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 다른 삶-366화 (366/657)

< --  [거대해협 평화협정]  -- >“그렇군요. 땅이 기름진 것을 보니 부모님이 아주 부지런했군요.”“제 부모님은 배우지 못해 별로 이룬 것은 없지만 평생 이 밭을 이런 정도로 기름지게 만들었죠. 제가 아주 어려서 머슴을 살아 만든 재산이라고 들었습니다. 자갈만 가득한 밭인데 평생을 노력해 일구어 이런 정도의 기름진 땅을 만들어 저에게 물려줘 이 밭이 제게는 제일 큰 부모님의 선물이죠.”“그렇군요.”최태욱은 이진수의 응수에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부모가 이룬 작은 재산에 대해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이룬 큰 업적에 비해 너무 작은 것이나 그것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다. 이런 성품의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인들이 과거정권을 무조건 부정하던 그런 행동은 안할 사람임을 느꼈다.이진수는 부모님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노력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시골구석의 부동산가치도 없는 작은 토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밭을 통해 오늘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특이할 수밖에 없었다.밭에서 삽질을 하기 위해 나서며 이진수는 조용히 말했다.회1/13 쪽등록일 : 13.01.06 16:26조회 : 3631/3645추천 : 90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4979

“이 근처의 밭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서 동네 어른들이 피땀으로 일꾼 땅입니다. 거름이 없어 진천 시내로 나가 똥을 퍼 날라 밭에 호박 구덩이를 파고 넣던 모습들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제 집은 수세식이 아니고 아직도 똥이 펑펑 튀기는 푸세식이고요. 저는 그 똥 냄새에서 아버님의 향기를 느낍니다.”  ‘보면 볼수록 이름 그대로 진솔한 사람이군.’이미 이진수의 능력은 충분히 검증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이런 사람에게 정치하라고 권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태욱은 옆에 있는 트레블에게 지시했다.“시내로 나가서 삽 좀 사와요. 경호원들도 써야하니 골고루 농기구를 사오고요.”“넷!”갑자기 농기구를 사오라고 경호원에게 지시하자 이진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뭐라고 묻지 않고 삽을 들고 텃밭으로 가고 있었다. 텃밭에는 고추, 야콘, 상추, 부추, 무, 콩이나 들깨들이 심어져 있었다.밭의 북쪽 고랑 사이에는 슈퍼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2/13 쪽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트레블이 삽이나 농기구를 사오자 최태욱은 이진수와 별다른 대화는 없이 삽을 이용해 밭을 일구고 있었다. 퍽! 퍽!그저 묵묵히 삽질해서 밭을 일구던 두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옆에서 바라보던 경호원들이 이윽고 자신들도 멍하니 서있기 무엇해 삽질에 동참했다.500평에서 반은 이미 일구어 놓은 땅이다. 나머지를 경호원들과 같이 삽으로 모두 일구고 나자 이진수는 그제야 조용히 말했다.“대공이 성공한 이유를 이제야 확실하게 알았군요.”이진수가 하는 말은 솔선수범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최태욱은 경호원들과 생활하며 거의 모든 행동을 실천하고 먼저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항상 그렇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식사도 똑 같이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옆에서 경호원들이 도와주는 바람에 일찍 밭일이 끝났다. “대공, 진천을 구경했어요?”“아뇨, 장관님이 안내를 해주세요.”3/13 쪽

“그러죠.”이진수는 진천을 안내해 준다고 최태욱과 리무진을 타고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충북 중앙의 진천은 한반도의 내륙이 있는 지방이라 사계절 특징이 뚜렷했다. 또한 오염되지 않은 산하는 계절별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고장으로 꼽히고 있었다. 혹자는 진천을 한국의 이상향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다. 하지만 먼 삼국시대에는 이곳은 삼국이 각축전을 벌이던 곳이다.최태욱 일행은 김유신 탄생지로 아주 유명한 길상사로 향하고 있었다.“대공, 길상사에 대해서 아세요?”“예, 조금 압니다.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이잖아요?”“잘 아시는군요.” 잠시 이런 대화를 나누던 일행은 길상사에 도착하자 주변 경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조성된 길장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있었다.4/13 쪽

