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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371화 (371/657)
  • < --  [난세의 영웅]  -- >성남시에 있는 한민족 문화재단에서는 신문을 발행하고 있었다.‘개벽 신문’이라고 해서 한민족에 관한 기사를 주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해외에 있는 동포들의 소식이나 혹은 북한이나 일본에 사는 한민족이라고 보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화려하게 해외에서 활동을 벌이는 최태욱의 기사도 가끔은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다른 신문의 보도가 나간 이후에 작게 내보내고 있었다.개벽 신문사의 기자인 윤주민은 집으로 돌아와 화들짝 놀랐다.‘이게 뭐지?’아파트 문 앞에 과일 상자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북한에서 자기를 해하려고 선물 상자를 가장해 폭탄이라도 보냈는지 염려했다.요즈음 그는 북한에서 벌어진 참상에 대해 상세하게 시리즈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는 국민들을 굶어 죽게 하며 여전히 남침을 위해 무기나 만드는 북한 정권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다.회1/13 쪽등록일 : 13.01.08 06:56조회 : 3580/3595추천 : 83평점 :선호작품 : 4979(비허용)

    조심스럽게 상자를 바라보던 윤주민은 상자에 표시된 작은 문양을 보고 안심했다. 가끔 그에게 카리브에서 뭔가 제보를 해주며 표시하던 문양이기 때문이다. ‘또 무슨 좋은 새로운 소식이 있나?’종이 상자를 들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윤주민은 안의 내용물을 살피다가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다.‘이럴 수가·······. 이런 놈들이 있나? 이렇게 추한 매국노를 정치지도자로 내가 따르다니.’자신도 한때 추종하던 정치지도자도 같이 있었다. 참으로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정치인이 이런 추악한 모습을 보이자 분노하고 말았다.‘이제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때가 된 거야.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추악한 모습에 분노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이 있었다. 그건 자신이 젊어서 추종하던 인물에 대한 추한 모습을 보자 조금의 미련일 뿐이다.    개벽 신문은 일본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국회의원들이 일본 오사카에서 일본여배우들과 게이샤놀이를 즐김!”2/13 쪽

    주로 국민들에게 미담만 보도하던 개벽 신문이다. 이런 다소 선정적인 기사를 처음으로 내보내자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개벽 신문도 드디어 사업성으로 가나?’개벽 신문은 당초 출발이 천인교 교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천인교인들은 신문을 거의 구독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천인교라 그중에 못된 놈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수치보다는 도덕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천인교도들은 신문을 보자 대부분 분노했다.“한국 정치인들이 이렇게 타락하다니.”“모조리 바꾸어야 한다고.” 일본이 한국으로 줘야할 배상금을 놓고 협상을 다시 하기 위한 모임이었다고 보도했다. 분명히 더 받아 내자는 행동이라기보다는 대폭 삭감해 준다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다.국민들은 개벽 신문을 보자 다들 분노하고 있었다.“이런 죽일 놈들이 있나? 베네룩스 왕국의 기동함대가 거둔 거대해전 승리로 배상금3/13 쪽

    을 받게 했더니 그것을 뒷돈 받고 삭감을 거론하다니.”정계의 거목이라는 놈들이 한통속으로 일본 정부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었다.참으로 기가 막힌 사건이다.이런 보도의 파장은 너무도 빨리 널리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뜨겁게 분노했다. 북한에서 여전히 남침하려고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짓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열기가 전국에서 불같이 뜨겁게 일어나고 있었다.게이샤 파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은 궁지에 몰렸다. 그들은 모두 한일의원연맹의 회의에 참석해 잠시 피로를 풀기 위해 술자리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보도되는 사진을 보고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이러고도 그것들이 정치지도자야?’나이 많은 국회의원들이 체면을 내 팽개치고 술판에서 어울리고 있었다. 완전히 벌거벗은 어린 여자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역시 벌거벗은 여자의 몸에 올려 진 푸짐한 회를 안주삼아 양주를 먹는 장면이 사진으로 보도되었다.“늙은이들 정말 피곤도 하겠다. 여자를 저렇게 해놓고 술을 마시면 잘 서지도 않는 아4/13 쪽

