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화 (2/151)

【1】 귀환(1)

전역 명령서를 쥔 제이슨은 기쁜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봐야 아공간 주머니에 담으면 되니 크게 짐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아공간 주머니에 군 생활에 썼던 애증어린 물건들을 챙기고 있는데 뒤로 누가 다가왔다.

“뒈지고 싶냐?”

스산한 목소리에 옆으로 폴짝 튀어나온 것은 안경을 낀 소년이었다. 이제 고작 14살. 로크는 제이슨의 옆에 서서는 뒷짐을 진 채 짐 싸는 것을 구경했다.

“뭘 다 가져가려고 해요. 저한테 주고 가셔도 돼요.”

제이슨은 잠깐 고민하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서 던졌다. 그걸 받아든 로크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나 줘도 돼요?”

“쉴드 마법이 내장된 건데 아무래도 나보다는 네가 필요하겠지. 나야 피하면 그만이니.”

“오! 좀 재수 없는데요?”

빡!

로크가 비명도 못 지르고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미소를 흘렸다.

“그거 하나에 1만 골드짜리야. 앞으로도 개고생할 후임을 위해 주는데 못 하는 말이 없어.”

제이슨은 눈물짓고 있는 로크를 꼭 안아줬다.

“그럼 앞으로 5년 뺑이 쳐라.”

“형!”

제이슨이 로크를 풀어주고 째려봤다.

“요 새끼 봐라? 전역했다고 바로 형이냐?”

“그럼 형이죠. 동생 할래요?”

제이슨은 로크의 머리를 슥슥 문질러 주고는 말했다.

“고생해라. 네가 책임져야 할 이들이 있으니까.”

“아씨! 형처럼 전역하지 왜 말뚝 박아가지고!”

로크가 투덜거릴 때 그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떡 벌어진 어깨에 회색 눈빛의 사내. 머리칼은 짧게 깎아서 더 무섭게 생겼다.

“우리 귀염둥이가 지금 나 까고 있었냐?”

로크가 후다닥 도망가려고 했지만, 거구의 사내는 팔도 길었다. 단숨에 로크의 목에 초크를 걸자 3초 만에 로크가 축 처졌다. 거구의 사내는 로크를 짐짝처럼 옆에다 던져놓고는 제이슨을 내려다보았다.

“장군이 쉽게 놓아주더냐?”

“왕궁에 찔러넣은 돈이 얼만데요.”

“장군이라면 명령서 찢어버릴 줄 알았지.”

제이슨은 자신의 앞에 선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트랑 왕국의 오호장 불꽃 전차 벡스의 돌격대대 ‘미친 들소’의 대대장이었다. 벡스의 꾐에 넘어가 복무 기간을 마치고 말뚝을 박은 인물로 제이슨과도 무려 5년이나 같이 생활했다.

“고생 많았다.”

“대대장. 몸 좀 사려가면서 싸워요. 엘레나가 힘들어 죽겠대요.”

“내가 몸 사리면 다른 녀석들이 다친다.”

“어련하시겠습니까?”

펠릭스가 손을 내밀어 제이슨의 어깨를 잡았다.

“너마저 가니 더 몸을 못 사리겠지.”

“그렇게 잡아도 전 갑니다.”

“하여간 고집은. 돌아가거든 네 소원대로 잘 뒹굴면서 살아라.”

“급한 일 있어도 연락하지 마십쇼. 저 뒹구느라 연락 못 받을 겁니다.”

“어련하겠냐.”

펠릭스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떠나자 제이슨은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 뒹굴고 있는 로크를 내려다본 제이슨은 씨익 웃고는 돌아섰다.

“누가 쓸지 모르겠지만, 뺑이 쳐라.”

제이슨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부대 내의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워프 게이트 담당 마법사 앞에 제이슨이 섰다.

“어디 가십니까?”

“바론 백작 성으로 부탁해.”

“작전 지역이 아닌데요?”