“관광객이 많군요.”“요즈음 삼국시대 드라마가 방영되니 그렇죠.”“아, 그렇군요.”길상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풍경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봄에 벚꽃이 핀 흥무전과 가을의 길상사 초입의 은행나무 길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최태욱이 자신을 왜 찾아 왔는지 이진수는 느낄 수 있었다.‘대공은 한국의 정치판을 걱정하는 거야.’분명 자신에게 정치하라고 권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그에 대해는 전혀 말하지 않고 삽질만 같이 했다. 아무튼 그런 행동은 이진수에게 강한 압박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정치가 싫다고 낙향해 고향에서 지내는 처지로 함부로 다시 나설 수 없었다.길상사를 돌아보고 나서 일행은 최태욱이 원해서 근처에 있는 향교로 찾아갔다. 지역의 향교가 다시 부활하는 이유는 향교에는 어린 학생들이 한자를 배우고 한학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유행이 부는 이유야 모두 최태욱의 행적 때문이다. 5/13 쪽

최태욱은 묵묵히 어린 학생들이 붓글씨를 연습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불쑥 입을 열었다.“제가 붓글씨 좀 써 드리고 싶군요.”“아, 귀한 붓글씨를 저에게 준다고요?”“귀하다니요? 잔재주가 조금 있으니 한번 써 보고 싶군요.”이렇게 말하고 최태욱은 제일 큰 벼루에 천천히 먹을 갈고 있었다. 이진수에게 뭐라고 써 줘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먹을 모두 갈고 나자 대필로 아주 크게 글씨를 쓰고 있었다.- 진수개혁(眞水改革) 웅비평화(雄飛平和)-  대 붓을 내려놓으며 최태욱은 조용히 물었다.“어때요? 마음에 드세요?”“예, 마음에 드는군요.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6/13 쪽

이진수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최태욱을 상당히 존경하고 있었다. 최태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보다 그가 이룬 올림픽에서의 성과를 경이롭게 보고 있다. 그리고 진천에 있는 SG 제약회사를 발판으로 만든 SG 그룹 자체를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한국에는 최태욱 보다 규모가 더 큰 기업을 소유한 삼성이나 현대 그리고 대우가 있었다. 하지만 남들과는 다소 차별된 형태로 회사도 운영하고 다른 식으로 경영하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에 있는 기업을 포함하면 현대나 삼성보다 SG 그룹이 규모가 더욱 크고 알찬 기업들이다.최태욱은 부언해서 입을 열었다.“저는 앞으로 한국에서 혁명이나 봉기 그리고 민란 같은 단어가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장관님만 믿고 떠나니 잘 생각해서 개혁의 선봉에 서주시기 바랍니다.”“알겠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나중에 결정하죠.”최태욱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하며 정치를 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일국의 지도자라로 성장할 만한 큰 인물이라면 굳이 자신이 권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스스로 자7/13 쪽

신의 운명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정당의 이합집산을 통한 정상모리배 같은 사람들과 세력을 결집해 설사 권좌에 오르더라도 그런 사람은 이미 구시대의 타도 대상인 정치인에 불과하다. 사실 젊고 또는 참신함을 내세운 수많은 정치신인들이 정치라는 늪속에 빠지면 남들과 다르지 않게 변하게 되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이분이라면 비록 집권은 못하더라도 절대 그렇게 변하지는 않을 거야.’이런 생각을 하고 최태욱은 이진수와 헤어져 빠르게 강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떠나는 방탄리무진을 바라보던 이진수는 한숨을 쉬고 있었다.‘큰 짐을 나에게 지어주고 대공은 한국을 떠나는군.’전에는 단순하게 남의 나라 여왕의 애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을 떠나면 전과 달리 여왕의 남편이라 한국과는 조금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처음으로 자기에게 정치를 하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정치적인 행보를 보였는지도 모른다.‘후우! 앞으로 뭐하고 살아야 하는지 막연하군.’8/13 쪽

마치 사찰로 찾아가서 고승에게 풀기 어려운 화두를 하나 받은 기분이다. 그래서 이진수는 최태욱이 써주고 떠난 진수개혁 웅비평화라는 글귀를 다시 바라보고 생각했다.‘대공은 너무 큰 변화는 한국을 위험에 빠트린 다고 본거야. 진수개혁이란 기존 질서에서 개혁이 가능한 것을 하나하나를 나 스스로부터 바꾸라는 의미야. 웅비평화는 높은 곳을 향해 목표로 정해 날아오르지만 반드시 평화롭게 해야 된다는 뜻이고.’일단 이런 정도로 해석한 이진수는 우선 제일 먼저 아내와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여보, 나 아무래도 정치를 시작해야 될 것 같소.”“뭐요?”정치를 한다는 말에 아내는 기겁하며 놀라고 있었다. 그의 아내도 정치판이 매우 혼탁해 함부로 뛰어들 곳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반대했다.“여보, 장관까지 했으면 됐지. 왜 국회의원을 하려고 해요? 저는 반대하고 싶군요.”“내가 나서서 뭔가 변화를 줘야 할 것 같소.”9/13 쪽