    래가 벌떡 거려 피곤하지. 도적놈들.”더구나 술자리에서 오간 대화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정치인들은 더 이상 추한 모습으로 살지 말고 정치에서 은퇴하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주요 일간지들은 모두 개벽 신문 기사를 토대로 상세하게 보도했다. TV방송사에서도 뉴스나 또는 특집으로 보도하게 되었다.국가 유공자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 대부분 전쟁으로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서울의 여의도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매국노는 물러가라!”“물러가라!”시위대 규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고 있었다. 한국의 여의도 정가는 이로 인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사건에 연루된 국회의원들이나 당에서는 구구하게 변명을 해보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 냉혹해지고 있었다.“정치권도 완전히 물갈이를 해야 해.”5/13 쪽

    “맞아. 올바른 정치인은 거의 없다고.”이런 파장이 여의도 정가에 불면서 정계개편의 소리가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구린 구석이 많은 정치인 스스로 정화하는 작업을 벌일 수는 없었다. 한국은 매우 혼란스럽게 돌아가고 있었다.충북의 진천으로 낙향한 이진수는 신문기사를 보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일이 어떻게?”자신이 참여해 이룬 70억불 배상금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내게 되어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변하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청와대로 올라가 대통령에게 일본 정부에게 배상금을 빨리 내 놓으라고 촉구하는 성명이라도 발표하라고 하고 싶었다.하지만 이미 자신은 공직에서 물러난 처지다.“후우! 아내는 여전히 내가 정치하는 것을 말리고. 아이들도 그러니 내가 전면에 나설 수는 없어.”그래도 가만히 앉아 있기 뭐해 평소 친하게 지내는 관료들이나 교수들에게 연락해보고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금 문제를 잘 해결해 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며칠6/13 쪽

    간 그런 일을 하면서 지내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태공이 이래서 나보고 정치를 하라고 했나?’최태욱이 자신에게 써주고 떠난 ‘진수개혁 웅비평화’ 란 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붓글씨를 바라보던 이진수는 드디어 결심했다.‘그래, 내가 나서자고.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완전히 끝내야 해.’서류상으로 배상금을 받아내라고 했다고 자신의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배상금을 받아 잘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은 반드시 높이 올라야 된다고 판단했다. 힘이 없는 외침은 그거 메아리만 되어 되돌아 올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진수는 집을 나서기 위해 부인을 만나고 있었다.“나, 여기서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어요.”“알았어요. 결심이 그렇다면 당신 먼저 올라가세요. 저도 여기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당신을 따라서 서울로 올라가 돕지요.”7/13 쪽

    오래 같이 살아서 그런지 부인도 이진수의 마음을 이제는 알고 정치를 한다는 것에 동참해 주기로 결심했다. 이진수는 장성한 자식들이 걱정되어 물었다.“애들은?”“두 놈 모두 카리브로 떠난다고 전화했네요. 이민은 아니고 그냥 회사나 다닌다고요. 당신을 옆에서 돕고 싶지만 그것이 오히려 당신 행보에 지장을 줄지 모른다며 당분간 떠난다고 했어요.”순간 이진수들은 자식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아비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자식들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자식들이 옆에서 도와주면 힘이야 나겠지만 친인척 비리로 얼룩진 한국 정치에서 그것이 오히려 부담일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아들들은 너무 잘 알기에 먼저 멀리 떠나버린 것이다.이진수는 그동안 자신의 외교관 생활을 토대로 정리한 원고지가 들어있는 서류가방을 들고 진천에서 떠나고 있었다. 그의 다른 손에는 족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청빈하게 공직 생활을 해 자금도 없고 서울에 겨우 20여평 되는 아파트 하나가 고작이다. 막상 정치를 하려니 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참 나도 어지간히 순진하게 살았어.’8/13 쪽

    자신의 삶이 부끄러운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평소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성품이라 앞으로 남을 부리려면 인건비는 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해보는 생각이다.그가 가방을 들고 나서자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청년들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태공께 빨리 연락해. 이 장관님이 드디어 진천을 떠나고 있다고.”거인은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아는 최태욱이다. 그래도 걱정되어 대사관으로 연락해 경호원들을 주변에 배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내용을 전혀 모르는 이진수는 서둘러 시내로 나가 서울로 올라가는 시외버스를 올라타고 있었다. 승용차가 있으면 가볍게 서울이나 도시로 갈 것 같아 일부러 팔고 낙향했다.서울로 올라온 이진수는 먼저 여의도로 가서 퇴직금을 몽탕 털어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가칭, 한국개혁당 중앙당.”본시 정당법에는 지역구에 일정수의 지구당이 있어야 정당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진수는 일단 간판부터 만들어 걸어 놓았다.      그러자 호기심이 생긴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그9/13 쪽

