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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512화 (512/657)
  • < --  [해상왕국 백제의 담로]  -- >한편 한국에서는 한민족의 고대역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전에는 소홀하게 생각하던 고대사에 대한 연구들이 많아졌다. 이미 중국 산동 반도나 만주 지역의 일부를 차지한 백제가 해상 국가라는 학설은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백제, 신라, 고구려가 모두 중국에 존재했다는 학설도 널리 퍼지고 있었다. 방학 중이나 전북대학교의 역사연구소로 나와 연구 활동을 하는 전임강사들이 다소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김 교수, 삼국이 모두 중국에 있다는 학설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그건 믿기가 어려운 이야기야. 신라까지 중국에 있었다는 것은 나는 너무 과장된 생각이고 그것은 사대주의 사상보다 더 이상한 생각으로 빠져들은 황당한 학설이라고 보네.”“나는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이 교수가 믿고 말고야 자네의 자유의사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역사의 해석이란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 해석하다 보면 자가당착에 빠져들 수 있다고. 신라의 대륙 존재 회1/14 쪽등록일 : 13.02.28 13:23조회 : 2281/2291추천 : 74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4979

    학설은 신라의 수도가 경주라는 것을 오히려 부정하는 요상한 학설이니 괴설에 불과하다고.”이 교수라고 불린 청년은 요즈음 유행처럼 번지는 삼국의 중국 존재 학설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었다.“경주가 중국에 있었다는 학설이야 믿기 어려워도 유명한 대학교수들의 연구해 주장하는 학설이니 그래도 조금의 근거는 있어 보이더군.”“그런가? 나는 삼국이 모두 중국에 있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어. 백제나 고구려가 중국을 어느 정도 차지했다는 학설이 정확하다고 봐.”“유명한 교수가 주장하는 학설인데?” “자네는 너무 외형적인 명성으로 학문을 평가하는군. 아무리 유명한 교수라고 해서 꼭 정확한 학설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교수 중에도 괴설을 통해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어 책이나 팔아먹으려는 책장사에 염두에 두는 싸구려 교수들도 많다고.”이들은 한국사학을 전공하고 있으나 서로 조금 다른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은 전에 비해 보다 진취적이고 확장된 사고력으로 고대 역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런 2/14 쪽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드디어 대륙삼국설이 슬며시 표면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학설은 여전히 너무 황당한 내용이라고 사학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었다. 다만 전에는 역사적 기록이 적다는 이유로 소홀하게 생각하던 백제 시대의 담로 제도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고 있었다. “담로제도는 요즈음으로 생각하면 무역을 통해 마련한 해외 거점을 말하는 것 같아.”“그렇겠지. 그런 기본적인 힘이 있었으니 장보고가 해상 무역을 쉽게 장악했겠지. 세상의 어떤 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는 어렵다고 더구나 고대에 선박 기술이나 항해술은 첨단기술이라고 봐야해. 그것이 어떤 특정인이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는 것이고.”“설사 그렇더라도 장보고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야. 그때 이미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수시로 오가며 무역을 했으니까.”“일본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보면 대단했던 것 같아.”“청해진에 대해 발굴 작업을 대대적으로 한다고 하더군.”“전에 발굴한 지역보다 더 넓게 조사를 해보면 규모가 더 정확하게 알겠지.”3/14 쪽

    백제의 담로제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게 되면서 해상왕으로 불리던 장보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에 대한 연구도 전과는 조금 다른 각도로 연구하는 경향들이 생기고 있었다.“왕건의 조상은 중국에서 살던 무역상이라는 거야.”“백두산 출신이 아니고?”“그것이 조금 조작된 역사서라는 거야.”“그렇다면 결국 고려는 교민들이 세운 나라라는 것이군.” 이런 학설들이 등장하며 그동안 흔하게 왜구라고 칭하는 해상무력집단에 대한 해석도 많이 바뀌고 있었다. 왜구의 일부는 백제 후손들이 고토수복을 위해 충청도 지역을 침범했다는 학설들도 등장하고 있었다.“이 사람아. 그건 일본이 과거에 한반도를 침범하며 써먹던 논리야.”“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렵잖아. 내가 보기에는 일본은 백제 유민들이 세운 나라가 틀림없으니 결국 그들이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수시로 한반도를 침략했다는 거야. 우리가 항상 부여나 고구려 그리고 발해 영토4/14 쪽