“여보, 당신 아니더라도 잘난 정치인들이 너무 많은데요. 그러니 지금처럼 텃밭이나 가꾸며 조용히 살아요. 국회의원 해봐야 피곤하기만 하잖아요. 그런 사람이 300명이나 되니 당신까지 나설 것 없어요.”“나는 그게 잘못 되었다는 거요. 내 생각에는 국회의원의 수는 지금보다 대폭 줄여야 된다고 보는 거요.”이진수의 말에 아내는 기겁하고 말았다.“당신은 지금 제 정신인지 모르겠네요. 아니? 국회의원들의 강철 밥통을 없앤다고 선포하면 누가 당신을 받아들인다고 그런 요상한 소리를 해요. 어림 판 푼도 없는 소리죠. 어떤 당에서 그런 소리하는 당신을 받아 준다고 정치를 한다는 건지요. 당의 대표나 중진 의원들에게 저자세로 굽실거리고 돈도 듬뿍 집어주어야 겨우 공천 받는 것을 당신은 아직도 모른다는 거요?”   “누가 그런 정치를 하나? 새로운 정치를 한다는 거지.”“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거창하게 주장하지만 얼마 안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던데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텃밭이나 일궈 가을에 애들 김장이나 담아줄 생각이나 하세요.” 10/13 쪽

사실 이진수는 정치를 한다고 했지 국회의원이나 혹은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다. 아직은 그런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목표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이날 이후 이진수는 매일 같이 낫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이면 아내와 이런 문제로 길고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아내도 진실 되게 설득하지 못하면 단 한발도 움직이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아내나 자식도 설득하지 못하고 믿음을 주지 못할 정도면 과연 누가 나를 따를 거야. 이것은 내게는 제일 중요한 문제야.’진천으로 낙향해 텃밭을 가꾸는 이진수는 최태욱이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고향에서 지내고 있었다. 외교관으로는 성공한 인생이나 정치와는 조금 무관하게 살아 배울 것도 많았다. 한편 강경으로 돌아온 최태욱은 모든 가족들과 같이 베네룩스 왕국으로 떠나기 위해 군산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군산 공항은 전에는 미군기지로 사용했으나 이제는 민간항공으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규모가 상당히 커져 있었다.군산공항에는 왕실 전용비행기인 보잉747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들을 모두 태우고 군산을 따나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 한반도를 내려다보며 최태욱은 생각에 잠겼11/13 쪽

다.‘나를 원망들이나 안할지 모르겠네.’최태욱은 이제는 남의 나라 여왕에 남편으로 살아야 하니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한국에는 자신에게 목을 매어 사는 두 여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후우! 결국 이렇게 해야 되나?’부모란 자식을 품안에서 적어도 십년이상을 키워 표정만 봐도 어떤 심정인지 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천만은 아들의 표정이 우울하자 생각했다.‘녀석, 그러게 왜 여자는 함부로 건들고 다녀. 내가 주변에 여자들이 많은 것이 절대로 좋은 것은 아니라고 누차 말했는데.’자신이 나서서 아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능력이 전혀 안 되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렇다고 그런 문제를 함부로 거론하기도 곤란했다.최태욱은 마음이 무거워 계속해서 한반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직접 전국의 산하를 돌아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보였다. 그러니 이제 그런 것은 모두 방치하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12/13 쪽

‘후우! 북한에서 큰 사건을 벌이지만 않으면 그런대로 잘 될 것 같은데 걱정이군.’살기가 너무 어려워 북한이 어떤 짓을 벌일지 몰라 은근히 걱정이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마구 퍼주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야 아무리 도와주어도 북한은 더욱 기가 살아 수시로 협박하며 앙앙거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도와주는 사람이야 악의로 주지는 않았다. 북한 주민이 너무 불쌍해서 후하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받아먹은 북한정권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아니 신중해야 한다.‘절대로 공짜로 뭘 주면 안 돼. 처먹던 버릇이 있으니 더 지랄할 거야.’개인 간이나 단체 그리고 국가도 마찬가지로 공짜로 뭘 얻어먹은 사람이 더 욕하는 법이다. 그래서 습성이란 매우 무서운 것이다.    전용비행기가 한창 남쪽으로 날라 제주도 인근을 지날 무렵. 통신장교가 최태욱에게 다급하게 다가와 큰 목소리로 보고했다.13/1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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