슨을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특별한 재능은 없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넘치는 분다웠다.

    “아들! 돌아왔구나!”

    제이슨은 아버지의 등을 토닥여드렸다. 한참을 달랜 후에야 제이슨은 서재에서 아버지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헤이튼이 내려온 차를 보고 제이슨이 눈을 가늘게 떴다.

    트레버가 다른 건 몰라도 차만은 고급 차를 마셨다. 만달린 차를 마셨는데 지금 마시는 차는 영지민들이 마시는 젤린 차였다.

    나쁘다고 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즐길만한 차는 아니었다. 제이슨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버지.”

    “그래. 아들. 아무리 군에 연락을 취해봐도 네 소식은 들을 수가 없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네가 죽은 것을 돌려말하는 줄 알았다.”

    제이슨은 픽 웃음을 흘리고는 답했다.

    “제가 살아있으니 연락을 취할 수 없었던 겁니다. 제 임무가 비밀이었거든요.”

    “누가 들으면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말하는구나.”

    제이슨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다. 전쟁 영웅이라고 할만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보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냐?”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제이슨의 물음에 트레버는 잠시 주춤했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집에 사정이 좀 있었다.”

    “그 사정을 듣고 싶습니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제이슨은 나직하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저도 이제 애가 아닙니다. 그 사정. 말씀해 주십시오.”

    트레버는 제이슨의 눈빛이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음을 알았다.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 홀로 10년간 군 생활을 했다. 군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어떻게도 연락이 되지 않았던 아들.

    제이슨이 홀로 보낸 10년은 그를 소년에서 어른으로 바꿔놓았다.

    “클라이가 4년 전에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 왔다.”

    제이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문의 후계자인 형 이름이 나왔다. 문제는 이렇게 가세가 기울어지는 것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 이름이 왜 나오냐 하는 것이었다.

    “테롤 백작의 후계자인 안톤과 함께 가지고 온 사업 계획서에는 기간트 공방을 세울 생각이었다. 밀 농사만으로는 우리가 도태될 거라고 하더군.”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밀 농사만으로도 충분히 성은 먹고 살 수 있었다.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중앙 정계로 진출하려고 할 때나 필요한 것이지 이렇게 밀 농사나 지어서 팔고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삶은 자신이 원한 삶이었다.

    “그래서요?”

    “조건은 좋았다. 출자금은 우리 쪽에서 더 많이 내는 것이었지만, 기간트 공방을 우리 영지에 새우는 것이었으니까. 테롤 백작이 원하는 것은 기간트 공방에서 나오는 기간트의 우선 구입권의 4할을 가지는 것이었다. 기간트 중계무역만 해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을 테니까.”

    말만 들어 보면 구미가 당길 일이다. 성공하면 그것만으로 수익성은 밀 농사를 할 때의 몇 배는 가뿐히 넘을 테니까.

    “출자금이 생각보다 많았다. 가진 재산을 다 털어놓고도 부족해서 강철 심장 은행에서 돈을 빌렸지.”

    “강철 심장 은행이요?”

    강철 심장 은행은 악랄하기로 이름 높은 자들이다. 전쟁 용병부터 시작해서 돈이 되는 짓은 뭐든지 서슴지 않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고리대금업이다.

    물론 말도 안 되게 높은 이율을 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걸 갚지 못하면 강철 심장 은행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어지간한 왕국의 전력에 맞먹는다고 알려진 그들은 단 한 번도 돈을 떼인 적이 없었다.

    “그런 미친놈들에게 돈을 빌리면 어떻게 합니까?”

    “충분할 거로 믿었다. 사업 계획은 완벽했으니까.”

    제이슨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형이 그런 사업 계획을 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데요?”

    클라이는 야망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 곤란한 형이었다. 그래도 사고는 치지 않고 커왔다. 아버지의 소망처럼 무난히 백작위를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은 누군가 바람을 집어넣었다는 얘기다.

    제이슨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지만, 더 따지지 않았다. 누군가 바람을 넣었다고 해도 계획이 성공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일이다.

    “안톤의 기획이었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기획을 실행하는 데는 네 형의 공이 컸다. 기간트 공방을 만들 수석 마도공학자와 그의 팀까지 꾸려와서 직접 만나보았다. 어쩌면 너도 알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나이트급 기간트 발루스의 개발자였다.”

    “발루스의 개발자라면 다리우스 말입니까?”

    “그래. 너도 아는구나.”

    제이슨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기당했군요.”

    “어떻게 아는 거냐?”

    “다리우스. 현상범입니다. 발루스의 개발자인 것은 맞는데 결함을 숨겼죠. 그걸 들키자 바로 잠적했죠. 그 결함을 발견 후에 아젠카 공방에서는 그 수습에만 어마어마한 돈을 들였죠.”