“알아. 나 전역했다.”

마법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전역하신 겁니까?”

제이슨이 씨익 웃고는 마법사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얼마나 남았냐?”

“722일 남았습니다.”

“고생해라. 어서 바론 백작 성으로 연결해 줘.”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표를 열람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론 백작 성이라고 하셨죠?”

“그래. 빨리 연결해 줘.”

“3년 전에 좌표 닫혔는데요?”

“무슨 소리야?”

“3년 전에 바론 백작 성에서 마탑이 철수했습니다.”

“왜?”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이슨은 턱을 긁적이다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가야 해?”

“가장 가까운 성으로 이동 후에 육로로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일 가까운 곳이 어디야?”

“토렐 성이 가장 가깝습니다.”

“거기가 제일 가까워?”

“마탑 지부가 있는 곳으로는 그곳이 제일 가깝습니다.”

제이슨은 지금 따져봐야 마탑이 철수한 것을 돌릴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토렐 성으로 열어 줘.”

마법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토렐 성까지는 30골드입니다.”

제이슨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마법사는 뻔뻔한 얼굴로 답했다.

“전역자에게 군부의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게는 해주지만 사용료는 받고 있습니다. 토렐 성까지 이용료는 30골드입니다.”

“10년간 왕국을 위해서 고생했는데 돈을 뜯어낸다고?”

마법사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이슨은 이를 뿌득 갈고는 30골드를 그에게 건넸다. 마법사가 워프 게이트를 작동시키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제이슨은 마법사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워프 게이트에 올랐다. 새하얀 빛과 함께 주변의 풍광이 변했다. 제이슨은 환한 인사를 건네는 마법사를 볼 수 있었다.

“토렐 성 마탑 지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만두면 화환이라도 걸어줄 기세라 제이슨은 고개를 내젓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

토렐 성은 특출난 것이 없는 성이었다. 바론 성이나 토렐 성이나 밀 농사로 먹고사는 성인데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은가 싶었다.

“아직 모르셨나요?”

제이슨이 돌아보자 마법사가 어느새 옆에 다가와 서 있었다.

“토렐 성에서 던전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토렐 성주님께서 오픈하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름 있는 용병대는 물론이고, 근처의 성주들도 병력을 파견 중에 있어요.”

“어떤 던전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거죠?”

“고대 대규모 던전이라는 말이 있어요. 마탑에서도 용병대를 고용해서 진입할 예정이랍니다.”

“그랬군요.”

제이슨은 고대 대규모 던전이라면 온갖 군상들이 몰려들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런 것은 비밀 유지를 못 한다면 오히려 강탈당하기에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토렐 백작은 오히려 던전을 오픈하면서 다른 이들의 경쟁을 붙였다. 이러면 서로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짜로 오픈하지도 않을 터였다. 여러모로 머리를 잘 굴렸다.

어찌 되었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좋은 것 건지시면 좋겠네요.”

“참가 안 하시나요?”

“집에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 그럼 가시는 길에 토렐 성 명물 쿠키를 사 가시는 것은 어떨까요?”

“언제부터 토렐 성에 명물 쿠키가 있었습니까?”

마법사가 움찔하는 것 같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 2, 30년 쯤?”

“저 바론 성 출신입니다.”

“두 달 전부터 있었어요.”

제이슨은 마법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걸 마탑 지부에서 판매합니까?”

“빙고!”

제이슨은 헛웃음을 흘렸다. 마법사가 어색하게 웃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제시에요.”

“쿠키 얼맙니까?”

“한 봉지에 50실버에요.”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었지만, 돌아가는 길에 선물도 준비 못 했으니 몇 개 사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돈이라면 넉넉히 모았으니까.

빌어먹을 돌격대대. 휴가도 거의 못 나가서 돈 쓸 일이 거의 없이 전투만 계속해서 돈이 많이 모였다.

“네 봉지 주세요.”

“선물 포장해드릴까요?”