    이던 만주인 고토회복을 주장하는 것처럼.” “자네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골수인 친일파 학자라고 떠드는 이유가 있었군. 지금 사회 분위기가 어떤데 과거 일본인들의 항상 주장하던 괴설을 역사의 진실이라고 떠들고 다니나? 대학교 조교수 노릇이라도 편하게 하고 싶으면 그런 돌출한 주장을 함부로 하지 말게.” 사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한국은 새로운 학설도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국력이 신장됨에 따라 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의 연구들이 활발해진 것이다. 전에는 연구를 하고 싶어도 자금이 없어 해외로 나가 조사도 못했으나 이제는 보다 풍족해진 연구 활동비 지원으로 인해 활동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사학계에서 한반도의 고대사의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었다. 전라도 지역에서도 문화유적지에 대한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라도는 본시 전주와 나주를 합해 지어진 지역명칭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쪽을 라도라고 칭하는 것은 전남지역인 광주나 나주지역을 말하는 것이다.“라도 지역에 왜라는 다른 나라가 존재했다고 하는군.”“그렇다면 그들이 결국 일본으로 넘어가 왜구가 되었다는 것인가?”5/14 쪽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나? 나중에 백제가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자 바다를 통해 멀리 일본으로 도망쳤다고 보는 거야.” 전주나 나주 지역은 모두 고대 신석기나 청동기 시절부터 평야지대로 주곡인 쌀의 생산이 많았던 곳이다. 나주는 질 좋은 나주 쌀이 유명하고 특산물로 나주배가 유명하다. 곡창지대인 전주나 나주지역은 고대부터 물자가 풍족해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에는 거대한 고인돌이 많았다. 그래서 서해안 시대를 맞이해 전라도 지역에는 문화역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은 점점 개방된 사회로 변하는 중국과 교역량을 늘리고 있었다. 또한 고대 백제사 연구가 활발해지는 분위기로 인해 전남의 나주나 목포들에 대해 관심들이 많았다.“이제 서해안 시대라고.”“당연하지. 중국과 교역량이 계속 늘어나잖아.”한국은 경상도 지역이 먼저 산업화를 이루어 성공했다. 본격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 수많은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서해안 시대를 맞이해 전북과 충남을 가르6/14 쪽

    는 금강 주변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전남은 영산강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새해가 되자 목포에 있는 HT 조선소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목포에 다소 무리하게 대형조선소를 건립했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대형선박을 수주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대형선박을 건조하게 되었다.거대한 도크에서 화려한 오색테이프로 장식한 초대형 선박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와글와글.지역민들이 힘을 합해 만든 HT 조선소다 보니 지역주민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축하하고 있었다. 다소 유별나게 애향심이 강하다 보니 고향에서도 대형선박 건조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드디어 여기도 과거의 해상강국의 영광이 재현되는군. 본시 장보고는 선박을 건조해 일본이나 중국으로 파는 조선소를 운영했잖아.”“그렇지. 그뿐인가? 여기는 본래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던 곳이라고.”사람이란 뭔가를 이루게 되면 오래 전부터 그런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를 좋아한다. 7/14 쪽

    목포의 임해 공단에 있는 HT 조선소에서 드디어 30만톤급 유조선이 건조되어 떠나고 있었다. 한국은 울산, 부산, 거제도, 통영, 목포, 서천 지역에 대형조선소가 가동되고 있었다.이미 세계에서 돌아다니는 대형유조선이나 천연가스 운반선 그리고 컨테이너 선박들의 75퍼센트 이상이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철강업에 이어 조선업도 완전히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반도체 산업도 이미 일본이나 미국을 추월해 버렸다.일본에서 벌어진 오사카 대지진의 여파로 인해 전자 산업 분야에서도 일본을 완전히 추월하게 되었다. SG 필립스 전자회사의 신형컴퓨터 출시를 계기로 점유율이 높아진 것이다.대형 선박 건조는 원 역사보다 더욱 점유율이 높은 상태라 타국의 추적을 완전히 불허하고 있었다. 특히 해군에서 필요한 대형 함정들을 건조해 해외로 수출하게 되자 이제 한국은 명실상부한 해양강국이란 칭송을 받고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 거대한 유조선을 바라보며 HT 조선소 간부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중동으로 가서 주로 인도양에서 운항하겠군.”“당연하지. 호주의 시드니 해운 소속이니까.”8/14 쪽

    “건조 중인 컨테이너 선박의 이름은 장보고라고 정했다고?”“그렇다고 하더군.”이런 대화를 나누며 광주의 전차 생산 공장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아니? 지금도 북한을 추종하는 넋 빠진 놈들이 있나? 겨우 목숨 부지하고 사는 놈들이 뭐가 좋다고 K1A2 전차의 설계도를 빼돌려 북한으로 보내려고 하다니.”“살다보면 별일도 다 많아. 일본을 통해 몰래 빼돌리려다가 미수에 그쳤기 다행이야.”“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면 모를까 일본에서 대학원까지 나온 공학석사라는 놈이 그런 짓을 벌이다니 너무 한심해.”“사람이란 한 번 사상에 지배당하면 그것을 바꾸기가 힘들어서 그런 거야.”“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화국이라고 하면서 대를 물려 충성하는 절대왕정국가로 변한 북한을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믿고 있다니 내가 보기에는 정신병자가 확실해.”9/14 쪽