    트레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냐?”

    발루스는 왕국에서도 쓰는 주력 기간트였다. 당연히 그가 있던 동부 전선에도 아젠카 공방의 마도공학자들이 찾아와 결함을 수정하고 갔다.

    문제는 아젠카 공방에서 현상범으로 내걸었지만, 그건 그들을 쫓는 자들에게만 유용한 정보였다. 그러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젠카 공방에서도 쉬쉬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그에 대해서 알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보기 좋게 사기당하는 이들이 생겼다.

    “얼마나 당한 겁니까?”

    “700만 골드.”

    워리어급 기간트 한 대가 대략 10만 골드, 나이트급 기간트도 대략 30만 골드 정도 한다. 제대로 된 기간트 생산 공방을 차릴 수만 있었다면 적어도 3년 안에 다 갚을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다 잃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강철 심장 은행 대출금이 얼맙니까?”

    “500만 골드.”

    강철 심장 은행의 이율이 적정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연간 20%다. 연간 100만 골드. 밀 농사를 하는 영지의 한 해 총 매출이 그 정도다.

    이자만 갚아도 영지는 남는 돈이 없다. 영지의 여유 자금에다가 강철 심장 은행의 돈까지 모두 끌어다 넣었으니 영지에는 남은 돈이 없었다.

    “어떻게 버틴 겁니까?”

    영지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실정이었다.

    “돈이 될만한 것들을 가져다 팔았단다.”

    제이슨은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물었다.

    “형은요?”

    “다리우스를 찾겠다고 나섰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서요?”

    “그래.”

    제이슨은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테롤 백작은 얼마나 투자했죠?”

    “그쪽은 총 500만을 투자했지.”

    테롤 백작 성도 밀 농사를 하는 곳으로 한 해 매출은 빤했다. 그들이라고 해도 여윳돈은 고작 200만 정도였을 터. 그럼 그들도 300만을 빌렸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테롤 백작 성은 마탑 지부가 철수하지 않았다. 이번에 고대 대규모 던전이 발견되기 전에 그들도 한계에 달했을 텐데 제이슨이 느낀 테롤 성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대출금이 총 얼마죠?”

    트레버는 고민하다가 답했다.

    “숨길 수가 없구나. 첫해에 흉년이 들어서 밀 수확량이 평상시의 30%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 연체를 하면서 빚이 불어났다. 지금은 720만 골드가 됐지. 한 해 이자가 144만 골드로 불어났다.”

    “매년 이자가 불어나겠군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다. 이 애비가 어떻게든 해내마.”

    제이슨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말했다.

    “우선 식사부터 하죠. 어머니랑 조안나 얼굴은 봐야죠.”

    “그래. 돌아오자마자 무거운 얘기만 했구나.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운용은 가능하단다. 게다가 이번에 테롤 백작 성이 발견한 고대 대규모 던전으로 수익이 나면 도움을 얻기로 했다.”

    “도움이요? 뭘 대가로요?”

    “영지를 조금 떼주기로 했지.”

    조금? 720만 골드면 영지의 반이 날아갈 판이다.

    제이슨은 트레버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말했다.

    “그럼 전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밥부터 먹죠.”

    “그래. 그래. 아무 걱정하지 마라.”

    제이슨이 트레버를 데리고 식당에 갔을 때 그곳에는 10년 만에 만난 어머니 브렐리아나와 여동생 조안나가 있었다.

    “어머니!”

    제이슨이 달려가서 브렐리아나를 안아줬다.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핼쑥해져 있었다. 어머니를 안아준 제이슨은 조안나를 바라보았다.

    여섯 살이었던 꼬마는 이제 16살 숙녀가 되어 있었다.

    “작은 오빠?”

    “그래. 기억 안 나?”

    업어 키웠던 꼬마의 큰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제이슨은 손을 내밀어 그 눈물을 닦아 주고는 가볍게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이자 조안나가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한창 사교계에 나가서 또래들과 놀아야 할 그녀의 옷은 어머니의 옷이었다. 조안나를 달래주고 나니 트레버가 웃으며 말했다.

    “아침 식사부터 합시다.”

    제이슨은 식탁에 올라온 딱딱한 빵과 스프를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군에서보다 못한 식탁을 보고 제이슨은 씨익 웃고는 딱딱한 빵을 한 입 크게 뜯어 먹었다.

    우적우적 빵을 씹는 모습을 보고 브렐리아나가 미안해했다.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군에서는 이보다 못한 것들 먹었었는데요. 그리고 무엇을 먹는가? 보다 누구와 먹는가가 중요하잖아요.”

    제이슨은 빵을 씹으며 이렇게 만든 놈들에 대한 분노도 함께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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