“그래 주시면 좋겠네요.”

돈을 받아든 제시가 후다닥 쿠키 봉지 네 개를 포장해서 가져왔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더 내밀었다.

“이건 시식용이에요. 몇 개 챙겨왔어요.”

제시가 윙크하며 건네기에 제이슨은 그것을 받아들고 한 입 먹었다. 흔해 빠진 밀과 버터로 만든 쿠키인데도 불구하고 전역하고 먹으니 맛이 좋게 느껴졌다.

“그래. 이 맛이지.”

쿠키를 와삭와삭 씹으며 제이슨은 거리에 돌아다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유명한 용병단의 문장들도 보였다.

하긴 고대 던전이라면 대륙의 유명한 용병단들이 군침을 흘릴 만했다. 이렇게 마도공학이 발전한 지금도 고대 마도 시대의 것 중 흉내 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제이슨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성을 나섰다. 계속 걸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간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긴 금속판을 하나 꺼냈다.

금속판에 발을 올려놓은 제이슨이 고글을 하나 꺼내 쓰고는 금속판을 작동시켰다. 전장에서 기습 작전에 사용되는 코어 카트를 작동하자 바람을 가르며 고속으로 이동했다.

말이 이동하는 것보다 몇 배는 빨라서 장기 이동할 때는 이만한 물건이 없었다.

야간 작전을 해왔기에 야간 주행도 가능했다. 그렇게 말로 오 일은 달려야 갈 수 있는 거리를 꼬박 12시간 만에 주파한 제이슨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성문은 개방도 되지 않은 시간. 제이슨은 코어 카트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는 성문에 기대어 성의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직 2월이라 그런지 드넓은 밀밭이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10년 전 그날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고향은 마음마저 평안하게 만들었다.

끼이익.

2월의 쌀쌀한 날씨에도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풍경을 뒤로하고 제이슨이 돌아섰다. 성문이 열리고 그 틈 사이로 병사의 얼굴이 보였다.

고단한 얼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수염이 거뭇거뭇 난 병사는 제이슨을 확인하고는 문을 마저 열었다.

“일찍도 오셨네요.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됩니까?”

“집으로 가는 길. 그런데 관리 좀 하고 살자.”

“예?”

제이슨은 병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성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막 해가 떴다고 해도 성 전체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토렐 성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제이슨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내성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째 내성에 다가가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부유하다고는 못해도 밀 농사로 제법 살던 성이 관리가 안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거미줄도 보이고, 풀도 잘 베지 않았는지 발목까지 차오른다.

게다가 내성을 지키고 있는 병사도 외성의 성문에서 만난 병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더 관리가 안 되어 있었다.

내성의 성문을 지키는 것은 최소 네 명이 한 조로 이뤄져 있었는데 지금은 한 명이 창 하나 달랑 들고 서 있었다.

제이슨이 다가가자 병사가 창으로 성문을 막으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제이슨은 병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놀란?”

“저를 아십니까?”

“많이 늙었네. 나 제이슨이야.”

“예?”

“제이슨 폰 바론이라고.”

“작은 도련님?”

제이슨은 놀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물었다.

“그런데 왜 혼자 근무 서고 있어?”

놀란은 잠시 주저하다가 성문을 열어주었다.

“우선 백작님부터 뵈시죠.”

“그래.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제이슨은 놀란을 지나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내성 안도 관리가 안 되어 있었다. 깔끔한 어머니 성격에 이렇게 둘리가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제이슨은 인상을 굳힌 채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저택의 입구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니 안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왔다.

“헤이튼!”

바론 백작의 시종장. 언제나 단정한 모습을 보이는 그였다. 헤이튼도 제이슨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라보았다.

“제이슨 도련님?”

제이슨은 성큼성큼 다가가 헤이튼을 끌어안았다. 10년 만에 만난 헤이튼을 품에서 놓으며 제이슨이 그의 두 눈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우리 영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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