    이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광주 출신으로 일본에서 공학석사까지 공부한 한 연구원이 오래 전 조총련에 포섭되어 중요한 국가기밀을 빼돌리려고 한 간첩단이 검거되었기 때문이다. 군사기밀을 몰래 빼돌리려던 간첩단은 광주와 울산 그리고 거제도의 조선소에서도 활동하다가 일망타진되었다.원 역사에 비하면 거의 사라진 정도지만 여전히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엘리트 집단들이 전국에 걸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점점 시들어가는 북한이 최종적으로 발악하듯이 벌이는 대남공작의 희생자들일 뿐이었다. “저래서 똑똑한 병신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야. 머리에 지식은 많이 들어 있으나 판단력이 저런 지경이니 똑똑한 바보라고.”“그래서 저런 놈들은 흔히 빈 깡통이라고 칭하잖아. 겉은 허우대가 아주 멀쩡해 보이나 나중에 알고 보면 소리만 요란하고 안은 텅 비어 있는 빈 깡통.”“그러니 죽지 못해 겨우 목숨 연명하고 사는 북한의 대남공작에 포섭되는 거지. 조금 남보다 우월한 지식이 있으면 특별히 행동해야 된다고 느끼고 사는 일종에 정신병이 있는 놈들이 북한을 추종하는 거야. 세상이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이 있다는 자체를 모르는 놈이고.” 10/14 쪽

    “저 잘난 맛에 사는 이상한 놈들이지.”“세상은 요상한 놈들도 있는 법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우리야 중동으로 가서 유조선 한척이라도 더 수주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니까.”북한은 한국의 발전과 비례해서 더욱 힘들게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정일은 여전히 선군정치를 펴고 있었다. 주민들의 삶을 전혀 돌보지 않고 군사력 증강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경제력에서 워낙 한국보다 차이가 나다 보니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허접한 경제력도 모조리 무기 생산으로 소모되다 보니 북한 주민들의 삶은 원 역사보다 더욱 힘들어 지고 있었다. 곡창지대인 나주에서 드디어 중요한 유물이 발굴되었다. 공주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에 버금가는 많은 부장물이 있는 고분을 발굴한 것이다.“헉! 칠지도네.”“뭐야? 칠지도라니?”생긴 것은 칠지도와 비슷했지만 칠지도가 아닌 육지도인 특이한 검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글자가 새겨진 청동거울들이 보였다. 그리고 금제품 장식들이 무수히 나왔다.문화재청의 소속인 학예사들이 발굴된 유물들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11/14 쪽

    “여기 전남 지역에 왜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생생한 증거야.”“무슨 소리야. 이건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들과 비슷하니 백제 시대에 있었던 담로를 다스리던 후왕의 묘가 확실하다고.”“여기는 독특한 옹관묘가 많지 않은가? 그러니 전혀 다른 나라가 존재한 거야.” 같은 유물을 같은 장소에서 바라보지만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 사뭇 달랐다. 한 사람은 왜라는 별도의 나라가 한반도 남쪽에 존재해 그 왜라는 나라의 지도자인 국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백제 시대의 지방 통치 제도인 담로 주의 무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백제에 속한 후왕이던 아니면 왜라는 별도의 나라가 존재하고 그들의 왕의 무덤이던 간에 이곳 나주에는 왕권과 비슷한 권력을 지닌 정도의 막강한 세력이 있었던 지역이었다.사학계에서는 나주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로 인해 치열하게 서로의 주장들을 펼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멀리 브루나이에서 지내는 최태욱은 TV를 통해 격하게 토론을 벌이는 사학자들의 논쟁을 시청하고 있었다.12/14 쪽

    “사학자들이란 참으로 고집들이 세군.”“그렇습니다. 또 그래야 사학자로써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 정진하는 것이고요.”최태욱이 하는 말에 같이 TV를 보던 트레블은 이렇게 평하고 있었다. 최태욱은 나주에서 발견된 유물들에 대해 나름 추측하고 있었다.“처음에는 독립적인 부족연맹체 정도로 지내다가 나중에 백제에 속한 기록도 있으니 양쪽 주장을 어느 정도 절충해 생각하면 깔끔히 정리되겠군요.”“태공,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즈음으로 따지면 백제는 지방 자치제가 활발했던 나라라고 봐야죠.”“남쪽에 있던 목지국이 백제와 병합될 때 나주지역 세력들의 일부가 일본으로 배를 타고 이주했을 것이고. 대충 그런 정도로 흘러가야 자연스러운 것이죠. 내가 보기에는 나주도 백제의 담로가 있었던 지역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어떤 사학자들의 주장처럼 백제의 담로가 모두 한반도 외의 외국영토에 존재했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칠지도의 7개의 가지가 어쩌면 맹주인 백제왕과 6개의 큰 담로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13/14 쪽

    ‘백제 시대의 해상 활동 지역을 직접 찾으면 알게 되겠지.’백제의 담로 제도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보니 최태욱은 경제보다는 고대 역사에 대해 정신이 쏠리고 있었다.14/14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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