    의 인품을 믿고 하나 둘 당원으로 등록하고 있었다.처음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그리고 그래도 외무장관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신문사에서 찾아왔다.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그의 생각을 기사로 보도해 주었다. 다른 정치인을 전혀 탓하지 않았다.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임무가 끝났고 판단하는 실수라는 기사만 쓰도록 부탁했다.  “모두 내 불찰입니다. 일본을 믿은 내 잘못입니다. 그리고 정치권을 너무 믿은 잘못도 있고요.”“장관님 생각에는 어찌 해야 된다고 보는지요?”“헤이그에서 판결난 그대로 70억불을 받은 이후에 전쟁포로를 석방해야 된다고 봅니다.”“그렇군요.” “당장 해군은 거대해협에 대해 초계활동을 시작해야 되고요. 내 영토를 누가 지킨다는 겁니까? 대마도 주변 해역에는 일본의 해상자위대나 해경순시선은 모두 떠나야 10/13 쪽

    됩니다. 대마도는 공동수역에 포함된 섬이라 우리 정부와 협의에 의해서만 경찰도 있을 수 있습니다.”“오라, 그렇게 해야 하는군요.”이런 논조의 기사가 나가자 사람들은 이진수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진수의 사무실에는 점점 사람들이 몰려와 입당하고 있었다.“꼭 올바른 정치를 해주세요. 저도 시간이 나면 돕지요.”“힘내세요.”이런 이진수의 행동에 지방에서는 그의 고향인 진천에서 젊은 청년이 지구당을 창당한다고 신청했다. 이것을 시발로 충북지역에는 하나 둘 지구당이 생기고 있었다.그가 움직이자 자연히 평소 그를 존경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드디어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고 중앙당은 등록되었다. 드디어 한국개혁당이 여의도에서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된 것이다.다른 것이야 모두 헌법에 따르는 내용이다. 특별한 것은 국회의원의 수를 250명으로 대폭 줄인다는 내용이 있었다. 기존의 지역구는 그대로 두고 전국구 의원제도만 폐지해 줄인다는 내용이다.11/13 쪽

    전국구는 전문가나 소외계층을 발탁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각 정당에서는 전국구(錢國區) 소리를 매번 들어가면서 많은 공천 헌금을 받고 그 자리를 팔고 있었다. 그런 사태를 방비하기 위해 전국구 제도를 폐지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아울러 전과자나 병역미필자는 개혁당에서는 절대 공천하지 않겠다는 공약도 내걸고 있었다.“그래, 저렇게 하나씩 가능한 방법으로 먼저 고치겠다는 정당이 필요해.”이진수가 만든 한국개혁당은 점점 세가 불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의도에 정가에서는 이런 이진수의 움직임을 비웃고 있었다.“순진하군. 정치를 하려면 자금이 얼마나 드는데······. 고지식한 사람이 뭘 알겠어.”“혼자서 잘났다고 하는 저런 사람을 누가 좋아해.”한국개혁 중앙당은 당원들의 후원금으로 조금 큰 자리에 당사를 마련하게 되었다. 돈이 부족해 빈 공터가 있는 구석진 곳에 있었다.이진수의 부인은 당원인 자원 봉사자들과 그 공터에 특이한 일을 하며 남편을 돕고 있었다. 과거 미국의 원조를 받아  먹고 살던 시절을 잊으면 안 된다고 해서 옥수수 죽을 끓여 당원들이나 또는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한 그릇씩 나누어 주고 있었다. 12/13 쪽

    “그래 우리 어렸을 때 이런 옥수수 죽을 먹고 학교에 다녔어.”“기억하고 있군. 그때 진짜 배고팠던 시절이었지.”가난했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저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서 다시 정신을 차려 살자는 의미다. 옥수수 죽이 뭔지를 모르는 젊은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는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처음 서울에서 시작된 옥수수 죽을 나누어주는 행사는 점점 지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한국 국민들은 차츰 이진수가 한다는 새로운 정치에 호응하고 있었다. 그러자 드디어 청와대에서 이진수의 주장대로 거대해협에 초계정을 보내 대마도 인근 해역을 지키기 시작했다.‘저렇게 하나씩 바꾸는 것이 개혁이야.’이런 생각으로 국민들은 점점 이진수를 따르고 있었다. 최태욱의 생각대로 거인은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13/1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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